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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중심의 컴퓨터계에 도전

새로운 컴퓨터 운용체계, TRON

컴퓨터사용자에게 보다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고자 하는 TRON 구상이 일본의 한 학자에 의해 제기돼, 돌풍을 일으킬 것 같다.

컴퓨터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매우 신선하고 또한 돌풍일 가능성이 있는 주목할만한 바람이다.
자동차의 세계는 운전면허만 따면 프레스토 프라이드 르망 콩고드 등 종류를 가릴 것 없이 몰고 다닐 수 있다.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이용방법이 이미 확립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컴퓨터의 세계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범용컴퓨터는 말할 것 없고 개인용컴퓨터조차도 '애플'이니 'IBM호환기종'이니 하며 서로를 구분한다. 더군다나 여러대의 컴퓨터를 묶는 작업을 할 때는 더욱 난감하다. 서로 대화가 전혀 불가능하다. 이를 서로 호환성이 없다고 표현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컴퓨터를 자동차 비디오 등 일반 공산품과 같이 호환성을 갖추고 운용하고 싶다는 발상에서 TRON(The Real tme Operating-system Nucleus)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월트 디즈니'의 SF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트론'이 악한인 MCP를 물리치는 정의의 사자라면, 컴퓨터계의 TRON은 얽히고 설킨 컴퓨터계를 교통정리해주는 해결사정도는 될듯하다.

트론(TRON)은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우선 굳이 트론이라는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든 시스팀이 '하나의 체계'에 의해 통일돼 있다면 매우 편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직장에서 워드프로세서로 문서를 작성한 K씨는, 다른 회사의 직원들과 전자메일로 통신하고 일을 마쳤다. 바로 화면에다 '오늘 일과 끝'을 쳐넣는다. 그러면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컴퓨터는 엘리베이터를 23층에 자동 대기시킨다. K씨가 들어오면 엘리베이터의 컴퓨터는 자동적으로 23층의 모든 사무용기기를 잠그라는(lock)는 명령을 내리며 불필요한 전등을 소등시킨다. K씨는 집에 도착하여 낮에 회사에서 팩시밀리로 예약녹화한 '발칸' 발레 VTR을 감상한다.

트론의 세계는 개인용컴퓨터 에어컨 VTR 등 마이크로프로세서로 구성된 모든 전자기기를 통일된 조작방법을 통해 작동시킨다. 즉 기계와 기계, 기계와 인간의 통신방법을 하나의 체계로 통일시키는 것이다.

「리얼타임」의 의미

트론의 개념에서 핵심적인 것 중의 하나가 '리얼타임'(real-time)이라는 용어이다. 기차표 판매를 예로 들어보자. 10월 1일 9시 30분발 서울→부산 새마을호 표를 판매한다고 할 때 판매처는 서울역 영등포역 및 대전 대구 등이 될 것이다. 서울역에서 좌석을 지정한 사람의 데이타가 곧바로 철도청의 중앙컴퓨터에서 처리되지 못한다면 영등포역에서 표를 산 사람과 중복될 가능성이 많다. 표를 파는 어느 지역이든지 그시간 그시간 좌석의 예매상황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혼란이 없이 표판매가 가능한 것이다. 리얼타임, 실시간처리가 불가능하다면 컴퓨터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좀더 색다른 예를 들어보자. 자동판매기 앞에서 동전을 넣고 커피를 뽑는 경우, 5분이 지나서 응답한다면 이 자동판매기는 네트워크화 된 상황이 아니더라도 쓸모없는 기계가 될 것이다. 여기서 응답시간은 짧을수록 좋고 1~3초 동안에 반응해야 리얼타임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트론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강조되어야 할 부분은 OS(Operating System)라는 개념이다. OS가 우리나라에서 쓰일 때는 초기에는 '운영체계'라고 하다가 요즘은 '운용(運用)체계'라 번역해 사용한다.

OS에 대해 컴퓨터 초보자들은 OS가 하드웨어인가 소프트웨어인가라는 의문을 갖는다. 트론이 분명 OS라는 표현을 썼으므로 이 문제를 간략하게나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트론이나 OS는 컴퓨터를 지칭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컴퓨터는 많은 일을 처리한다.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통해 문서도 작성하고 데이타베이스 프로그램을 통해 자료관리를 충실하게 하고, 손쉽게 검색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과학계산용 프로그램으로 복잡하고 난해한 데이타를 단숨에 처리한다.

이것들은 모두 다른 소프트웨어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들 사이에도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 예를들면 결과를 인쇄하라는 명령은 모두 공통이다. 이런 부분들을 모아놓은 것이 OS이다.

OS가 잘 만들어지면 각 프로그램이 감당하는 부분은 자연적으로 적어진다. 이처럼 사용하기 편리한 OS, 또한 모든 컴퓨터에 공통으로 활용될 수 있는 OS야말로 트론의 목표이자, 컴퓨터제작자 및 사용자의 희망이다. 가능한 한 공통된 부분을 많이 하고 현존하는 OS들간의 차이를 극복하자는 의미이다.

