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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이 잦은 직원들은 당연히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2011년 취업정보 커뮤니티인 ‘취업정보 뽀개기’에서 장인 5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평균 수면 시간은 권장 수면 시간보다 2시간 정도 적은 6시간 10분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이유가 야근때문이라는 대답이 42.9%로 가장 많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는, 2010년 우리나라 전체 고용인구의 연간 노동시간이 2193시간으로 OECD 평균인 1749시간보다 444시간이나 길었다. 연간 근무일을 250일로 보면 매일 1.8시간을 초과 근무한다는 의미다. 두 조사를 연결하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휴식과 수면을 위해 써야 할 2시간 가량의 시간을 온전히 야근에양보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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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때문에 적게 자면 신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수면 부족이 기억력을 떨어뜨리고 심장마비 위험을 가중시키며, 전염병에 감염될 확률을 높이고 비만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이 중 기억력과 수면의 관계는 입시와 취직을 위해 밤늦게 공부하는 학생들도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심리학자 킴벌리 펜은 참가자들에게 두 개의 단어쌍을 외우도록 했는데, 중간에 잠을 자지 않은 참가자들이 숙면을 취한 참가자들보다 단어쌍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펜은 무언가를 잘 기억하고 싶다면 중간에 필히 잠을 자야 한다고 충고한다. 잠을 자면 지각이 저하되고 외부의 자극에 둔감하게 되지만, 잠자는 동안에도 두뇌는 쉬지 않고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에 수면이 기억력에 이득이 되면 됐지 절대 손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학교에서 B학점 이상을 받는 학생들은 C학점 이하를 받는 학생들보다 평균적으로 25분을 더 잔다고 한다.
삼성서울병원 주은연 박사가 20대의 건강한 남성 5명에게 실시한 ‘24시간 수면 박탈 실험’ 결과도 흥미롭다. 참가자들은 24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은 채 인지기능 평가를 받았는데 문제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오답률이 급증했다. 특히 고난도 문제에서는 오답률이 62%나 높아졌다. 이는 수면 박탈이 작업기억과 집중력의 손상을 유발한다는 결과다.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소위 ‘4당 5락’이란 말은 이제 ‘4락 5당’으로 바뀌어야 한다(물론 5시간도 충분한 수면 시간은 아니다).
하버드대 의대의 수면의학 교수인 찰스 차이슬러는 수면 부족의 위험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24시간 한숨도 자지 않거나 1주일 동안 하루에 4~5시간 밖에 자지 않으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에 해당하는 신체 장애가 나타난다.” 0.1%면 법적으로 운전면허 취소다.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직원이 있다면 그는 일주일 내내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병원 인턴들이 24시간 쉬지 않고 일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메스나 주사 바늘로 자신을 찌를 확률이 61%나 증가하고, 자동차 충돌 사고를 일으킬 확률이 168%나 높아지며, 대형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무려 460%나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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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하면 딴짓을 많이 한다
그래도 야근을 하면 생산성이 높아질 테니 이런 신체적 문제는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야근은 오히려 생 산성을 저해하는 주범이다. 데이비드 와그너는 수면 시간이 줄어들면 낮에 회사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는 데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잠을 덜 잔 사람일수록 연예인을 소재로 한 가십 기사나 스포츠 기사처럼 업무와 상관없는 내용을 읽느라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와그너는 학생을 대상으로 다른 실험을 진행했다. 96명의 학생들은 실험 전날 수면 상태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팔찌를 찬 채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와그너는 학생들에게 대학 교수직에 지원한 사람의 42분짜리 시범 강의 동영상을 보여주고 컴퓨터에서 그 사람의 강의 능력을 평가하게 했다. 평가에 사용한 컴퓨터는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었기에 학생들은 동영상을 보며 언제든지 인터넷에 곁눈질을 할 수 있었다. 수면 팔찌로부터 얻은 정보와 학생들이 진행자 몰래 인터넷에 접속한 시간을 따져 보니, 전날 밤에 잠을 많이 못 잤거나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학생일수록 인터넷을 하며 딴짓을 많이 했다. 