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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심장 왼쪽에 치우친 이유있다

장기는 비대칭이 오히려 효율적

 

외모의 대칭성은 안정된 환경에서 자라 몸에 결함이 적다는 표시가 된다. 영양의 뿔이 대칭적일수록 짝짓기 성공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뛰어난 조각가 미켈란젤로. 그러나 그의 여성 조각상은 대가의 작품이라기에는 석연치 않다. 몸도 근육질인데다 유방의 위치도 어색하다. 그만큼 세밀한 관찰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일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동성애자였던 미켈란젤로는 여체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사실 그가 평생동안 여성을 가까이한 적은 그의 후원자였던 페스카라공의 미망인 비토리아 콜로라가 죽었을 때 시신의 손에 입술을 갖다댄 게 유일하다고 한다.

반면 미켈란젤로의 남성상은 완벽 그 자체다. 근육 하나 하나가 살아있는 듯하다. 특히 그의 다비드상은 인류가 만들어낸 조각 중 최대 걸작품의 하나로 평가된다. 이 작품이 얼마나 정확한가는 몸 중간의 음낭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왼쪽이 약간 아래쪽으로 처져 있다. 실제 대부분 남자의 음낭 역시 왼쪽이 약간 아래 놓여 있다.

음낭이 비대칭인 이유를 찾아내려고 많은 사람들이 농담반 진담반 고민해 왔다. 가장 유력한 설은 생식기 주변의 좁은 공간에 음낭이 잘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만일 음낭이 좌우대칭이라면 그 속의 두 개의 고환은 서로 나란히 놓일 것이다. 이 경우 자칫 잘못하면 서로 눌려 손상을 입을 수 있다. 따라서 둘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오른쪽은 약간 위에, 왼쪽은 약간 아래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아무튼 음낭을 예외로 하면 인체는 완벽한 좌우대칭이다. 왜 그럴까. 좌우대칭이 생존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쪽은 신을 신고 한쪽은 맨발인 채 걸어 보라. 굽 높이가 2~3cm에 불과한 신이라도 상당한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이 상태로 오래 걷거나 뛰면 척추나 근육에 큰 부담이 느껴질 것이다.

“무슨 소리? 자세히 보면 눈도 짝짝이고 손가락 길이도 다른데….”

물론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을 가지고 우리 몸이 본질적으로 좌우비대칭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은 수정란이 분화하는 과정이나 성장 과정에서 환경의 요인으로 생긴 차이일 뿐이다. 만일 자궁 환경이 안정돼 있다면 동일한 유전자는 몸의 대칭되는 부분에서 동일한 결과를 낸다. 이를 ‘발생 안정성’이라 부른다. 즉 발생 안정성이 클수록 더 대칭적인 외모를 갖는다.

수정란의 발생이 이뤄지는 환경, 즉 자궁 속은 외부의 영향력이 최소화돼야 한다. 유전자의 작동이 태아의 발달에 최대한 순수하게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외모의 대칭성이 높을수록 그 사람은 안정된 환경에서 자라 몸에 결함이 적다는 표시가 된다.

방송국에서 뉴스 진행자를 채용할 때 중요하게 보는 ‘관상’의 하나는 얼굴의 대칭성이다. 코나 입이 어느 한쪽으로 몰려 있으면 시청자들이 호감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뿐 아니라 대부분의 동물이 대칭적인 외모를 선호한다. 한 예로 제비는 짝짓기를 할 때 한 쌍의 꼬리 길이가 서로 비슷한 상대를 더 좋아한다.

겉은 대칭, 속은 비대칭
 

특정 유전병에 걸린 사람은 심장이 좌우에 놓일 확률이 같다.


하지만 뱃속 사정은 전혀 다르다. 인간을 포함한 많은 척추동물에서 심장과 위는 왼쪽, 간과 맹장은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다. 반면 대부분의 무척추동물은 심장이 왼쪽에 있지 않고 심혈관계가 비대칭적인 구조가 아니다.

