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짠 음식이 고혈압과 당뇨 같은 성인질환의 주요 원인임이 밝혀진 뒤, 현대사회에서는 조미료 사용을 줄여 싱겁게 먹는 ‘웰빙 식사’가 뜨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간 소금과 설탕의 맛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싱거운식사가 쉽지만은 않다. 현대인들에게 소금과 설탕이 들지 않은 음식은 너무 맛이 없다.
각종 성인질환을 앓고 있거나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싱거운 식사’에 대한 고민은 더 하다. 특히 신장질환을 앓는 환자는 나트륨이 거의 들어 있지 않은 무염식을 해야 한다. 쌀이나 밀로 쑨 죽에 간을 전혀 하지 않고 먹는 것처럼 맛이 싱거움을 넘어 밍밍하고 느끼하다. 쉽게 질리는 데다 심하면 역겹기도 하다.
소금(나트륨)이나 설탕(당) 없이도 입맛에 맞게 짜고 달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 세계 과학자들은 ‘뇌를 속여’ 싱거운 음식을 짜거나 달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맛 조절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한국식품연구원에서도 얼마 전 국내에서는 최초로 짠맛을 흉내 내는 ‘짠맛 조절물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소금이 아닌데도 뇌를 깜빡 속여 마치 소금을 먹은 듯이 짠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간장 빚다 찾아낸 ‘가짜 짠맛’
우리가 이 물질을 찾아낸 재료는 3~4년 묵은 ‘재래간장’이었다. 메주에 소금과 물만 넣어 발효시키면 밑에 가라앉는 건더기와 국물이 생긴다. 건더기는 된장이고, 국물을 따로 떠내 자연에서 3~4년간 숙성시키면 재래간장이 된다. 필자는 예전부터 전통식품이 발효와 숙성을 거칠 때 생성되는 성분에 관심이 많았다. 발효 과정 중에는 식품 안에 원래 없었던 성분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여러 화학 반응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많은물질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연구팀에서 ‘KFRI-LHe’라 이름 붙인 짠맛 조절물질이다. 필자가 처음부터 짠맛 조절물질을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식품에 존재하는 감칠맛을 내는 천연 펩타이드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실험 중간에 짠맛에 영향을 주는 결과가 여러 차례 나왔다. 소금이 아닌 물질이 소금처럼 짠맛을 내는 것이었다. 필자는 2005년 미국에서 열린 화학감각 학회에서 이 연구 결과에 대해 발표를 했다. 그때 우연히 만난 사람이 미국 버지니아 연방대 의대 생리학과의 존 데시몬 교수와 비제이 라이얄 교수였다.그들은 맛 세포 표면에서 짠맛 물질이 붙을 수 있는 수용체를 발견한 사람들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맛 조절기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1968년 세계 최초로 맛과 냄새를 연구하기 위해 필라델피아에 세운 모넬화학감각연구소는 미각과 후각과 관련된 맛 조절기술에 대한 연구를 7~8년 전부터 진행 중이다. 데시몬 교수와 라이얄 교수팀은 특히 짠맛 조절 연구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 팀이 우연히 발견한 ‘짠맛을 내는 물질’에 대해 함께 연구하자고 제의했다. 이렇게 연구가 시작됐다.
혀와 뇌를 속여라
우리 몸은 어떻게 맛을 느낄까. 기본 맛은 단맛과 신맛, 쓴맛, 짠맛, 감칠맛 등 5가지로 알려져 있다. 오래전에는 감칠맛을 제외한 4가지 맛이 기본 맛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분자생화학과 생리학, 유전학이 발전하면서 미뢰 속에 감칠맛을 인식하는 맛 수용체가 있음이 알려지면서 감칠맛도 다섯 번째 기본 맛으로 인정받게 됐다.
