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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성은 과학을 못할까?

알파걸, 진화심리학과 사회장벽에 갇히다

지난 2월 11일 하버드대가 여성 역사학자 드루 파우스트 교수를 총장으로 선출했다. 그는 하버드대 371년 역사상 첫 여성총장이다. 공교롭게도 파우스트 총장의 전임자인 로렌스 서머스는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서머스 전 총장은 비공식 모임에서 여성은 과학과 수학에서 평균적으로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논지의 연설을 했다. 현장에 있던 여성과학자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그뒤 사죄 요구, 학교 발전기금의 철회 위협, 하버드대 교수들의 항의 서명이 이어졌다. 그는 결국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과학 분야에서 남성과 여성이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서머스 전 총장의 주장은 전근대적인 사고의 산물일까. 그렇다면 요즘 뜨고 있는 알파걸은 별종인가. 그의 발언에 대한 과학적인 평가와 토론이 필요하다. 실제 미국 하버드대의 ‘마음?두뇌?행동 선도연구’에서 스티븐 핀커 교수와 엘리자베스 스펠케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한 과학적 논쟁을 벌였다. 과연 여성이 선천적으로 과학을 못하는지 살펴보고, 최근 불고 있는 알파걸 신드롬이 일시적인 미풍일지 가늠해보자.

여성은 과학을 못할까?


‘다윈의 대답’ 5가지

서머스 전 총장의 주장은 사실 다윈의 진화생물학과 인지심리학이 만나 형성된 최신 학문인 진화심리학에 근거한 논리다. 진화심리학의 기본 전제 중 하나는 인간의 심리적 발달과 표현이 진화과정에서 선택된 유전적 특성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진화과정에서 남녀는 일정 정도 다른 경로를 밟아왔으며 이 때문에 남녀의 평균적 특성에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발현될 때 과학 분야에서의 능력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핀커 교수는 서머스 전 총장을 지지하는 의견을 펼친다. 그는 남녀의 5가지 기질 차이가 과학계에서 차이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첫째, 남성은 높은 지위에 매우 집착하는 기질을 보이며, 이는 하나의 목표를 향하는 특성으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 여성은 가족이나 집단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우선순위를 둔다. 둘째, 인지심리학적 연구 결과를 보면 남성은 과학에서 필요로 하는 ‘사물’에 대한 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면, 여성은 ‘사람’에 더 관심이 많다. 셋째, 위기나 실패에 직면했을 때 남성은 이를 더 발전하라는 자극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지만, 여성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넷째, 공간 변형이나 공간 지각 능력에서 남녀의 차이가 뚜렷하다. 예를 들어 길을 찾아갈 때 남자는 지도에서 특정 지점의 좌표를 확인하는 반면, 여자는 그 옆에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수학능력에서 남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즉 문제 풀기에는 여성이 우위에 있거나 큰 차이가 없는 반면, 주어진 상황에서 문제를 추론하는 능력은 남성이 월등하다. 핀커 교수는 수학에서는 추론능력이 더 중요해 남성이 여성보다 수학을 잘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런 성차가 과연 생물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을까. 핀커 교수는 첫 번째 근거로 호르몬이나 수용체의 차이를 들었다. 예를 들어 공격성, 목표 지향성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은 남성이 더 많이 분비하고 이 호르몬에 반응하는 수용체도 더 많다. 그리고 성차가 남녀 차별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은 어린 시절부터 발견된다거나, 유인원을 비롯한 다양한 포유류에서도 흔히 발견된다는 점도 들 수 있다. 또 선천성 부신 과형성증 환자처럼 태아기에 안드로겐 같은 남성 호르몬에 과다하게 노출된 여성은 성인이 돼도 남성적 특성을 보인다. 아울러 성차는 문화, 역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느 인류사회에서나 보편적으로 나타나며 국가시스템이나 교육의 변화와 상관없이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나타난다.