예를 들어 지렁이는 몸의 마디 여러 곳에 심장에 해당하는 기관이 정중앙에 놓여있다. 곤충이나 갑각류도 대칭적인 구조의 심장이 몸 가운데에 놓여 있다. 심장을 비롯한 장기의 비대칭은 척추동물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왜 이런 진화가 일어났을까.

첫 번째 가설은 동물의 크기가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몸이 커지려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력을 이겨내 몸의 형태를 유지해야 하고 몸의 구석구석에 산소를 제대로 공급해야 한다. 자연은 척추를 축으로 한 내부골격을 고안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내부골격에 부착된 많은 근육은 몸을 유지하고 움직이게 해준다. 한편 몸 전체에 피가 돌게 하기 위해 심장은 더 커지고 효율적인 구조를 갖게 됐다. 피의 흐름은 유체역학의 법칙을 따른다. 만일 심장이 몸 한가운데 대칭적인 구조로 존재한다면 혈류량이 많을 때 흐름이 막혀 문제가 생긴다. 이 경우 혈관이 나선모양으로 배치돼야 흐름이 원활해진다. 나선은 비대칭 구조이므로 심장 역시 비대칭이 될 수밖에 없다.

내장은 짝짓기 상대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모양에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주어진 공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기능을 수행하는 쪽으로 발달하는 것이 최선이다.

상명대 생물학과 이성호 교수는 “장기가 몸의 정중앙에 일렬로 놓이면 몸 안에 불필요한 공간이 생긴다”며 “예를 들어 고등동물일수록 양분을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 소장이나 대장이 길어지는데 뱃속에서 일직선보다는 나선형으로 배치돼야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가설은 척추동물이 몸의 안과 밖이 모두 비대칭인 원시생물체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화 과정에서 겉은 좌우대칭성을 회복했지만 내장은 그대로 비대칭으로 남았다는 것.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인 리차드 제퍼리스 박사는 5억년 전 생존했던 이 동물이 오늘날 극피동물과 척추동물의 조상이라고 주장한다.

제퍼리스 박사는 흔히 가장 대칭적인 동물로 꼽히는 불가사리나 성게의 유생을 증거로 제시한다. 불가사리 성체는 별처럼 오각형의 방사대칭이지만 유생은 좌우비대칭이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최덕근 교수는 “이것은 불가사리가 원래 비대칭이었던 원시 극피동물에서 진화했음을 시사하는데 이를 두고 아직까지도 고생물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며 “최근에 외부형태가 비대칭인 5억2000 만년 전 극피동물 화석이 발견돼 화제가 됐다”고 말했다.

아직 그 기원이 확실히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내부장기가 비대칭인 이유는 기능적인 효율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장이 굳이 오른쪽이 아닌 왼쪽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실제로 수만 명에 한 명 꼴로 오른쪽에 심장이 달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 전문킬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 ‘니키타’에서 이런 사례가 발견된다. 자신의 애인을 죽이라는 조직의 지시를 받은 니키타는 애인의 심장이 오른쪽에 있다는 점을 알고는 ‘안심하고’ 왼쪽 가슴을 향해 총을 쏜다. 남들이 볼 때 성공적으로 저격한 것으로 속이기 위해서다.

심장을 비롯한 몸의 각종 장기 위치가 정상인에 비해 다르게 배치된 경우를 의학적으로 ‘내장 역위증’이라 부른다. 가장 흔한 형태는 모든 장기가 거울을 보듯 정상인과 반대 위치에 놓인 경우. 보기에는 이상하지만 생리기능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각 장기들이 여전히 조화를 이루며 제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의사가 청진기로 진찰하기 전에는 본인도 모르고 지내는 일이 많다. 일란성 쌍둥이인 경우에 가끔 발견된다.

