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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고압송전탑 들어오면 죄다 암에 걸려 죽어뿐다!”
고압송전탑 설치를 놓고 밀양 주민과 한국전력의 갈등이 빛어졌다. 울산 신고리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대구 지역으로 보내기 위해 밀양에 765kV 고압송전탑 52기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한전이 발표하자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한전은 대구를 비롯한 인근 지역의 전력수요가 늘고 있어 송전탑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주민들은 송전선에서 나오는 전자파 때문에 암에 걸릴 수 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공권력이 투입돼 주민들이 부상을 입는 일도 있었다.
충남 서산과 당진, 강원도 울진과 삼척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고압송전선 주변에서 살면 실제로 암에 걸릴까? 도시에서는 송전선이 지하로 통과해서 안전하다고 하는데 정말로 송전선을 땅에 묻으면 안전할까? 무엇보다 도시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시골에 위험할 수도 있는 송전탑을 세우는 것은 옳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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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장 얼마나 세야 위험할까
먼저 확실하게 해두자. 송전탑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전기가 흐르는 송전선이 위험하다. 송전선에 고압 전류가 흐르면 주변에 극저주파(60Hz)의 자기장이 만들어지고 인체에 유도전류가 흐를 수 있다. 이 유도전류가 세포막 주변의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이온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어 신경계에 피해를 입히고, 면역세포를 파괴해 암을 일으킬 수 있다. 이 부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얼마나 자기장이 세야 위험하느냐다.
고압송전선과 암의 관계를 밝혀낸 첫 연구는 미국 콜로라도대 낸시 워데이머 박사와 에드 리퍼 박사에게서 나왔다. 그들은 1979년 고압송전선에서 나오는 자기장에 오랫동안 노출된 아이들에게서 소아암 발생률이 3배 증가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고압송전선이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세계 각지에서 연구결과가 쏟아졌다. 노벨상 심사기관인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페이칭 마리아 연구팀은 1992년 송전선 인근 17세 이하 어린이들을 조사한 결과, 백혈병 발병률이 2mG(미리가우스)이상에서는 2.7배, 3mG이상에서는 3.8배 증가한다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평균 2mG 이상의 자기장에 24시간 노출된 인구는 565만 명에 이른다.
논란이 커지자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1996년 세계 54개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국제전자계프로젝트’를 발족시켜 본격적인 연구에 나섰다. 2002년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극저주파 자기장이 암을 유발하는지 확실하지 않다며 ‘발암등급 2B’로 분류했다. 2B등급은 인체에 암을 일으킬만한 증거가 제한적으로 발견됐지만 동물실험에서 발암성에 대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을 때 지정한다. 2B등급에는 휴대전화 전자파 등이 포함돼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1998년 833mG 이상의 극저주파 자기장에 사람이 노출되지 않도록 권고했고, 2010년에는 국제전자계프로젝트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이 기준을 2000mG로 올렸다. “암을 발생시킨다는 증거가 미약하므로 자의적인 제한치를 두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권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북유럽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에서는 페이칭 보고서 등을 근거로 지금도 송전선로를 새로 설치할 때 훨씬 낮은 수준인 3mG 이하를 권고하고 있다. 위험 기준이 무려 270배나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밀양 송전탑 문제도 아직은 아리송하다. 765kV 고압송전선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은 최대 12mG 수준이기 때문이다. 고압송전선로 건설을 반대하는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 유해물질이라면, 과학적으로 100% 입증되기 전이라도 정황이나 제한적 증거를 토대로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전 홍보팀 관계자는 “헤어드라이기처럼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자제품도 이 정도 자기장은 검출된다”면서 “세계보건기구의 가이드라인인 2000mG도 안전한데, 우리나라에서 정한 기준은 833mG이라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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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첫 대규모 조사가 나왔다는데…
최근 국내에서도 첫 대규모 역학조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논란을 종식시키기는커녕 불을 붙였다. 안윤옥 서울대 의대 교수팀이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의 의뢰를 받아 2008년부터 고압송전선로 주변 거주민들의 암 발생률을 조사한 연구보고서를 지난 10월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아암, 간암, 위암 등 17개 암 발병 상대위험도가 남자는 1.26배, 여자는 1.18배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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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대 측에서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최 소장은 “이 정도로 뚜렷한 상관관계를 발견하면 다양한 분석방법을 동원해 어떻게든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연구진이 섣불리 가능성을 차단했다”고 비판했다. 더구나 최 소장은 “이번 연구는 154kV와 345kV 고압송전선만 조사해 최근 개발된 765kV 고압송전선의 위험성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보고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안 교수는 “이번 연구의 목적은 암과 고압송전선로 간의 통계적 관련성을 찾는 것이었지, 암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었다”면서 “개인별 질병자료가 아닌 거주민 집단자료를 분석했기 때문에 암의 세부적인 원인을 밝혀낼 수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구의 한계점은 있었다고 인정했다. 주거지를 기준으로 자기장 세기를 측정했는데, 실제 동선과 생활반경을 고려하면 사람마다 자기장 노출정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송전선로에서 작업을 하며 자기장에 오래 노출된 전기기술자를 대상으로 추가 연구를 하면 주민들이 좀 더 납득할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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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선을 땅에 묻으면 안전할까?
