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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수돗물의 재발견

스테인리스 급수관 도움 받아 맛좋은 수돗물로 변신 중

작년 여름 서울 곳곳에서는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먹는 물 시음 행사가 자주 열렸다. 사람들은 투명한 페트병에 담긴 여러 종류의 물을 마신 뒤 가장 맛있다고 생각되는 물을 골랐다. 당시 물의 ‘출신성분’이 공개되자 가장 큰 탄성을 자아낸 것은 다름 아닌 수돗물이었다. 사람들은 “이 물 시원하고 맛있어요. 어디 물이에요?”라고 물었던 조금 전의 태도를 바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서울시의 수돗물인 ‘아리수’를 생수, 정수기물과 함께 거리로 들고나가 시민들에게 블라인드테스트를 했다. 그 결과 수돗물의 물맛이 다른 물과 별 차이가 없다는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2006년 12월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끓여 마시는 경우까지 모두 포함해 수돗물을 마신다는 비율은 40.6%. 냄새가 난다거나 맛이 없어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 이유도 컸지만 많은 사람들은 ‘단지 그대가 수돗물이라는 이유만으로’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사실 수돗물은 이런 푸대접이 억울하기만 하다.
 

서울시는 2010년 완공될 영등포정수장에 병원성세균까지 걸러내는 막여과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막여과 시스템은 미국 위스콘신주에 있는 라신 정수장(오른쪽 사진)에서 미시건호의 물을 정수해 수돗물로 공급하는데 쓰이고 있다.


수명 연장 일등공신?

지난 1월 영국의 의학전문지 ‘브리티시메디컬저널’은 지난 160여년 동안 현대의학이 이룬 가장 위대한 성과를 놓고 투표를 했다. 놀랍게도 가장 많은 이들이 ‘깨끗한 물과 하수도’를 꼽았고 항생제와 마취, 백신이 그 뒤를 이었다.

과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콜레라,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사라진 것은 상·하수도 시설이 정비되며 깨끗한 수돗물이 공급된 뒤부터다. 20세기 들어 인간의 수명이 약 35년 늘었는데, 이를 상·하수도 덕분이라 해도 된다는 뜻이다. 현재에도 인류를 괴롭히는 질병의 80%는 물이 옮기는 수인성전염병으로 추정된다.

1908년 서울 뚝도(뚝섬) 정수장에서 첫 물길이 열리며 우리나라에도 위생적인 수돗물 시대가 시작됐다. 아흔아홉해동안 시민들에게 먹는 물을 공급해온 수돗물은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나 1997년 바이러스 논쟁 같은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 뒤 상수원의 수질을 개선하고 수돗물의 정수 방법을 바꾸는 등 수돗물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수돗물에 대한 해묵은 오해와 불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서울 시민의 52.4%는 수돗물이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는데, 불안감의 가장 큰 원인은 ‘수도관이나 물탱크 관리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였다.

서울시는 지난 1984년부터 수도관을 녹슬지 않는 스테인리스관으로 교체했다. 현재 96% 이상 교체됐으며 전국적으로도 지자체별로 낡은 수도관을 바꾸는 사업을 시작한지 오래다.
 

수돗물의 정수 과정^서울과 인천, 경기도는 한강의 팔당 상수원을, 대구, 경북, 부산 지역은 낙 동강을 취수원으로 사용한다. 현재 수 돗물의 절반 이상이 강물을 걸러 만 든다. 취수원의 물은 정수과정을 거 치며 맛있고 깨끗한 수돗물로 새롭 게 탄생한다.


정수기보다 우리 집 급수관 관리가 우선!

시민들이 마시는 물은 정수장의 물이 아닌 수도꼭지를 틀어 나오는 물이기에 가정에 설치된 급수관이나 물탱크가 깨끗하지 않다면 아무 소용없다. 공공사업장이나 아파트는 법적으로 1년에 한 번씩 급수관 검사를 받고 6개월마다 물탱크를 청소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주택은 법적 의무에 묶이지 않는다.

현재 대부분의 급수관은 수도관과 마찬가지로 스테인리스 재질로 교체됐지만 1987년 이전에 지은 주택의 대부분은 녹이 잘 스는 아연관을 사용했다. 집주인은 낡은 급수관을 교체해야하지만 아직은 관심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차라리 정수기를 들여놓거나 물을 사먹는 편이 손쉽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수기의 유지비나 생수를 사먹는 비용은 많게는 수돗물 가격의 수백배에 이른다. 수질 검사 결과 수돗물과 생수, 정수기 물의 차이는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이 있다면 가정의 급수관이나 물탱크를 무료로 점검해주는 ‘121서비스’가 작년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국번 없이 121번을 누르면 상수도사업본부의 직원이 출동해 물이 새는 곳이 있는지, 수질은 적합한지, 급수관이 녹슬지 않았는지 점검해준다.

급수관의 상태가 심각할 때는 청소를 하거나 급수관 속을 특수 페인트로 칠하는 방법을 권해준다. 서울시의 경우 올해 하반기부터 오래된 급수관을 교체하는 비용의 절반 정도를 지원한다.

