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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tech] 더럽혀진 선행은 선행이 아니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사가 거액을 기부 했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분명 좋은 일임에도 ‘착한 척한다’거나 ‘그것밖에 못 하냐’ 같은 비난이 쏟아진다. 얼마 전 유행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도 역시나 뜻이 ‘변질됐다’, ‘순수하지 않다’ 같은 비난이 일었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10년 동안 기부를 해왔다. 10주년이 되던 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으나 꾹 참았던 적이 있다. 스스로에게는 지금까지 한 일 중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칭찬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왜 그렇게 눈치가 보이던지. 어렸을 때 분명 선한 행동은 보답을 받고 악한 행동은 벌을 받는다고 들었는데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완벽하지 않으면 선행이 아닐까

100% 선의에서 나왔든 아니든 선한 행동 자체는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런데 왜 선한 일을 하고도 욕을 먹곤 할까? 가끔은 아예 아무 것도 안 하고 욕도 안 먹는 게 더 낫다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보자. A라는 남자가 있다. A는 좋아하는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여성이 하는 일을 돕기로 했다. A는 여성을 따라 봉사활동에 참가했다. 똑같은 상황에 처한 남성 B도 있다. B는 여자의 호감을 얻기 위해 여성이 일하는 카페에서 일을 도왔다. A와 B 중 누가 더 선한 사람인가. 흥미롭게도 사람들에게 A, B 중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A가 B보다 도덕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둘 다 ‘좋아하는 여성에게서 호감을 얻는다’는 개인적 목적을 가지고 일을 했다. 단지 그 수단이 A는 봉사라는 좋은 일, B는 평범한 일이었을 뿐이다. 분명A가 더 좋은 일을 한 셈인데 사람들은 선행을 하지 않은 경우에 비해 ‘비도덕적’이라고 평가해다.

이 외에도 ‘회사가 수익의 반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와 ‘회사가 수익의 반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반은 갖기로 했다’라는 동일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주고 도덕성을 평가하게 하면 평가가 갈린다. 사람들은 전자는 훌륭하지만 후자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뭔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엄중한 잣대 내려놓기

미국 예일대 조지 뉴먼 교수는 사람들이 선한 행위가 성립하려면 사적인 이득이 전혀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착한 행동에 1%라도 때가 묻으면 나머지 99 %가 선하더라도 그것을 선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착한 일에 대한 판단이 보수적인 것은 당연하다. 지난번에 소개한 ‘역겨움’처럼(과학동아 6월호) 선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착한 일에 대한 기준이 유독 빡빡하기 때문에 때로 착한 일을 하고도 욕을 먹으며, 때로는 아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이득이 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선함에 대해 ‘얼마나 장점이 많은가’가 아니라 ‘정말로 완전무결한가’로 판단한다. 선한 행동을 한 사람을 두고 행위의 좋은 점을 보기보다 부족한 점에 촉각을 세운다. 흡사 ‘언제나 호시탐탐 노리는 군대 선임 같다. 이런 깐깐한 기준 때문에 우리는 선한 일을 할 때면 남의 눈치를 보며 자기검열을 하게 됐다.

사람들이 이런 엄중한 잣대를 내려놓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선행과 무관한 의도’가 실은 나쁜 방향으로도 얼마든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자. 예를 들면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쓰인 관심과 기부금을 하룻밤 유흥비로 쓸 수도 있었다는 점을 인식시키면, 그제야 의도가 무엇이었든 그것이 선한 행동이었다고 인정하고 안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다.

필자의 생각을 덧붙이면, 선한 행동에 대한 판단은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과도 이어지는 만큼 보수적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행위의 선함에 대한 판단은 조금 현실적인 기준을 갖춰도 되지 않을까 싶다. 선한 행동은 귀하고 조금이라도 더 자주 일어나는 게 세상에 도움이 된다. 내가 잘못됐다며 비난한 선행이 사실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고 숨겨진 의도라고 의심되는 것들 또한 전혀 다른 방법으로도 실현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 모두 눈치 보거나 변명할 필요 없이 당당하게 좋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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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영
  • 일러스트

    더미
  • 에디터

    송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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