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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죽음의 입맞춤' 유비퀴틴 발견

화학상 시카노버∙허쉬코∙로즈

 

단백질이 분해되는 과정을 최초로 밝힌 업적으로 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어윈 로즈 박사
 

‘쓰레기 처리에 도대체 왜 돈을 쓰지?’

이스라엘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고 1970년경 미국에서 티로신아미노트랜스페라제라는 효소를 연구하던 아브람 허쉬코 박사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 효소가 분해될 때 세포 내 에너지원인 ATP가 소모되는 것이었다. 세포는 이 효소뿐 아니라 수명을 다한 단백질을 분해할 때 귀중한 에너지를 사용한다. 당시 허쉬코 박사는 이 호기심이 30여년 후 노벨화학상을 안겨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2004년 노벨화학상은 허쉬코 박사(67)를 비롯해 이스라엘의 아론 시카노버 박사(57), 미국의 어윈 로즈 박사(78)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지난 10월 6일 ‘세포 내에서 단백질이 분해되는 과정을 처음 밝힌 업적’ 을 선정 이유로 밝혔다.
 

단백질이 분해되는 과정을 최초로 밝힌 업적으로 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이스라엘의 아브람 허쉬코 박사(왼쪽), 아론 시카노버 박사(오른쪽).


키스 받은 단백질 산산조각 나

사실 이번 수상은 2000년 미국의 노벨의학상이라고 불리는 라스커의학상이 단백질 분해 연구에 주어진 이래 예견된 결과다. 단 라스커의학상에는 로즈 박사 대신 미국의 알렉스 바르샤브스키 박사가 포함됐다. 이들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단백질 생성에 관심을 갖던 시기에 반대로 단백질이 어떻게 소멸되는지를 연구한 선구자들이다.

DNA는 RNA를, RNA는 단백질을 만든다. 아미노산 여러개가 모여 이뤄진 단백질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세포 내 대부분의 기능을 담당한다.

인간이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듯 생성된 단백질도 언젠가는 소멸된다. 세포 내에는 수십만개의 서로 다른 단백질이 있고 각각 수명이 다르다. 어떤 것은 생성된지 5분 안에 사라지고, 어떤 것은 5일이 지나도 그대로 존재한다. 또 잘못 만들어진 단백질이나 기능을 수행하다 손상된 단백질은 신속히 분해된다. 사람마다 사인(死因)이 다르듯 단백질도 분해되는 이유가 매우 다양한데, 아직도 그 중 극히 일부분만이 알려져 있다.

노벨화학상 수상팀은 일단 분해가 결정된 단백질이 어떤 경로를 거쳐 죽음을 맞는지를 밝혀냈다. 분해될 단백질에는 ‘유비퀴틴’ (Ubiquitin)이라는 단백질이 가지를 치듯 여러개가 붙는다. 유비퀴틴이 붙은 단백질은 세포 내 쓰레기처리장인 ‘프로테아좀’ (Proteasome)이라는 소기관으로 들어가 아미노산 9-11개 크기의 펩티드 조각으로 잘게 잘린다. 결국 유비퀴틴이 단백질에 ‘죽음의 키스’ 를 하는 셈. 그런데 막상 유비퀴틴 자신은 분해되지 않고 다른 단백질을 분해할 때 재활용된다.

조각난 펩티드는 프로테아좀 밖으로 나와 펩티드 가수분해효소에 의해 아미노산으로 완전히 분해된다. 이 아미노산들은 단백질이 만들어질 때 재활용된다. 그렇다면 이 같은 과정이 ‘단백질 분해에 왜 ATP가 필요한가?’ 라는 의문과 어떻게 연결됐을까.

공동연구 위력 증명한 유비퀴틴

이스라엘로 귀국한 허쉬코 박사 연구실에 1977년 대학원생이 들어왔다. 이 학생이 바로 시카노버 박사. 이때부터 두 사람의 기나긴 인연이 시작된 셈이다. 이들의 연구 목표는 여전히 단백질 분해에 ATP가 필요한 이유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부터 간세포추출물을 사용해 연구했던 허쉬코 박사는 1977년 미 하버드대 알프레드 골드버그 박사에게 힌트를 얻어 적혈구추출물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세포 내 소기관인 리소좀 내에는 많은 단백질분해효소가 존재한다. 이들이 단백질을 분해할 때는 ATP가 필요없다는 사실이 당시 이미 알려져 있었다. 적혈구에는 리소좀이 없다. 따라서 적혈구추출물을 사용함으로써 ATP와 무관한 단백질 분해를 배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적혈구추출물에는 헤모글로빈이라는 훼방꾼이 있다. 연구팀은 적혈구추출물을 헤모글로빈이 포함된 부분(F-I)과 그렇지 않은 부분(F-Ⅱ)으로 나누고 ATP를 사용하는 단백질 분해가 일어나는지 실험했다. 그 결과 희한하게도 분리 전에는 일어났던 단백질 분해가 분리 후에는 양쪽 모두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F-Ⅱ에 F-I을 다시 섞고 ATP를 첨가했더니 ATP가 소모되면서 단백질 분해가 일어났다. 연구팀은 F-I에 단백질 분해에 필요한 물질이 있음을 확신했다. F-I에 열을 가해 헤모글로빈을 제거해도 이 가상의 물질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 물질을 ‘ATP의존 단백질분해인자’라고 이름붙이고 1978년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 논문이 연구팀에 노벨상을 안겨준 최초의 보고가 된 셈.