 

투명해질수록 믿음 싹튼다

1993년 봄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수돗물 사고가 일어났다. 수돗물을 마신 사람들이 병원성 원생동물(운동성을 갖는 단세포 미생물의 일종으로 크립토스포리디움, 지아디아와 같은 기생성 원생동물은 수인성 전염병의 원인이 된다)이 일으키는 병에 집단 감염돼 결국 40여명이 사망했다.

현재 위스콘신주의 많은 정수장은 투명한 변신에 성공했다. 첨단기술로 수돗물의 맛과 질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수돗물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시민에게 공개한다. 정수장 건물은 반도체 공장처럼 청결하고 잔디밭에 설치한 물탱크는 예술작품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수돗물을 병에 넣어 생수로 판매하는데, 미국인이 사먹는 생수의 4분의 1이 이렇게 병에 넣은 수돗물이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3월부터 영등포정수장을 다시 짓는다. 수돗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자연과 어우러진 생태공원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수돗물 특유의 냄새를 줄이기 위해 염소를 덜 넣고 그 대신 숯의 일종인 ‘입상활성탄’을 쓸 예정이다.

미래에는 석유 전쟁이 아닌 물 전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2008년 물시장 개방을 앞두고 외국 기업들이 우리나라의 수자원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이때, 수돗물이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수장에서 가정의 수도꼭지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투명해질수록 믿음은 단단해진다는 신념으로 수돗물은 변신 중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수돗물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2010년 완공될 영등포정수장(서울시 영등포구 양화동). 수돗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박물관과 체험학습장, 생태 공원도 함께 조성할 계획이다.
 

급수관 진단하는 똑똑한 로봇

정수장에서 만든 물이 가정의 수도꼭지까지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환경부는 국민에게 깨끗한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한 장기계획의 하나라 수처리선진화사업단을 발족해 '에코스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사업단은 이미 물탱크 같은 저수조의 상태를 실시가능로 모니터링하는 수질감시시스템을 개발했다. 급수관의 상태를 진단하는 로봇도 곧 등장한다. 그동안 급수관을 교체하려면 집의 벽을 허물어야 하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그러나 로봇이 급수관 속에 들어가 꼼꼼히 상태를 진단해준다면 그 뒤의 급수관 세척이나 수리는 훨씬 쉬워진다.

일단 15mm 이하의 급수관을 통과하며 급수관의 상태를 살피고 지도까지 그려주는 로봇이 개발돼 곧 시범사업에 들어간다. 연구를 맡은 한양대 이병주 교수와 항공대 김병규 교수는 "기존의 내시경은 휘어진 관을 잘 통과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지만 자동로봇은 자벌레처럼 유연한 몸으로 구부러진 급수관도 자유자래로 누빌 수 있다"고 말했다.

'121서비스' 직접 출동해 보니

2007년 2월 7일. 수돗물에 붉은 녹물이 섞여 나온다는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시 성북수도사업소 작원들이 바람처럼 달려간 곳은 동대문구 휘경동의 한 단독주택. 일단 급수관에서 물이 새지 않는지 확인한 뒤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간단한 수질검사를 했다. 잔류염소는 0.2mg/L 로 정상이었으나, 탁도는 1.52NTU*로 기준치보다 3배나 높았다. 원인은 뭘까?

수도꼭지를 분리하고 급수관으로 내시경을 집어넣자 비교적 선명한 영상이 모니터에 잡혔다. 성북수도사업소 급수공사팀 심상후 팀장은 "급수관을 연결하는 L자 모양의 아연관에 녹이 생겼다"고 진단했다. 1994년 4월부터 아연관은 사용이 금지됐다. 하지만 급수관을 통째로 교체하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비용과 시간, 귀찮음까지 더해진다.

현재 수원지의 물이 정수장을 거쳐 가정의 수도계량기를 통과하는 순간까지만 정부가 책임진다. 각 가정의 급수관은 집주인이 관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행히 서울시에서는 급수관 교체 비용을 지원하기로 한 수도조례가 통과돼 올해 하반기면 그 혜택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상수도시설이 낙후돼있는 지방은 어떨까.

2005년 12월 환경부의 수도법 개정으로 지방자치단체는 재정 상태에 따라 급수관 청소나 교체 비용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서울시를 빼고는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수돗물시민회의 백명수 사무국장은 "지역에 따라 수돗물의 불평등이 생길 수도 있는 만큼 환경부는 지방자치단체의 급수관 교체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가 '생색'만 내고 '실속'은 없는 '식물 정책'을 내놓은 게 아니라면 국민 모두가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원생동물
운동성을 갖는 단세포 미생물의 일종으로 크립토스포리디움, 지아디아와 같은 기생성 원생동물은 수인성 전염병의 원인이 된다.

*NTU
물의 흐린 정도를 나타내는 탁도의 단위. 정수를 거친 ㅜ돗물의 탁도는 0.05NTU정도이며 수수한 물인 증류수는 탁도가 0.02NTU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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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정보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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