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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동료 한자 사회와의 만남

치료는 의료진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가 같이 참여하는 공동작업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간호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간호사와 동료환자 사회와의 만남


"좀 더, 조금 더, 좀더, 옳지! 자, 이제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되겠네요." "으-아-앙." "축하드려요. 예쁜 공주님이네요." 분만장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다.

2년이면 족하리라 생각했던 병원에서의 생활도 어느덧 5년을 넘기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채, 일단 거쳐야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큰 갈등없이 내딛게 된 병원생활….

뚜렷한 목적없이 여러 형편에 따라 결정된 길이었기에 입학과 더불어 생겨난 '왜 나는 간호학과를 선택했어야 했는가'라는 물음, 낯설은 서울 생활, 그리고 박대통령 총격 사건. 세상에 대해 무지했던 철부지에게 던져진 충격적인 여러 사건의 진상들. 이런 모든 것들 속에서 혼란의 미궁속으로 빠지게 된 나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과 시각을 정립해야만 했다.

그러나 수많은 고민 속에서 새로운 눈뜨임이 시작되려 할 즈음 내려진 80년 휴교령은, 마치 따뜻한 봄기운에 막 타오르려는 새싹에 몰아 닥친 혹설과도 같았다.

●- 이웃과 만날 수 있는 도구

대학 1학년을 그럭저럭 보내고 나니 2학년이 되어서도 고민의 내용은 1년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왜 나는 간호학과를 다녀야 하는가?' 그다지 좋아보이지도 않는 간호원, 또한 차분해야만 잘 해낼 수 있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성격.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들어선 길인 것 같았다. 차라리 재수를 해서, 아예 의사가 되는 길을 택하든지 선생님이 되든지, 여하튼 다른 것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런 고민의 한편엔 간호원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낳은 열등 의식이, 또다른 한편엔 간호란 것 자체에 대한 무지가 자리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그런 갈등과 고민은 2학년 생활이 자리를 잡아가게 되면서 차차 해결될 수 있었다.
2학년 초기 간호학과 선배님들에게 늘상 하던 질문은 '왜 간호학과를 다니고 있느냐?' '어떤 전망과 기대를 갖고 간호학을 배우고 있는가?' 라는 것들이었다. 수없는 물음 끝에 한 선배로부터 들은 답이 퍽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나는 간호라는 것을 내가 우리 이웃을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tool)라고 생각하면서 배운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학교를 좀 더 힘차게 오갈 수 있게 됐다. 잘 배워야 하겠고 잘 익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 전에는 웬지 싫고 못나보이던 학과 동료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간호란 자신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돌볼 수 없는 상태를 건강한 상태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나름대로 개념정리를 해보면서, 간호는 멋지게 잘 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대상을 아프고 병든 한 개인으로 고정시키지 않고 어느 집단, 어느 지역, 어떤 사회 등으로 확장시키는 작업과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 등에 대한 문제는 곧 간호의 전망과 기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주말진료의 가르침

매주 토요일이면 나갔던 주말 진료는 많은 깨우침을 주었다.
주말진료지에서 만났던 많은 이웃들은 실제적인 육체적 고통 속에서 경제적 압박 속에서 신음하며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건강할 권리를 지닌다'라는 선언이나 '건강이란 단지 질병에 걸려 있지 않은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최적의 상태에 있음을 말한다'라는 정의는 그 지역 사람들과는 무관한 공허한 말들일뿐 이었다.

그들의 현실의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소외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예수의 삶을 좇아 살아가리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기독인으로 훈련되면서 여러 깨우침도 얻게 되었다.
약 3년간 주말진료를 해오면서 겪었던 여러 일들은 우리 사회의 의료문제를 실제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폐렴 증상을 보이며 진료지에 왔던 생후 일개월된 아기를 입원시켜야 할 것으로 판단, 병원에 데리고 갔었지만 입원보증금 10만원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안고 다시 되돌아서야 했던 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그 아가의 젊은 부모들에게 화가 났고, 깔딱깔딱거리는 아가의 숨소리가 애간장을 녹이는데, "그냥 집으로 데려가면 내일 죽을지도 모릅니다"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고막을 때렸다.

