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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멀수록 강해지는 이상한 힘 규명

물리학상 그로스∙폴리처∙윌첵

 

현재 카블리 이론물리 연구소(KITP) 소장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그로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까지 30년이나 걸렸습니다. 그간 매년 상을 기대하진 않았나요?” 지난 10월 5일 스웨덴 왕립과학원이 위치한 스톡홀름에서 미국의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로 한 통의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데이비드 그로스 교수(63)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그로스 교수와 함께 데이비드 폴리처(55, 캘리포니아공대 교수), 프랭크 윌첵(53, 매사추세츠공대 교수)이 올해의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의 영예를 안았다. 왕립과학원은 1973년 이들이 최초로 강력(strong force)의 점근자유성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강력의 점근자유성은 무엇이고, 30년전 연구가 이제서야 인정된 이유는 무엇일까.

쿼크가 멀어지면 힘은 강해진다
 

입자의 구성을 나타내는 표준 모델.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뤄져 있다. 원자는 다시 핵과 전자로 나뉜다. 핵은 다시 중성자(neutron)와 양성자(proton) 그리고 이 둘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중간자(meson)로 구성된다. 중성자, 양성자, 중간자는 다시 쿼크(quark)와 글루온(gluon)으로 나뉜다.

이처럼 물질을 이루는 최소단위를 찾는 것은 물리학자들의 오랜 염원이었다. 최소단위를 찾다보면 이들이 어떤 힘으로 결합돼 원자나 분자 같은 미시세계를 형성하고, 또 원자와 분자가 어떻게 결합돼 지구나 우주 같은 거시세계가 탄생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질의 최소단위를 찾고, 이들을 묶는 기본 힘에 대한 이론을 찾아내는 것은 물리학자들의 꿈이다.

그렇다면 물질의 최소단위는 무엇일까? 쿼크다. 쿼크는 1964년 미국의 물리학자 머레이 겔만이 최초로 그 존재를 주장했고, 겔만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6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렇다면 쿼크와 글루온을 중성자나 양성자, 중간자로 결합시키는 힘은 무엇일까? 바로 강력이다. 그렇다면 물리학자들의 임무는 끝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강력의 성질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계의 모든 현상은 4가지 힘의 상호작용으로 기술된다. 중력, 전자기력, 약력(weak force), 강력이 그것이다. 사과가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중력 때문이고, 전자가 원자핵을 중심으로 일정한 궤도를 유지하는 것은 전자기력 때문이다. 약력으로 인해 방사능과 핵분열 현상이 생긴다.

1970년대 초 강력을 제외한 나머지 3가지 힘에 대한 기본 이론은 정립돼 있었다. 하지만 강력을 설명하는 이론을 찾기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처럼 어려웠다. 왜냐하면 강력이 3가지 힘과는 다른 특이한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중력이나 전자기력, 약력은 모두 입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 약해지고 가까우면 강해진다. 반면 강력은 말 그대로 입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도 강한 힘이 계속 유지되고, 거리가 가까우면 힘이 약해진다. 이 때문에 중성자와 양성자를 이루는 쿼크들을 떼어내려고 해도 쿼크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힘이 강해져 쿼크들을 떼어내기 어렵다. 마치 감옥에 갖히듯 쿼크들이 중성자나 양성자 안에 구속되는 것이다. 이것이 강력의 점근자유성이다.
 

쿼크에도 6가지 종류가 있다. 이 중 톱 쿼크는 미 페르미연구소의 입자검출기 중 하나인 CDF에서 발견됐다.


실험으로 검증하는데 30년 걸려

1973년 31살의 그로스는 미 프린스턴대 교수였다. 윌첵은 그로스의 대학원생으로, 둘은 강력의 점근자유성을 보이는 이론을 찾기 위해 연구 중이었다. 하버드대 대학원생이었던 폴리처 역시 이들과 독립적으로 동일한 문제에 심취해 있었다.

그 해 여름 이들은 강력의 점근자유성을 보이는 이론이 딱 하나 있음을 동시에 밝혀냈고, 이를 물리학 저널 ‘피지컬 리뷰 레터스’ 에 실었다. 이들이 찾아낸 해답은 비아벨리안 게이지 이론(Non-abelian gauge theory)으로 불리는 것이었다.

폴리처의 경우 당시 양자장론의 대가인 시드니 콜만 교수의 제자였는데, 연구 중 기존의 이론들이 모두 점근자유성을 가지지 않는데 유독 이 이론만 점근자유성을 가져 처음에는 밤잠을 자지 못하고 고민했다고 한다. 반면 그로스와 윌첵은 점근자유성을 가지는 이론을 꾸준히 찾고 있었고, 그 이론의 물리적 중요성을 깊이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발견하자마자 일체의 망설임이나 고민 없이 즉시 논문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이들이 1973년 발표한 2편의 논문은 당시 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강력을 설명하는 이론이 드디어 밝혀졌기 때문이다. 폴리처는 논문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바로 캘리포니아공대 교수로 부임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들의 수상이 30년이나 ‘미뤄진’ 까닭은 뭘까.

사실 30년이란 시간은 이들의 이론이 실험적으로 검증되는 기간이었다. 이들의 발견이 상당히 흥미롭고 매우 그럴듯한 내용이었지만 여전히 하나의 ‘이론’ 에 불과했다.

당사자인 그로스마저 수상 직후 노벨상기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가 ‘이것은 명백히 사실이다’ 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실험 증거를 가지는데 3년이나 걸렸다”며 “이론가는 틀릴 수 있다. 오직 자연만이 항상 참이다”고 밝혔다. 완벽한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이론과 실험의 상호보완이 필수적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들의 이론은 이후 실험으로 검증되면서 양자색소역학(QCD, Quantum Chromodynamics)으로 발전했다. 전자기력에 2종류의 (+)와 (-) 전하가 있듯이 쿼크에는 3가지의 값을 갖는 색소전하가 있으며 이에 따라 힘이 결정된다는 이론이 QCD다. 색소역학이란 이름은 색소전하가 빛의 3원색과 비슷한 성질을 가졌다고 해서 붙여졌다.

현재 QCD는 강력의 기초 이론으로서 입자의 표준 모델(Standard Model)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에는 중성자, 양성자, 중간자의 질량을 컴퓨터로 계산한 값이 실험치와 비교해 5%의 오차범위 안에서 일치할 정도로 탁월한 연구 성과가 나왔다.

또 이들의 연구로 인해 정립된 QCD는 전자기력, 약력의 이론과 자연스럽게 결합돼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종합한 통일장이론으로 발전됐다. 중력은 아직 통일장이론에 합류되지 못하고 있지만 현재 중력을 포함한 대통일장이론을 완성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약력, 전자기력, 강력을 종합한 통일장이론의 정립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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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원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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