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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한국의 '지구사냥꾼' 나선다

미시중력렌즈로 우주 이 잡듯 뒤져

별 하나도 빛 휘게 해


퀘이사가 그 사이에 놓여있는 은하 때문에 두 개로 보이는 현상


천문학자들은 1995년 페가수스자리에서 외계행성을 처음 발견한 뒤 10여 년 동안 200개가 넘는 행성을 새로 발견했다. 하지만 생명체가 있을 만한 행성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알려진 외계행성 대부분은 행성의 중력으로 중심별이 미세하게 요동치면 이를 측정해 행성을 검출하는 ‘시선속도 방법’으로 발견했다. 하지만 지구처럼 질량이 작은 행성은 같은 방법을 사용하기 어렵다.

행성을 찾는 방법이 진화하고 있다. 유럽우주국(ESA)이 지난해 말 발사한 ‘코로트’(COROT) 우주망원경과 2008년 10월 발사 예정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행성이 중심별을 가로지를 때 생기는 미세한 밝기변화를 측정해 외계행성을 찾는다.

우리나라 과학자를 주축으로 이뤄진 외계행성탐색 프로젝트 ‘지구사냥꾼’(Earth Hunter)은 우주에 망원경을 띄우지 않고도 지구의 10분의 1정도 질량을 가진 행성을 찾을 수 있다. 지구사냥꾼이 외계행성 탐색에 사용할 돋보기는 ‘미시중력렌즈’(microlensing)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질량이 큰 천체의 질량은 주변 공간을 휘게 한다. 마치 스펀지 위에 쇠공을 올려놓으면 스펀지 표면이 푹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빛이 은하나 은하단처럼 질량이 큰 천체 주위의 굽은 공간을 지나가면 마치 렌즈를 통과하는 것처럼 휜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천체가 그 사이에 놓여있는 질량이 큰 다른 천체 때문에 여러 개로 보이는데, 이를 ‘중력렌즈’ 현상이라고 한다. 1970년대 퀘이사✽가 그 사이에 놓여있는 은하 때문에 두 개로 보이는 현상이 처음 관측돼 세상에 알려졌다.

‘미시중력렌즈’ 현상은 말 그대로 훨씬 세밀한 중력렌즈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미시중력렌즈 현상의 발견에는 청주대 응용과학부 장경애 교수의 선구적인 연구가 큰 기여를 했다. 장 교수는 1979년과 1984년 연이어 발표한 논문에서 은하 정도의 질량을 가진 천체뿐만 아니라 이보다 질량이 훨씬 작은 별 하나도 중력렌즈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은하에는 수억~수백억 개의 별이 있다. 따라서 별 하나가 중력렌즈 현상을 일으킨다는 주장은 당시로서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이 현상은 곧 증명됐고 그 뒤 천문학자들은 별 하나 정도의 질량이 일으키는 중력렌즈 현상을 미시중력렌즈 현상이라 불렀다.


중력렌즈 현상을 잘 보여주는 페가수스자리의‘아인슈타인 십자가’. 지구에서 약 80억광년 떨어져 있는 퀘이사 Q2237+0305의 빛이 2억광년 떨어진 은하를 지날때 휘어져 4개의 상을 만들었다.


퀘이사
중심에 초대형 블랙홀이 있어 주변의 가스와 별을 잡아먹으며 막대한 빛을 내는 특이한 천체.

중력렌즈 국제워크샵의 기립박수


중력렌즈 국제워크샵의 기립박수


2007년 1월 15~17일 중력렌즈연구와 관련한 가장 큰 국제학술행사인 ‘중력렌즈 국제워크숍’이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열렸다. 전 세계 18개국에서 온 70여명의 중력렌즈 연구자가 지구형 행성 발견을 위한 차세대 중력렌즈 관측실험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에 대해 뜨겁게 토론했다.

독일 함부르크대 요아킴 밤스간스 교수가 퀘이사의 미시중력렌즈현상에 대한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던 중이었다. 밤스간스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기도 빠듯한 발표 시간 동안 상당히 긴 시간을 들여 청주대 장경애 교수의 업적을 논했다.

그러자 모든 참석자가 발표의 진행을 맡고 있던 장 교수에게 열렬한 기립박수를 보냈다. 국제적인 중력렌즈연구의 변방에만 있는 줄 알았던 우리나라 천문학 위상이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작은 행성 찾는 훌륭한 길잡이

미시중력렌즈 현상은 비교적 작은 외계행성을 찾는데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중력렌즈현상이 일어날 때 렌즈 역할을 하는 천체(렌즈별) 주위에 행성이 있으면 배경별의 밝기에 독특한 변화가 생기는데, 이를 검출해 행성을 찾는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배경별과 렌즈별이 각각 고유운동을 하다가 우연히 지구에서 볼 때 일직선에 놓일 때가 있다. 렌즈별이 배경별이 보이는 시선에 가까이 접근하면 배경별의 상은 두 개로 분리된다. 그러다가 시선이 렌즈별 주위의 행성이 있는 곳에 다다르면 배경별의 상이 또 한 번 분리되고 갑자기 몇 시간동안 밝기가 변한다. 이때 나타나는 배경별의 밝기변화로 행성을 찾는다.

미시중력렌즈 방법은 지금까지 제안된 방법 중 작은 질량의 행성을 찾는데 가장 뛰어나다. 코로트 위성은 지구질량의 수배에 해당하는 행성이 검출한계이고, 케플러 위성은 지구 질량 행성을 가까스로 검출할 수 있다. 하지만 미시중력렌즈 방법은 지구질량의 10분의 1인 화성 정도의 행성까지도 찾을 수 있다.