문제가 커지면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송전선을 땅 밑으로 묻는 ‘지중화’다. 대도시 주민은 지중화 덕분에 안전한 반면 지방 소도시 주민은 머리 위로 송전선이 지나가서 위험하다며 ‘환경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2013년 8월 기준으로 서울의 지중화율은 88.2%, 밀양이 있는 경남의 지중화율은 2.7%로 33배나 차이가 난다.
하지만 지중화가 반드시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장은 흙이나 돌로 가린다고 줄어들지 않는다. 수십m 높이의 철탑에 매달린 송전선이 수m 깊이의 땅 속에 묻히면 사람과 실제 거리는 오히려 더 가까워진다. 땅 속에 묻은 송전선 바로 위에서 자기장을 측정한 결과 지표면에서는 16.9mG, 사람 배꼽 높이인 1.2m에서는 8mG로 나타난 사례도 있다. 765kV 송전탑 바로 밑에서 측정한 자기장 세기와 비슷하다. 최 소장은 “도로 밑에 주로 설치하는 지중화 송전선이 주거지 밑으로 지나가면 더 위험할 수도 있다”면서 “눈에 보이지 않아 방심할 수 있기 때문에 더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번에 갈등이 불거진 밀양과 같은 산악지역에서 765kV 고압송전선로를 지중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산을 뚫는 터널을 지어야 하는데 비용이 엄청나다.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지중화 상태에서는 누전과 발열을 방지하기 위해 특수 절연체로 송전선을 감싸야 하는데, 현재 345kV 송전선까지만 기술이 개발된 상황이다. 765kV 대신 345kV 송전선으로 바꿔 땅에 묻으면 3.4배 더 많은 전선이 필요하다. 이런 점을 모두 감안하면 수 km를 통과하는 데 수조 원의 비용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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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송전선을 계속 건설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전기의 ‘대량 생산, 대량 송전’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생산량이 월등한 원자력발전소는 대규모 냉각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해안가에 짓는다. 여기서 생산한 전기를 도시 등 내륙으로 보내려면 장거리 고압송전선이 필요하다.
지난 8월 한전이 발표한 ‘6차 송배전계획’에 따르면 현재 3만 1600km 길이의 송전선은 2027년 3만 8600km로 7000km나 늘어난다. 전력 수요가 매년 2.2%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 안에 따르면 한전은 765kV 송전선을 신설할 계획은 없고 345kV 송전선은 가급적 지중화를 할 예정이지만, 송전선이 좀 더 촘촘하게 전국에 깔릴 것이다.
밀양송전탑 전문가협의체에 참여했던 하승수 녹색당 공동위원장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생산체계를 원전 중심의 집중형에서 지역분산형으로 전환해야 고압송전선의 위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도시 주변에서 중소형 LNG 열병합발전소 등을 가동하고 장기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 각 지역에서 필요한 전기를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당장 증가하는 전력수요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새로운 송전선로를 만들지 말고 기존 송전선로의 용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본적으로는 수요관리를 통해 전력수요를 줄여야 우리나라에서 고압송전선을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에너지를 덜 쓰게 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과연 내가 오늘 내야 할 전기요금을 올릴 것인가, 아니면 싼 전기를 쓰는 대신 누군가를 암에 대한 공포로 떨게 만들 것인가. 고압송전탑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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