하지만 내장의 일부만이 다른 위치에 놓이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즉 몸의 모든 장기가 어느 한쪽으로 몰려 있는 사례가 있다. 또 위 간 소장 대장 등 복부에 있는 장기의 위치는 정상이지만 흉부의 심장만 오른쪽에 놓인 사람도 있다. 어떤 경우든 심장의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작동돼 생명을 위협한다.

네이브키즈 연세소아과 이종균 원장은 “심장이 오른쪽에 위치한 환자비율은 전체 심장병 환자의 1% 미만으로 드문 편”이라며 “방치하면 위험하지만 조기에 발견해 수술하면 완치율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남자의 경우는 X선 사진을 찍지 않고도 자신의 장기가 정상인지 뒤집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내장 역위증인 경우는 음낭의 오른쪽이 약간 아래로 처져 있기 때문이다.

심장이 왼쪽인 이유
 

곤충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부장기도 좌우대칭이다.


모든 장기가 거울로 배치된 경우 사는데 지장이 없는데 왜 우리 몸의 심장은 왼쪽에 있는 걸까. 확률적으로 왼쪽과 오른쪽이 1:1이 돼야하지 않을까. 많은 발생학자들이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렇다할 결과를 얻지 못했다.

미국 예일대의 마르티나 부르크너 교수팀도 여기에 뛰어들었다. 연구자들은 돌연변이로 내장 역위증을 보이는 생쥐에 주목했다. 흥미롭게도 이 돌연변이체끼리 교배를 시켜 태어난 새끼는 심장이 왼쪽인 생쥐와 오른쪽인 생쥐가 1:1의 비율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이 돌연변이체는 심장이 왼쪽에서 발달하도록 유도하는 유전자가 고장나 좌우 결정이 임의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유전자를 찾으면 내장의 비대칭을 규명하는 열쇠가 된다.

1997년, 6년이 넘는 끈질긴 탐색 끝에 연구자들은 마침내 그 유전자를 찾아내 ‘왼쪽-오른쪽 다이네인’(left-right dynein, lrd)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이네인은 세포에 존재하는 분자모터로 섬모나 편모가 회전운동을 할 수 있게 한다. 이미 여러 종류의 다이네인이 알려져 있었는데 연구자들은 또 하나의 다이네인을 추가한 셈이다. 돌연변이체에서 발현된 왼쪽-오른쪽 다이네인은 고장이 난 상태로 회전모터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다이네인이 작동하는 것과 심장이 왼쪽에서 생기는 것이 서로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영광은 일본 도쿄대 노부타카 히로카와 교수팀에게 돌아갔다. 연구자들은 배아에서 좌우비대칭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영역인 ‘결절’(node)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봤다. 결절은 배아 한쪽 아래에 대략 삼각형 모양으로 움푹 들어가 있는 영역이다. 이 속에는 섬모를 달고 있는 세포 20여개가 자리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섬모가 모두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음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섬모의 회전으로 생기는 결절 내부의 유체 흐름을 알아보기 위해 형광빛을 띠는 작은 구슬을 집어넣었다. 놀랍게도 구슬은 빠른 속도로 왼쪽으로 이동했다. 즉 결절 속의 섬모는 심장이 발생하게 하는 신호 분자를 왼쪽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결절 속의 섬모를 분석한 결과 이를 움직이게 하는 회전모터가 바로 부르크너 교수팀이 발견한 왼쪽-오른쪽 다이네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난 2002년에는 사람에서도 생쥐의 왼쪽-오른쪽 다이네인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즉 DNAH5라는 다이네인의 유전자가 그것이다. 여기에 돌연변이가 생겨 나타난 ‘운동성 없는 섬모증후군’은 유전병인데 환자의 절반은 왼쪽에, 절반은 오른쪽에 심장이 있다. 심장의 위치를 지정하는 섬모가 고장나 좌우에 놓일 확률이 같아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떠오른다. 만약 섬모가 시계반대방향으로 회전했다면 신호분자가 오른쪽으로 쏠려 심장이 오른쪽에 있게 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이화여대 생물학과 여창열 교수는 “지난 2002년 연구자들은 배아의 결절에 인공적인 흐름을 일으켜 유체가 오른쪽으로 흐르게 유도했다”며 “그 결과 심장이 오른쪽에 생기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대 심리학과의 크리스 맥마누스 교수는 섬모의 회전방향이 갖는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다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다. 심장이 왼쪽에 있게 된 것은 우주가 왼손잡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도대체 심장의 방향과 우주의 비대칭성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심장이 왼쪽에서 발생한 것은 회전모터인 다이네인이 섬모를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이네인은 단백질이므로 그 구성요소는 아미노산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아미노산은 모두 L형 이성질체다.