또 별과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을 찾는데도 탁월하다. 시선속도 방법이나 천체면 통과현상을 이용한 방법으로 얻은 관측자료를 외계행성의 증거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같은 방법을 3번 이상 관측한 자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별과 행성사이의 거리가 멀면 공전주기가 길기 때문에 후속관측을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수명이 각각 2년 반과 5년 밖에 되지 않는 코로트 위성과 케플러 우주만원경은 그보다 긴 주기를 갖는 행성을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반면 미시중력렌즈 방법은 한 번의 관측으로도 외계행성의 증거로 삼기에 충분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어 별과 떨어진 거리에 상관없이 행성을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우주 전역을 ‘사냥터’로 삼을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다른 행성탐색 방법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미시중력렌즈 현상은 오히려 배경별과 렌즈별이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

실제로 지금까지 중력렌즈 방법을 사용해 발견한 행성은 다른 방법으로 찾아낸 행성보다 최소 수십 배 먼 곳에 있다. 이런 특성으로 미시중력렌즈 방법은 우리 은하에 있는 행성뿐만 아니라 안드로메다은하 같은 외부은하에 있는 행성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미시중력렌즈 방법에도 단점은 있다. 가장 중요한 단점은 중력렌즈 현상의 특성상 한번 발생한 사건은 다시 관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행성에 대한 정보를 렌즈현상이 발생하는 기간 중에 최대한 많이 얻어야 한다.

미시중력렌즈 현상의 원리


미시중력렌즈 현상의 원리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배경별과 렌즈별이 각각 고유운동을 하다가 시선이 겹칠 때가 있다. 렌즈별이 배경별의 시선에서 멀리 있다가(01) 점차 배경별의 시선에 가까워지면 배경별은 두개의 상으로 분리되고(02) 점차 밝아진다(03). 이때 렌즈별 주위에 있는 행성이 분리된 상의 시선방향에 우연히 놓이면 상이 또 한번 분리되고 갑자기 밝기에 변화가 생긴다(04). 배경별의 시선에서 렌즈별이 완전히 벗어나면 배경별의 상은 원래의 모습을 찾는다(05).

2005년 5월 ‘마이크로펀’ 그룹이 우리 은하 중심 방향인 궁수자리(01)에서 미시중력렌즈를 이용해 외계 행성을 발견했다. 렌즈별을 도는 행성의 중력으로 급격히 밝기가 변하는 배경별의 모습(02).


2005년 5월 '마이크로펀' 그룹이 우리 은하 중신 방향인 궁수자리(01)에서 미시중력렌즈를 이용해 외계 행성을 발견했다. 렌즈별을 도는 행성의 중력으로 급격히 밝기가 변하는 배경별의 모습(02).


행성사냥 선두에 설 날 머지않아


'지구사냥꾼'의 사냥장비


미시중력렌즈 방법을 이용해 행성을 찾는데 우리나라 과학자가 맹활약 하고 있다. 필자와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자들은 국제 공동연구팀인 ‘마이크로펀’(micro-FUN, microlensing Follow-Up-Network) 그룹을 조직해 중력렌즈 방법으로 행성을 찾았다.

마이크로펀 그룹은 칠레, 뉴질랜드, 이스라엘, 미국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투산에 있는 망원경으로 우리 은하 중심부를 집중적으로 탐색하며 유럽의 연구자가 주축인 ‘플래닛’(Planet) 그룹과 함께 중력렌즈 현상을 이용한 행성탐사에 앞장서 왔다.

마이크로펀 그룹은 2001년부터 5년 동안 외계행성 2개를 새로 발견했다. 맨 처음 발견한 행성(OGLE-2005-BLG-071Lb)은 지구로부터 2만광년 떨어진 곳에 있고 질량이 목성의 두 배 정도 된다. 두 번째로 발견한 행성(OGLE-2006-BLG-109Lb)은 질량이 지구의 7배 정도로 지금까지 알려진 외계행성 중 두 번째로 질량이 작은 행성이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가능성을 인정받은 마이크로펀 그룹은 코로트와 케플러를 뛰어넘는 외계행성 탐색 프로젝트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금까지 마이크로펀 그룹이 미시중력렌즈 관측에 사용한 망원경과 관측기기를 업그레이드한 지구사냥꾼 프로젝트가 지난해 말 본격적인 ‘사냥’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지구사냥꾼 프로젝트는 10년 동안 진행될 장기프로젝트다. 이중 처음 5년 동안 관측에 필요한 망원경과 관측기기를 만들고 나머지 5년 동안 궁수자리에 있는 우리은하 중심부를 이 잡듯 뒤진다.

4억 화소를 자랑하는 검출기가 1년 중 8개월을 매일 10분 간격으로 관측해 쏟아내는 자료
는 매년 5~6TB(테라바이트, 1TB=1012Byte)에 이른다. 이 자료는 전산망을 통해 국내로 전송하기에 용량이 커 현지에서 자료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 자료를 모두 분석하면 프로젝트가 종료될 즈음 목성급 행성 수천 개, 천왕성급 행성 수백 개, 지구형 행성 수십~수백 개를 발견할 전망이다. 이 수치는 코로트와 케플러 프로젝트가 찾아낼 행성 수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으며 그때까지 발견할 모든 외계행성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정도다.

‘제2의 지구’를 찾는 일에 우리나라가 선두에 서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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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지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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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한정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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