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아.
벌써 1월이 다 가고 있어. 새해라고 흥분해서 떠들던 목소리들도 이제 사라지고, 1991년이 차분하게 자리잡혀 가는 것 같아. 기분 좋기도 하지만, 벌써 우리가 '새로운 출발'에 무감각해져 버린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시작이 반이라는데 새해 출발은 만족스럽니. 난 첫 1주일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보내야 1년 내내 열심히 공부할 것 같았어. 그래서 애를 쓰긴 했는데 결과는 세모표야. 겨우 낙제를 면할 정도랄까.
대학입시도 이제 1년이 채 안 남았는데 수학 때문에 걱정이라고. 너한테 남은 기간을 잘 고려해 계획을 세워 보았니. 네게 남은 시간이 이제 한눈에 들어 오지.
내 사촌 동생도 수학을 굉장히 싫어하던데 너도 싫어하니. 작년 말, 사촌동생에게 전화가 왔었어.
"누나야? 지금 갈께."
밤이 꽤 늦었는데 번개처럼 달려와서는 커다란 보따리를 안겨주는 거야. 그리고 "누나, 나 합격했어. 이거 필요하다고 했지. 다 가져"하면서 3년 동안 쓰던 수학참고서를 몽땅 주는거야. 고등학교 참고서를 달라고 부탁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급하지는 않았었는데…. 얼마나 지겹고 싫었으면 합격이란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와 수학책들을 던져버렸겠니.
"얘, 넌 누나가 수학과 학생인데 수학을 왜 그렇게 싫어하니. 너 수학을 아주 못하는구나"하고 물었더니, 동생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대답을 하는거야.
"누나, 제발 부탁이니까 수학 이야기 하지마. 수학시험이 어렵지 않았느냐고 묻지도 말고. 나 학력고사에서 수학은 30점 맞았는데, 30점짜리가 무슨 말을 하겠어."
그래서 그게 무슨 자랑이냐고 쏘아붙여주려다가 참았지. 그런데 너도 수학이 싫다니. 하긴 미국의 어떤 교육학자는 학생들이 수학을 싫어하는 이유를 연구했다더라.
대학가서 뒤늦게 후회할 것
사촌 동생이 저렇게 수학을 싫어하다가 대학에 가서 틀림없이 고생할 것 같아 걱정이야. 그나마 자연계가 아니라 조금 다행이지만 인문계 친구들도 수학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던데.
내 친구 중에 경영학과에 다니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수학때문에 많이 고생했거든. 그 친구를 첫 미팅 때 만났는데, 여럿이 차마시고 이야기를 하는데, 계속 안절부절 못하는 거야. 친구 중에 하나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다음날 수학시험을 본대. 우리가 시험볼 사람이 배짱도 좋게 미팅을 한다고 놀렸더니, 여학생 중에 수학과 학생이 둘이나 있다기에 나왔다는 거야. 우린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고, 미팅은 과외교습소로 변하고 말았지.
그 시험을 잘 봤는지 모르겠지만 다음에도 종종 문제 풀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모르는 것 묻기도 하고, 시험 본 후에 투덜거리기도 했지. 시험점수랑 성적을 끝까지 안 가르쳐줬는데 1년 내내 고생만 하고 성과가 별로 좋지 않았나 봐. 고3이 된 사촌동생을 본 순간 그 친구가 생각나 방학 때 미리 공부하라고 책까지 빌려줬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놓고 도망갔어. 너도 내 동생만큼이나 수학을 싫어하니.
학생들이 수학을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연구했다는 그 학자는 노력에 비해 눈에 보이는 성과가 너무 적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대. 국어책이나 영어책 같은 것은 두어시간 읽으면 상당한 분량을 읽는데 반해 수학은 두시간 공부해도 서너페이지 밖에 못 읽고, 문제를 풀어도 40문제 정도 밖에 못 풀지. 국어나 영어는 한시간에 30분제 이상 푸는데 말이다. 사람의 심리가 적은 노력으로 많은 결과를 원하는데 수학은 그런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니까 학생들이 수학을 싫어하게 된대.
