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가 없어도 한 개체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발상을 현실화시키는 생명복제기술의 급진전은 매우 충격적이다. 이 때문에 복제인간 탄생을 눈앞에 둔 현재 윤리적 물음과 처방, 법적 문제점에 대한 논의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생명공학기술은 실험실에서 연구자가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사적 영역이 아닌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 강조되는 공적 영역으로 변화했다. 과학자도 이에 따라 변화하는 시대적 요청을 받아들여야 한다. 법적 관점에서 복제인간이 우리사회에 등장했을 때 과연 어떤 문제를 겪을지 살펴보자.
모든 인간은 태어나는 동시에 가족을 갖게 된다. 그러나 복제인간은 이런 친족의 개념부터 적용시키기가 쉽지 않다. 복제된 인간과 원본인 체세포 제공자 사이에 나이의 차이가 다양하기 때문에 혼란이 야기된다. 예를 들어 복제인간과 원본이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는다면 유전적 쌍둥이인 이들을 형제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차가 크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더 어울린다.
어머니는 과연 누구인가
복제인간은 탄생 과정상 반드시 유전적 부모, 낳아준 부모, 길러준 부모를 갖는다. 여기서 유전적 부모는 체세포나 난자를 제공한 사람이고, 낳아준 부모는 대리모이며, 길러준 부모는 복제인간을 기른 사람으로 의뢰인이 될 것이다. 이 가운데서 과연 누구를 복제인간의 부모로 인정해야 할 것인지는 현행 법률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복지적인 관점에서 아이의 양육을 맡을 어머니의 경우는 수유의 준비가 돼 있으며, 생물학적·정서적으로 밀착한 관계에 있는 대리모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경우 실제 기를 부모, 즉 의뢰인은 법적 절차에 따라 아이를 자신에게 입양해야 할 것이다. 입양은 대리모 계약의 효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출산 이후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타당하다. 일반적인 대리모와 똑같은 관계를 복제인간에게도 적용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독신 여성이 자신의 난자에 자신의 체세포 핵을 넣어 자신의 자궁에서 키우면, 복제인간은 오직 그 여성 한사람만 부모로 갖게 된다. 복제아이는 고의적이면서도 계획적으로 편부모가정의 아이로 자라도록 유도된 것이다. 어머니만 갖는 복제아이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욕구를 버릴 수 없을 수 있다. 이 경우 생물학적인 쌍둥이 언니인 어머니의 아버지를 자신의 아버지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복제인간의 가족관계를 결정할 때 더욱 어려운 것은 상속과 직접 연결돼 상당한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복제인간의 원본인 체세포 제공자가 ‘나의 모든 재산을 자식들에게 남긴다’고 유언장을 작성하고 사망했다고 생각해보자. 복제인간을 그의 상속인으로 볼 수 있을까. 유언장 없이 사망한다면 복제인간이 다른 자식들과의 관계에서 형제자매의 지위를 가질 수 있을까.
더욱이 체세포 제공자가 부인과 공동으로 유언장을 남겨 상속하는 경우는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부인과 복제인간의 친족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만약 제공자가 사망한 후 그의 부인이 복제인간을 자기 자식이라는 사실을 거부한다면 법원에서 이것을 인정해야 할까.
최근 판례에서는 제3자의 정자를 이용해 인공수정으로 출생한 아이에게 인공수정 방법을 동의했던 아버지와의 친생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판례의 입장에 따르면 복제인간과 체세포 제공자의 부인 사이에는 친자관계가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복제인간이 받는 상처
복제기술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는 인격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받을 가능성이 있다. 복제인간은 ‘낳는 것’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독립적인 도덕적 존재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해 복제인간이 받을 심리적 상처는 상당하다.
또 복제인간이 체세포 제공자와 유전적으로 일치한다는 사실은 복제인간에게 커다란 정신적 부담이 된다. 유전적 출발점이 같기 때문에 체세포 제공자의 경력은 복제인간의 업적과 가치를 평가하는 일종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복제인간이 만약 체세포 제공자가 이룩한 사회적 성취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그는 사회적 무력감이나 열등감을 느낄 위험이 크다.
