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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문화의 '메디치'들

당신의 창조성을 보여주세요

17세기 과학혁명의 초석을 놓았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자신의 책에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고귀하신 토스카나 대공 전하의 철학자이자 수석 수학자이며 피사대학의 특별 수학자이자 린체이 아카데미 회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

유명한 과학자 갈릴레오가 토스카나 대공, 개인의 수학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파두아대에서 가르치던 갈릴레오가 피렌체로 옮겨 메디치 가문 출신의 토스카나 대공에게 몸을 의탁한 것은 그의 후원 아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는 자신이 발견한 목성의 달에 ‘메디치 시데라’란 이름을 붙여 후원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원조 후원자는 메디치 가문

갈릴레오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는 헤센의 영주 빌헬름 4세와 덴마크왕 프레데릭 2세의 후원을 받았다.

프레데릭 2세는 브라헤의 재능에 대한 이야기를 빌헬름 4세에게서 전해 듣고 그의 재능을 인정해 ‘벤’(Hveen)이란 이름의 섬을 하나 내줬다. 브라헤는 이곳에 ‘우라니엔보리’라는 천문대를 설립하고 항성과 행성의 위치관측에 전념했다.

근대 초기 유럽에서는 왕들이 과학자를 고용하거나 후원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고, 이런 후원은 새로운 근대 과학이 태동한 이유의 하나로 꼽힌다. 예술과 과학을 가로질러 자연에 대한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문화적, 물질적 토대를 근대 초기 유럽의 왕실이 제공했던 것이다.

대규모 후원이 이뤄졌던 이유는 두 가지 정도다. 유럽대륙에서는 학자들이 ‘뽐내기 과학’(ostentatious science)이라고 부르는 아주 혁신적이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복잡한 과학에 대한 지원이 많았다. 왕실이 문화적 자본을 자랑해 보려는 이유에서 지원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 차원에서 후원이 이루어진 경우에도 자신의 문화적 자본이 풍성함을 내보이려는 의도는 똑같았다.

한편 영국에서는 경제적 혹은 군사적인 이익을 염두에 두고 수학이나 실용적인 기술, 임상 의학 같은 ‘실용적 과학’(utilitarian science)을 지원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요즘도 국가의 공공재원을 통해 과학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의 실용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지만 여전히 ‘뽐내기 과학’도 지원한다.

러시아가 유인우주선을 먼저 발사하자 미국이 달에 우주인을 먼저 보내기 위해서 국가적 총력전을 펼쳤던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우주개발의 부수적인 효과로 인한 유용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지금도 이 분야의 발전은 국가적 자부심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갈릴레오는 1610년 목성의 위성 4개를 관찰, 기록한 책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를 펴내며 위성에 자신을 후원한 메디치의 이름을 붙였다.


창조성에 대한 후원

현대 과학 연구가 거대해지고 협업의 중요성이 커졌다. 하지만 창조적인 개인을 지원하는 것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세계 모든 사람이 즐겨 쓰는 구글은 창업자 중 한사람인 래리 페이지의 스탠퍼드대 기숙사에서 시작됐다. 구글의 경우엔 운이 좋아 창업 투자를 받아 큰 사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지만 어두운 골방 사이를 떠도는 창조적인 생각들이 기회를 만나지 못해서 묻혀 버리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이러한 재능이나 생각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먼저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를 노린 기업들의 지원이 떠오른다.

‘메디치 효과’는 여러 분야가 융합해 새로운 결과를 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서로 다른 재능과 지식을 갖춘 과학자, 예술가, 시인, 철학자들이 메디치 가문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활발히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창조적인 결과물을 폭발적으로 내놓은 것이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효과를 노리고 과학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개념의 연장선에서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는 ‘메세나’(mecenat) 움직임이 활발하다. 메세나는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활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를 들어 2002년에는 메세나 활동의 일환으로 화학적 신소재와 미술을 연결한 ‘케미컬 아트’라는 전시회가 열렸다. 이 밖에 지역 주민에게 책을 기증하거나 대학 캠퍼스를 찾아다니며 음악회를 열고, 청소년을 위한 미술 교육 프로그램 등 기업은 다양한 메세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2월에 방한한 영국의 대표적인 메세나 단체인 ‘아트 앤드 비즈니스’의 콜린 트위티 사무총장은 “흔히들 ‘A(아트)+B(비즈니스)=C’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여기서 C는 창조성(Creativity), 문화(Culture), 지역사회(Community) 등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창조성을 찾아내려는 또 다른 방법은 공모전이다. 정보통신부의 ‘유비쿼터스 패셔너블 컴퓨팅’, 한국IBM의 ‘로보코드 코리아 컵 2006’,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의 ‘우수논문대상’ 같이 정부나 기업에서 창의적인 생각을 이끌어내는 방법으로 공모전을 택하고 있다.

생각을 모으는 대신 아예 사람을 모을 수도 있다. 창조적인 사람들을 모아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고 여기서 발생한 생각들을 수확하는 방식이다.

분야가 한정돼 있긴 하지만 ‘삼성소프트웨어멤버십’은 좋은 예다. 1991년 시작해서 1500여명을 배출한 이 제도는 소프트웨어와 관련 분야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들을 모아서 연구 개발을 지원하고 이들의 아이디어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여기서 만들어진 ‘스위트 드림’이라는 팀은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최하는 ‘이매진컵 2006’에 운동하는 사람들의 동작을 자세히 분석해 주는 ‘모션 엑서사이즈’라는 프로그램을 출품했고 빌 게이츠의 호평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기업들이 앞다퉈 문화예술 활동을 후원하고 있다. 2002년 열린 '케미컬 아트' 전시회도 그 중 하나다.


창조성은 미래를 위한 보험

최근 아트센터 ‘나비’도 과학과 예술의 경계에서 활동하는 커뮤니티들을 지원하면서 창의적인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해킹, 어린이를 위한 소프트웨어, 인터랙티브 미디어 같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프로젝트를 제안해서 실현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예술적 상상이 미래 과학기술의 방향을 끌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속에서 과학기술자들과 예술가들의 모임도 지원한다.

줄기세포를 둘러싼 논쟁을 거치면서 명백히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우리 정부가 필요하면 많은 자원을 동원해서 과학 활동을 지원할 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적 동원과 독려, 기업들의 노력 속에 이전에 상상하기 어려웠던 꽤 굵직한 연구 결과들을 우리나라 과학계가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공식적인 시스템 바깥의 창의적인 생각들을 모으는 노력은 그리 많지 않다. 결정적인 도약이 시스템 바깥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정부나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공공 재원은 많은 사람에게 돌아갈 명백한 이익이 없는 곳에 투여되기 어렵고 그래서도 안 된다.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불분명한 창조성에 대해 국가가 투자를 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창조적인 생각, 사람, 그리고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기관에 대한 후원은 과학과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고 드는 일종의 ‘보험’이다. 후원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개인이나 기업들이 이 보험금을 분담해야 하지 않을까.
 

빌 게이츠는 최근 열린 '이매진컬 2006'에서 '스위트 드림'팀의 창조성을 높이 평가했다.
 

200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주일우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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