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날카롭고, 분명하게! 우주에서 약한 전파가 마치 맥박처럼 1.34초에 한번씩 규칙적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67년 우주 전파신호가 영국 케임브리지대 앤터니 휴이시 교수의 지도를 받던 대학원생 조슬린 벨의 눈길을 끌었다.
휴이시 교수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퀘이사)에서 나오는 미약한 전파를 매우 짧은 시간 간격으로 기록할 수 있는 관측기기를 만들었다. 퀘이사가 우리은하의 성간구름에 의해 반짝거리는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벨은 매일 여러 퀘이사를 반복해 관측했다. 퀘이사의 반짝거림은 휴이시 교수의 의도대로 관측됐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반짝거리는 우주신호는 그들이 애초에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다. 물론 관측기기에서 생긴 잡음도 아니었다.
케임브리지대의 전파 천문학자들은 이 새로운 우주신호의 정체에 대해 몇 달을 고민했다. 그들은 일단 정체불명의 신호에 LGM-1이란 이름을 붙였다. LGM이란 인간과 비슷한 외계 지적생명체가 보내는 신호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재미있게 표현한 ‘작은 초록 외계인’(Little Green Man)의 첫글자를 딴 이름이다. 첫번째 LGM을 발견한 달이 끝나갈 무렵 벨은 두번째 LGM을 찾아냈다. 두번째 신호를 발견하자 LGM이 외계 지적생명체의 신호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고 이들 전파원은 새로운 천체임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벨과 휴이시 교수가 펄서를 발견한 순간이다. 이 공로로 휴이시 교수는 197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손가락 마디에 10만톤 넣는다?
펄서(pulsar)는 ‘맥동하는 별’(pulsating star)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계인이 만들어낸 인공 신호로 착각할 정도로 우주전파가 규칙적으로 ‘맥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펄서는 수축과 팽창을 하지 않기에 잘못된 명칭이다. 대신 펄서는 매우 빠르게 회전하면서 전파를 내기 때문에 우주등대처럼 규칙적으로 깜박인다. 지구에서는 맥박 같은 펄스로 관측된다.
벨이 최초로 발견한 펄서(PSR 1919+21)는 1.34초마다 한바퀴씩 자전했다. 이렇게 빠르게 회전하는 물체가 원심력에 의해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으려면 천체의 밀도가 매우 높아야 한다. 예를 들어 1054년 게자리 초신성이 폭발하고 남은 펄서는 주기가 0.033초인데, 밀도가 1300억g/${cm}^{3}$보다 크다고 추정됐다. 이는 우리 손가락 마디 하나 속에 10만톤의 질량을 집어넣은 것보다 밀도가 더 높아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은 마침내 펄서가 백색왜성보다도 훨씬 단단하게 뭉친 중성자별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거운 별은 말년에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는데, 이때 중성자별이 남는다. 중성자별은 반지름이 10~20km이고 질량이 태양 질량의 1.4~2.1배 정도다. 엄청난 질량이 서울만한 공간에 집중돼 있어 중성자별의 밀도는 원자핵의 밀도와 같다. 펄서는 빠르게 회전하는 중성자별인 셈이다.
그렇다면 펄서는 어떻게 이토록 빨리 자전할 수 있을까. 김연아 같은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아름다운 스핀 동작을 생각해보자. 양팔과 한쪽 다리를 넓게 벌렸다가 몸통 쪽으로 급히 오므리면 회전이 빨라진다. 물리학의 각운동량* 보존법칙 덕이다. 선수가 팔다리를 오므리듯 큰 태양이 갑자기 자그만 중성자별로 쪼그라든다면 회전이 빨라진다. 25일에 한바퀴씩 자전하고 반지름이 70만km인 태양이 그대로 쪼그라들어 반지름이 12km인 중성자별이 된다면, 자전주기는 50억배 짧아져 10만분의 6초가 된다. 실제 중성자별은 초신성 폭발을 하면서 각운동량을 상당 부분 잃어버려 한바퀴 회전하는데 1초 정도 걸린다.
죽음에서 부활한‘밀리초 펄서’
1982년 인도의 쉬리 컬카니와 미국의 돈 백커가 기존 생각을 뒤엎는 새로운 펄서를 찾아냈다. 자전주기가 1.6ms(밀리초, 1ms=${10}^{-3}$초)인 펄서를 발견했던 것이다. 1초에 625바퀴 자전하는 이 펄서는 보통 펄서보다 1000배나 빠르게 자전하는 셈이다. 이런 펄서를 ‘밀리초 펄서’라 한다. 자전주기가 0.001~0.01초인 밀리초 펄서는 지금까지 110개 정도 발견됐다. 이에 비해 자전주기가 0.1~10초인 일반 펄서는 약 1500개가 발견됐다.
일반 펄서는 에너지를 잃으면서 자전주기가 점점 길어진다. 이로부터 펄서의 수명을 추정해 보면 100만~1000만년이다. 그러나 밀리초 펄서는 구상성단처럼 늙은 별들이 밀집한 곳에서 훨씬 더 많이 발견된다. 이는 밀리초 펄서가 10억살 정도로 오래된 천체임을 뜻한다.
