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지난해 가을, 반달가슴곰관리팀은 경치를 감상할 겨를도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지리산 반달가슴곰 반돌이를 동면 전에 발신기와 성장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포획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돌이의 행동반경이 넓어진데다 등산객들 때문에 활동시간대가 야간으로 몰려 포획이 쉽지 않은 상황.
때마침 반돌이가 국립공원 경계 부근의 재래식 벌꿀농장에 자주 나타나 꿀을 훔쳐먹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유달리 꿀을 좋아하는 반돌이는 영특하게도 짙은 어둠이 깔린 밤 슬며시 침입해 벌통에 담긴 꿀을 먹어치우고 달아난다. 팀원들은 11월 15일 밤, 농장에 잠복했다. 11시 58분, 아니나 다를까 반돌이가 나타났다. 팀원들은 반돌이의 어깨에 마취총을 쏴 사무실 인근 보호시설로 이송했다. 몸무게가 90kg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측정해보니 1백14kg으로 늘어나 있었다. 목이 굵어져 발신기를 매단 줄이 꽉 끼는 바람에 상처가 났을 정도였다.
반달곰의 ‘쇼생크 탈출’
반돌이를 포획한 기쁨도 잠시, 17일 보호시설 관리대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팀장님, 반돌이가…, 반돌이가 탈출했습니다!”
당장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럴 수가. 보호시설 바닥에 밖으로 통할 수 있는 큼지막한 땅굴이 뚫려 있지 않은가. 반돌이는 감시하는 사람이 없을 때 몰래 탈출을 준비했던 것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드류가 20년 동안 간수의 눈을 피해 망치로 벽을 뚫어 탈옥에 성공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곰관리팀과 남부사무소 직원으로 구성된 수색팀은 사냥견을 데리고 보호시설 주위 숲을 수색했다. 18일 도로 인근 밭에서 지리산 국립공원으로 향한 반돌이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수색팀은 반돌이를 유인하기 위해 주요 이동경로와 출현 예상지점에 꿀, 사과, 포도주, 생선 같은 먹이를 놓아뒀다. 하지만 반돌이는 여간해서 나타나지 않았다.
12월 3일 지리산 남동부 계곡인 전남 구례군 피아골 주민이 곰을 목격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즉시 피아골대피소 부근을 수색했더니 반돌이의 발자국과 배설물이 있었다. 대피소 안에 있던 쌀통과 간장통에 난 이빨자국도 반돌이의 것이 틀림없었다. 다음날 수색팀은 대피소 주위에 생포트랩을 설치하고 먹이로 유인했다. 5일 밤 11시, 무인센서에 반돌이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반돌이가 먹이에 접근하는 순간, 팀원 한명이 불빛을 비췄다. 그런데 전에는 불빛에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던 반돌이가 이번에는 재빨리 달아나고 말았다. 경험을 통해 불빛이 비치면 뭔가가 날아와 자신을 잠들게 해 붙잡힌다는 사실을 터득한 것이다.
눈이 내리는 지리산은 매우 춥고 위험하다. 특히 반달곰이 은신하기 좋은 곳은 산새가 험해 접근이 어렵다. 하지만 팀원들은 반돌이가 주로 활동했거나 동면하기 적합한 곳을 중심으로 다시 대규모 수색작업에 들어갔다. 2004년 1월 2일 경남 하동군 국립공원 경계지역에서 반달곰을 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4일 이 일대에서 곰이 물어뜯은 보온병과 깨끗하게 먹은 도시락도 발견됐다. 그러나 더이상 뚜렷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고, 장기간의 강행군으로 피로가 쌓여갔다. 결국 1월 말 공식 수색작업을 종료, 반돌이가 동면을 마치면 포획하기로 결정했다.
동면 예상지역 순찰을 강화하면서 반돌이 포획 방법을 논의하던 중, 2월 29일 경남 하동군 형제봉 산촌 부락의 벌꿀농장에서 곰이 물어뜯은 쓰레기 자루가 발견됐다. 반돌이가 동면에서 깨어 활동을 재개했다고 판단한 수색팀은 3월 1일 먹이를 넣은 생포트랩과 무인카메라를 벌꿀농장에 설치했다. 하지만 다음날 먹이는 그대로 있고 주위에 벌통들만 쓰러져 있었다. 여러번 포획된 경험으로 먹이가 유인책임을 눈치챈 것 같다. 도대체 누가 곰이 미련하다고 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수색팀은 이번엔 반돌이가 다니는 길목에 상처를 입지 않게 특수제작한 안전발목트랩을 설치했다. 4일 드디어 끝이 보이지 않던 신경전이 막을 내렸다. 하동면 검두마을에 설치한 트랩에 반돌이가 포획됐다는 낭보가 전해온 것이다. 모두들 현장으로 달려가 반돌이의 건강상태를 살핀 다음 목과 귀에 발신기를 부착하는데 성공했다. 긴 동면을 하지 않았던 탓으로 달아날 때보다 몸무게가 9kg 늘어난 1백23kg이었다. 목의 상처는 말끔히 나아있었다.
