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햇빛만으로 에너지를 얻으려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빛에너지를 이용해 화학반응을 촉진시키려는 광촉매 연구다. 또 광촉매는 환경오염 물질을 효과적으로 분해하는 성질을 갖는다. 꿈의 신기술로 불리는 광촉매 연구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지난 1998년 독일의 벤츠사는 세계 최초로 수소를 연료로 이용한 자동차를 선보였다. 곧이어 BMW와 크라이슬러, 포드 등 세계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도 수소자동차를 선보임에 따라 조만간‘물로 가는 자동차’가 실용화 되리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잊혀질만 하면 가끔씩 첨단 과학의 예로 사용될 뿐, 아직까지 거리 어디에도 물로 가는 자동차는 없다. 왜일까?
시험관 안의 광합성
문제는‘효율’이었다. 물로 가는 자동차의 원리는 연료전지다. 물을 전기분해하면 수소와 산소가 발생한다. 연료전지는 이를 역으로 이용해 수소와 산소를 화학반응 시켜 이때 발생하는 전기에너지를 이용하는 장치다. 물론 이때의 전기는 자동차의 동력원으로 사용된다.
연료전지의 원리는 1800년대 중반 이미 발견됐다. 하지만 화석연료에 비해 효율이 떨어져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 산소는 자연계에 풍부히 존재하지만 수소가 문제였다. 수소를 만들기 위해 투입되는 에너지가 연료전지가 발생시키는 에너지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자동차연료로 사용하기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이다.
그렇다면 수소를 값싸게 대량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가장 대표적 예가 식물의 광합성이다. 식물의 엽록체는 물과 햇빛만으로 에너지(탄수화물)를 거의 공짜로 생산한다. 하지만 인간이 식물의 광합성 과정을 흉내내기란 쉽지 않다. 엽록체 안에는 전자전달계라는 복잡한 시스템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효소가 물을 분해해 나온 수소를 에너지 전달체로 이용한다. 전자전달계는 매우 정교하게 움직이는 효소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에 아직까지 인간이 이를 모방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식물의 광합성 과정을 모방해 물에서 수소를 대량으로 생산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바로 광촉매 연구다. 보통 촉매가 열에너지를 이용해 화학반응을 촉진시키는데 비해, 광촉매는 빛에너지를 이용한다.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이며, 각 파장에 맞는 에너지를 가진 입자다. 이 에너지를 광촉매가 흡수해 촉매 작용을 하는 것이다.
광촉매 연구는 1970년대 초 일본의 두 연구자에 의해 시작됐다. 도쿄대의 혼다와 후지시마 박사는 물을 분해해 수소를 얻는 실험을 하던 중 놀라운 소재를 발견했다. 비이커에 물을 가득 채우고 음극에는 백금을, 양극에는 이산화티타늄(TiO₂)란 물질을 설치한 다음, 자외선을 발생시키는 키세논 램프를 비췄더니 물이 분해돼 수소와 산소가 발생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 성과는 1972년‘네이처’에 발표됐으며 곧 전 세계의 과학자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비록 혼다·후지시마 박사의 실험에서 발생된 수소의 양은 매우 적었지만, 그동안 꿈으로만 여겨졌던‘시험관 안의 광합성’을 세계 최초로 성공시킨 논문이었기 때문이다. 각국의 많은 과학자는 이산화티타늄이란 물질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앞다투어 광촉매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빛에너지 이용 물을 분해
광촉매는 말 그대로 빛에너지에 의해 촉매 작용을 하는 물질이다. 광촉매가 빛을 받으면 (-)를 띠는 전자와 (+)를 띠는 정공(미세구멍)이 만들어진다. 광촉매의 핵심은 바로 이 전자와 정공의 강력한 산화환력원이다.
물 속의 광촉매가 빛을 받으면 (-)를 띠는 전자가 발생돼 산소와 수소 사이의 결합을 끊는다. 안정된 구조를 이루고 있던 물분자는 순식간에 결합이 깨져 불안정한 산소이온(${O}^{2-}$)과 수소이온(${H}^{+}$)으로 분리된다. 이 때 정공은 불안정한 산소이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며‘방황’하던 수소이온은 이웃의 수소이온과 만나 수소분자(H₂)를 이룬다.
광촉매로는 혼다와 후지시마 박사가 발견한 이산화티타늄이 가장 많이 쓰인다. 이산화티나튬은 빛에 의해 분해되지 않고 활성도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명적 단점이 있다. 광촉매가 활성을 나타내려면 빛에너지를 받아 전자와 정공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산화티타늄은 이렇게 되기 위한 에너지가 너무 큰 것이다.
이산화티타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3.2eV(전자볼트)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여기에 해당되는 햇빛의 파장은 자외선 영역인 3백-4백nm(나노미터, 1nm=${10}^{-9}$m)다. 따라서 이산화티타늄을 광촉매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자외선 영역의 햇빛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상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 가운데 자외선은 3%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가시광선(4백-5백nm)은 약 절반을 차지한다. 따라서 많은 광촉매 연구자들은 가시광선 영역에서 활성을 나타내는 새로운 광촉매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중이다.
