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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가 남극점에서 본 우주

블랙홀부터 빅뱅의 첫 순간까지

◇ 보통난이도 | 천문학자의 남극 라이프

 

 

‘오레오 쿠키를 한 손에 들고 밤새도록 우주의 끝에서 날아온 빛을 바라보며…’ 
천문학자들의 삶은 이렇게 우아하고 낭만적일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영하 수십 도의 남극대륙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망원경 꼭대기에 올라 장비들을 납땜하는 ‘극한직업’ 천문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남극에 간 이유를 들어봤다. 

 

“실험 천문학자요?” 
2019년 12월 23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북파크에서 만난 김준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물리학과 박사후연구원과 강재환 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은 자신들을 ‘실험 천문학자(experimental astrophysicist)’라고 소개했다. 천문학의 영역을 이론, 관측, 실험으로 무 자르듯 분명하게 나눌 수는 없지만, 관측 기기를 손수 설계하고 직접 설치해 자료를 얻고 해석하는 사람들을 실험 천문학자라 부른다고 했다. 하는 일만 들어서는 천문학자와 물리학자, 공학자 사이 어딘가 위치한 직업 같았다. 그런데 굳이 지구 끝 남극까지 가서 실험 천문학을 해야 했을까. 

 

 

관측 기기 직접 만드는 실험 천문학의 매력


“남극점은 전파 관측을 하기가 정말 좋은 장소니까요.” 


김 박사의 대답은 명쾌했다. 지구의 가장 남쪽, 남위 90도 지점인 남극점은 대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고 해발고도가 2830m가 넘는 고지대라 대기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 게다가 남극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막이다. 남극점에 수북한 눈은 바람을 타고 온 얼음 결정들이 쌓인 것일 뿐 남극점의 강수량은 연간 수mm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기 중 물 분자가 전파를 흡수해버릴 염려가 적다. 


그는 남극점의 아문센-스콧 기지에 머물며 기지에서 약 1km 떨어진 암흑 영역 실험실(DSL) 건물에서 구경 10m인 전파망원경 ‘남극점 망원경(SPT·South Pole Telescope)’을 이용해 태양 질량의 수십만~수십억 배에 이르는 초대질량블랙홀을 관측하는 임무를 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14년 12월~2015년 1월을 시작으로 남극점에서 5번째 여름을 보내는 중이다(10월 말에서 이듬해 2월 중순까지가 남극의 여름이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3주 뒤 남극으로 향했다).


 SPT는 전 세계 망원경을 연결해 지구 크기의 가상 망원경을 만들어 블랙홀을 포착하려는 국제 협력 프로젝트인 ‘사건지평선망원경(EHT·Event Horizon Telescope)’에 참여하고 있다. 김 박사는 “지구 크기의 가상의 망원경을 만들려면 기선을 최대로 늘릴 수 있는 남극의 참여가 필수”라며 “SPT는 우리은하 중심의 블랙홀인 궁수자리 A*을 관측하는 데 큰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SPT가 EHT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초장기선 간섭계(VLBI) 수신기를 직접 개발해 SPT에 설치했다. 수신기가 만족스러운 관측 결과를 내기까진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 번은 장비에 필요한 거울의 설계가 잘못된 것을 남극점에 도착해서야 알아차려 부랴부랴 인근 기계공작실에서 금속 덩어리를 깎아낸 적도 있다. 김 박사는 “남극에선 필요하면 만들어 쓰는 수밖에 없다”고 쿨하게 얘기했다. 


그렇게 4년 여의 고생 끝에 SPT는 지난해 최고의 과학 성과로 꼽히는 블랙홀(M87*) 관측에서 다른 전 세계 망원경의 관측 자료를 보정(캘리브레이션)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블랙홀인 궁수자리 A*을 이미지화하는 데에는 SPT 자료가 더 본격적으로 쓰일 예정이다. 

 

 

남극점에서 우주의 지도를 그리다 


강 연구원은 남극에서 우주의 시작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망원경을 세우면 기존 망원경이 잡아내지 못한 새로운 신호를 관측할 수 있다는 사실에 끌렸다”며 궂은 실험 천문학 분야에 발을 들인 이유를 설명했다. 


강 연구원은 김 박사와 같은 건물(DSL)에 있는 전파망원경 ‘바이셉(BICEP)3’으로 빅뱅의 잔광인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한다. (강 연구원의 표현에 따르면) “한 폭의 현대미술 추상화같이 우아한” 우주배경복사 이미지를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주배경복사가 만들어질 당시 아기 우주의 미세한 밀도 차이를 보여주는 ‘지도’ 이미지다. 이 이미지는 ‘바이셉2’로 얻었다. 


