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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제주 올레길 탐사…. 최근 자연 그대로를 즐기는 친환경 여행, 즉 에코투어 여행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체계적인 계획이나 제도 없이 상업성만 내세운 에코투어는 오히려 자연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염려의 목소리도 있다. 국내에는 아직까지 에코투어에 대한 법제는 물론, 정책을 만들고 진행하는 협회조차 없다. 오래전부터 에코투어를 개발해온 다른 나라의 노하우를 배우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1998년 환경성이 주최가 돼 ‘에코투어리즘 협회(JES)’를 설립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인 에코투어를 개발해왔다. 특히 50개가 넘는 섬으로 이뤄진 오키나와 현은 천혜의 자연 자원을 바탕으로 다양한 에코투어 프로그램을 개발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에코투어 여행지로 거듭났다. 오키나와 현 중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손꼽히는 곳이 이리오모테 섬이다. 한국과 역사적으로 특별한 인연이 있기도 한 이리오모테 섬을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11월 13일 기자가 직접 찾았다. 일본 에코투어리즘협회(JES) 이리오모테 지부에서 적극적으로 취재에 도움을 줬다.

자동차 대신 카누에 올라타다


“여기서부터는 차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7시 30분,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에코투어. 이리오모테 섬에 하나밖에 없는 일주도로를 5분쯤 달렸을까. 거대한 양치식물이 군락을 이룬 정글 앞에서 에코투어 신청자 4명을 태운 고무라 씨의 지프가 멈췄다. 고무라 씨는 에코투어 여행사인 ‘크로스 리버’의 에코투어 전문 가이드. 다부진 몸매를 가진 40대의 베테랑 가이드다.

“에코투어는 이동수단으로 휘발유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체력이 연료인 셈이지요, 허허.”

섬의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얘기지만 고무라 씨의 말을 들으니 오늘 숙소로 무사히 돌아갈 수는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이리오모테 섬은 전체의 90%가 아열대 식물이 자라는 산림이라 지형이 험난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침부터 후드득 빗방울까지 떨어진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다. 얏! 힘차게 기합을 넣고 고무라 씨에게 방수 유니폼과 트래킹 전용신발, 그리고 강을 따라 이동할 때 필요한 카누 노 한 짝을 건네받았다.

오늘 에코투어 일정은 이리오모테 섬을 찾는 여행객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체험하는 코스다. 4명에서 6명이 팀을 이뤄 가이드와 함께 섬의 북동부 해안에 있는 우에하라 항에서 출발해 우라우치 강의 지류인 나카라 강을 따라 카누를 타고 섬 내륙으로 들어간 뒤, 섬 중앙의 피나이사라 폭포 일대를 트레킹하고, 다시 카누를 타고 우에하라 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이리오모테 섬은 면적이 289k㎡로 오키나와 일대에서도 두 번째로 크기 때문에 간단해 보이지만 하루 꼬박 걸리는 만만찮은 코스다.

고무라 씨로부터 받은 장비를 들고 울창한 숲 속을 10분쯤 걸었을까. 형형색색의 카누가 줄지어 서 있는 강기슭이 나왔다. 여기서부터는 여행자가 직접 카누를 타고 노를 저어야 한다. 카누는 길이 1.5m, 폭 0.5m 정도로 굉장히 작다. 카누를 타기 전 고무라 씨가 노 젓는 요령과 위급상황에서의 대처요령을 지겨울 정도로 반복해서 가르쳐줬다.

드디어 출발! 생전 처음 타는 카누지만 조작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카누가 워낙 작아서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쭉쭉 앞으로 잘 나간다. 처음에는 카누가 뒤집히면 어쩌나 걱정도 했지만 나카라 강의 수심이 워낙 얕은 데다 물도 따뜻해서 나중엔 일부러 물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이렇게 물의 온도가 따뜻한 이유는 쿠로시오 난류의 영향이다. 나카라 강은 북태평양 서부와 일본 열도 남쪽을 따라 흐르는 이 해류의 길목에 있어 해수와 담수가 섞여 흐른다. 강의 수온은 연평균 25.3℃로 겨울에도 20℃를 밑돌지 않고, 다양한 열대어류와 해양생물이 살고 있다. 또 기온은 가장 낮은 1월에도 18℃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덕분에 한겨울에도 카누를 타거나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기 위해 섬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이리오모테 섬이 오래전부터 에코투어의 낙원으로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이런 천혜의 자연조건 때문이다.


동양의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섬

“새끼 낳는 나무 맹그로브에 대해 들어보셨어요? 이쪽으로 와서 나무의 새끼를 한번 보세요.”

강기슭은 온통 맹그로브 천지다. 고무라 씨가 카누를 강기슭으로 몰더니 삐죽삐죽 솟아 있는 맹그로브 나무를 가리켰다. 아까부터 문어 다리처럼 생긴 나무뿌리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이리오모테 섬은 일본은 물론 아시아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맹그로브 군락지다. 맹그로브는 열대지방의 갯벌에서 자라는 나무로 뿌리를 물 위에 내놓고 산소호흡을 하기 때문에 물속에서도 살 수 있다.


