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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갑다 향고래야

고래 낙원 명성 되찾는 한반도

 

한반도 앞바다에서 75년만에 발견된 향고래. 암수 8마리가 한꺼번에 발견됐다.


지난 3월 31일 경북 포항 구룡포앞 10마일 해상. 거친 물결사이로 ‘푸우-’ 하는 소리와 함께 물기둥이 솟았다. 이어 서너개의 거대한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에서 거친 숨소리와 물기둥이 솟다가 다시 사라졌다. 갑작스런 상황에 본능적으로 준비태세를 취한 연구진 앞에 몸을 드러낸 것은 고래였다. 길이 10여m의 웅장한 몸체. 암수 8마리로 구성된 향고래 가족이었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탐경원도 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1930년대 이후 우리 바다에서 모습을 감춘지 75년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반도 바다는 한때는 고래의 낙원으로 불릴 만큼 수많은 고래들이 뛰놀았다. 이번에 발견된 향고래를 비롯해 30여종이 넘는 대형고래와 돌고래들이 이곳을 누볐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행된 고래 남획으로 대형고래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하지만 최근 잇따른 희귀 고래의 발견소식은 우리 바다가 다시 고래들의 보금자리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고래 생활 환경의 최적지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한국 귀신고래. 고래연구자들의 주요 추적 대상이다.


원래 고래는 6천만년전 육지에 살았던 사지가 멀쩡했던 포유동물이었다. 그러다 바다로 들어가 수중생활에 편리하도록 몸 형태와 기능을 바꾸고 몸집도 불렸다. 현재 지구상 바다와 강에는 모두 80여종의 고래가 살고 있다고 추정된다.

고래들은 보통 전세계 큰 바다를 활동무대로 하지만 종마다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다. 어떤 종은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만이나 강에, 어떤 종은 연안이나 큰 바다에서만 생활한다. 어떤 종은 깊은 바다에서, 또다른 종은 빙하 주변을 서식지로 삼는다. 물론 고래들이 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지 완벽히 알려진 것은 없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먹이가 많고 어족이 풍부한 ‘기름진’ 바다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대개 이런 조건들은 큰 해류 부근에 생겨난다.

한반도 연안에 대형고래들이 서식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같은 천혜의 환경 때문이다. 한반도 주변 바다는 남쪽에서 올라온 따뜻한 대마 난류와 북쪽에서 내려온 찬 한류가 섞이는 곳이다. 특히 난류 한류가 만나는 지점은 영양염의 순환이 활발해 어족자원이 풍부하다. 동해의 경우 평균 수심이 약 1.7km에 심해와 좁은 대륙붕, 그 사이 가파른 절벽으로 이뤄져 있는데 반해 서해는 수심 40m에 불과한 얕은 바다다. 남해 역시 아열대 기후인 동중국해와 접해있다. 한반도 바다에서 연안과 심해, 아열대와 아한대 고래가 발견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환경 요인에 기인한다.

게다가 대형고래는 주기적으로 큰 바다의 남과 북을 오가는 생활리듬을 갖고 있다. 겨울철에는 따뜻한 적도 부근에서 새끼를 낳고 지내다가 여름이 오면 좀더 위도가 높은 바다로 올라간다. 주로 큰 바다에서 먹이의 이동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지만 때에 따라 연안을 오가기도 한다.

멸종위기에 처한 귀신고래와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 겨울을 따뜻한 적도부근에서 지내다가 3-4월경 우리 바다로 다시 올라온다. 참고래도 여름철 오호츠크해와 동해북부에서 지내다 9월경 따뜻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성질이 있다. 이번에 발견된 향고래는 원래 북태평양 전체를 활동무대로 하기 때문에 우리 주변 해역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발견으로 정기적으로 한반도 연근해로 들어오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밖에 지리적 요인을 꼽을 수 있겠다. 동해와 서해는 북쪽이 땅에 막혀있어 고래가 올라왔다 되돌아 내려가는 최북단에 위치한다. 또 북태평양의 여러 회유지점 가운데 적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대형고래에게는 번식장과 육아장으로 최적지인 것이다.

고래의 낙원이었던 한반도 바다

사실 고래는 오래전부터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한반도에 살았던 조상들은 일찍부터 연비가 좋고 단열성이 뛰어난 고래기름과 육질을 과학적으로 활용해왔다.