더 나아가 미국 웨인주립대 킹즐리 브라운 교수는 남녀의 내재적인 차이가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쳐 남자에 비해 여자가 과학 분야에 더 적게 진출하고 회사의 고위층에 오르기 힘들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01지난 2월 11일 하버드대가 설립된지 371년 만에 첫 여성 총장으로 선출된 드루 파우스트. 02로렌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은 과학과 수학에서 여성의 능력이 뒤떨어진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결국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2005년 4월 미국 하버드대에서 스티븐 핀커 교수와 엘리자베스 스펠케 교수가 여성이 선천적으로 과학을 못하는지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겁이 났나, 화가 났나

스펠케 교수는 핀커 교수와 정반대되는 주장을 한다. 과학계에 여성의 숫자가 훨씬 적은 원인은 차별과 사회적 힘 때문이지 내재적인 능력의 차이 때문은 아니라는 뜻이다. 스펠케 교수는 어린아이들이 사물에 대한 인지능력을 발달시킬 때 성차는 나타나지 않으며 다만 크면서 교육을 통해 변화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또한 수학 능력의 발달에서 남녀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자신의 조사 결과도 제시한다.

그러나 그는 성인이 되면서 남녀간에 인지능력의 차이가 나타나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차이가 언어능력은 여성이, 수학능력은 남성이 우월하다는 식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즉 언어 영역에서 여성은 ‘유창함’(fluency)이, 남성은 ‘비유능력’(analogy)이 각각 더 우수할 뿐이지, 여성이 남성보다 언어능력이 뛰어나다고 일반화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수학영역에서는 ‘수학 계산력’에서 여성이, ‘수학 추론력’에서 남성이 뛰어날 뿐이지 남성이 수학 전반에서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다. 결국 여성은 언어능력에서, 남성은 수학능력에서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남녀 차이는 각 영역에서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 스펠케 교수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과학에서 남녀의 성차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 스펠케 교수가 첫 번째로 지적하는 요인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인식 차이다. 많은 아동학 연구에 따르면 부모는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에 비해 키가 더 크고 더 빠르게 움직이며 수학을 잘할 것이라는 강한 편견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아이의 행동이나 반응이 불분명할 때 부모는 여자아이라면 “겁이 났나 봐”라고 하는 반면, 남자아이에게는 “화가 났나 봐”라는 식으로 반응이 전혀 다르다. 이런 ‘성별 꼬리표 달기’는 어린이가 성장하는데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성차가 문화, 국가에 상관없이 어느 사회에서나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도 뛰어난 여성과학자가 있다. ‘여성과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로레알-유네스코 세계여성과학자상’을 받은 모리셔스(아프리카 동쪽의 섬나라)의 아미나 구리브파킨 박사가 좋은 예다.

‘남녀 차이’ 글만 읽어도 수학능력 떨어져

스펠케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문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즉 과학에서 남녀의 능력 차이는 생물학적 요인보다는 사회적 요인에 근거한다는 연구결과다. 예를 들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일란 다님로드와 스티븐 하이네가 2006년 10월 20일자 ‘사이언스’ 에 발표한 논문을 보자. 두 사람은 여성이 수학능력에서 남성보다 선천적으로 뒤처진다는 내용만 접하고도 여성의 수학문제 풀이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들은 ‘미국 대학원 입학자격 시험’(GRE)의 형식을 빌려 여성들의 수학문제 풀이능력을 검사했다. GRE는 흔히 수학영역과 언어영역을 반복해 풀도록 구성돼 있다. 연구팀은 수학영역-언어영역-수학영역의 순으로 문제를 풀도록 배치하고, 언어영역에 시험자의 심리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문을 배치시켜 그 영향을 살펴봤다. 즉 ‘남녀의 수학능력에는 차이가 없다’ ‘(수학에 대한 언급 없이) 남녀는 차이가 있다’ ‘남녀의 수학능력에는 차이가 있고, 이는 생물학적인 요인 때문이다’ ‘남녀의 수학능력에는 차이가 있지만, 이는 사회적인 요인 때문이다’라는 4종류의 지문을 각기 다른 집단에 주고, 이 지문 앞뒤에서 수학문제 풀이능력을 비교했다. 놀랍게도 남녀의 수학능력에서 차이가 없다거나 그 차이가 사회적 요인 때문이라는 지문을 접한 집단의 수학 점수는 남녀의 차이가 있다거나 남녀의 수학능력 차이가 생물학적 요인 때문이라는 지문을 읽은 집단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결국 수학문제를 푸는 사이에 남녀의 수학능력 차이가 선천적이라고 알려주는 행위로도 수학능력을 떨어뜨린 셈이다.