맛은 단순히 혀에서 느끼는 감각이 아니다. 뇌에서 인지하는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뇌가 맛있다고 인지하면 즐거움을 느끼도록 유전정보가 저장돼 있다. 이미 먹어봤던 음식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어 그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나 냄새를 맡았을 때 침이 혀에 저절로 고이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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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내는 물질은 침이나 물에 녹아 분자 또는 이온의 형태로 분해된다. 혀에 오돌토돌하게 나 있는 미뢰 속에는 맛 세포가 들어 있다. 맛 분자 또는 맛 이온은 맛 세포 표면에 달린 수용체에 붙거나 이온통로를 통해 맛 세포에 들어간다. 2가지 경로 모두 맛 세포를 자극시켜 맛 신호(맛을 전하는 활동전위 신호)를 생성한다.맛 신호는 맛 신경을 타고 뇌까지 전해진다. 뇌에서는 최종적으로 달고 시고 쓰고 짜고 감칠 나는 맛을 인식한다.
맛 조절물질이 뇌를 속이는 방법도 이 과정과 비슷하다. 우리 팀에서 개발한 KFRI-LHe은 소금에 들어 있는 나트륨이 아니지만 나트륨처럼 미뢰의 짠맛 수용체에 붙거나 막 이온통로를 거쳐 짠맛 세포를 자극한다. 그 결과 짠맛 신호가 생성돼 뇌까지 전해진다. 나트륨이 아닌 물질이 나트륨처럼 맛 경로를 이용해 짠맛을 느끼게 하는 셈이다. 짠맛 조절물질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은 사람은 소금을 넣지 않았는데도 짭짤한 맛을 느끼게 된다.
KFRI-LHe은 현재 가루 형태로 개발됐다. 눈으로 보기에는 조미료처럼 연한 갈색을 띄는 가루처럼 보인다. 앞으로 5년 이내에 상용화할 계획이다. 연구팀에서는 단맛 세포를 자극해 단맛을 내는 ‘설탕이 아닌’ 달콤한 천연물질도 찾고 있다. 마찬가지로 식품 안에서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천연물질 가운데서 찾을 예정이다. 수많은 천연물질 가운데 소금과 설탕처럼 원하는 대로 짠맛과 단맛을 내는 물질을 찾는 일은 화학물질을 개발하는 것보다 어렵다. 하지만 굳이 천연물질에서 찾으려는 이유는, 자연 속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물질이야말로 인체에 무해하고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매운 맛을 내는 물질도 개발할 예정이다. 고추장과 고춧가루, 김치가 절대 빠질 수 없는 한국 식품에서 매운 맛은 단연 중요하다. 그런데 매운 맛은 기본 맛으로 분류되지 않고 있다. 자극으로 인해 톡 쏘는 느낌은 세포에게 통증으로 인지되기 때문이다. 이런 통증 속에 다른 미묘한 맛이 조화를 이뤄 매운 맛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5월부터 통각에 대한 식품성분의 연구를 시작했다. 또 일본 도쿄대, 이탈리아 밀라노대의 연구진과 함께 매운 맛과 더불어 톡 쏘는 맛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누구나 다 인정하는 얼큰한 한국인의 입맛이 단순한 통증이 아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여섯 번째 맛임을 밝히고 싶다. 1
각종 성인질환을 앓고 있거나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싱거운 식사’에 대한 고민은 더 하다. 특히 신장질환을 앓는 환자는 나트륨이 거의 들어 있지 않은 무염식을 해야 한다. 쌀이나 밀로 쑨 죽에 간을 전혀 하지 않고 먹는 것처럼 맛이 싱거움을 넘어 밍밍하고 느끼하다. 쉽게 질리는 데다 심하면 역겹기도 하다.
소금(나트륨)이나 설탕(당) 없이도 입맛에 맞게 짜고 달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 세계 과학자들은 ‘뇌를 속여’ 싱거운 음식을 짜거나 달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맛 조절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한국식품연구원에서도 얼마 전 국내에서는 최초로 짠맛을 흉내 내는 ‘짠맛 조절물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소금이 아닌데도 뇌를 깜빡 속여 마치 소금을 먹은 듯이 짠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간장 빚다 찾아낸 ‘가짜 짠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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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이미 맛 조절기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1968년 세계 최초로 맛과 냄새를 연구하기 위해 필라델피아에 세운 모넬화학감각연구소는 미각과 후각과 관련된 맛 조절기술에 대한 연구를 7~8년 전부터 진행 중이다. 데시몬 교수와 라이얄 교수팀은 특히 짠맛 조절 연구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 팀이 우연히 발견한 ‘짠맛을 내는 물질’에 대해 함께 연구하자고 제의했다. 이렇게 연구가 시작됐다.
