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이 물문제에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기상 예측이 쉽지 않기 때문에 최근에서야 두 분야의 결합이 가능해졌다. 물을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탄생한 기상을 이용하는 첨단 수자원 관리 기술을 만나보자.
매년 연중행사처럼 홍수로 하천이 범람하고 빈번하게 가뭄이 발생한다. 큰 피해를 볼 때마다 사전에 대비책을 강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한편으로는 위대한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 지식의 한계에 회의를 느낀다. 과연 이와 같은 물 문제를 해결할 궁극적인 방법은 없는 것일까.
홍수와 가뭄을 극복하고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만큼의 물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계속돼 왔다. 사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치수(治水)는 통치자의 첫번째 덕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역사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치수사업들의 흔적이 우리나라 곳곳에도 남아 있다. 장구한 세월을 따라 그 시대에 활용 가능한 모든 과학기술이 치수사업에 총동원됐던 것이다.
최근 컴퓨터와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상 예보가 점점 정확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기상 정보를 치수에 활용하는 일이 주목받고 있다. 첨단 기상 연구가 수천년 간 지속된 물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직접 살펴보자.
기상예보에서 출발해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았는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물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물이 어떻게 생성돼 어떤 과정을 거쳐 살다가 소멸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지구에 물의 대부분은 바다에 존재한다. 엄청난 규모의 저수지라 할 수 있는 바다에 태양열이 가해지면 바닷물이 증발해 공기중의 수분이 된다. 기체상태의 수분은 자유롭게 이동하다가 모여 구름이 된다. 구름은 결국 물방울이 돼 지표면으로 떨어진다. 흔히 강우(또는 비)라 불리는 현상이다. 지표에 도달한 빗물은 땅속에 스며들거나 지표면을 타고 흐른다.
땅 속에 스며든 물은 식물의 뿌리에 흡수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지하수가 된다. 지표를 흐르는 물은 결국 하천이나 저수지로 이동한다. 지하수와 하천, 저수지에 저장되는 물을 바로 인류가 이용하는 것이다. 인간이 사용한 물을 포함해 하천과 지하수, 저수지의 물은 결국 다시 바다로 되돌아간다.
물의 순환과정을 이해하고 나면 이제 물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홍수와 가뭄, 그리고 물부족과 같은 물문제는 물의 순환과정에서 지표에 물이 한꺼번에 모이거나 사라져서 일어난다. 물론 강우와 같은 자연현상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할까.
최선의 방법은 물이 한꺼번에 모이거나 없어지는 일을 미리 예측해 그 영향이 최소가 되도록 완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복잡한 물 순환과정에서 물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얼마만큼 이동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공기중에서 물의 흐름, 즉 기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기상 예보가 수자원 관리의 시발점인 이유다.
사실 미래를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계획 또는 대책을 수립하는 노력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는 가계수입을 예상해 지출을 계획한다. 대학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 몇달 간 조금씩 저축할 수도 있고, 큰 수입이 예상될 때는 넉넉히 쓰기도 한다.
물문제 역시 가계지출과 마찬가지다. 물이 한꺼번에 모이거나 없어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물의 양을 적절히 조절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현실과 똑같은 컴퓨터 모형
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 상태를 평가하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는 일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의 순환과정을 수식화해 컴퓨터 모형을 만들어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물순환 컴퓨터 모형의 성패는 얼마나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예측 결과가 실제와 다르다면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물순환 모형이 실제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해야 한다. 컴퓨터에 현실과 똑같은 세상을 만들어야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물의 순환과정에 개입되는 변수는 한두가지가 아니며, 그들의 변화가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이다.
물순환 모형에 필요한 변수를 대략 살펴보면, 기상, 지형, 식생분포, 토지이용, 토양종류 등이 있다. 사실 물의 순환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변수들은 훨씬 더 많다. 이런 정보들은 과거에는 종이지도 위에 적혀있었지만, 최근에는 지형정보시스템(GIS,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의 발달로 컴퓨터에 완벽하게 구현되고 있다.
그런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기상은 물순환 모형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골칫거리였다. 1960년대 초 미국 MIT의 기상학자 로렌츠는 기상 현상에 관한 흥미로운 특성을 발견했다. 기상을 예보할 때 초기조건이 아주 작은 차이가 있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결과가 완전히 다르게 나온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20세기 후반 가장 위대한 발견중의 하나가 됐는데, 흔히 카오스(chaos)라 불린다.
