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시대의 개막은 인류의 문명에 커다란 변화를 안겨줬다. 사진에 만족해야 했던 각종 정보를 눈앞에서 생생하게 감상한다는 디스플레이 개념은 그야말로 엄청난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다양한 멀티미디어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디스플레이의 중요성은 두말 할 나위 없이 더욱 크다. 인간과 정보의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는 정보디스플레이는 어떤 흐름을 거쳐 발전해온 것일까.
전자총이 화면의 형광체 자극
근대적인 의미에서 정보디스플레이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출발점은 TV에 있다고 할 수 있다. TV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을 한 사람은 독일의 전기기술자인 닙코프다. 그는 1884년 전기신호를 영상으로 바꿀 수 있는 초보적인 장치를 개발했다. 이어 1926년 영국의 전기기술자인 베어드는 닙코프의 장치를 이용해 최초의 기계식 TV를 발명했다. 이 기술은 1927년 실험 방송을 거쳐 1929년 영국 BBC의 정규 실험방송으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전자식 TV의 개발은 1897년 독일의 물리학자인 브라운 박사가 전기현상을 이용해 오늘날의 CRT(Cathode Ray Tube)와 같은 기본적인 기능을 모두 갖춘 최초의 전자관을 발명함으로써 시작됐다. 발명자의 이름을 따 브라운관이라고도 불리는 CRT는 전자광선의 작용을 통해 전기신호를 영상으로 변환해 표시하는 장치다. CRT는 유리로 만들어진 진공용기, 전자총, 형광면, 그리고 편향코일로 구성돼 있다. 전자총으로부터 튀어나온 전자들이 장치 속에서 가속되면서 전자광선을 형성해 화면을 향하게 된다. 화면에는 형광체가 코팅돼 있다. 전자광선이 이 화면에 부딪치면 전자의 충돌에너지가 빛에너지로 바뀌면서 발광하고, 이 빛이 사람의 눈에 보여지는 것이다(그림). 형광체는 적색, 녹색, 청색이 있으며, 세가지 빛의 세기를 조절해 다양한 색을 구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세가지 빛이 다 켜지면 백색의 빛이 나오고 다 꺼지면 흑색이 된다. 이것이 흑백 TV가 화상을 구현하는 원리다. 컬러 TV는 전자총과 형광체의 색깔이 다양하게 조합돼 색을 발현한다. 빛의 밝기는 전자총에서 나오는 전자광선의 세기에 따라 결정된다.
CRT 넘어 LCD와 PDP, 유기EL로 발전
최초의 CRT가 탄생한지 1백 여년이 지난 지금, 노트북이나 PC의 모니터로는 LCD를, 대형 TV로는 PDP를 떠올릴 만큼 차세대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CRT는 대화면으로 갈수록 전자를 가속화시키는 공간이 커져야 하기 때문에 부피가 커지고 무게가 많이 나간다. 또한 소비전력도 높아서 휴대용 디스플레이로는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LCD, PDP, 유기EL 등으로 대표되는 평판 디스플레이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탄생했다.
LCD(Liquid Crystal Display)의 시초는 1888년 오스트리아의 라이니처가 액체와 고체의 특징을 모두 가질 수 있는 액정을 처음 발견하면서 출발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개념의 디스플레이가 탄생하기까지는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68년에 들어서야 미국 RCA사가 액정을 이용한 디스플레이를 만들어냈고, 1973년부터 시계와 전자계산기 등에 이용되면서 꾸준히 발전했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와서 10인치 TFT-LCD가 본격적으로 양산되면서 노트북 화면의 대표적인 디스플레이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사무용이나 가정용 PC의 모니터를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는 추세다.
플라스마라는 기체의 방전 현상을 이용해 만들어진 PDP(Plasma Display Panel)는 1927년 벨시스템사가 개발한 가스방전 현상을 이용한 TV에 출발점을 둘 수 있다. 이후 1964년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지금과 같은 개념의 PDP로 처음 화면을 나타내는데 성공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PDP 연구가 시작돼 1991년 21인치 PDP 실용화 시대를 열었다. 1994년 40인치급 대형 TV용 PDP를 개발하는데 성공하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PDP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한편 전압을 가하면 스스로 발광하는 유기발광소자를 이용한 유기EL은 1987년 미국의 이스트먼코닥사가 처음 개발했다. 일본의 산요전기에서도 1989년부터 유기 EL의 개발에 착수해 1995년에는 기존보다 긴 수명의 소자를 개발하는 등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2년 10월에는 이스트만코닥과 산요전기가 공동으로 15인치 HDTV용 유기EL을 개발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개발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10월, 발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15.1인치 유기발광 패널을 개발하는 등 세계 1위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유기EL 연구는 현재 활발히 수행되고 있어 언제 어디서나 갖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는 두루마리 디스플레이의 가능성을 한층 더 높여주고 있다.