강 연구원은 2014~2015년, 2015~2016년, 2016~2017년 세 번의 여름을 남극에서 보내며 바이셉2의 다음 세대인 바이셉3을 설치하고 관측을 진행했다. 바이셉3은 바이셉2보다 구경이 2배 정도 크다. 이는 망원경의 성능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뜻도 되고, 냉각할 부분이 그만큼 많다는 뜻도 된다. 특히 검출기가 있는 초점면은 온도를 절대온도 0.27도 수준으로 낮게 유지해야 한다. 


관측 초창기에는 역시나 난관이 많았다. 한번은 조립을 완료한 바이셉3을 관측소 마운트 위에 올렸는데, 망원경의 온도를 모니터링하는 센서가 정상 작동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망원경을 마운트 위에 올릴 때 전선 하나가 잘못된 탓이었다. 복잡한 조립을 다시 할 수가 없어서 마운트 위에 기어 올라가 전선을 납땜하는 수리를 해야만 했다. 


또 한번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관측 자료가 주기적으로 생성돼 골머리를 앓았다. 알고 보니 망원경의 기계적인 문제였다. 망원경이 하늘을 스캔하면서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강 연구원은 “설치한 관측 장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면 왜 그런지 이해하는 과정이 재밌다”며 “관측 자료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고, 장비의 어떤 부품이 자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참고해 연구하는 것이 실험 천문학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두꺼비 술’ ‘장작불 ASMR’은 남극 생활 필수품


천문을 관측하기 좋은 곳은 곧 사람이 생활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뜻이다. 두 실험 천문학자들에게도 남극 적응은 결코 쉽지 않았다. 김 박사는 남극에서의 첫날밤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워낙 고도가 높고 건조한 환경이라 목마름과 두통으로 30분마다 깨서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하지만 곧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잠들게 됐다”며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추위에 떨며 노동을 하는 덕분(?)”이라고 말했다. 남극점의 기온은 한여름에도 영하 10도를 밑돈다. 그는 가끔 한국에서 챙겨간 ‘두꺼비 술’로 몸을 녹인다고 전했다. 


강 연구원은 불면증으로 고생했다. 남극은 1년에 해가 한 번만 뜨고 진다. 기지에 사람이 드나드는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계속된다. 환하고 건조하고 적막한 밤이다. 그는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파도소리, 새소리 같은 남극점에서 전혀 경험할 수 없는 소리를 아이패드에 담아갔다”며 “‘타닥타닥’ 장작불 타는 소리가 잠을 청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힘든 환경, 바쁜 연구 중에도 이들은 책을 썼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만난 친구와, 남들은 살면서 한 번도 가기 어려운 남극점에 몇 차례씩 발을 디딘 진귀한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다. 


강 연구원은 “최신의 과학 연구 이야기뿐만 아니라, 직접 현장에서 연구를 하는 연구자의 생활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교과서의 과학적 사실 한 줄을 밝혀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들은 인터뷰 내내 관측 장비를 개발하고 설치한 성과가 본인 혼자가 아닌 팀의 성과라고 강조했다. 연구자들의 출입이 제한되는 남극의 겨울 동안 망원경 곁을 지키는 월동대원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천문학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는지 물었다. 두 연구자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듯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하는 수 없이 질문을 바꿔 지금의 내가 청소년기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제야 편한 대답이 나왔다. 


“저는 좀 더 용기를 가지고 긴장하지 말고 잠도 푹 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강 연구원의 조언은 의외였다. 서울과학고 재학 시절 국제천문올림피아드에서 은상을 수상하고, 미국 코넬대와 스탠퍼드대에 진학해 오는 4월 박사학위 수여를 앞둔 사람의 말 치곤 겸손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수능 최저등급 미달로 대학 진학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김 박사는 청소년기 자신에게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강 연구원과 인연을 맺은 것도, 남극에 가게 된 것도, 블랙홀 연구에서 성과를 낸 것도 매순간 재밌는 일에 집중한 덕분이라면서 말이다. 


“물론 그 시절의 저는 ‘무슨 소리 하는 거야?’라며 되묻겠죠?” 


웃으며 말하는 그들의 얼굴에선 연구자로서의 삶에 대한 진정성과 열의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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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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