오른손과 왼손이 모양은 같아도 서로 겹쳐지지 않는 거울상이듯이 많은 분자도 거울상을 갖는다. 거울상 분자는 분자량은 물론, 끓는점, 밀도 등이 동일하지만 빛을 휘게 하는 성질이 반대다. 즉 L형은 빛을 왼쪽으로 휘게 하고 D형은 빛을 오른쪽으로 휘게 한다. L형 분자는 왼손잡이, D형 분자는 오른손잡이인 셈이다.

분자의 비대칭과 연관

만일 D형 아미노산으로 다이네인을 만들 경우 자연계에 존재하는 다이네인과 거울상이 된다. 물론 거울상 다이네인은 시계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모터가 될 것이다. 그 결과 결절 속의 유체가 오른쪽 방향으로 흐르고 따라서 심장도 오른쪽에서 발달할 것이다.

실험실에서 아미노산을 합성하면 L형과 D형이 1:1의 비율로 만들어진다. 즉 동일한 조건에서는 반반씩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백질이 L형 아미노산으로만 이뤄진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명체가 탄생할 때 우연히 L형을 선택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생명이 탄생할 무렵 L형이 D형보다 많이 존재하고 있었을까.

이에 대한 명쾌한 결론은 아직 나와있지 않다. 다만 후자의 경우임을 시사하는 결과가 몇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우주에서 지구로 떨어진 운석의 조성이다. 일부 운석의 경우 아미노산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분석한 결과 L형이 더 많이 들어있었던 것. 1969년 9월 28일 호주 머치슨 지역에 떨어진 ‘머치슨 운석’이 대표적인 예다. 이 운석에 존재하는 4종의 아미노산을 분석한 결과 L형이 D형보다 7-9% 더 많았다.

그렇다면 어떤 작용이 우주에 L형 아미노산쪽이 더 많이 존재하게 했을까. 그 해답은 4가지 기본힘 가운데 하나인 약력에 있을지도 모른다. 약력은 원자핵을 이루는 중성자와 양성자에 작용하는 힘으로 방사능의 원인이 된다. 1957년 방사성 동위원소인 코발트60의 베타 붕괴를 관찰한 결과 방출되는 전자의 스핀 방향이 비대칭인 것으로 밝혀졌다. 즉 왼쪽으로 도는 전자의 개수가 오른쪽으로 도는 것보다 많았던 것이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특집 1파트 참조).

분자는 원자로 이뤄져있고 원자는 가운데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왼쪽으로 도는 전자가 더 많다는 것은 원자 자체가 비대칭이라는 의미다. 결국 아미노산의 경우 분자골격은 L형과 D형이 서로 거울상이지만 전자의 수준까지 내려가서 보면 서로 대칭이 아닌 셈이다.

물리학자들의 엄밀한 계산에 따르면 그 결과 D형 아미노산이 L형 아미노산보다 약간 더 불안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차이는 1017분의 1 정도로 너무나 미미해 정교한 실험으로도 간신히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197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압두스 살람은 “이 차이는 너무 작아 무시할 수 있을 것 같이 보이지만 오랜 시간을 거쳐 그 효과가 증폭됐을 것”이라며 “그 결과 좀더 불안정한 D형 아미노산 분자의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L형 아미노산이 많이 남아있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울상 분자, 즉 광학 이성질체를 최초로 발견한 19세기 최고의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생명의 비대칭은 우주 그 자체의 비대칭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말을 남겼다. L아미노산의 과잉이 정말 약한 상호작용이나 미지의 물리적 과정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라면, 비대칭을 매개로 생명과 우주를 연결한 파스퇴르의 혜안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칭·비대칭은 환경적응의 결과

많은 생물의 외모가 좌우대칭 또는 방사대칭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외부 구조의 대칭, 비대칭은 서식하는 환경에 따른 선택사항이다.

