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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눈, 진화의 수수께끼

 

인간의 눈 홍채


생물의 각 부위 가운데서도 복잡한 기관이 진화돼온 과정은 생물진화의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과학자들은 눈의 진화사 연구를 통해 '옛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진화의 일반성질을 밝혀내고 있다.

찰스 다윈 이래 생물학자들이 당면한 가장 매혹적이면서도 난처한 문제 중 하나는 눈이나 날개처럼 생물의 복잡한 부분의 진화를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것이다. 자연 도태와 같이 맹목적인 힘이 어떻게 무에서 시작하여 내이(內耳)와 같이 극도로 섬세한 구조를 창조해낼 수 있었을까?

이해하기조차 힘든 이 재주가 진화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것임이 분명하다. 눈의 경우를 예로 들면 곤충류 연체류 포유류와 기타 다른 동물들이 모두 다른 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눈은 한번만 진화한 것이 아니라 수십번의 진화과정을 거쳤다고 추정된다.

이와 같은 진화의 묘기가 유전자와 단백질 분자 수준에서 어떻게 달성되는가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 가지각색의 짜임새에서 하나의 공통적인 실마리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즉 진화는 오래된 것에 기반해 거기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같은 유전자가 다른 목적에 되풀이 사용

동물들은 복잡한 구조물을 조립하기 위해 새 유전자와 단백질 세트를 진화시켜 내지는 않는다. 대신 기존 분자를 다른 용도로 전환하여 새로이 이용가능한 부분을 만들어낸다.

연구자들은 몇몇 경우에 진화는 태아가 성체로 발육해 가는 프로그램의 세팅을 바꿈으로써, 즉 기존 유전자 이용의 시기와 그 범위를 바꿈으로써 새로운 결과를 창출해 낸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제 다윈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들을 조금씩 제시하기 시작하고 있다"고 남가주 대학 로스앤젤레스교의 발생학자인 마가렛 맥폴 나이(McFall Ngai)박사는 말했다. 그는 인디애나대학 블루밍턴에서 열린 발생과 진화에 관한 모임에서 새로운 것의 진화에 대해 발표한 연설자 중 한 명이다.

"우리는 유기체가 매우 지략이 풍부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유기체는 카드를 1벌 가지고 여러 수법을 써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낸다. 새로운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인디애나 대학의 분자 및 세포 생물학 학회 이사이며 이번 심포지엄의 조직위원인 루디 래프 박사는 "가장 놀랍고 중요한 발견은 동일성이다. 우리는 같은 유전자가 다른 목적들을 위해 되풀이하여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취하여 그것을 재편성 한다면 새로운 것을 좀 더 빨리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그것이 진화가 수행되는 방식이다. 또한 그것이 분자생물학이 밝혀낸 놀라운 사실들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눈과 같이 절묘하게 복잡한 기관이 어떻게 처음 진화할 수 있었나 하는 문제는 찰스 다윈도 '종의 기원' 중 '이 이론의 난점'이라는 장에서 상세히 논해야 한다고 느꼈을 만큼 어려웠다.

"이것은 유용한 구조의 초기단계 문제다"라고 하버드 대학 진화학자이며 그 학회에서 기조 연설을 한 스티븐 제이 굴드 박사는 말했다.

"날개가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을 때에는 누구나 날개가 무엇에 쓰이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날개 일부분만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윈의 일반적인 답은 이것이 틀림없이 다른 목적을 위해 존재하리라는 것이었고 이 생각이 이후 새로운 구조의 진화에 대한 주요 주제가 되어 왔다. 복잡한 구조란 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립보건학회에서 눈의 수정체를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이 발견하고 있듯, 진정 무에서는 복잡한 것을 만들 수 없다."

수정체는 투명한 구조로 된 크리스탈린이란 단백질로 채워져 있다. 크리스탈린은 한 세기 이상 연구 대상이 되어 왔는데, 수정체에 많이 있으며 빛을 모아 초점을 맞추도록 완벽하게 배열됐다. 크리스탈린은 오랫동안 단지 동물이 사물을 볼 수 있도록 진화된 특정한 수정체 단백질로 여겨져 왔다.

흔한 것을 활용, 특별한 것을 만들어낸다
 

생김새가 독특한 바다오리의 눈


그러나 이 단백질 연구자들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수정체의 진화는 생각했던 것보다 간단할 수도 있으며 그같은 '복잡한' 구조가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대한 교훈을 제공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많은 크리스탈린들은 사실상 세포의 기초적인 화학적 대사를 관장하는 매우 흔한 효소와 같은 단백질이다.

예를 들어 어떤 크리스탈린은 통상적인 대사 효소인 유산염 탈수소효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연구자들은 이 단백질들이 처음에는 평범한 효소 작업을 위해 진화되었으나 후에 수정체 생성이라는 완전히 다르고 전문화된 과업으로 전환되었다고 말한다.