대부분의 밀리초 펄서는 쌍성을 이루고 있어 천문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밀리초 펄서가 생긴다고 본다. 쌍성을 이루던 별중 하나가 먼저 진화해 펄서(중성자별)가 되는데, 1000만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펄서는 죽는다. 그뒤 상당한 시간이 흘러 죽은 펄서의 짝별은 계속 진화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거성이 된다. 이때 거성이 죽은 펄서에 물질을 공급하면 중성자별은 마치 팽이를 때리면 더 빨리 돌듯이 점점 빨리 돌게 돼 마침내 1초에 1000번쯤 회전하는 밀리초 펄서가 된다. 죽었던 펄서가 부활한 셈이다.
지구 위협하는 마그네타
펄서가 되기 위해서는 중성자별이 강력한 자기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반지름 70만km의 태양이 반지름 10km의 중성자별이 됐다면 자기장의 세기는 얼마나 될까. 물리학에서는 표면적과 자기장의 세기에 비례하는 양인 자속(magnetic flux)이 보존된다. 따라서 태양의 반지름이 7만배 작아지면, 표면적은 50억배가 작아지는 반면 자기장은 50억배 강해진다. 태양의 평균 자기장은 100가우스 정도라 중성자별이 되면 5000억 가우스가 된다. 보통 전파 펄서의 자기장은 1조 가우스 정도다. 따라서 전파 펄서의 강력한 자기장은 원래 별에 있었던 자기장이 좁은 영역에 응축돼 강해졌다고 설명할 수 있다.
결국 펄서는 빠르게 자전하며 자기장이 강한 중성자별이 전파를 매우 규칙적으로 내보내는 천체인 셈이다. 펄서가 규칙적인 전파(빛)를 어떻게 발생시키는 걸까. 전기를 띤 입자, 특히 전자는 자기장에 붙잡히면 자기력선을 따라 빙글빙글 회전한다.
이는 전자가 자기장에 의해 계속 가속된다는 뜻이다. 가속되는 전자는 빛을 발생시키는데, 이 빛이 바로 방사광 또는 싱크로트론 복사다. 그런데 중성자별의 강력한 자기장에 붙잡혀서 움직이는 전자는 거의 빛의 속도에 육박하는 속도로 움직인다. 이 경우 전자가 내는 빛은 전자의 진행 방향으로 집중된다. 펄서의 자기장은 양쪽 극에서 가장 강력하고 자기장의 축과 거의 나란하므로 결국 빛은 자기장의 축을 따라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즉 펄서에서 나오는 전파는 양쪽 극으로집중된다.
중성자별의 자기장 축은 회전축과 어긋나 있을 때 회전축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돈다. 따라서 마치 등대가 회전하면서 불빛이 깜박이듯이 중성자별의 자기장 축이 회전하면서 지구 방향에 놓일 때만 중성자별이 내놓는 빛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펄서의 신호다.
자기장이라면 빠질 수 없는 천체가 펄서의 일종인 마그네타(magnetar)다. 처음 발견됐을 때는 막대한 감마선과 X선을 쏟아내 ‘연질 감마선 연속발광체’(SGR) 또는 ‘변칙 X선 펄서’(AXP)라 불렸다. 마그네타는 달의 위치에 있다면 지구상의 신용카드가 전부 무용지물이 될 정도로 자기장이 강하다.
1979년에 처음 발견된 마그네타는 지구에서 궁수자리 방향으로 약 5만광년 떨어져 있는 ‘SGR 1806-20’이란 천체다. 이 마그네타는 크기가 20km 정도에 자전주기는 7.5초이고, 자전속도는 빛의 속도의 10%에 이른다. 이 천체는 2004년 12월 27일 태양이 10만년간 방출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양을 0.1초 만에 감마선으로 내뿜었다. 심지어 이때 나온 감마선에 의해 지구의 이온층이 잠시 팽창했을 정도였다.
이런 폭발이 10광년 이내에서 발생한다면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할 수도 있다. 다행히도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마그네타(1E 2259+586)는 1만3000광년 떨어져 있다.
최근 찬드라와 같은 X선 관측위성이 지구 대기권 밖에서 X선 펄서의 스펙트럼을 관측해 주변 원반 구조와 중력장 세기를정확히 측정하고 중성자별의 크기와 질량을 알아냈다. 지상에서도 각국의 전파망원경으로 전체 하늘의 전파 펄서를 탐색하고 있다. 펄서의 베일을 한꺼풀 더 벗기기 위한 우주와 지상에서의 합동작전은 계속될 것이다.
각운동량?
회전하는 물체의 회전운동 세기. 물체의 질량과 회전속도를 곱하고 여기에 회전축에서 떨어진 거리를 곱한 양이다.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을 때 물체의 각운동량은 일정하게 보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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