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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시 쓰는 農事直說(농사직설)

농업도 경영이다

“백성이 먹고 입는 것은 나라의 근본이다. 농사는 의식(衣食)의 근원으로 국정에서 무엇보다 앞서는 것이다. 나는 농사의 이로움을 알고 버려두는 땅이 없기를 바라며 ‘농사직설’(農事直說)을 편찬했다. 감사(監伺)나 수령(守令)의 책임을 맡은 자는 농사에 전력해 사람마다 풍족하고 희호의 낙(樂)을 누리게 하라.”
-1444년 세종이 농사에 힘쓸 것을 권고한 ‘권농교서’(勸農敎書) 중에서


조선의 4대 임금에 오른 세종은 1429년 ‘농사직설’을 간행해 백성이 농사의 지침으로 삼도록 했다. 그로부터 570년도 더 지난 지금 대부분의 사람이 보릿고개는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과 값싼 농작물을 대량 생산하는 중국 같은 농업 선진국 앞에서 우리는 농촌인구 감소와 고령화, 농학 교육 부실, 농산물 가격경쟁력 악화로 위기를 겪고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100년을 얼마나 풍요롭게 살 것인가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삼천리가 금수강산인 우리나라는 농자천하지대본인 천혜의 농업 국가로 자연자원이 풍부하고 식량의 자급자족을 이룬 나라다.” 이것이 지금까지 배우고 믿어 온 우리 농업에 대한 인식이다. 이 자부심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만 갇혀있다면 문제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오늘날의 강대국은 모두 광대한 평야와 높은 농업 생산성을 자랑하며 농산물 수출에 힘을 쏟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 면적과 70%의 산악지형, 세계 최고의 인구밀도, 여름철에 집중된 장마와 봄·가을의 수자원 부족이라는 악조건에서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

주요 수출 상대국에 그들의 농산물을 수입하는걸 허용해야 우리나라 공산품을 수출할 수 있는 것이 지구촌 시대의 현실이다. “쌀시장 개방은 한국 농업을 붕괴시킨다”는 우리의 주장에 대해 세계식량기구(FAO)의 한 간부는 “대한민국에서 밀려오는 텔레비전 때문에 독일의 산업이 붕괴되는 것은 허용해도 된다는 말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식량의 무기화를 우려한다면 “식량은 전량 자급자족하겠다”는 원칙은 최대한 지키면서 선진국처럼 다각적인 식량확보 방안을 검토하는 현명한 해결책을 하루 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두 나라

국토 면적은 좁지만 농업에서 막강한 경제력을 지닌 강소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네덜란드와 이스라엘은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국제 경쟁력을 어떻게 키웠는지 살펴보자.

네덜란드는 우리나라의 전남과 전북을 합한 크기의 면적과 인구를 가진 나라지만 국민소득과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이다. 그러나 네덜란드가 오늘날 원예산업의 강국이 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19세기 말부터 기초학문이 발달한 네덜란드는 이미 식물분류학과 식물영양생리학 등이 자리를 잡았고, 코렌스가 멘델의 유전법칙을 확인하고 벤트가 식물생장호르몬인 옥신을 발견하는 등 첨단 과학을 이끄는 전통을 만들었다. 현재까지도 네덜란드의 농학계는 농과대학과 연구소를 통합 운영하는 체질 개선을 거쳐 분자육종의 실용화를 선도하고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 통계에 따르면 원예 종자 수출액은 네덜란드가 미국을 2배 이상 능가하는 세계 1위다.

“네덜란드는 작은 나라이면서 어떻게 세계 상위 수준을 유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다국적 종자회사 세미니스의 네덜란드인 고위 간부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여건에 맞는 분야를 선정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나라이므로 옛날부터 무역을 많이 해 왔다. 그 때문에 국제 정세에 밝고 적응력이 높다.”

네덜란드는 원예분야에서 권위있는 국제학술회의를 주최해 발전하는 분야의 최신 정보를 끊임없이 받아들인다. 이를 통해 분자표지로 우량종자를 개발하고, 천적과 내병성 종자를 이용해 무공해 재배를 하며, 병원균의 오염을 차단해 무공해 토마토와 파프리카를 생산하는 등 신기술을 도입하고 개발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합이 관리하는 전주기 재배 프로그램, 생산 예측에 기초한 국제 선물경매장 출하, 과실의 수확·세척·선별·포장·수송·세관 통관·항공기 선적에 이르는 작업이 일관되게 진행돼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작은 국토 면적에 절반은 사막이지만 물방울 관개법을 이용해 토마토와 감귤 같은 고당도 과일을 육종했다. 나아가 일찍부터 ‘수확 후 관리연구소’를 설립해 세계시장 개척에 성공했다.