"수정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한가지 목적을 위해 쓰이던 단백질을 전적으로 다른 기능에 쓰기 위해 빌려옴으로써 복잡한 신체 부위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소재 국립눈학회의 분자생물학 및 발생학연구소 소장인 조람 피아티고르스키(Joram Piatigorsky)박사는 말했다. "나는 이와 유사한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믿는 편이다"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이고교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의 분자 생물학자인 찰스 쥬커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어진 역할을 이행하는데 다른 경로에 연관된 기존의 분자를 끌어모을 수 있다면, 왜 굳이 새로운 분자를 만들어 내겠는가? 충원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경로를 위해 일일이 분자들을 새로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사실 이 단백질들의 이중 생활은 수정체에서의 그들의 역할을 위해 중요할지도 모른다. 수정체 밖에서 크리스탈린들의 원래 임무는 오랜 시간과 스트레스로 인해 그들 자신과 다른 단백질이 손상을 입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들은 이것이 많은 단백질들이 출생 이전에 만들어져 절대 대체되지 않는 눈에서 크리스탈린들이 이중 의무를 수행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크리스탈린들은 빛을 굴절시키는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수정체에서 평생 기능을 다해야 하는 다른 교체 불가능한 단백질의 통합성(신체와 같은 유기체가 아무런 차질도 없이 정상기능을 영위하는 상태)을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국립눈학회 소속 분자생물학자인 그레엄 위스토(Graeme Wistow) 박사는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 수정체를 연구하여 진화의 재주를 입증하는 증거들을 추가로 제시했다.

"수정체는 외계와의 경계면이다. 가령 우리 조상들이 바다에서 육지로 상륙했을 때 수정체의 특성을 바꾸어야 했다. 또 다른 경우에도 수정체의 단백질 구성에 많은 변화가 계속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오랜 시간에 걸친 이같은 단백질 조성 변화는 어류 인간 오징어 쥐 벌새 등 지금까지 연구된 많은 동물의 수정체에서 발견된 크리스탈린 혼합물의 배열에 반영되어 있다. 위스토박사는 이 혼합물들이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물 속과 육상, 낮과 밤 등 서로 다른 환경에서 요구되는 서로 다른 시각조건의 결과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동물들이 새로운 시각적 세계를 탐험함에 따라 더 다양한 대사 효소들이 수정체의 계속되는 진화 요구에 맞추어 눈 안으로 모집되어 들어오고 있다.

맥폴 나이 박사에 따르면 다른 솜씨있는 전환이 오징어의 발광기관에 있는 수정체와 유사한 조직에서 발견되었다.

오징어는 흔히 물 속에서 그들 밑을 헤엄쳐 지나는 물고기의 밥이 되곤 한다. 그래서 이들은 달빛과 별빛이 비치는 물 속에서 헤엄칠 때 그림자를 감추기 위해 '포토포어'(photophore)라 불리는 생물발광기관을 이용한다. 물 아래로 같은 광선을 내쏨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그림자를 효과적으로 없애는 것이다.

오징어 눈이 주변으로부터 빛을 받아들여 망막에 모으는 수정체를 갖고 있는 반면 포토포어는 마치 거꾸로 만들어진 눈처럼 되어 있어 안에서 만들어진 빛을 밖으로 발산하는 수정체를 갖고 있다.
 

(그림1) 인간의 눈과 오징어 포토포어의 관계^눈은 주변에서 빛을 받아들여 망막에 모은다. 오징어의 포토포어는 빛을 밖으로 발산한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똑같은 종류의 단백질이 수정체를 형성한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우리는 포토포어에서와 같이 신체의 다른 곳에서 어떻게 투명한 조직, 즉 수정체를 만드는지 알고 싶었다. 오징어는 생화학적으로 어떻게 해서 이것을 만들까?"라고 맥폴 나이박사는 말했다.

알데히드 탈수소효소로 알려진 효소의 특정 시각형(eye specific form)이 오징어 눈의 수정체를 채우고 있는 주요 크리스탈린 중 하나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피부조직의 바깥 층으로 수정체를 만드는 눈과는 달리 오징어의 포토포어는 근육 조직으로부터 수정체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생물학자들은 포토포어가 독자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수정체를 진화시켜 왔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학자들은 포토포어의 수정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이 근육에만 있는 특정 알데히드 탈수소효소나 근육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어떤 단백질이 아니라 눈의 수정체를 만드는데 쓰인 형태의 알데히드 탈수소효소임을 밝혀냈다. 오징어는 포토포어 수정체와 유사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수정체 단백질을 진화시키는 대신 기존의 방법을 택하여 응용한 것이다.

이 교훈은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이라고 맥폴 나이박사는 말했다. "게놈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영리하여 '어떻게 해야 이 새로운 구조를 발생하고 진화 시킬 수 있을까?'하는 문제에 부닥쳤을 때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돌아보고 '좋아 결심했어. 이 유전자들을 다른 곳에 다른 방식으로 재배열해서 아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거야'라고 결정한다는 증거들이 속속 새로이 드러나고 있다"

연구자들은 또 눈의 발생을 조절하는 유전자들이 전 동물계에 걸쳐 널리 쓰이고 있고 또 쓰였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스위스 연구팀은 똑같은 유전자가 인간의 눈과 초파리의 만화경같은 겹눈(multifaceted eye)의 발생을 모두 통제한다는 것을 밝혀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이들은 독자적으로 진화한 복잡한 구조의 전형적인 예로 여겨졌다.

바젤대학의 발생학자인 발터 게링(Walter Gehring) 박사와 동료들은 곤충 눈의 발생을 조절하는 '아일리스(eyeless)'라고 알려진 초파리의 유전자와 인간을 비롯한 척추동물의 눈 발생을 통제하는 'Pax-6' 유전자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함을 발견했다.

학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발견들이 이제 겨우 잠재력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있는 발생과 진화에 대한 연구를 고무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신속히 발전하고 있는 분야의 새로운 발전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 래프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40년대에는 진화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유전학 진화 고생물학이 동원되었다. 우리는 이제 이것들을 발생학, 특히 새로운 분자 데이터와 결부시킬 수 있게 되었다. 진화는 한 세대나 두 세대에 한번씩 재창조되어 왔다. 아마도 지금이 또 다시 재창조를 할 시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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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캐롤 예숙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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