그 후 허쉬코 박사는 안식년을 활용해 시카노버 박사와 함께 미 필라델피아 소재 폭스 체이스 암연구소의 로즈 박사(현재는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 연구실로 가 단백질 분해 연구를 계속한다. 당시 로즈 박사 연구실에는 윌킨슨, 어번, 하스 박사가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유비퀴틴이라는 작은 단백질을 연구하고 있었다.

유비퀴틴은 1975년 당시 면역에 관여하는 단백질로 알려져 있었고 흉선에서 최초로 분리됐다. 과학자들이 흉선 이외에 어디에 이 단백질이 있는지 조사한 결과 놀랍게도 모든 조직에서 관찰됐다. 그래서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를 따서 ‘유비퀴틴’ 이라고 이름붙인 것. 그러나 유비퀴틴이 실제로는 면역작용과 관계가 없음이 밝혀지고 한동안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후 1977년 유비퀴틴이 DNA를 감싸고 있는 단백질인 히스톤에 가지를 치듯 연결된 상태로 다시 발견됐다. 히스톤에 붙는 유비퀴틴은 단백질 분해와는 무관하고 RNA를 만드는 과정과 관계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정확한 메커니즘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허쉬코 박사가 로즈 박사 연구실에 합류했을 때 3명의 박사후연구원이 연구하던 것이 바로 히스톤과 결합하고 있는 유비퀴틴이었다.

같은 연구실에서 서로 다른 주제를 연구하던 허쉬코 박사팀과 로즈 박사팀은 어느날 회의를 하던 중 두 팀이 다루고 있는 물질이 매우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허쉬코 박사팀의 ATP의존 단백질분해인자가 로즈 박사팀의 유비퀴틴과 같은 물질이었던 것이다! 분해될 단백질을 찾아 입을 맞추는 주인공이 바로 유비퀴틴이란 얘기.

예상치 못한 행운에 탄력을 받은 연구팀은 유비퀴틴이 단백질에 붙을 때 E1, E2, E3라는 효소들이 차례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뿐만 아니라 유비퀴틴이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E1에 결합할 때 ATP가 사용된다는 사실도 밝혀내기에 이른다. ATP가 쓰이는 단백질 분해 과정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당시 미 매사추세츠공대에 있던 바르샤브스키 박사(현재는 캘리포니아공대)는 이 같은 일련의 반응들이 실제로 세포 내에서 일어남을 증명했다.

이렇듯 올해의 노벨화학상 수상은 과학적 호기심과 꾸준한 도전정신을 밑거름으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결과였다. 이번 수상에 관련된 논문은 수상자들이 1978-1983년에 발표한 6편으로 집약된다. 2000년까지 유비퀴틴 관련 논문은 5천여편이 발표됐고, 2004년 10월 현재 1만편 이상으로 늘어났다. 올해의 노벨화학상으로 25년 넘게 계속돼온 단백질 분해 연구뿐만 아니라 유비퀴틴 관련 연구가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단백질 분해 연구는 이제 시작
 

단백질 분해는 세포의 노화, 암이나 치매 같은 질병 등 다양한 생명과학 연구와 관계가 깊다. 따라서 다른 연구를 하던 과학자가 자연스럽게 단백질 분해로 연구방향을 바꾸는 경우도 많다고.


그러나 단백질 생성 연구가 노벨상을 5번 받은 반면 단백질 분해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다. 아직까지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단백질 분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수많은 단백질 중 죽음의 키스를 받는 단백질을 누가 어떻게 선택하는가? E3 효소가 선택권을 갖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극히 일부분만 밝혀진 상태다. 또 죽음의 키스를 받은 단백질을 누가 어떻게 프로테아좀으로 운반하는가? 분해돼야 할 단백질이 죽기 싫다고 버티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세포 내에 단백질 쓰레기가 누적돼 치매 같은 퇴행성뇌질환, 암 등의 원인이 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수수께끼다.

만일 단백질이 예정보다 빨리 분해돼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예를 들어 암을 억제하는 단백질이 조기에 사라지면 암이 생긴다. 수많은 단백질이 분해될 시기가 누군가에 의해 조절돼야 하는 것이다. 또한 단백질 분해 과정이 생성 과정과 상호작용을 하는지도 미지수다. 지금까지는 교신이 있을 것이라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태.

국내에서도 2002년 단백질 분해 연구회가 조직돼 연구정보를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회원 중에는 원래 단백질 분해를 연구하던 과학자도 있지만 다른 분야를 연구하다가 단백질 분해 쪽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 과학자들이 훨씬 많다. 단백질 분해가 생명현상의 거의 모든 분야에 관여하고 있다는 증거다. 실제로 단백질 분해 과정은 세포의 노화와 죽음뿐만 아니라 암이나 면역체계 이상 같은 각종 질병의 치료와 신약개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세계적으로 프로테오믹스, 시스템생물학 같은 최신 연구기법을 도입해 단백질 분해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학기술부 지원하에 프런티어 프로테오믹스사업, 시스템생물학사업 등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좀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받아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우수한 연구결과들이 우리 과학자들 손에서 속출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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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유영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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