맹그로브는 태생식물인 것으로 더 유명하다. 열매(씨앗)가 익으면 그냥 떨어뜨리는 보통 나무와 달리, 맹그로브는 열매를 모체에서 한동안 더 키운 뒤 거기서 싹이 트고 뿌리가 나면 떨어뜨린다. 나무줄기에 싹이 터서 그 자리에 바로 새로운 나무줄기가 솟아나기도 한다. 줄기가 50cm 정도 자라면 자식을 출가시키듯 몸에서 잘라낸다.

이런 독특한 번식방법은 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모체로부터 독립한 새끼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군락을 이루면 육지로부터 흘러내려온 퇴적물이 쌓여 갯벌을 만든다. 맹그로브가 번식을 하면서 육지를 확장하는 셈이다. 이리오모테 섬에서 맹그로브 군락이 밀집한 지역은 1년에 100m 정도씩 해안선이 확장된다고 한다. 이렇게 생성된 갯벌은 수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 된다. 물속에 엉켜 있는 뿌리들은 파도의 충격을 흡수해 쓰나미 피해까지 예방한다고 하니 맹그로브는 새끼를 기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물이 살 수 있도록 생태계도 기르는 셈이다.


카누를 강기슭에 대고 맹그로브가 가득한 갯벌 위를 걷다 보니 인기척에 놀란 망둥어들이 펄떡펄떡 뛰며 도망치느라 난리다. 갯벌에 수없이 나 있는 구멍 속에서는 작은 농게들이 숨어 이방인의 출현을 경계하고 있다. 이렇게 섬의 다양한 생물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에코투어의 백미가 아닐까.

이리오모테 섬은 ‘동양의 갈라파고스’라고 불릴 정도로 이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고유종들이 많다. 말라리아 같은 풍토병 때문에 오랫동안 사람들이 발길을 두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해류와 바람이 외래종의 침입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블랙잭’이나 ‘아즈망가 대왕’ 같은 인기 만화에 등장해 유명해진 이리오모테 살쾡이를 비롯해 관머리 독수리, 사키시마수오 나무 등 일본의 천연기념물만 현재 10종이 넘게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생물들을 보겠다고 투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생태계를 파괴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다. 일본 정부는 1972년 이리오모테 섬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채집과 수렵 행위를 일절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섬의 생물들은 이동 중에 우연히 마주치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한다. 기자도 기왕 이리오모테 섬에 왔으니 유명한 이리오모테 살쾡이를 꼭 보고 싶었지만 100마리도 채 남지 않아서 섬에 사는 사람들도 평생에 한 번 만나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접었다. 이리오모테 살쾡이는 300만 년 전에 멸종한 ‘메타일루스’라는 원시고양이과 동물과 특징이 유사하다고 한다.


가이드가 ‘오키나와 소바’ 요리하는 이유

중간에 갯벌에 잠시 올라가긴 했지만 두 시간 넘게 노를 젓느라 어깨가 뻐근해져올 무렵, 드디어 피나이사라 폭포로 올라가는 등반로 입구에 도착했다. 말이 좋아 등반로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길이라 올라가기가 만만찮다. 경사도 가파른데 사키시마수오 나무처럼 뿌리를 벽처럼 세워 길을 막고 있는 기괴한 관목들을 요리조리 피해가야 한다. 폭포까지 40분 정도 올라갔을 뿐인데 입에서는 단내가 난다.

“김상! 감밧떼 구다사이!”
에코투어에 함께 참여한 일본인 여행객들이 파이팅을 외쳐준다.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게을리했던 게 뼈저리게 후회되는 순간이다.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올라간 피나이사라 폭포. 멀리서 봤을 때 노인(피나이)의 흰 수염(사라)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폭포는 높이 55m로 오키나와 현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상쾌함을 즐기는 것도 잠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침부터 그렇게 몸을 혹사시켰으니 허기가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식당도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식사를 할까. 갑자기 고무라 씨가 배낭에서 간단한 식사도구와 미리 준비해온 재료를 꺼내더니 5인분의 식사를 뚝딱 만들었다. 소 힘줄을 넣고 끓인 이 지역의 명물, ‘오키나와 소바’다.

“이리오모테 섬 에코투어는 모두 가이드들이 직접 이렇게 식사를 준비합니다. 식당을 만들 수도 없고, 일반인들이 취사를 하면 쓰레기를 남기기 때문이죠.”

변변한 재료도 없이 만든 음식이지만 어찌나 맛있는지 고무라 씨의 솜씨가 요리사 뺨치게 좋다. 고무라 씨도 가이드가 되기 위해 요리를 배웠다고 하는데, 이리오모테 섬의 에코투어 가이드들은 그 외에도 서식하는 생물이나 위급상황의 대처요령 같은 지식을 철저하게 교육받는다고 한다.