MS-DOS나 UNIX, CP/M 등의 OS와 트론은 어떻게 다른가. 간단히 표현하여 기존의 OS는 프로그래머를 포함한 컴퓨터 전문가들을 위한 OS라면 트론은 평범한 사람을 대상으로한 OS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트론 주창자들은 입을 모은다.

탁상공론은 아닌가

트론의 제창자는 동경대 이학부 정보과학과 교수인 '이따무라 겐'이다. 1984년 3월 트론구상을 발표한 이후, 일본만이 아닌 세계의 컴퓨터계에서 트론을 둘러싼 대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훌륭한 아이디어' '21세기의 혁신적인 테크놀로지'라고 칭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자의 탁상공론' '기존의 소프트웨어를 무시한…' 등으로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일본에서는 '5세대컴퓨터'에 이어서 또한번 컴퓨터계가 흥분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1980년초, 일본전자공학진흥회의 마이크로컴퓨터 기술위원회가 마이크로컴퓨터와 개인용컴퓨터의 현황과 소비자의 요구에 대한 시장조사를 3년에 걸쳐 시행했다. 이 조사가 시작된 80년 9월에는 일본전기가 8비트 PC8001을 시판한 이후, 3년간 25만대를 팔아서 미국의 애플Ⅱ, TRS80과 나란히 PC초기 3대 히트기종이 되어 있었다. 1981년에는 IBM이 16비트기종인 IBM PC를 시판하고, 82년에는 일본전기도 16비트기종인 PC9801을 시판하는 등 PC시장의 중심이 오락용에서 업무용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 조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마이크로컴퓨터위원회 OS분과회의 책임을 맡고 있던 이따무라였다. 그가 중심이 되어 1983년에 정리한 보고서에는, 마이크로컴퓨터 개발에 관한 비전이 제시되었고, 그것을 구체화한 것으로 84년에 90년대의 개인용컴퓨터의 형태가 제시되었다. 이것을 받아서 발족한 것이 트론 프로젝트였다.
 

트론칩도 일종의 VLSI


컴퓨터 대중화시대를 맞아

트론 프로젝트는 몇가지 분야로 나뉜다. 이유는 일에 따라, 그것이 어마어마한 데이타를 계산해내는 과학계산에 관련된 일이든 아니면 문자나 도형을 처리하는 개인적인 일이든, 요구되는 스피드나 내용이 너무 차이가 많아, 이를 같은 OS로 대체한다는 것은 실용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트론의 주창자들은 4종류로 분류하고 이를 총괄하는 트론을 핵심에 두고 있다. 4종류 트론을 보통 ICBM이라 부른다.

그 중에서도 개인용컴퓨터를 대상으로 하는 B 트론(Business TRON)부터 살펴보자. 이것의 최대 특징은 PC를 조작하는 환경을 표준화하는 것이다. PC에서의 최대 문제점은 조작법이 통일되지 않아 PC를 대중에게 가까이 접근 못시킨다고 말할 정도이다.

B트론의 목표는 자동차와 같이 조작법을 통일시키는 것으로, 그 결과 누구나 컴퓨터를 쉽게 취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동차도 과거에는 조작법이 달랐다. 1925년에 자동차의 대중화시대를 열었던 T형포드의 가속기는 핸들 옆에 지렛대형으로 붙어 있었고, 그보다 10년 후에 탄생한 자동차도 지금과는 달랐다. 가속기와 브레이크 페달의 위치가 제각기였던 것이다.

오늘날 자동차가 보편화된 것은 차의 성능향상에도 있지만 조작방법이 통일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컴퓨터는 조작방법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데이타의 축적법이나 사용법, 프린터 등의 주변기기나 다른 컴퓨터와의 연결법도 가지각색이다. 이같은 현상은 새로운 기계가 처음 사용되어지는 시기에는 어쩔수 없는 것으로, 서서히 개선되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컴퓨터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그 발전속도는 다른 기계에 비할 바가 아니다.

PC에 있어서의 트론은 '인간 상대의 운용체계(OS)'라 부른다. 이처럼 사람을 상대로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아주 흥미있는 제안들이 들어 있다. 그중의 하나는 치기 쉬운 키보드. 현재의 키보드는 인체공학적으로 별로 좋을 것이 없다는 보고가 자주 나와 컴퓨터 종사자들을 당황시키고 있다. 실제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키보드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손의 크기만 해도 크고 작은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러나 키보드는 천편일률적으로 '몸을 옷에 맞추라'는 군사문화를 은연중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다.
B트론에서 구상하고 있는 흥미있는 발상은 '전자펜'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글씨 쓰는 것과 동시에 입력되는 영역을 만들고 자유자재로 현재의 습관대로 입력시키는 획기적인 발상이다.