수면 부족이 두뇌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 일을 회피하게 만들고 뇌가 부담이 덜 가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유도해 생산성을 떨어뜨렸던 것이다. ‘잦은 야근이 비록 피곤할지언정 결과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성과를 향상시킬 것이다’란 세간의 통념은 옳지 않다. 오히려 잦은 야근은 생산성을 갉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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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야근한 사람은 오늘 밤에 다시 야근할 가능성이 높다. 야근으로 의지력과 체력이 저하되었기에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오전 내내 인터넷 가십 기사를 훑어보거나 SNS에 시간을 허비하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서서히 업무를 챙기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근은 생산성을 오히려 좀먹는다. 하버드대의 추산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이 직원들의 수면 부족으로 지출하는 비용(질병치료, 사고, 생산성 저하에 따른 손해 등)이 연간 632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직원들을 정시에 퇴근시켜 휴식과 숙면을 취하도록 하는 것이 생산성에 훨씬 이득이 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야근한 직원이 있다면 낮잠 잘 시간을 주는 것도 생산성을 빨리 회복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마크 로즈킨드와 연방항공국의 실험에서 알 수 있다. 야간비행 임무를 수행하며 평균 26분동안 낮잠을 잔 조종사들은 각성 테스트의 평균 반응시간이 16% 빨라진 반면, 낮잠을 자지 않고 각성 테스트를 받은 조종사들은 반응시간이 34%나 느려졌다. 야근이 야근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게 몇백 억 원짜리 시스템을 들여오는 일보다 훨씬 가치있다.
야근하면 나쁜 행동 더 많이 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야근이 비도덕적인 행동을 유도한다는 사실이다. 크리스토퍼 반스는 수면이 비윤리적인 행동과 깊은 연관성을 가짐을 규명했다. 반스의 실험에서 절대적으로 수면시간이 부족하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직원들은 동료와 상사로부터 비윤리적으로 행동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런 직원들은 동료가 자신의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선행에 고마워 하지 않거나 미안해 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후속 실험에서는 수면이 부족한 학생일수록 돈이 걸린 게임에서 다른 참가자들을 속이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참가자를 속인 학생들은 정직하게 게임에 임한 학생들에 비하여 전날 밤에 평균 22.39분을 덜 잤을 뿐인데도 비윤리적으로 행동했다. 수면 부족이 사고력과 자기절제력을 떨어뜨려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든 것이다.
생산성을 저해하는 비윤리적 행동을CWB(Counterproductive Work Behavior)라고 부른다. 조지 뱅크스는 CWB가 직원들의 ‘감정적 고갈’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밝혀냈다. 뱅크스와 그의 동료들이 한국의 모 은행 직원 113명과 그들의 상사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여 감정적으로 고갈 상태에 있는 직원일수록 업무에 몰입하지 못하고 CWB를 더 많이 저지른다는 사실을 밝혔다.
컨설팅 업체인 KPMG에 따르면, 인수합병 건의 83퍼센트가 주식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다. 그 중 악명 높은 실패 사례들은 의사결정자들이 야근과 수면 부족에 ‘취한 상태’에서 지나치게과감하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직원들이 비윤리적 행동을 저지르는 건 직원 개인의 품성이나 가치관의 결함 때문이기보다는 야근을 방조하고 부추기며 성과를 닦달하는 조직문화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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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은 축복이 아니라 사회악이다
한국은행의 김중수 총재는 “젊었을 때 일을 안 하면 아주 나쁜 습관이 들어서 그 다음에 일을 하나도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야근은 축복인 것이다”라고 말했다가 네티즌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이처럼 야근을 개인의 경쟁력과 동일시하는 경영자들이 많다. 요즘 스마트라는 말이 유행하다보니 직원들에게도 스마트하게 일하라고 주문하는 모양이다. 첨단기기와 시스템을 제공한다고 해서 직원들이 스마트 워커가 되지는 않는다. ‘야근 철폐’와 ‘충분한 수면 보장하기’만큼 스마트한 전략도 없다. 직원들에게 ‘야근은 축복’이라고 말하는,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발상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할 때다. 이제 야근은 축복이 아니라 음주운전이나 성희롱 같은 사회악이라고 인식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