최근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가 가시광선을 쬔 물에서 수소-산소 분해를 일으키는 새로운 광촉매를 찾아냈다고 발표해 크게 화제가 됐다. 일본 연구팀은 인듐탄탈레이트라는 물질에 니켈을 섞은 광촉매 0.5g을 2백 50ml의 물에 넣어 가시광선을 쪼인 결과 1시간당 0.35ml의 수소를 얻어냈다고 발표했다. 포항공대 화학공학과의 이재성 교수는“가시광선을 쬔 물에서 이 정도의 수소량을 얻은 것은 대단한 진전”이라고 말하면서도 “아직 상용화를 위해서는 많은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아직까지 광촉매의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분야는 기존의 자외선 영역 광촉매다. 그는 지난 1999년, 이산화티타늄과는 다른 새로운 광촉매를 개발해 자외선을 쬔 결과 수소 발생량을 크게 증가시키는데 성공해 미국의 화학학술지인‘케미컬&엔지니어링 뉴스’에 게재했다. 그는 같은 빛에너지에서 수소 발생효율을 기존 5%에서 23%로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데 성공해 “수소에너지의 상용화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광촉매 바르면 청소 필요 없어
광촉매는 대체에너지 개발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광촉매 연구와 이를 이용한 제품 개발이 활발한 영역은 환경분야다. 포항공대 환경공학부의 최원용 교수는 광촉매를 수질정화 분야에 응용하면 폐수가 수로를 따라흐르면서오염물질이저절로분해된다고말한다.‘ 광촉매 수처리 시스템’은 박테리아가 분해하지 못하는 염색폐수, 다이옥신 등을 2차 오염없이 무해한 물질로 분해한다. 처리절차는 우선 광촉매인 이산화티타늄 가루를 폐수에 섞어 자외선 램프가 내장된 원통형 반응기를 통과하도록 한다. 자외선을 받은 이산화티타늄은 물에서 강력한 산화력을 가진 수산화이온(${OH}^{-}$)을 만들어낸다. 수산화이온은 폐수에 녹아있는 중금속 유기화합물 등 오염물질과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이때 오염물질이 물과 이산화탄소 등 인체에 해가 없는 물질로 바뀌게 된다. 촉매로 사용된 이산화티타늄은 거둬들여 다시 사용할 수 있으므로 추가로 투입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촉매로 인한 2차 오염을 방지할 수 있다.
광촉매는 산업체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광촉매를 건물의 외부에 칠하면, 빛을 받은 광촉매는 먼지나 세균, 오염물질을 분해한다. 건물벽을 주기적으로 청소하지 않아도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매우 경제적이다. 이 외에도 가정의 소파나 세제, 김치냉장고, 공기청정기, 터널 내부 등에 광촉매를 코팅해 오염물질과 나쁜 세균을 없애는데 널리 쓰이고 있다. 또한 광촉매는 물과 매우 잘 결합하는 성질을 갖는다. 차 유리에 광촉매를 코팅하면 비가 올 때 빗방울이 고루 퍼져 시야를 좋게 하며, 나중에 햇빛을 받으면 빗물에 묻어 온 때까지 분해된다.
최 교수는 “광촉매의 응용분야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지금의 이산화티타늄 광촉매는 자외선을 필요로 한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현재는 가시광선 영역에서 광촉매 역할을 할 새로운 소재를 찾는 연구가 전세계적으로 진행중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광촉매가 오염물질을 분해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이산화티타늄에서는 수산화이온(${OH}^{-}$)외에도 수산화라디컬(OH·)이 발생되는데, 이것이 오염물질과 어떻게 반응해 이를 분해하는지 구체적 메커니즘을 밝히는 일이 최교수의 관심사다. 오염물질이 분해될 때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단계를 거쳐 분해되기 때문에 이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새로운 오염물질 분해제 개발은 물론이고 광촉매 개발에도 한층 더 박차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학문분야 접목 필요
미래의 대체에너지 개발과 환경공학의 핵심을 이룰 광촉매 연구는 어느 한가지 학문만으론 이룰 수 없는 분야다. 예를 들어 오염물질 처리시설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토목공학이 바탕이 되고, 폐수처리를 위해서는 화학공학이나 환경공학이 필요하다. 또한 새로운 광촉매 개발을 위해서는 재료공학이 필요하며, 이의 물리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체물리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물론 화학과 생물학, 물리학 등 기초과학이 바탕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국내에서 광촉매를 전공으로 하는 학부과정은 개설돼 있지 않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광촉매 연구가 기존의 학문과는 달리 여러 분야가 접목되는 학문이라는 점을 고려해, 학부 때 한가지 분야를 전공한 후 대학원에서 광촉매 분야를 선택하는 길을 추천한다. 이재성 교수는“학부 때는 자신의 전공이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기본 실력이 쌓여야 대학원에서 광촉매를 연구하더라도 좀더 심화된 연구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최원용 교수는 “최근 들어 광촉매 연구는 너무 응용분야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면서 “이 분야가 발전하려면 광촉매 반응의 기본 메커니즘을 분석해야 하는데, 이때 화학과 물리학 등 학부 시절의 탄탄한 기본 실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과 햇빛을 이용해 다양한 에너지원을 얻으려는 광촉매 연구는 환경오염과 대체 에너지 개발과 같은 인류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21세기‘드림 테크놀러지’다.이는 기초과학의 토대 위에 꾸준한 투자와 꿈과 패기를 가진 연구자들의 노력에 의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