스위스의 과학자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는 엄청난 야망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손으로 생명체를 창조하는 일! 오랜 연구 끝에 그는 시체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키 244cm의 인형을 만들고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영국 소설가 메리 셸리의 작품 ‘프랑켄슈타인’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과학자의 얘기를 담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처럼 사람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생명을 불어 넣는다는 설정은 말 그대로 ‘소설 같은’ 얘기다. 하지만 생명공학자들은 세포수준에서 이런 일을 실제 벌이고 있다. 이들은 무엇을 재료로 살아있는 세포를 만들고 있는 걸까.
벤터의 연구는 버전 1.5?
2007년 10월 미국의 크레이그 벤터 박사는 실험실에서 합성해 만든 새로운 생명체가 수주 이내에 탄생할 거라고 주장했다. 그 이후의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지만 최소유전체를 골라내는 기술과 유전체를 세포에 이식하는 방법을 이미 개발했으니 어쩌면 내일 아침에라도 ‘실험실 세포’의 출현을 알리는 뉴스를 보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벤터가 개발하려는 인공생명체는 유전체만 인공적으로 만들어 세포에 이식했을 뿐, 세포의 모든 구성요소를 합성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인공생명체라고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버전으로 따지면 1.5 정도라고 할까.
유전체에 세포의 특징을 규정하는 모든 유전정보가 담겨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전체만 확보했다고 ‘무’(無)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뚝딱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게놈을 완벽하게 합성한다고 해도 그 안에 담겨진 정보가 세포에서 의도한대로 발현될지는 미지수다.
2005년 일본의 미쓰비시 가가구 생명과학연구원의 미츠히로 이타야 박사팀은 광합성 세균의 일종인 남세균의 유전체 전체를 청국장 발효균의 일종인 고초균의 유전체에 부분부분 잘라 붙여 융합한 연구결과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이전까지 박테리아의 유전체 일부를 다른 박테리아의 유전체에 끼워넣은 경우는 많았지만 두 유전체를 통째로 융합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타야 교수는 두 유전체가 융합된 유전체를 갖고 있는 세균이 두 세균의 특징을 모두 나타낼 거라고 기대했다. 광합성을 하는 청국장 발효균! 하지만 남세균-고초균 세포에서는 남세균의 특징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고 고초균의 특징만 나타났다.
유전체만으로는 원하는 생명체를 만들 수 없으며 세포질에 ‘플러스알파’에 해당하는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생명부품 담을 인공세포막
과학자들이 꿈꾸듯이 기본적인 화학물질로부터 세포의 모든 요소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가능할까? 이런 시도는 일찍이 1953년 미국 시카고대의 스텐리 밀러 교수와 해럴드 유리 교수의 연구에서 시작됐다.
그들은 물과 메탄, 그리고 암모니아와 수소를 유리관과 플라스크로 이뤄진 실험기구 안에 밀봉해 넣은 뒤 일주일 동안 내부에 불꽃을 튀겼다. 그 결과 플라스크 안에는 세포의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이 합성돼 있었다.
물론 인공생명체에 필요한 요소를 논할 만큼 정교한 유기물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인공적으로 세포의 구성물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결과였다.
그 뒤 세포를 이루는 다양한 구성요소를 합성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이 가운데 최근 과학자들이 인공세포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활발하게 연구하는 분야는 세포의 모든 요소를 담을 만한 ‘그릇’을 만드는 일이다.
세포의 모든 구성요소는 막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데 이 막은 세포의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구분하는 단순한 보호막이 아니다. 물질과 정보, 그리고 에너지를 선택적으로 통과시킬 수 있어야 하며 스스로 나뉘어져 또 다른 세포로 분열할 수 있어야 한다.
세포막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는 모델로 많이 사용되는 재료는 이중의 지질막으로 둘러싸인 구 형태의 리포솜이다. 과학자들은 1960년대 리포솜의 물리, 화학적인 성질을 연구한 결과 실제 세포막과 매우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 인공적으로 만든 리포솜 안에서 다양한 생명현상을 재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1995년 스위스 폴리머 연구소의 피어 루이지 박사팀은 세계 최초로 리포솜 안에서 DNA를 합성하는데 성공하며 인공 세포막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리고 2007년 6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렸던 제3차 세계합성생물학회에서 이탈리아 로마 제3대학의 지오반니 뮤타스 교수는 인공적으로 만든 리포솜 안에서 유전자를 발현시켰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리포솜 안에 실제 세포의 다양한 구성요소를 대신해 36가지 정제된 효소와 *리보솜, 그리고 *tRNA 등을 혼합해 인공세포질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녹색빛을 내는 단백질 유전자를 넣어 발현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실험 결과는 지금까지 보고된 인공세포막을 이용한 여러 연구들에 비해 상당히 진보한 내용이다. 하지만 아직도 실제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완벽하게 모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전물질이 자기복제를 하거나 리포솜이 분열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단백질을 합성하는데 꼭 필요한 tRNA나 리보솜도 대장균에서 분리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 막을 경계로 물질과 정보가 이동할 수 있는 통로도 만들어야 하는 등 인공세포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아직 많다.
‘생명 2.0 업그레이드’ 설계도 등장
프랑켄슈타인처럼 세포의 각 요소를 모두 인공적으로 합성해 살아있는 세포를 만드는 일은 정말 요원한 일일까. 이를 위해서는 유전체를 합성하는 일 외에도 반드시 고려해야할 살아있는 세포의 특징이 있다.
세포는 첫째, 막으로 둘러싸인 잘 설계된 구조를 갖고 있으며 둘째, 대사작용을 통해 각종 영양물질을 분해하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생성한다. 셋째,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세포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의사소통이 이뤄지며 넷째, 성장과 분열 그리고 자기복제를 하다가 다섯째, 수명을 다하면 죽는다.
세포의 이런 특성이 모두 나타나야 제대로 업그레이드 된 ‘생명 2.0’ 세포라고 할 수 있다. 2006년 미국 반데빌트대의 안소니 포스터 교수와 미국 하버드대의 조지 처치 교수는 ‘분자합성생물학’지에 세포의 모든 구성요소를 완전히 인공으로 만든 최소유전체 세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정리한 설계도를 제시했다.
그들이 제시한 요소는 유전자 115개를 포함하고 있는 염기 11만 3000개 길이의 최소유전체와 여러 가지 생명현상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생화학 장치들, 그리고 이들 구성요소를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이중지질막 등이다.
물론 실제로 이 설계도를 바탕으로 인공세포를 만들려면 앞으로도 넘어야할 산이 많다. 하지만 처치 교수는 1000만 달러(약 90억원)의 연구비를 투자하면 이 설계도를 바탕으로 인공세포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생명의 버전을 업그레이드하는 일대 혁명 같은 일에 대한 비용치고는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든다.
리보솜*
RNA와 단백질로 이뤄진 복합체로서 세포질 속에서 단백질을 합성한다.
tRNA*
단백질의 원료인 아미노산을 리보솜으로 운반하는 전달R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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