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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터뷰] “글과의 거리두기, 드디어 끝났습니다”

 

 

냉동인간이 깨어났다. 정순영이란 이름을 가진 그녀는 ‘할머니’다. 정순영이 깨어나 만난 이는 그녀가 낳은 딸의 딸 그리고 그 딸의 딸이 대를 거듭해 내려온 31대손이다. 정순영의 31대손은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 채 누워 있다. 정순영은 그래서 해동됐다. 돈을 벌기 위해 매일 집을 떠나는 31대손의 배우자를 안심시킨 뒤 반쯤 죽은 후손의 대소변 주머니를 갈아주고, 손발을 주물러주기 위해.  

 

정순영은 2022년 SF스토리 공모전에서 소설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작품 ‘우리 할머니들이 깨어날 때’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의 주인공이다. 정순영이 낯설지 않은 것은 과거 ‘엄마’에게 부담이 지어졌던 돌봄 노동이, 오늘날 딸의 사회생활을 돕겠다 자처한 ‘할머니’들에게 이전된 까닭이다. 실제로 올해 초등학교 5학년 그리고 2학년이 되는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서애라 작가(본명 김경림)의 삶도 작품에 녹아들었다. 2023년 2월 6일 경북 김천의 한 카페에서 서애라 작가를 만나, 할머니를 깨운 사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눴다.

 

Q. 서애라라는 필명은 어디서 왔나요.

 

‘아라비안나이트’의 화자 ‘셰에라자드’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셰에라자드는 무려 1001일 동안 페르시아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줘 죽지 않고 왕의 신임까지 얻는 인물이었죠. 아라비안나이트를 보면서 ‘나도 내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셰에라자드를 음차로 따왔어요. 그게 서애라입니다. 신기하게 이 필명을 쓰면서부터 좋은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SF스토리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비슷한 시기에 현진건 신인문학상 단편 소설 부문에서도 당선됐거든요. 절대 이 필명을 포기하지 못하게 됐어요. 

 

Q. 원래 작가가 꿈이었나요.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특별활동으로 문예부를 했고, 대학에서 전공도 국어국문학이었지만 한 번도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꾼 적은 없었습니다. 작가가 되려면 가정형편이 넉넉해야지 아니면 배를 곪는다는 고정관념이 있었거든요. 대학 졸업 후 일을 하면서도 소설 쓰기 수업을 듣고 습작을 해왔지만 작가가 목표였던 건 아녔어요. 예전에 일하던 업계에서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서나, 결혼 후 시간이 남아 심심해서 했던 거였거든요. (기자: 계속 ‘글’ 주변을 맴도는 삶이었네요?) 그러네요. 

 

작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게 타오른 건, 계명대 문예창작 박사과정을 수료하면서였어요. 동생은 변호사지만 장르소설을 쓰고 있어요. 순문학과 장르소설 간의 차이에 대해 동생과 이야기하다가 문예창작 박사과정을 시작했는데, 문학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도움이 됐습니다. 2학기부터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대체됐거든요. 덕분에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학위과정을 이어나갈 수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만 열리던 창작 교실이 온라인 콘텐츠화 돼, 제가 수강할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었어요. 코로나가 제겐 이래저래 기회였네요.

 

Q. 언뜻 들어서 과학과 전혀 관련 없는 삶인데 SF소설을 쓰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요.

 

처음에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SF가 엄정한 과학적 지식이나 기반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SF는 겁먹지 않아도 좋을 만큼 다채롭고 다양한 장르였던 거죠. 지금도 과학 잡지를 읽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지, 과학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에요.

 

Q. 두 명의 아들을 키우고 계시는데 소설 속 ‘할머니’에 본인의 경험도 들어갔나요.

 

결혼하고 친정이 있는 밀양에서 10년 정도 살다가 김천으로 이사왔어요. 지금 사는 곳은 시댁 근처에 있구요. 예전엔 친정 어머니, 지금은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어요. 두 분의 할머니를 착취하며 살아가고 있죠. 이것 때문에 아이를 키우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돈을 주고 돌보미를 고용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어요. 할머니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정보는 물론 애정을 기본적으로 탑재한 존재거든요. 또 기꺼이 응답하시구요. 저 자신이 오늘날의 ‘할머니’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을 계속 하며 살고 있습니다. 

 

Q. 디스토피아물이라고 얘기했는데, 소설 속 모습이 낯설지 않았어요.

 

제가 둘째를 38살에 낳았는데, 산후조리원에서 깜짝 놀랐어요. 당연히 가장 나이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요. 마흔이 넘어서 초산인 산모들도 많더라고요. 사회생활을 충분히 하고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해 ‘이제 아이를 낳아도 행복하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나이가 마흔을 넘는단 거예요. 그런데 그 나이는 자연임신이 쉽지 않은 나이예요. 실제로 대부분이 시험관 시술로 임신에 성공했고요. 뭔가 잘못되고 있단 생각을 했어요. 20대나 30대 여성들이 지금 상태로 아이를 낳아도 내가 행복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맞는 거죠. 

 

미래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고민했습니다. ‘우리 할머니들이 깨어날 때’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죠. 여성들의 판단을 지연시키고 또 지연시키는 극단의 사회는 고령의 시체를 깨워 돌봄 노동을 맡길 것 같았거든요.

 

Q. 소설에서 ‘모두가 돌봄을 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건 어떤 사회인가요.

 

돌봄이란 단어가 확장된 사회예요. 최근 미술관을 가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예술품)를 보며 재밌는 생각을 했습니다. 키네틱 아트가 전시되는 기간 동안 고장이 날 수 있잖아요. 아마 설치된 미술관에서 관리를 할텐데, 그 관리도 일종의 ‘돌봄’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돌봄이란 단어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는 일이라고 정의돼요. 하지만 이 단어에는 고착화된 여성적 이미지가 고정관념으로 달라붙어 있어요. 오늘날 남성이 돌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지만 무의식에 남아있는 남성성과 돌봄 간의 간극이 존재하고 있고요. 돌봄이란 단어를 확장해서 쓰면 이 간극을 메우고 모두가 돌봄에 종사하는 새로운 세대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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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경북 김천=김태희 기자 기자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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