아니 내일이면 죽을지도 모른다면서 왜 그냥 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는가? 돈 때문에 아가의 생명은 어쩔 수 없게 되는 것인가? 악몽에 시달리다가 다음날 가보니, 아가는 할딱할딱거리며 살아있었다. 여러 선배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닌 수고로, 연세대학교병원에 사회복지기금 등으로 입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후 한달의 입원 치료로 그 아가는 살아날 수 있었다. 그 후 무럭무럭 자라나는 꼬마를 볼 때마다 대견한 마음이 드는 한편,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돈이 없는 아들에게 보험카드가 있을리 없고, 보험카드가 없는 일반환자에겐 엄청난 보증금이 있어야 입원 치료가 가능한 제도. 만약 그때 입원할 수 없게 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인간은 누구나 건강할 권리를 지닌다'라는 권리 선언에 알맞도록 생명과 돈이 거래되는 일은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막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말치료는 일주일에 한번 진료한다는 형식외에도 많은 한계가 있다. 지속성이 떨어지고 누군가로부터 시혜를 받는 듯한 성격 또한 지적된다.
여러해 동안의 경험으로 그 지역 주민들은 이제는 그곳에서 함께 살아갈 의료인을 원하게 되었다.

지역 건강 문제를 같이 책임져 나갈 생각을 가진 의료인과 지역공동의 병원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경제적 능력의 부족으로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차선책으로 같이 살아가면서 위급생활에 대해 대처해나가고 평상시엔 건강 상담과 예방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간호사를 원한다.

졸업과 더불어 그런 제의를 받았을 때 여러가지에 대해 자신이 없어 결국 못하게 되었다. 이런 일들은 앞으로 추진해볼 만한 것으로 생각한다.
겨울방학 여름방학을 이용한 농촌진료 활동은 농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의료 부문은 예외가 아닌 것이다. 도시 집중화된 의료시설, 의료 인적자원의 도시 편중화는 현재의 사적의료 제도하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농촌 진료 활동은 일주일 정도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그 때 접한 농촌의 생활 상태나 의료 실태로 농민들에 대한 애정을 키울 수 있고, 자신의 행로를 그들과 함께 하리라는 결단이 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

무작정 시골에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서 마지막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농촌 벽오지에서 보건진료원으로 활동하시는 선배님들을 방문해 보았다. 진단하고 그에 따른 간단한 처치를 행하고, 운영위원회를 조직하여 마을의 건강을 도모하고 마을 건강 요원을 훈련하는 등의 일을 해낸다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졸업과 동시에 그 일에 달려들었다는 선배 분의 용기는 놀랍고 감탄스러웠다
.
지금껏 배운 4년동안의 지식과 기술이 점점 쪼그라드는 듯한 느낌과 어리고 젊은 여자가, 시골에서 살아가야 할때 받을 부담도 무거운 짐으로 나를 짓눌렀다. 여하튼 나는 좀 더 숙련되고 배우고 더 나이가 들어야겠구나란 생각이 들게 되었다.

●- 톱니바퀴의 갈등들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서로 알아주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나갈 수 있어야 우리는 서로 바로 서게 된다.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들을 알게 됐고, 나를 도구로 쓰일 수 있도록 하려면 좀 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병원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전적인 책임을 지고 스스로 판단하는 홀로 선 사회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흐름속에 내가 같이 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분 속에서 잘 돌아가기만을 요구받는 기계 부품처럼 취급되고 내가 하는 일, 간호란 행위 자체도 인간이 만나고 그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교류가 아니라 생산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처럼 보아주는 여러 상황들이 견디기가 어려웠다.

8시간 맡은 근무를 끝내면 몰려오는 육체적 피로, 때로는 쓸떼없이 무시를 당하며 받은 상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하는 회의, 왜곡되어 나타나는 비인간적인 모습들에 대한 분노들이 커다란 파도가 되어 나를 몰아쳤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엷어지고 열심히 부르짖던 인간에 대한 사랑도 의미를 잃게 되어질 위기가 닥쳤다. 그 모든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닌 듯 보여졌다.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응급실에서의 근무는 사람을 황폐화시키기에 안성맞춤이다.
출근 전부터 다지고 또 다진다.

"오늘은 좀 더 잘 해야지, 좀 더 조용히 말하고 웃으면서 천천히 잘 설명드리고 친절한 느낌을 갖도록 해야지" 캡을 쓰면서 각오를 새로이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장바닥 같아지는 응급실 상황은 그런 다짐과 각오를 삼켜버리고 만다. 다그쳐 묻게 되고 사소한 것으로 판단되는 물음에는 눈길을 거둬버리게 된다. 바쁜 회오리 바람이 몰려가고 나면 '스스로 인간 수련을 하기에는 멀고도 멀었구나'하는 좌절과 함께 미운 사람들만 더 많이 생겨난다.