이 실험에서는 더 나아가 수학과 관련 없이 남녀는 다르다는 고정관념만으로 여성의 수학문제 해결능력이 저하됐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고정관념 위협효과’다. 사람들이 자신과 관련된 고정관념을 접하면 이에 맞는 행동을 보인다는 효과다. 미국 흑인의 경우 자신의 인종에 대한 내용이 강조된 상황에서 IQ검사를 하면 결과가 낮게 나온다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스펠케 교수는 여성이 수학 계산력에서 뛰어나므로 남성이 수학 전반에서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이화여대 졸업식 장면.
여성과학기술인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있다. 로레알은 1998년부터 유네스코와 함께 ‘로레알-유네스코 세계여성과학자상’을 제정해 후원하고 있다. 사진의 주인공은 2007년 수상자 중 한명인 밀드레드 드레셀하우스 MIT 물리학과 교수(오른쪽)다.


성전환 과학자의 고백

남녀의 사회적, 문화적 차별성에 대해 가장 잘 표현한 글은 미국 스탠퍼드의대 신경생물학과 벤 바레스 교수가 2006년 7월 13일자 ‘네이처’에 기고한 논평이다. 그는 원래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성인이 돼 남성으로 성전환을 한 사람이다. 그는 여성으로서 과학계에서 차별을 경험한 뒤 남성이 됐으니 어찌 보면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뼈저리게 느낀 과학자일 수도 있다.

그는 MIT 학부에서 여학생으로 공부할 때의 경험을 토대로 과학계에 여성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많은지를 말해줬다. 예를 들어 여성이었을 때는 어려운 문제를 풀면 교수는 남자친구가 숙제를 대신해줬을 것이라 추측했지만, 나중에 남성이 된 뒤에는 문제를 잘 풀면 이 사람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실을 모른 채로 “학생은 이전의 ‘누나’보다 수학문제를 잘 푸네”라고 말했다.

성별에 따른 꼬리표 달기는 실제 과학계의 다양한 활동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미국 위스콘신대 레아 스타인프레이스 박사팀은 대학에서 신임교수를 선발하거나 정년을 심사하기 위해 동일한 이력서를 받았을 때 대학선발위원회는 남성 이름의 지원자를 여성 이름의 지원자에 비해 훨씬 많이 선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연구나 강의 능력이 우수한 교수의 정년보장 과정에서는 차이가 적지만, 신임교수 선발과정에서는 그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났다. 즉 신진 여성과학자에게는 교수 진입 문턱이 더 높다는 뜻이다.

또 웨인주립대 프랜시스 트릭스와 캐롤린 프센카가 의학대학원 지원생들의 추천서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지원자를 위해 작성한 추천서에는 남성 지원자 추천서에 비해 부정적인 표현이 많다는 점이 밝혀졌다. 즉 입학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추천서에서도 지도교수는 여학생에게 ‘비록 많은 연구를 수행했지만’과 같이 의심을 포함한 칭찬 표현을 많이 쓰거나 ‘연구’라는 단어보다 ‘훈련이나 교육을 받았다’처럼 좀더 낮은 수준의 추천 표현을 빈번히 사용했다. 반면 남학생에게 ‘연구력이 뛰어나다’ ‘특정 기술을 갖고 있다’ ‘좋은 경력을 갖고 있다’는 식의 긍정적 표현을 상대적으로 많이 썼다.

결국 분명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생물학적, 인지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이것이 과학계로 진출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핵심인자가 아니며, 그보다는 과학계의 뿌리 깊은 남성 중심성이 여성의 진출과 알파걸의 출현을 가로막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과학계에서 여성의 참여가 낮다는 사실은 남성에게도 절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회 전체의 발전을 막는 현상이다. 과학계에서 여성의 참여와 기여를 강력하게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이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교수를 채용할 때 여성을 우대하거나 여성만 선발하는 제도를 마련했고, 정부 연구비 지원에서도 여성의 비율이 일정 정도 되도록 규정하거나 여성에게 가점을 주는 제도도 도입했다. 또 각종 과학정책을 결정하는 위원회에 여성의 참여를 늘이고, 중?고등학교부터 여학생들의 과학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과학계에 알파걸이 다수 탄생할 희망적 징조다.

이제 이런 제도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일뿐만 아니라 남녀의 진화생물학적인 차이가 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나거나 사라지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와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이해했을 때만 효과적으로 여성의 과학참여를 증대시키고 상당수의 과학계 알파걸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01어린시절에 성차가 나타나는지는 논란이지만, 어릴 때부터 과학의 흥미를 느끼는 일은 중요하다.
02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한 과학자 벤 바레스 스탠퍼드의대 교수. 과학계 남녀 차별 문제를 지난해 7월 13일자‘네이처’에 기고해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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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강호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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