미래형 디스플레이를 좌우하는 또하나의 흐름으로 탄소나노튜브 기술을 꼽을 수 있다. 탄소나노튜브는 탄소 원자들이 육각형 벌집 무늬를 이뤄 긴 튜브처럼 속이 텅 빈 구조로 둥글게 말려있는 형태로, 지름이 1nm(나노미터, 1nm=10-9m)에 불과하다. 그런데 탄소나노튜브 분자는 여러 다발을 이루거나 튜브 모양을 적당하게 변형시키면 저절로 반도체 성질을 나타낼 수 있다. 즉 분자 자체를 반도체 소자로 활용할 수 있어 반도체 소자를 제작할 때 필요한 도핑 작업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트랜지스터를 초고집적화하는데 매우 유리하다. 또한 튜브 끝에서 전자들을 방출해 정확한 방향으로 쏠 수 있어 고화질 평판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다. 분자 크기인 탄소나노튜브의 끝이 매우 뾰족하기 때문에 낮은 전압으로도 전자를 방출할 수 있고, 화면의 형광 물질에 정확하게 부딪쳐 화상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전자총의 원리를 갖는 CRT만큼 값이 저렴하면서도 고화질을 구현하고, LCD나 PDP를 능가하는 얇은 평면을 구현할 수 있다. 나노 물질을 이용한 디스플레이의 개발은 현재 초기 단계지만, 앞으로의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의 주도권 잡는다
정보디스플레이 관련 산업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대만이 세계 3대 경쟁 구도를 형성하면서 승부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기술의 뒤를 이어 우리나라가 전세계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분야이자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인 셈이다. 과학기술부 21세기 프런티어 연구개발사업 지원을 받는 차세대 정보디스플레이 기술개발사업단은 정보디스플레이 산업을 국가적인 주도 기술로 이끌기 위해 탄생했다.
2002년 12월 10일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연구활동에 돌입한 사업단은 앞으로 10년 동안 정부와 민간으로부터 총사업비 2천2백20억원을 지원받아 관련 기술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업단을 이끌고 있는 박희동 단장은 10년을 내다보고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사업단의 목표를 크게 두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기존의 경쟁력 있는 부분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CRT에 이어 LCD 분야에서도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의 위치를 굳히고 있기 때문에 산학연 연계를 통한 핵심 기술을 키워나가면서 앞으로도 지속적인 우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40인치급 이상의 HDTV용 LCD와 70인치급 HDTV용 PDP의 개발과 실용화를 성공리에 수행해낸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두번째 목표는 앞으로 전도유망한 전유기 디스플레이(AOD) 분야에서 선두 자리를 선점하는 것이다. 전유기 디스플레이는 All-Organic Display의 약자로, 디스플레이를 구성하는 소자가 모두 유기물로 만들어진 것을 말한다. 따라서 기존의 디스플레이보다 훨씬 가볍고, 접었다 펴는 등 변형하기 쉬우며, 소비전력도 낮아서 경제적인 디스플레이가 될 수 있다. 박 단장은 “현재 초기 단계에 있는 전유기 디스플레이 기술에 대한 주도권을 잡으면 정보디스플레이 전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힐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사업단은 현재 전체 26개 기관에 이르는 대학, 기업체, 연구소를 하나로 아우르며 40여개의 세부 연구 과제에 대한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업단에 참여하는 전체 인원은 무려 6백58명. 각각의 기관에 소속된 연구자들이 하나의 목표로 화합하면서 전진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박 단장은 대규모 사업단의 팀웍을 돈독하게 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실질적인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술 교류를 2개월마다 정례적으로 실시하고, 모든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워크숍을 1년에 한번 정도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2년쯤 지나면 가시적인 성과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이에 대한 결과물을 바탕으로 더욱 도약할 수 있는 사업단이 되겠다”는 박 단장의 믿음직스러운 말투에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의 밝은 미래가 묻어 있었다.
한눈에 보는 정보디스플레이의 흐름
▲ 브라운관(CRT) 출현
전자식 TV의 개발은 1897년 독일의 물리학자인 브라운 박사가 전기현상을 이용해 최초의 CRT인 전자관을 발명함으로써 시작됐다. 1941년 흑백 TV 방송이 본격적으로 실용화됐으며, 이어 1953년 세계 최초의 컬러 TV 방송이 개시됐다. 컬러 TV 방송은 일본에서 1960년, 우리나라에서 1980년 처음 시작됐다.
▲ 완전평면TV 등장
볼록 TV의 시대가 끝나고 화면의 왜곡을 없앤 새로운 완전평면 TV 시대가 열렸다. 초기 CRT가 볼록했던 이유는 화면의 가장자리에 전자광선이 퍼지지 않도록 곡률 반경을 맞춘 원주상에 형광체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면의 상하좌우 위치별로 전자광선이 퍼지지 않도록 초점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전자총 제어방식이 개발돼 완전평면이 가능해졌다.
▶ 대화면 프로젝션TV
프로젝션TV는 PDP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 2-3년간 PDP를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제품이다. 프로젝션TV의 원리는 TV 내부에 설치된 CRT나 LCD가 일차 화면을 만들고 이 화면을 거울로 반사시켜 큰 화면을 재현한다는 것이다. 부피와 무게는 다소 부담스럽지만 PDP의 절반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대화면의 생생함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차세대 평판디스플레이 3인방
최초의 CRT가 탄생한지 1백 여년이 지난 지금, PC의 모니터로는 LCD, 대형 TV로는 PDP가 재인식될 만큼 차세대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CRT를 대형화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전자를 가속화시키는 공간이 커져야 하기 때문에 부피가 커지고 무게가 많이 나간다. 유기EL, PDP, LCD로 대표되는 평판 디스플레이는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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