키보드의 예를 들었지만 B트론의 본질적인 내용은 아니다. 아직도 진행중이지만 문서관리의 혁신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밖에도 B트론은 미디어로서의 기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전자메일이 주요 부분이다. B트론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칩을 내장해 사무실과 집의 모든 전자기기를 연결해 쓸 수 있다. 앞에서 잠깐 예를 든 'TRON의 세계'는 바로 B트론으로 실현된다.

과연 B트론은 예정된 바와 같이 올해안에 모습을 선보일 수 있을까?

성능 향상이 목표

B트론이 개인용컴퓨터의 세계를 통일시킨다면 로봇이나 에어콘 등의 기계에 내장되어 그 기계를 콘트롤하는 일을 하는 것이 I트론(Industrial TRON)이다.

I트론의 목표는 한마디로 표현해 '성능'이다. 고속으로 수많은 기계를 작동시키고 기계의 응답시간을 철저히 단축시켜 성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I트론은 가장 먼저 착수됐으며 현재 활발히 부분별로 개발이 진행중이다.

I트론 프로젝트에도 B트론과 연결을 시도하는 부분이 있다. 일본 고유의 특성이 산업용 기계보다는 생활용 전자기기가 워낙 발달되어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생활과 관련된 공업제품에 I트론을 실현시키고 있다.

모든 전자제품과 자동차 등에는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내장돼 있다. 그러나 지금의 프로세서들은 내장된 기계만 제어한다. 그렇지만 I 트론은 다른기계와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최적제어를 할 수 있다.

예를들면 방에는 조명기기나 TV 에어콘 등 많은 전자기기가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모든 것들을 한개 한개 따로따로 제어해야 하는 것이 현실정이다. 그러나 트론하우스에서는 제어기는 한개면 족하다. 예를들어 TV를 켜면 TV를 보는데에 적합한 밝기를 자동으로 제어해 주기 때문이다.

대형컴퓨터용 OS로는 C트론(Central TRON)이 있다. B트론이나 I트론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그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정보처리르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위한 대형컴퓨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OS도 무시해선 안된다. C트론은 전자교환기와 같은 통신네트워크 센터로서의 역할을 한다. I,C,B를 총괄하는 M트론(Macro TRON)도 있다.

트론 프로젝트에서도 핵심적인 것이 32비트의 VLSI(초대규모집적회로) 마이크로프로세서이다. 이를 보통 '트론 칩'이라 부른다. 트론칩은 풍부한 명령세트를 갖는다. 또한 명령을 고속으로 콤팩트하게 실현하고 있다. 트론칩이 완성되면 트론 세계하에서의 모든 컴퓨터는 고속으로 돌아간다.

87년부터 주목받기 시작

트론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작년 가을 교육용 PC의 주도권 싸움이 계기가 되었다. 일본 16비트 PC시장에서 90%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점하고 있던 일본전기(NEC)가 그 당시 PC OS의 표준으로 돼있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MS-DOS를 권장할 것을 제시한 것에 대해, 마쓰시타전기를 포함한 11개사가 B트론을 교육용 PC의 표준으로 채용할 것을 주장, 양쪽이 팽팽하게 맞서게 되었던 것이다.

B트론에 대한 혹독한 비판, 즉 B트론으로 작동하는 응용소프트웨어가 없기 때문에 MS-DOS나 OS/2 등이 주류인 PC의 OS세계에서 '사막에 떨구어진 한떨기 장미꽃' 이상이 아니라는 주장과 이미 매킨토시의 세계에서 실현된 것의 표절이라는 헐뜯음을 극복하고 B트론은 교육용PC의 표준으로 전격 채택되었다.

사용하기 쉬운 소비자환경, 지적소유권의 장벽이 심한 컴퓨터계에서 과감한 개방적 아키텍쳐, 트론칩을 통한 통일적인 체계 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로소 컴퓨토피아의 청사진을 펼쳐 보인 것이다.

트론의 세계가 장미빛만은 아니다. 기존 소프트웨어와의 호환성이 없기 때문이다. MS-DOS측은 말한다. "트론이 시민권을 얻을 수 있을지는 세계의 소프트하우스들이 응용소프트웨어를 얼마만큼 개발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전혀 없다. 트론이 성공하게 된다면 OS/2나 UNIX가 실패하게 될 경우 뿐이다"

일본 내에서도 트론 키보드에 대한 비판이 강하다. 그렇지만 트론의 파문은 크다. 트론이 정말 세계적인 것이 될까는 좀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IBM이나 DEC 인텔 모토롤라 등 미국세가 계속 주도해온 컴퓨터 아키텍쳐의 세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말을 다루는데 있어 좀더 효율이 좋은 컴퓨터를 원한다면 이제는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의 표준기종을 제안해야지는 않을까. 언제나 미국것에만 맞추다가 하루 아침에 일본 것에 맞추어야 하는 비극은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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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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