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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냄새 맡는 후각 유전자 찾아내

생리의학상 액설·벅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을 보고 ‘개 코’ 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개가 사람보다 후각이 예민하기 때문이다. 개는 수십만 -수백만가지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동물은 후각이 발달했는데 이는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냄새를 잘 맡아야만 먹이를 구할 수 있고, 짝짓기를 하는데도 유리하며, 위험 상황에서 탈출하는데도 필요하다.

잊혀진 감각에 주어진 노벨상
 

9년만에 여자과학자로서 노벨과학상을 받은 린다 벅.


그렇다면 후각이 인간에게는 어떤 역할을 할까. 남녀가 사랑을 할 때 향기로운 냄새가 있다면 금상첨화며, 상한 음식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 식중독을 예방할 수 있다.

혀로는 단맛 쓴맛 신맛 짠맛만 느낄 뿐이며 우리는 냄새를 통해 다른 다양한 맛을 느끼는 것이다. 맛을 잘 느끼지 못해 병원에 오는 사람들 가운데 90%는 후각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올해의 노벨생리의학상은 이처럼 중요하면서도 과학계에서는 연구가 뒤쳐져 ‘잊혀진 감각’으로 불렸던 후각 메커니즘을 연구한 공로로 미 컬럼비아대 리차드 액설 교수(58)와 프레드 허치슨 암연구센터 린다 벅 연구원(57)이 받았다.

인간이 갖고 있는 오감 중에서 시각, 청각, 촉각에 대한 연구는 그 동안 많이 이뤄졌으나, 후각과 미각에 대한 연구는 부진했다. 시각은 눈의 망막에 있는 간상세포와 추상세포가 담당하며, 청각은 달팽이관속의 유모세포가 맡는다. 촉각은 피부의 감각신경을 통해 느낀다. 그렇다면 코에는 과연 무엇이 있길래 우리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걸까.

코가 냄새를 맡으려면 수많은 냄새 분자와 결합할 수용체(단백질)가 코 안에 있어야 한다. 액설 교수와 벅 연구원은 1991년 유전자 1천여개로 구성된 후각 유전자군을 발견했다고 생명과학 학술지 ‘셀’ 에 발표했다. 이들이 발견한 후각 유전자는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후각 수용체를 만든다. 이론상으로 1천가지 종류의 후각 수용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두 과학자는 1개의 수용체가 2, 3개의 냄새 분자를 담당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는 인간이 1만가지나 되는 냄새를 맡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을 이해하는 데 토대가 될 수 있다.

후각은 인간이 갖고 있는 약 3만개의 전체 유전자 중 3%에 해당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후각 유전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작동하지 않는 유전자’ 라고 한다. 인간이 두 발로 서게 되면서 후각보다는 시각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후각이 퇴화했기 때문이다.

또 사람마다 냄새를 잘 맡는 정도가 틀린데 이것은 후각 유전자가 얼마나 활발하게 활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후각 유전자 가운데 50개 가량은 개인이나 민족에 따라 활성이 매우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유전자가 잠에서 깨어나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을 ‘발현’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유전자 가운데 후각 유전자처럼 사람마다 발현 정도가 다른 것도 드물다. 그러나 훈련을 통해 냄새를 구별하는 능력을 몇 배로 높일 수 있다고 하니 ‘유전자 발현’도 훈련으로 조절할 수 있는 모양이다.

두 과학자는 냄새를 맡는 과정도 자세하게 밝혔다. 후각 수용체는 코의 윗부분에 있는 후각상피세포에 있다. 사람이 숨을 쉴 때 갖가지 냄새 분자가 코 속으로 들어오고 냄새 분자는 자신과 맞는 후각 수용체와 만나 결합한다. 열쇠와 자물쇠가 맞물리듯 독특한 냄새와 수용체가 결합하는 것이다. 후각 수용체는 냄새 분자와 결합하면 뇌의 아랫부분에 있는 후각구로 신경 신호를 보내고 이곳에서 다시 뇌의 앞과 옆에 있는 후각 영역으로 신호를 전달해 뇌가 냄새를 인식하게 된다.
 