“에코투어는 전문적인 가이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 섬은 지형도 험악하고 기후도 변덕스럽기 때문에 섬에 대해 샅샅이 다 알고 있어야 돼요.”

이리오모테 섬 출신으로 일본 에코투어의 선구자라고 인정받는 이시가키 긴세이 씨의 말에 의하면, 전문성을 철저히 검증받지 않은 사람이 에코투어 가이드를 하면 자연이 훼손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행자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가이드 자격은 이리오모테 섬에서 3년 이상 거주한 사람, 가이드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환경 지키고 돈도 벌고 일석이조

“실례지만 고무라 씨의 한 달 수입이 어느 정도 됩니까?”

피나이사라 폭포에서 카누를 세워둔 곳으로 다시 내려오는 길, 문득 고무라 씨의 수입이 궁금해졌다. 에코투어 가이드 일만으로 생계가 유지되는지, 에코투어 사업 자체가 수익성이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무라 씨는 멋쩍게 웃으며 먹고살 만큼은 된다고 돌려 말했다. 생각해보면 이리오모테 섬을 찾는 관광객이 워낙 많고 그중 80%는 에코투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라 그의 대답처럼 생계를 유지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 같다. 기자가 에코투어를 했던 날은 비가 왔는데도 같은 코스에 참여한 팀이 10개가 넘었으니까. 가격 역시 1인당 9000엔(약 12만 원)으로 결코 싼 편이 아니다. 또 카누나 산악 트레킹 외에 스쿠버 다이빙, 섬 종단 캠프, 해안 트레킹 같은 다양한 에코투어 프로그램들도 많기 때문에 여기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수입이 바로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간다고 하니 에코투어가 환경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이익인 셈이다.

실제로 2000년대에 에코투어가 유명해지면서 현재는 이리오모테 섬 관광의 절반 이상이 에코투어다. 관광객이 늘어 주민들의 생계는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하니 자연을 보호하면서 경제적 이윤도 내는 슬기로운 타협점을 찾아낸 셈이다.

산에서 내려와 나카라 강을 거슬러 출발지인 우에하라 항으로 돌아가는 길. 하루 종일 노를 젓고 산을 올라가느라 몸은 녹초가 됐지만 다시 한 번 에코투어의 ‘미덕’을 느낄 수 있었다. 오직 내 두 팔, 두 다리만 움직여 대자연을 누비면서, 항상 편리하고 빠른 도시 문명에 익숙해져 잊고 있었던 내 내면의 원시적 에너지를 다시 느꼈다고나 할까. 오후 5시, 제법 굵어진 빗방울도 여유롭게 즐기며 짧고 굵은 첫 에코투어 체험을 마쳤다.
 
일본 에코투어의 창시자, 이시가키 긴세이의 아리랑

햇볕에 검게 그을린 까무잡잡한 피부, 덥수룩하게 자란 흰 수염, 키가 160c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체구에 바지 밑단은 둘둘 말아 걷고 목에는 수건을 두른 모습. 에코투어 하루 전 날에 만난 이시가키 긴세이 씨(63세)는 첫인상이 굉장히 소탈했다. 1979년 일본 최초로 ‘에코투어리즘 협회’를 설립하고 지난 30년 동안 에코투어의 자립에 힘써온 에코투어 창시자라기보다는 그냥 섬 주민에 가까웠다. 실제로 긴세이 씨는 이리오모테 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그가 살고 있는 ‘소나이 부락’은 섬에서도 가장 오래된 마을로 옛 류큐왕국의 전통과 문화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에코투어를 개발하게 된 동기를 묻는 기자에게 긴세이 씨는 “관광산업 자체가 나쁘지는 않지만 외부 자본이 들어와 자원을 계획성 없이 무작정 개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섬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주민들의 생계에 도움을 주면서, 동시에 섬의 환경과 문화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고 답했다.

긴세이 씨는 그의 대답처럼 에코투어 개발 외에 류큐 지역의 전통부채춤과 악극 등의 전승에도 힘쓰고 있다. 특히 그는 이 지역의 전통악기인 사미센 연주의 대가다. 인터뷰가 끝난 뒤 연주를 청하자 긴세이 씨는 현을 퉁기며 ‘아리랑’의 한 소절을 연주했다. 심지어 한국어로 구성지게 노래까지 부르는 모습에 놀랐다. 아리랑은 그가 태어나기 전 이리오모테 섬에 강제 징용되거나 위안부로 끌려온 한국인들에 의해 알려졌다고 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어릴 적 한국인들로부터 배운 아리랑을 기억하고 있다고. 그 역시 형들과 누나들로부터 배운 구슬픈 가락을 기억했다. 곡은 10년 전 이리오모테 섬에 표류해 온 ‘안동호’라는 어선의 선원으로부터 배웠다고 한다.

그는 얼마 전 이리오모테 섬을 찾은 제주도의 비정부단체(NGO) 회원들에게도 아리랑을 들려줬다. 그 인연으로 올해에는 제주도를 방문한다고 하니, ‘녹색관광’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을 보고 그가 어떤 조언을 해줄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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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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