카오스적인 기상의 특성 때문에 이를 예측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1백년 후에 일식이 올 시각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지만, 1주일 후 비가 올지 안올지 예측한 것은 영원히 100% 맞힐 수 없다. 이 때문에 물순환 컴퓨터 모형에서 기상은 고려할 수도 고려안할 수도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토네이도 따라다니며 분석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완벽한 기상예보는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지만, 과학자들의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정확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기상 예보가 부정확했던 이유 중 하나는 복잡한 수식을 단순화시켜 계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퍼컴퓨터가 발달하면서 더이상 계산의 정확도를 포기할 필요가 없어졌다.
또 기상의 카오스적인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기상예측의 초기 조건인 현재의 기상상태를 좀더 정확하게 반영하면 기상예측 결과가 좀더 정확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기상상태는 그 지점에서 직접 측정해야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다. 하지만 관측소를 무한히 늘릴 수 없다. 지상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바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과학자들은 인공위성을 이용한 원격탐사기술을 도입했다. 원격탐사기술은 위성사진 정보와 실제 기상과의 상관관계를 이용해 구름이 얼마나 수분을 포함하고 있는지, 바다위에 내리는 비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준다.
군사목적으로 적을 탐지하려고 개발된 레이더도 기상분야에서 활용되는 용도가 다양해지고 있다. 레이더의 전파가 구름속에 존재하는 물방울에 충돌해 되돌아오는 것을 분석해 강수량을 알아내는 것은 기본이다. 최근 개발된 NEXRAD(Next Generation Weather Radar)와 도플러 레이더는 토네이도와 같은 급격한 기상 현상을 포착해 따라가면서 분석할 정도다.
발달한 기상을 물 문제 해결에 동원하는 일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기상예측 정보를 활용하는 강우-유출모형을 만들어 연구중이다. 강우-유출모형이란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 지표면에 도달해 어느 정도의 양이 지하로 스며드는지, 또 얼마가 지표를 타고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는지, 또 하천의 물은 어떤 과정을 거쳐 하류로 흘러가는지를 설명하는 컴퓨터 모형이다.
강우-유출모형은 특정 시간과 지점에 존재하는 물의 양을 알려준다. 또 기상정보를 분석해 미래의 특정한 시간과 지점에 존재할 물의 양도 알려준다. 강우-유출모형을 활용하면 댐을 운영하는 최적의 방법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태풍과 같은 집중호우가 예상되면 댐의 물을 미리 방류해 홍수를 대비하고, 장기 가뭄이 예상될 때에는 가능한 한 댐에 저장되는 물의 양을 늘린다.
기상예측 정보를 활용하는 강우-유출모형의 최종 목표는 이와 같은 일이 실시간으로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몇시간 후에 내릴 비의 양을 예측하고, 이를 근거로 댐 유입량을 계산해 댐을 최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바로바로 결정한다는 꿈같은 얘기다.
장비 갖췄지만 인력이 부족
우리나라의 경우 강수량의 2/3가 여름철에 집중된다. 더욱이 하천이 짧고 경사가 급한 곳이 많아서 대부분의 빗물은 하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버린다. 빗물을 저장하고 이용하기에 매우 불리한 여건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다목적 댐을 건설했다. 그런데 댐을 계속해서 개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족한 물을 보충하기 위해서 이미 건설돼 있는 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체계적인 수자원 관리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홍수와 가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홍수와 가뭄은 국민경제와 산업활동에 천문학적 손실을 주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책의 중요성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 엘리뇨와 라니냐와 같은 기상이변과 지구온난화와 같은 기후변동 때문에 앞으로 홍수와 가뭄은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기상을 이용한 수자원 관리 기술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최근 우리나라도 기상을 이용한 수자원 관리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의 기상청에는 초당 1천2백80억번의 단위연산을 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가 설치돼 있다. 슈퍼컴퓨터의 16개 첨단 전자두뇌들이 기상예보를 위해 초당 80억번의 고속연산을 수행할 수 있다. 전자두뇌의 계산결과는 초당 10억개 이상의 전자정보를 실어나를 수 있는 고속 신경망을 통해서 인근 전자두뇌에 전달된다. 기상예측을 위한 환상적인 전자오케스트라는 이미 갖춰진 셈이다.
하지만 기상예보와 수자원관리를 결합시키는 연구를 진행시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의 부족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즉 기상을 이용한 수자원 관리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기상학과 수자원공학을 동시에 아는 전문가가 필요한데, 이와 같은 전문가를 양성하지 못한 것이 국내의 현실이다. 학문 간의 벽을 허물고 기상학자와 수자원 전문가가 공동 연구를 통해 두 학문을 연결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최근 국가에서 발표되는 주요 과학정책을 보면 21세기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지식산업으로 IT, BT, NT 등을 얘기한다. 물론 국가의 지식산업은 시대적 요구사항에 부응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인류의 영원한 숙제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 역시 이들 못지 않게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 새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