그리고 복제인간은 능동적으로 미래의 삶을 개척하기 힘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체세포 제공자가 유전적으로 신체적 결함 내지 정신적 결함을 갖고 있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자신의 비극적인 미래를 알게 된 복제인간은 두려움으로 인해 무기력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복제인간은 기술적인 잘못으로 인해 신체의 기형이나 발달장애를 갖기 쉽다. 복제기술과 같이 실험적이고 잠재적으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기술의 정당성은 전적으로 복제를 수행하는 사람에 달려있다.
하지만 복제는 필연적으로 아이에게 치명적인 결함을 초래할 수 있는 신기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정당성이 증명되기 어렵다. 이런 상태에서 복제수정란을 만들고 자궁에 이식하고 착상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사소한 주의의 소홀이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과학자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기형출산으로 신체의 완전성을 침해받은 복제인간은 과학자에게 불법행위책임에 따라 손해배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미국의 국가윤리자문위원회(NBAC)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복제를 금지해야 하는 이유가 이 기술을 사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안전성 문제에 대한 보편적 우려에 기초한다고 밝히고 있다. 복제인간을 만드는데 찬성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더라도 의료윤리와 정치철학의 근본원리인 ‘일차적으로 해악을 주지 말라’는 명령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시점에서는 체세포 복제에 의해 창조되는 아이들이 받는 신체적 완전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은 그 기술의 사용으로 가져오는 이득을 능가하고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본질적으로 비윤리적인 행위
복제인간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우생학으로 향한 문을 연다. 일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마치 인격이 아닌 물체인 것처럼 조작하려는 유혹에 빠지면서 인간 존엄성을 비롯한 중요한 사회가치를 파괴할 것이란 얘기다.
사실 우생학적 프로그램에 의해 인간을 개량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특질과 특성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유전자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가 그처럼 성공적이고 가치있는 삶과 관련된 능력과 단순히 연결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복제연구자는 마음 속에 개량하거나 조작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쉽지 않다.
복제기술을 이용해 누군가 출생할 아이의 유전자 구성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행위는 복제인간에 대한 일종의 대상화 내지 상품화를 가져온다. 대상화는 복제인간을 하나의 물건, 즉 도덕적 능력에 대해 존경받을 자격이 없는 피조물로 대우하는 것이다. 상품화는 사람을 시장에서 교환 또는 매매할 수 있는 물건처럼 대우하는 것이다. ‘인격’은 사람들의 욕구와 기대에 따라 조작되는 ‘대상’과 다르다는 점에서 복제인간은 사회적 기본가치를 파기할 수 있는 해악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복제인간이 탄생했다고 해서 인간복제 행위가 허용된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복제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증명된 후에는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옳지 않기 때문에 행하지 말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본격적으로 찾아야 한다.
비자연적인 과정을 통해서 인간을 복제하는 행위는 개인의 열린 미래에 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인간은 열려진 존재이고 스스로를 구성해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복제인간은 체세포 제공자와 완전히 일치하는 동일한 인간으로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복제인간을 만들어냄으로써 의도하는 인간을 생산한다는 연구자의 태도는 인간이 열려진 존재라는 사실, 즉 인간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접근방법이고 더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헌법상으로 보장돼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체화하는 내용으로 거론되는 것은 최소한의 개인성의 존중이다. 여기서 개인성은 인간을 본질적으로 혼동되거나 교환할 수 없는 존재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생학적 목적의 인간복제 행위는 개인성의 존중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유전적 속박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한편 인간복제는 인간사회와 가족, 그리고 복제에 의해 태어나는 아이에게 신체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인간복제를 인간에게 시도하는 것은 난자제공자에게는 호르몬 자극의 위험을, 산모에게는 여러번 유산의 위험을, 태어나게 될 아이에게는 심각한 발달장애의 위험을 안겨준다.
복제된 인간배아를 자궁 안에 이식하는 실험은 그것의 성공 여부를 모르는 가운데 진행될 수밖에 없다. 복제실험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더욱이 그런 실험이 아이에게 기형을 유발하거나 불구로 만들 수 있고, 발달장애를 가져올 수도 있다. 본질적으로 비윤리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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