곰관리팀은 반돌이를 국립공원 내의 깊은 삼림지대로 이송해 재방사했고, 발신기로 다시 추적을 시작했다. 탈출에서 포획까지 1백11일 동안 체득한 이 경험은 지리산에 반달곰이 안정적으로 서식할 날까지 소중하게 활용될 것이다. 서로를 격려하며 힘이 돼준 곰관리팀원들, 지리산 남부사무소 직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가슴의 흰 초승달 무늬가 특징
반달가슴곰은 일본산, 대만산, 네팔산, 대륙산 등 지리적 아종으로 분류된다. 이 중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동북부와 장백산(백두산), 러시아의 연해주와 아무르강 하류에 서식하는 것은 대륙산 반달가슴곰(Ursus thibetanus ussuricus)이다.
우리나라 반달곰은 몸크기가 중형에 속한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약 1백53-1백62cm, 몸무게는 대부분 2백kg 이하다. 가슴에 초승달 또는 V자 모양으로 흰색 털이 나 있고, 귀가 둥글고 크며, 목에 갈기가 있다. 생후 3년 후면 임신이 가능하며 6-7월에 짝짓기를 한다. 수정란이 암컷 자궁 내에서 떠돌다가 겨울이 돼야 자궁벽에 착상하기 대문에 동면중인 1-2월 사이에 출산한다. 교미 후 출산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7.5개월이며, 2-3년에 한차례 번식한다. 반달곰은 새끼를 2마리 낳는데, 새끼곰은 어미곰 몸무게의 3백-4백20분의 1에 불과한 2백-4백g 정도다. 새끼곰은 대략 8-18개월 동안 어미곰과 함께 생활한다.
과거에 반달곰은 해발 1천m 이상의 내륙산지에서 전국적으로 서식했다. 몸집이 큰 만큼 많이 먹는다. 봄에는 취나물이나 고사리 새순, 여름에는 산딸기, 버찌, 오디, 머루 같은 열매, 가을에는 다래, 도토리와 잣 같은 견과류, 겨울에는 낙과한 도토리와 조릿대 잎을 먹는다. 그밖에 꿀, 개미유충, 가재, 물고기, 새 알 같은 동물성 먹이도 섭취한다. 지리산에는 이 같은 먹이가 풍부해 따로 먹이를 주지 않아도 곰 2백마리는 너끈히 먹고 살 수 있다고.
온대권에 서식하는 대부분의 곰은 겨울에 동굴, 바위틈, 커다란 나무 구멍, 나무 뿌리 아래, 나뭇가지 더미 같은 곳에서 동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겨울이 춥고 길수록 동면기간이 길다. 전혀 동면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자는 동안 스스로 체온조절이나 물질대사를 잘 못하기 때문이다.
반달곰과 참나무의 품앗이
최근 남한의 반달곰 수는 급속히 감소했다. 1983년 설악산 마등령에서 밀렵꾼에 의해 사살된 반달곰이 발견된 후 멸종위기종인 반달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국립환경연구원은 1998년 12월부터 3년 간 ‘멸종위기 야생동물 복원기술개발사업’ 을 통해 반달곰을 보전하려면 최소 20마리 이상을 6-7년에 걸쳐 매년 방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1년 9월 국립환경연구원은 종복원사업 전단계로, 농장에서 키우던 반달곰 중 생후 6-7개월 된 4마리를 지리산에 방사했다. 어린 곰이 스스로 야생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수컷(장군과 반돌)과 암컷(반순과 막내)을 함께 방사해 야생성 회복에 성별로 차이가 있는지도 살펴보고자 했다. 그러나 막내는 등산객에게 음식을 얻어먹는 등 야생 적응에 실패해 한달만에 우리로 돌아왔고, 반순은 2002년 7월 사체로 발견됐다.
2002년 5월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지리산 반달가슴곰관리팀이 발족됐다. 18명의 환경·생태전문가로 구성된 곰관리팀은 반돌이와 장군이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다. 반돌이는 사람을 피하는 경향이 많지만, 장군이는 팀원들 앞 3m까지 접근한 적도 있다. 장군이보다 반돌이가 더 야생화된 셈이다. 본격적인 종복원을 위해 올해부터 향후 5년간 러시아 야생 반달곰 새끼들을 지리산에 방사할 예정이다. 또 서울대공원에서 사육중인 북한산 반달곰 새끼 방사도 검토중이다. 이들을 국내 토종 야생 반달곰과 교배해 2012년까지 50마리로 복원하는 것이 목표다.
실제로 미국 아칸소주에는 1800년대까지 ‘The Bear State’ 라고 불릴 정도로 흑곰이 많이 서식했으나 1927년 불과 25마리로 격감했다. 이에 정부가 복원사업을 진행해 1980년까지 2천5백마리로 증식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도 불곰 복원계획이 진행중이다.
멸종위기종이라는 이유 이외에도 반달곰 복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반달곰은 생태계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최상층소비자이자, 외부 위협요인으로부터 하위 소비자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많은 참나무와의 생태적 공존관계도 중요한 이유다. 참나무의 열매인 도토리는 반달곰의 주요 먹이이고, 반달곰은 참나무 종자를 다른 지역으로 운반한다. 또 참나무로 대표되는 온대 활엽수림은 침엽수림에 비해 수분 함유량이 수십배 높다. 이 수분이 하천을 정화시켜 생물다양성 보전의 주축이 된다. 단군신화에서 보듯 곰은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살리는 상징적 동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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