한반도 바다의 고래와 선인들의 관계는 설화에 잘 나타난다. 연오랑과 세오녀에 관한 설화가 그런 예다. 어느날 함께 해조를 따던 연오랑과 세오녀 앞에 바위가 갑자기 나타난다. 두사람은 그 바위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데 도착한 곳이 바로 지금의 일본이었다. 얘깃속에 등장하는 바위가 필시 귀신고래의 등이라는 주장이다.

고래 얘기는 유적과 고서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약 3천여년전에 새겨진 것으로 알려진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에는 수많은 고래들이 등장한다. 이 암각화는 예술적 가치와 함께 고래의 분포, 포경업의 기원 등 당시 상황을 전해주는 귀중한 사료다. 또 삼국사기에는 바다에 고래가 많다하여 ‘경해(鯨海)’ 라 불렀다는 대목이 나온다. 원나라와 명나라도 한반도 바다를 경해로 불렀을 정도였다. 조선시대 사료 역시 고래를 ‘떠다니는 유조’ 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또 해안에 밀려온 고래를 백성들이 다시 바다로 밀어 넣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19세기 중엽 북태평양과 대서양에서 더 이상 고래잡이가 힘들어지자 서양 포경선들이 더 한반도 연해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한 기록이 일부 남아있다.

1848-1849년경 한반도 연안에서 조업한 한 미국 포경선의 포경일지는 “아주 많은 고래들이 보인다. 수많은 혹등고래와 대왕고래, 참고래, 긴수염고래가 사방팔방에서 뛰놀고 있다. 도저히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 일본 포경선의 항해일지도 “사방 30-40마일에 참고래들만 보인다. 배가 고래등에 실려 갈 정도” 라고 적고 있다. 당시 한반도 주변에 대형고래들이 많이 살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러일 전쟁 후 일본이 조선연안의 포경권을 러시아로부터 이어받아 해방 직전까지 수 천 마리의 많은 고래를 잡아 동해안 고래의 개체 수는 급감하게 된다. 이 때 일본이 우리나리 근해에서 잡은 고래의 수는 박구병 박사의 ‘한반도연해포경사’ 에 따르면 모두 6천5백78마리에 달하며 이중 5천1백14마리가 지금은 사라져버린 참고래이고 1천3백06마리는 귀신고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해방직후 상업적 고래잡이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풍부했던 북방긴수염고래, 참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 등 대형고래들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19세기 중반이후 거의 1세기 동안 진행된 고래잡이로 고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임에도 여전히 대형고래에 대한 무분별한 남획은 계속됐다. 기록에 따르면 해방직후 잡혀온 것만도 참고래 9백여마리, 귀신고래 32마리, 혹등고래 13마리에 이르렀다.

물론 대형고래가 이처럼 급격히 사라졌지만 중소형 고래들은 그때까지 포획 대상이 아니었다. 더이상 잡을 대형고래가 없어지자 밍크고래잡이가 대신 성행했다. 1986년 상업포경 중단조치 전까지 전세계적으로 1만4천마리 이상의 밍크고래가 잡혔다.

유전자 기술 이용한 고래 보존 노력
 

가장 좋은 고래 연구방법은 직접 바다에 나가 고래를 찾는 것이다.


최근 고래 개체수가 늘어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포경이 금지된뒤 번식을 통해 자연스레 개체수가 늘어났다. 일반적으로 대형고래는 10살 전후로 번식능력을 갖으며 2-3년에 한번 정도 출산한다. 이런 사실을 토대로 총 개체수 중 암컷의 비율과 번식 가능 개체수 비율을 감안하면 증가 속도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어떤 지역에 분포하는 고래의 개체수를 추정하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다. 한반도 연안 고래의 개체수를 추정만 한다고 하더라도 우선 좀더 넓은 해역, 즉 북서태평양 전역에 분포하는 고래 개체수까지 알아야 한다. 북태평양에 어떤 고래가 시기별로 어디에 서식하는지를 우선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바다 고래지만 서식지와 활동범위가 북태평양 전체이기 때문에 주변 국가간 협력은 중요하다.