혀와 뇌를 속여라
우리 몸은 어떻게 맛을 느낄까. 기본 맛은 단맛과 신맛, 쓴맛, 짠맛, 감칠맛 등 5가지로 알려져 있다. 오래전에는 감칠맛을 제외한 4가지 맛이 기본 맛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분자생화학과 생리학, 유전학이 발전하면서 미뢰 속에 감칠맛을 인식하는 맛 수용체가 있음이 알려지면서 감칠맛도 다섯 번째 기본 맛으로 인정받게 됐다.
맛은 단순히 혀에서 느끼는 감각이 아니다. 뇌에서 인지하는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뇌가 맛있다고 인지하면 즐거움을 느끼도록 유전정보가 저장돼 있다. 이미 먹어봤던 음식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어 그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나 냄새를 맡았을 때 침이 혀에 저절로 고이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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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내는 물질은 침이나 물에 녹아 분자 또는 이온의 형태로 분해된다. 혀에 오돌토돌하게 나 있는 미뢰 속에는 맛 세포가 들어 있다. 맛 분자 또는 맛 이온은 맛 세포 표면에 달린 수용체에 붙거나 이온통로를 통해 맛 세포에 들어간다. 2가지 경로 모두 맛 세포를 자극시켜 맛 신호(맛을 전하는 활동전위 신호)를 생성한다.맛 신호는 맛 신경을 타고 뇌까지 전해진다. 뇌에서는 최종적으로 달고 시고 쓰고 짜고 감칠 나는 맛을 인식한다.
맛 조절물질이 뇌를 속이는 방법도 이 과정과 비슷하다. 우리 팀에서 개발한 KFRI-LHe은 소금에 들어 있는 나트륨이 아니지만 나트륨처럼 미뢰의 짠맛 수용체에 붙거나 막 이온통로를 거쳐 짠맛 세포를 자극한다. 그 결과 짠맛 신호가 생성돼 뇌까지 전해진다. 나트륨이 아닌 물질이 나트륨처럼 맛 경로를 이용해 짠맛을 느끼게 하는 셈이다. 짠맛 조절물질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은 사람은 소금을 넣지 않았는데도 짭짤한 맛을 느끼게 된다.
KFRI-LHe은 현재 가루 형태로 개발됐다. 눈으로 보기에는 조미료처럼 연한 갈색을 띄는 가루처럼 보인다. 앞으로 5년 이내에 상용화할 계획이다. 연구팀에서는 단맛 세포를 자극해 단맛을 내는 ‘설탕이 아닌’ 달콤한 천연물질도 찾고 있다. 마찬가지로 식품 안에서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천연물질 가운데서 찾을 예정이다. 수많은 천연물질 가운데 소금과 설탕처럼 원하는 대로 짠맛과 단맛을 내는 물질을 찾는 일은 화학물질을 개발하는 것보다 어렵다. 하지만 굳이 천연물질에서 찾으려는 이유는, 자연 속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물질이야말로 인체에 무해하고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매운 맛을 내는 물질도 개발할 예정이다. 고추장과 고춧가루, 김치가 절대 빠질 수 없는 한국 식품에서 매운 맛은 단연 중요하다. 그런데 매운 맛은 기본 맛으로 분류되지 않고 있다. 자극으로 인해 톡 쏘는 느낌은 세포에게 통증으로 인지되기 때문이다. 이런 통증 속에 다른 미묘한 맛이 조화를 이뤄 매운 맛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5월부터 통각에 대한 식품성분의 연구를 시작했다. 또 일본 도쿄대, 이탈리아 밀라노대의 연구진과 함께 매운 맛과 더불어 톡 쏘는 맛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누구나 다 인정하는 얼큰한 한국인의 입맛이 단순한 통증이 아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여섯 번째 맛임을 밝히고 싶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