난 그 학자처럼 깊이 연구해보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수학을 어렵다고 생각하고 싫어하는 이유는 진짜로 수학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학력고사에서 다른 과목은 한 문제에 1점씩인데 수학은 2점이고, 평소에도 수학은 20문제나 25문제밖에 안 나오니까 하나만 틀려도 다른 과목에서 두 문제나 더 점수를 따야하니까 우선 부담스럽지. 게다가 아무리 공부를 해도 생각만큼 진도가 나가는 것도 아니니까 의욕도 떨어질 수밖에.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을 투자했으니 시험에도 자신이 없어지고 점수도 따라서 나빠질 수밖에 더 있겠니. 자신이 더 없어지고 그러니 수학이 더 싫어지고, 대강 이런 순서로 악순환이 계속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 악순환을 한번 깨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으니 우리가 공격할 수 있는 것은 '공부할 의욕이 떨어진다'는 단계 같은데….
내 친구 중에 두번이나 대학입시에 실패했던 친구가 있어.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별 어려움없이 대학엘 갈 수 있었어. 처음 대학에 떨어졌을 때는 본인도 주위 친구들도 모두 '실패할 수도 있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
그래서 재수를 했는데 또 실패를 했고, 학력고사 점수는 전해보다 훨씬 나빴어. 모두 놀랬지. 실망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친구를 달래서 물어봤더니, 수학이랑 영어에 자신이 없고 마음은 급해서 두 과목을 포기하고 다른 과목에서 점수를 따려고 했었대. 그런데 워낙 손실이 많으니까 채워도 채워도 모자랐다는 거야. 삼수를 시작하면서 친구들이 같이 도와주기로 하고 수학을 다시 공부했어. 여름방학 내내 수학책을 붙들고 씨름을 했는데, 그 여름, 더운줄도 모르게 지나가더래. 이렇게 열심히 수학공부를 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 친구는 다음 해 대학생이 되었어. 그 친구 말이 그때 수학점수가 눈에 띄게 올라간 것은 아니지만, 전보다는 수학시험이 겁나지 않고, 오히려 차분해지니까 하나씩 풀 수 있는 문제가 늘어나더래.
그 친구는 "수학도 잘하면 꽤 재미있겠더라"라고 말하기도 했어.
자신감이 문제
다른 공부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수학은 자신이 공부한 것에 대한 만족이 안심시켜 주기도 하고 자신감도 가져다 주는 것 같아. 어떤 문제가 나왔을 때 '이것은 처음 보는 문제인데'하면서 푸는 거와 '전에 이런 유형을 어떻게 풀었지'하며 푸는 것이 다르지 않겠니.
처음 시작할 때는 공부한 것보다 앞으로 해야할 것이 훨씬 많으니까 답답하고 초조하겠지만 꾹 참고 조금만 더 공부해 봐. 눈은 게으르지만 손은 부지런하니까 금방 공부한 것이 쌓이게 된다구. 난 수학문제 푼 공책을 전부 모아 놓았어. 쌓아놓은 공책 높이가 30㎝가 되게 하는게 목표였어. 비록 공책을 30㎝까지는 못 쌓았지만 그래도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지.
나는 항상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만큼의 공부를 했어. 아침부터 점심까지는 영어, 저녁까지는 다른 공부, 저녁 식사 후 잠잘 때까지는 수학. 이런 식으로 공부하니까 진도에 쫓기지 않고 더 좋던데. 시험날짜가 가까워오면 다른 공부를 많이 해야하니까 수학공부는 시간은 좀 줄었지만, 한 문제를 풀더라도 날마다 공부할 수 있었어.
선배로서 충고라면 기본내용을 잘 이해하라는거야. 시험이 닥치고 마음이 바빠지면 내용이 정리된 것을 복습하기보다 새로운 문제를 풀려고 서두르게 되지. 그렇게 해보니까 오히려 문제 푸는 속도가 느려지고 중요한 내용을 모르고 넘어가기도 했어.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기본내용이 중복되는 것 뿐이니까 기본을 확실히 해두는 게 가장 중요해.
네가 하도 수학을 어려워하고 걱정을 하길래 장황하게 늘어놓았구나. 너나 다른 사람들이 수학을 못하는 게 아니라 단지 자신이 없어서 겁을 내는거니까 자신을 가지고 용감하게 밀고 나가봐.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일찌감치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너도 할 수 있어.
내일은 또 눈이 온대. 요즘은 건강도 실력에 들어간다더라. 항상 건강하고 내년 이맘땐 네가 승리의 미소를 지어야지. 널 위해서 항상 기도할께. 힘내. 아직 3백30여일이나 남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