고래의 개체수는 보통 눈으로 센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아가 눈이나 망원경으로 관측하는 목시조사가 가장 일반화된 방식이다. 첨단장비는 육지 면적의 7배나 되고 깊이만도 수십km인 바다에서 무용지물일 때가 많다. 오히려 고래가 숨을 쉬기 위해 주기적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눈으로 하는 조사가 더 유용한 편이다. 음파를 사용하는 방법도 혹등고래 등 일부 고래종만을 추적하는 데나 적합할 뿐 개체수 추정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

최근에는 유전자를 이용해 같은 무리의 계통을 찾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해양생물들은 대부분 무리를 이뤄 생활한다. 넓은 바다를 누비는 거대한 존재지만 고래 역시 일생을 함께 지내는 무리 생활을 한다. 연구자들은 이를 자원 보존과 관리에 기초가 되는 단위집단, 즉 계통군이라 부른다. 고래의 경우 서로 생활하는 장소에서 따라 형태나 색, 몸 안팎의 기생충, 몸속 오염 정도, 번식장소와 시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계통군을 조사하는 일은 바로 이런 무리들 간의 차이를 찾는 것이다. 특히 처한 환경과 먹이에 따라 그 특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유전자 식별에 의한 계통군을 분별하는 연구는 고래 연구의 최우선 과제다.
 

고래 연구에는 첨단연구장비가 활용된다. 하지만 여전히 눈으로 직접 보는 연구방법이 가장 애용된다.


무분별 포획 막으려는 노력

원래 고래 연구는 해부학을 공부하는 의학자들이 처음 시작했다. 그러다 20세기초 지나친 남획으로 자원이 고갈될 것을 우려한 포경국들은 1930년대 고래 자원을 관리하기 위한 공조에 들어갔다. 1946년 국제포경규제협약이 체결된뒤 고래자원관리기구인 국제포경위원회(IWC)가 설립되면서 멸종위기에 처한 대형고래에 대한 집중적인 관리가 시작됐다. 고래 연구는 야생동물 연구에서 가장 오래된 분야다. 이 때문에 위원회가 채택하고 있는 보존 및 관리 방법은 최고의 과학적 지식에 근거하고 있다. 연안국이 직접 관리해온 소형고래의 경우에도 인접국 간 공조가 강조되고 있다.

고래류는 해양생태계의 중심에 있다. 자연증가량을 초과하는 만큼을 활용하고 나머지는 보존한다는 것이 IWC의 입장이다. 문제는 자원으로 활용하려면 앞서 바다에 고래가 얼마나 살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개체수 변화를 추정하는데 사용되는 계산상 근거들이 실제 생태환경과 얼마나 맞아 떨어지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IWC가 1986년 전세계 국가들에 상업적 포경을 잠정 중단하도록 요구한 것도 그러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IWC는 1994년 포경 대상 고래류에 대한 과학적 조사 방법과 불확실성을 고려한 새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고래잡이를 반대하는 나라와 단체까지 동참시켰기 때문이다.

1999년부터 국립수산과학원이 진행 중인 ‘한반도 고래자원 목시조사’ 는 신뢰도 높은 고래수 조사를 위한 사전조사란 의미를 띠고 있다. 북태평양 곳곳에 서식하는 밍크고래 가운데 한반도 연안에 분포한 밍크고래 정보를 수집하는 작업이다. 한반도 연안의 고래수는 아마도 이번 조사가 완전히 끝나봐야 알수 있을 것이다.

2004년도 IWC과학위원회 연례회의에서는 1999년부터 수행해온 이 조사자료와 각종 유전정보, 주변국 조사자료들을 모두 모아 한반도 주변 밍크고래에 대한 첫 자원평가를 수행할 예정이다. 이번 평가는 그간의 조사결과에 대한 신뢰도를 따지게 될 예정이다. 물론 조사의 신뢰성이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면 추가적인 조사가 뒤따라야만 한다.

고래 보존·관리는 곧 해양생태계 보호

지구상 최대 크기로 대표되는 대형고래의 무분별한 남획은 한반도 자연사에 뼈저린 상처를 남겼다. 최근 들어 무분별한 해양 개발로 집을 잃거나 그물에 걸려들어 목숨을 잃은 고래수가 부쩍 늘어났다. 심지어는 지나가는 배에 치어 목숨을 잃거나 수중음파 교란으로 목숨을 위협받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장난기 많고 힘센 고래들에 의해 어장이 교란되고 어구가 부서지는 사례도 크게 늘었다. 인간과 고래 사이에 마찰이 그만큼 예전보다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고래는 조만간 새로운 공존 방안을 찾게 될 것이다.

고래를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은 고래라는 한 동물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 고래의 바다를 살리는 일은 건강한 바다 생태계 회복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풍요로운 바다는 인류에게 경제적인 가치뿐 아니라 정신적 위안까지 가져다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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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장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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