우리가 횟감으로 즐겨 찾는 광어, 즉 넙치가 대표적인 예다. 넙치의 입을 보면 세로로 길쭉한 보통의 물고기가 90° 옆으로 누워있는 형상인데 두 눈은 한쪽에 쏠려 있다. 보통 물고기는 등쪽이 짙은 색이고 배쪽이 밝다. 위에서 아래를 바라볼 때 색이 짙어야 눈에 띄지 않고 아래서 위를 바라볼 때는 밝아야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옆으로 눕게 되면 피부색의 분포도 바뀌어야 한다. 실제 넙치의 경우 위쪽을 향하는 면은 칙칙한 갈색이고 바닥에 깔리는 면은 밝은 색이다. 눈이 돌아간 것은 바닥쪽에 있어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넙치는 성장 과정에서 진화의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즉 알에서 막 깨어났을 때는 보통 물고기처럼 세로로 서 있고 눈도 양쪽에 박혀 있지만 자라면서 한쪽 안구의 골격이 녹아 내리면서 눈이 돌아가고 좌우 피부색이 달라지면서 옆으로 눕게 된다. 다만 눈이 돌아가는 방향이 오른쪽이냐 왼쪽이냐는 종에 따라 다르다.

그렇다고 넙치처럼 눈이 돌아가는 게 바닥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유일한 전략은 아니다. 몸의 좌우대칭은 그대로 유지하되 위아래가 납작해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런 길을 간 대표적인 물고기가 가오리다.

달팽이나 소라같은 연체동물도 비대칭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즉 몸을 감싸고 있는 껍질의 나선방향이 시계방향인 것도 있고 시계반대방향인 것도 있다. 한편 껍질의 나선방향은 종이 분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신슈우대 생물학과 타카히로 아사미 교수팀은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껍질을 가진 달팽이에서 시계반대방향의 껍질을 갖는 돌연변이체가 태어날 경우 자라서 제대로 짝짓기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짝짓기를 하려면 생식기가 서로 맞물려야 하는데, 껍질의 방향이 서로 다를 경우 자세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연변이체끼리 만나면 새끼를 낳을 수 있고 그 결과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 실제로 유하들라 속(屬)에 속하는 20종의 달팽이 가운데 4종이 시계반대방향의 껍질을 갖고 있다.

신체의 비대칭은 조류에서도 발견된다. 솔잣새는 영문명 ‘crossbill’에서 알 수 있듯이 위아래 부리가 서로 어긋나 있다. 사람으로 치면 덧니가 난 것처럼 보기에도 안 좋은 이런 형태를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좀더 효율적으로 먹이를 먹기 위해서다. 보통의 부리를 갖는 새는 솔방울 껍질을 뜯어내고 나서 안의 씨앗을 부리로 집어먹는다. 반면 솔잣새의 경우 껍질 틈 사이에 부리를 박고 나사처럼 돌려 속으로 밀어 넣어 열매를 먹는다. 솔잣새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소나무나 잣나무의 씨앗을 먹는데는 이 방법이 더 쉽다.

그렇다면 부리가 어긋나는데 일정한 방향이 있을까. 유럽에 분포하는 솔잣새는 모두 위쪽 부리가 오른쪽으로 휘어져 있다. 반면 북아메리카에 사는 솔잣새는 윗부리가 왼쪽으로 휘어져있다. 즉 부리가 어긋난 방향은 진화의 과정에서 우연히 택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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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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