분자유전학과 유전체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국제협력 연구사업을 이끈 이스라엘의 과학자들은 결국 고당도 토마토 육성하는데 성공해 역사가 깊은 네덜란드의 종자회사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교류도 없이 유전공학과 육종, 생산, 선별 공장, 유통을 따로 지원하면서 수출시장 개척만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농업 경쟁력=과학기술+경영’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식물은 단순한 먹을거리에 그치지 않고 항암, 항비만, 진통제 등 보건의약에 효과적인 물질을 만들어낸다. 식물에서 유전자, 단백질, 천연화합물을 어느 나라가 먼저 차지할 것인가 하는 총성 없는 전쟁이 날마다 일어나는 이유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인 인디언이 무참히 도륙당하고 침입자는 광대한 땅에서 자원을 약탈하던 시절, 우리나라는 사색당쟁 가운데 양반 타령만 하고 있었다. 1876년 국제정세에 어두워 불평등조약을 맺어야 했던 강화도 조약을 또 다시 체결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스라엘 온실에서 물방울농법으로 재배한 토마토. 필요한 물을 정확히 공급하며 수확량도 3, 4배 많다.


한국 농업의 세계화 전략

이제는 시장개방을 반대하는 수세적이고 소모적인 대응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국내시장보다 천배, 만배 이상 큰 세계시장을 향해 치밀하게 준비된 공세적 경영을 추구해야 한다. 자동차와 반도체 수출에서 얻은 경험을 이제는 농업 생명공학에 접목할 때다. 이를 위해 첨단 과학기술과 경영정책에 기반을 둔 전문가 집단의 기획력과 조직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농업에서 취약한 이유는 적절한 투자와 경영관리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부처에 다 있는 연구개발국이 농림부에는 없다. 오로지 식량확보와 가격안정, 농촌발전이 지금까지의 국정 기조였다. 이탈리아 피자를 미국인이 상업화하거나 한국산 김치를 일본이 먼저 기무치로 상품화한 사례를 거울로 삼아 우리는 국제 진출에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해외에 한국 음식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소비문화에 맞도록 제품의 모양과 크기, 포장을 조절하는 종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직접 수출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현지에 농장과 공장을 세우고 생산한 농산물로 음식점이나 식품점, 체인점을 경영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현지 교포나 한국 유관단체와 긴밀한 협력 관계망도 구축해야 할 것이다. 개발도상국에 우리 공산품 시장을 개척하는 경우 한국의 우수한 종자나 씨감자 등을 제공하고 현지의 농업 생산기술을 발달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농업의 통합적 성격을 이해하고 기획 단계부터 실용적인 소재를 골라 여러 전문가들이 연계되는 기초 연구를 장려한다면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국가 성장동력도 발전시킬 수 있다.

우선 과학기술, 생산체계, 국제경쟁력에서 준비가 잘된 사업 항목을 엄선해 지원하고 성공사례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 수출전략처럼 처음에는 기반을 다지고 자원을 확보한 뒤 관련된 기술 요소를 통합해 시장개척과 세계경영까지 아우르는 기획이 농업 수출전략에도 도입돼야 한다. 예를 들어 분자육종으로 개발된 신품종 종자는 대량 생산의 자동화와 안정성 인증 단계를 거쳐 가공품이나 식품으로 일관된 관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 수출 지향 연구개발 사업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수출액의 일정 부분을 해당 수출 품목의 연구개발비로 지원하고 국내에서 생산토록 유도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은 해당 수입관세의 일정 비율을 연구개발비로 투입하는 방안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의 화훼 경매장. 네덜란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대의 꽃 수출국으로 연간 맴출액이 25억 유로(약 2조9000억 원)를 넘는다.


세계를 향한 농업, 3G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인재를 육성하고 제도를 정비하며 과학기술의 방법을 터득한 시대라고 한다면 앞으로 100년은 우리의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시대가 돼야 할 것이다. 즉 한국 농업이 세계 속에서 중심을 잡고 우뚝 서기 위해 국제적 표준(global standard), 국제적 참여(global participation), 국제적 지도력(global leadership)을 갖추는 ‘농사직설’을 다시 써야 한다.

네덜란드와 이스라엘이 정상급 원예 산업을 누리는 원인은 세계를 아우르는 거시적 안목과 기획력, 과학기술에 근거한 자기 관리에 있음을 우리는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전면 개방시대에 우리의 선택은 가장 귀중한 자산인 우수한 인재를 제대로 키워내고 첨단 과학기술을 적극 수용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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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병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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