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원주민인 이누이트는 달력을 보지 않고도 봄이 언제 오는지 알 수 있다. 북 극의 봄이 시작되는 4월 무렵에는 날이 풀리면서 북극오리와 기러기떼가 찾아오 고, 빙하를 보기 위해 관광객이 몰려든다. 겨우내 북극을 떠났던 과학자도 장비를 점검하러 돌아온다. 그러나 요즘은 봄의 전령사를 믿기 어려워졌다. 겨울인데도 그 다지 춥지 않고 봄은 예전보다 일찍 찾아온다.
지혜로운 원주민의 판단을 흐려놓는 데는 과학자도 한 몫 한다. 지구온난화의 열 기가 뜨거워지면서 봄이 되면 찾아오던 과학자들의 발길이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 기 때문이다. 2007~2008년이‘국제극지의 해’(IPY)이기도 하고, 유엔 산하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이하 IPCC)가 연초부터 기후변화보고서를 차례로 발표 하며 남극과 북극을 주목한 탓도 있다.
1979년부터 2006년까지 북극의 해빙(海氷) 면적은 꾸준히 감소했다. 특히 해빙 면적이 최대로 줄어드는 9월에는 10년마다 8.6%의 비율로 얼음이 녹았다. 매년 한 반도의 절반 정도 면적인 10만km2의 해빙이 사라진 셈이다. 특히 2005년 9월에는 알래스카의 크기(170만km2)만큼 해빙 면적이 줄어들었다.
남극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3월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는 남극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구온난화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논문이 실렸다.
기후를 주무르는 보이지 않는 손
영국 남극연구소 자연환경연구팀의 존 터너 박사는 지난 30년간 겨울철 남극의 대류권 기온이 10년마다 0.5~0.7℃씩 올라갔으며 성층권의 기온은 오히려 떨어졌 다고 말했다. 터너 박사는“남극 상공의 온실기체가 지구의 복사에너지를 흡수하 면 대류권의 기온은 올라가지만 성층권은 냉각된다”며 남극도 온실기체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왜 남극과 북극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까. 극 지연구소 극지환경연구부 김성중 박사는 눈과 얼음을 주범으로 꼽았다. 그는“눈 이나 얼음은 빛을 대부분 반사해 극지의 기온을 낮게 유지해준다”며“지구의 기온 이 올라가면서 얼음이 녹으면 반사하는 태양에너지가 줄어들며 결과적으로 극지 의 온도가 올라가고 환경이 급변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남극과 북극 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극지의 빙하가 녹으면 가장 먼저 해수면 상승이란 가시적 효과가 나타난다. 극 지연구소 극지환경연구부 홍성민 박사는“남극 세종기지 앞 빙벽이 해마다 눈에 띄게 후퇴하고 있다”며“남극과 그린란드의 빙상과 북극의 해빙이 녹으면 해발고 도가 낮은 투발루 같은 나라는 50년 안에 물에 잠길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바닷물의 열팽창도 해수면 상승에 중요한 요인이다. 열 팽창은 온도가 올라가면 유체의 부피가 커지는 현상으로 물은 온도가 1℃ 올라가 면 부피가 0.01% 정도 팽창한다. 연세대 대기과학과 노의근 교수는“바다는 대륙 으로 막혀있기 때문에 열팽창이 일어나면 고스란히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바닷물의 깊이를 4000m라고 했을 때 수온이 1℃만 올라가도 해수면이 40cm 높 아진다”고 설명했다.
대기와 얼음, 해양 사이에 열교환이 일어나면 지구온난화에도 가속도 가 붙는다. 길고 무더워진 여름, 극지의 얼음이 녹아내리면 태양과 정면 으로 마주친 바다는 열을 많이 흡수하며 온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당연 히 겨울이 되도 얼음이 어는 속도는 더디다. 예전보다 두께가 얇아진 얼 음은 날이 풀리며 빠르게 녹는다. 바다는 더 뜨거워지고 이 열이 대기 로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지구의 기온은 더 올라간다.
극지의 얼음이 녹으면 해류의 움직임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대양 대순환은 뜨거운 적도의 열을 차가운 극지로 전달하며 지구의 열을 고르게 분배해 일명‘해양 컨베이어벨트’라고도 부른다. 빙하가 녹 으면 바닷물의 염분이 낮아지면서 대양대순환 자체가 약해지거나아 예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당장 유럽에는 한파가 몰려올 수 도 있다.
극지의 생물은 모진 변화에 직면했다. 지구온난화로 남극 대륙 에서는 강설량이 늘며 얼음 면적이 증가했지만 남극반도처럼 바 다와 접해있는 곳에서는 온도가 오르며 빙붕이 떨어져나갔다.
마른 땅에만 둥지를 만드는 아델리펭귄은 눈이 다 녹을 때까 지 기다려 알을 낳는다. 크릴이 한창 풍부한 시기를 지나 세상에 나온 새끼는 굶주림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어미 펭귄은 해빙이 줄어든 바다를 헤엄치며 힘겹게 먹이 사 냥을해야한다. 결국 남극반도에서 아델리펭귄의 개체수는 1970 년대 이후 70%나 줄었다.