후각 유전자를 밝힌 리차드 액설.


후각장애 유전자 치료 기틀 마련

시각과 후각을 비교해 보자. 우리는 수많은 색깔을 볼 수 있지만 실제로 시각 세포가 느낄 수 있는 색깔은 빛의 삼원색 즉 빨강, 파랑, 녹색이다. 시각 세포가 각 색깔에 들어 있는 3가지 빛을 감지하고 그 비율을 합성해 다른 색깔로 느끼는 것이다.

후각은 시각처럼 기본 냄새는 없다. 후각 유전자가 1천개나 되고 하나가 2, 3개의 냄새 분자를 담당한다고 해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냄새는 그 이상이다. 어떻게 인간은 1만가지의 냄새를 맡는 걸까.

많은 냄새 분자는 오직 1가지 수용체와 결합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레몬향의 주성분인 ‘시트랄’ 이라는 분자는 수십개의 후각 수용체와 결합한다. 뇌는 냄새 분자에 반응한 여러 수용체의 패턴을 인식해 ‘레몬향’ 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즉 A수용체는 90점, B수용체는 20점, C수용체는 45점 등으로 냄새 패턴이 생기면 뇌가 그에 맞는 냄새를 찾아내는 것이다.

후각 신호가 전달되는 과정을 ‘분자 수준’ 에서 살펴보자. 냄새 분자가 후각 수용체와 결합하면 후각특수단백질(G단백질)이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 단백질은 수용체에 붙어 있는데 냄새 분자가 이 단백질을 깨우는 일종의 스위치가 된다. 스위치가 켜지면 G단백질에서 작은 조각이 떨어져 나가고 이것이 세포 안에 있는 특수 효소(아데닐 사이클라제)를 자극한다. 이 효소가 세포 안에 cAMP라는 물질을 많이 만들면 세포막에 있는 특수 통로가 열려 이온들이 세포막 안팎으로 이동한다. 이 때문에 평소와는 다른 ‘전위차’가 생기고 이것이 마치 전기처럼 신경세포를 타고 뇌로 전달되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후각 이상이 생기며 생식기에도 문제가 생기는 ‘칼만 증후군’ 이라는 병이 있다. 이 병은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후각 유전자가 고장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청각이나 시각장애보다 후각장애를 치료하기가 어려웠으나, 액설 교수와 벅 연구원의 연구를 이용하면 새로운 치료의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다. 요즘 논의가 활발한 ‘유전자 치료’ 다. 후각장애가 있는 환자의 후각 유전자를 정밀 검사해 문제가 있거나 잠자고 있는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교체한다면 유전적인 후각장애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 치료가 현실로 나타나려면 아직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액설 교수는 미 존스홉킨스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벅 연구원은 텍사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엑설 교수는 1978년부터 컬럼비아 의대에서 교수로 있으며, 벅 연구원은 1980년대 초 컬럼비아의대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는데 이때 맺은 인연으로 후각 유전자를 함께 연구했다.

특히 액설 교수는 상금(약 16억원)을 자선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혀 돈에 연연하지 않는 과학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좋은 예일 것이다.

린다 벅도 199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크리스티안 누슬라인-볼하르트 이후 여성으로서 9년 만에 노벨 의학상을 받아 여성 과학자의 명예를 드높였다.

냄새를 맡는 메커니즘

냄새 분자가 자신과 맞는 후각 수용체에 달라붙으면 수용체는 이 신호를 후각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한다.
냄새 분자는 여러 후각 수용체와 결합하기도 하는데 이때 뇌는 여러 수용체에서 들어온 정보를 종합해 특정한 냄새 정보로 인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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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홍석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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