참다운 기쁨이 사라진 생활이 흘러갔다. 그러던 중 한 선배님의 조언이 퍽 오래 생각이 난다. 예수님이 지나가면 자신이 누구라고 밝히기도 전에, 사람들이 그를 '주여!'라고 말했었다는 얘기이다. "환자들이 너를 볼 때 '아! 나를 잘 돌봐주겠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봐라"는 말은 그 당시엔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그러한 노력이 환자를 대할 때마다 겸손한 자세와 성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주었다.

간호를 행하거나 제공받는 사람들을 황폐케하는 것은 단지 개개인의 성숙하지 못한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외적인 여건들에 원인이 있기도 하다. 건강과 돈이 직결되는 문제, 의료 전달 체계 등의 미정비로 인한 종합병원에로의 홍수 현상 등등. 국민의 건강에 대해 염려하고 그를 향상시킬 의도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응급실에서 만나는 모습은 그 모든 문제가 낳은 결과들이 뒤섞인 채, 서로서로 할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가 오게 되어 응급조처를 취하고 잠시 안정된 순간이 오면, 보호자나 환자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다. 많은 경우에는 그냥 그대로 지켜 보기만 할 뿐이지만.

치료는 의사 혼자 단독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의료를 제공하는 의사 간호사 약사 등 의료진뿐만 아니라 의료를 제공받는 환자와 보호자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 작업이다. 그렇게 될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간호가 행해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건강을 논하려면 일단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난 중류급 정도에서나 가능한 듯한 분위기다. 먹고 살기 다급한 때에 건강은 사치스런 품목으로 내몰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풍토는 하루 빨리 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국민이 있는 나라가 건강한 나라다. 이를 위한 작업은 오늘의 교육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입시 위주로만 치닫는 교육은 보건 교육을 무시한다. 무슨 박사라하여도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무식한 상태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이는 부끄러운 일로 생각되어져야 한다.

어떠한 치료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를 같이 의논할 수 있어야 하고 어떤 위험부담도 같이 느낄 수있어야 한다. 의료진에게 내맡긴 채, 신처럼 잘해주기를 원하다가, 그렇지 않은 결과가 나올때엔 모든 책임을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의료진에게 전가하려 한다.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서로 알아주고 그속에서 서로 최선을 다해나갈 수 있어야 우리는 서로 바로 설 수 있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자신들의 건강에 대한 바른 요구가 생겨나고 우리를 불건강에 빠뜨리는 여러 환경과 제도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 수 있고 깨뜨릴 수 있게 된다고 본다.

●- 민주화속에서의 새로운 만남들

5년이란 시간동안 만났던 사람들에는 그동안 돌보던 환자, 그리고 같이 협력하면서 때론 부대끼면서 일한 의사, 그리고 종합병원이란 큰 몸집속에 80여개가 넘는 직종에서 묵묵히 일하는 3천여명의 동료들이 있었다.

병원은 내가 필요한 능력을 배양받아 떠날 곳으로 잠시 머물다가 가는 곳이란 처음 생각과 달리 이곳에서 일하는 많은 동료들도 나의 소중한 이웃이라는 깨달음은, 87년 사회적으로 민주화가 물결칠 때 새로운 차원에서 제기되었다. 그동안 인간의 생명을 돌본다는 이유가 하나의 멍에가 되어 그속에서 일하던 많은 간호사의 노동력의 댓가가 깎이우고 반민주적인 요소가 내재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우리 간호사만 그런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어쩌면 특수한 조건에서 근무하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여건 속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혹자들은 간호직은 전문직인데, 왜 노동조합을 하고 직급이 낮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느냐고 말한다. 전문인과 노동자는 서로 대립 개념이 아니라, 단지 그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 전문인의 상대 개념은 비전문인, 노동자의 상대 개념은 자본가일 따름이라고 생각한다.

질적으로 보다 더 나은 간호를 행하기 위한 근무 여건의 마련과 처우개선을 위하여, 또 다른 어떤 곳에서 행해질 확장된 의미의 간호를 유보시키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이 곳에서부터 펼쳐나간다는 생각으로 노동조합활동에 의미를 부여한다.

많은 올바른 의료 단체들도 생겨나고 각성된 의료인의 실천들이 구체화해 가는 현실로 볼 때, 모두가 누릴 건강의 그날은 멀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 흐름 속에 녹아나는 한 점으로 오늘을 살아갔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해보자.

198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함은옥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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