죽거나 혹은 적응하거나
북극에서도 기온이 오르며 북극오리, 바다코끼리, 고래가 떠나고 대신 대구가 찾아오 고 있다. 북극곰은 이미 체격을 줄이고 새끼를덜낳는 방식으로 숨가쁜 적응을 시작했다. 해빙이 줄어들며 사냥의 기회가 줄었고 새끼 곰의 생존율도 뚝 떨어졌다. 북극곰은 지난 해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정한 멸종위기종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극지연구소 극지응용연구부 강성호 박사는“빙하에 의존해 살던 생물은 개체수가 줄 어들거나 서식지를 북쪽으로 옮기는 반면 일부 조류나 포유류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번 성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종들 간에 희비가 엇갈리는 셈이다. 문제는 일부 생물 에게만 호의적인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2100년경이면 더 이상 북극에서 해빙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동시에 얼음에 기 대어 살아온 수많은 생명들도 이번 세기 안에 사라져버릴 위험에 처했다. 북극곰이 떠나 며 이누이트는 꿈과 미래를 잃었다. 적도의 작은 섬 투발루는 해마다 섬을 집어삼킬 듯 높아지는 바닷물과 싸우며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극지의 빙하에서 적도의 해수면에 이르는 거대한 기후의 나비효과 속에서 지구의 미 래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Report
그래프로 보는 2007 기후변화 보고서
북극
해빙 면적 변화
위성 관측자료에 따르면 1979년 이래로 북극에서는 한반도 면적의 6배가 넘는 해빙이 녹아 사라졌다. 원인은 지구온난화. 북극의 평균 기온은 지난 100년 동안 전 지구의 기온 상승률보다 2배나 더 빠르게 올라갔다.
대양대순환의 원리
북극 주변의 차갑고 짭짤한 물은 밀도가 커 아래로 가라앉으며(01) 적도의 뜨거운 해류인 멕시코만류(02)를 북대서양까지 끌어올리는 엔진 역할을 한다. 대양대순환이 있기에 영국은 따뜻한 겨울을 보낸다. 그러나 그린란드나 북극해의 얼음이 녹으면서 바닷물의 밀도가 낮아지면(03) 대양대순환의 흐름이 깨질 수 있다.
남극
남극 대류권의 온도 변화
남극 대륙은 연중 저기압대의 영향을 받는데다가 강력한 서풍이 적도의 해류를 차단해 북극보다 온도 변화에 덜 민감하다. 따라서 지구온난화로 남극이 어떤 변화를 보일지 예측하는 일은 좀 더 복잡하다. 영국남극연구소의 자연환경연구팀은 1971년부터 30년 동안 남극 9개 지점의 상공에 라디오존데를 띄워 대류권의 온도 변화를 측정했다. 그 결과 겨울철 남극 대류권의 온도는 10년마다 0.5~0.7℃씩 상승했다.
마리만소만의 빙벽 후퇴
세종기지에서 4km 정도 떨어져있는 마리안소만. 여름이면 집채만한 빙벽이 무너져 내린다. 실제로 1956년 12월 이후 마리안소만의 빙벽은 꾸준히 줄어 현재 1km정도 후퇴한 상태다.
※얼음 용어 정리
•빙하(glacier): 대륙에 쌓인 눈이 오랫동안 다져져 만들어진 얼음층으로 고도가 낮은 곳으로 흘러내린다.
•빙상(ice sheet): 대륙을 덮고 있는 거대한 얼음덩어리.
•빙붕(ice shelf): 빙상의 일부가 바다 위로 뻗어 나온 덩어리.
•빙산(iceberg): 빙붕이 바다로 떨어져 나와 생긴 얼음덩어리.
•빙모(ice cap): 산꼭대기를 덮고 있는 얼음층.
•해빙(sea ice): 바닷물이 얼어 만들어지며 아무리 두꺼워도 1년에 2m 이상 자라지 못한다. 바람이나 해류에 의해 이동하면 유빙(pack ice)이라고 부른다.
지구전체
지구 평균 기온
지난 50년 동안 지구의 온도는 10년마다 0.13℃씩 올라갔고, 최근 12년(1995~2006년) 가운데 11년이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고로 더웠던 해로 기록됐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지난 65만년 동안 자연적인 이산화탄소 농도 범위는 180~300ppm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나 2005년에는 379ppm으로 치솟았다. 특히 1995~2005년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연간 1.9ppm씩 늘어 1960~2005년의 평균인 1.4ppm보다 빠른 증가율을 보였다.
지구온난화가 전세계에 미칠 영향
적도
해수면 상승에 기여하는 요인
1993~2003년의 위성 관측자료를 분석한 결과 바닷물이 열팽창하고 극지와 내륙의 빙하와 빙상이 녹으며 전지구의 해수면이 연간 3.1mm씩 높아졌다. 해수면 상승을 가속시키는 주된 요인은 열팽창이다. 열팽창은 전세계의 해양에서 수온 상승과 비례해 일어난다. 반면 극지의 얼음은 대기와 해양의 온도가 0℃보다 높이 올라가야 녹기 시작하므로 반드시 기온 상승 정도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지구 평균 해수면 높이
지구의 평균 해수면이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특히 1961~2003년의 연간 해수면 상승률이 1.8mm인데 비해 1993~2003년에는 매년 3.1mm씩 높아졌다.
투발루 푸나푸티의 해수면 높이 변화
투발루의 수도 푸나푸티의 해수면 평균높이는 1.99m 정도지만 섬 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와닿는 것은 해수면의 최고높이다. 1997년 3월에는 사이클론의 영향으로 해수면이 3.33m까지 올라갔고(01) 2001년 3월에는 봄철의 높은 조수 때문에 해수면의 최고값이 3.35m를 기록했다(02). 반면 1997~1998년 엘니뇨 기간에는 해수면이 35cm까지 낮아지기도 했다(03).
남태평양 섬나라의 연평균 해수면 상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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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극지의 가슴 차가운 적도의 눈물
PART1 지구의 미래가 녹고 있다
PART2 투발루여 가라앉지 마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