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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가 되기까지 위튼 교수가 걸어온 길

위튼 교수는 이론물리학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물리학을 공부하기로 마음을 굳힌 건 22세였습니다. 그는 2023년 함부르크 이론물리학상 수상 인터뷰에서 ‘내 인생은 이리저리 움직였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신하지 못했다’며, ‘많은 사람이 이런 방황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됐다고 말해주길 기대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털어놓았어요.

 

위튼 교수는 1951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중력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연구하는 이론물리학자 루이스 위튼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의 어렸을 적 꿈은 천문학자였습니다. 1950년대에는 미국과 소련 간의 우주 경쟁이 심했을 때라 모두가 우주에 관심을 가졌고, 위튼 교수도 그중 한 명이었지요. 9세에는 간이 망원경을 이용해 토성의 고리를 관찰했습니다.

 

이후 천문학에서 수학으로 관심이 옮겨가는데요. 11세 무렵 위튼 교수의 아버지가 그에게 미적분학을 소개하고, 이에 관한 수학책을 선물로 줍니다. 이를 계기로 위튼 교수는 수학에 열정을 쏟지만, 아버지가 미적분학 이상의 수학을 가르쳐주지 않아 수학에 관한 관심은 점차 시들해지지요.

 

놀랍게도 위튼 교수는 미국 브랜다이스대학교를 역사학 전공, 언어학 부전공으로 졸업합니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아 1972년 미국 정치가 조지 맥거번의 대통령 선거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지요. 1973년 21세가 된 위튼 교수는 돌연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 응용수학과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꿨어요.

 

이론물리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물리학의 길을 걷기 시작한 위튼 교수는 지금까지 50년을 쉼 없이 그 길로 걸어왔습니다. 그는 “어떤 것에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것은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물리학자로 진로를 정한 뒤부터는 물리학이나 수학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며, “물리학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어요. 돌고 돌아왔지만 결국 자신에게 꼭 맞는 길을 찾은 겁니다.

 

_ 인터뷰

젊은 물리학자가 기억하는 위튼 교수

서선옥 KAIST 물리학과 교수

 

 

교수님은 옳은 것을 하려는 정의감이 강하시고, 후학을 지원하는 데에도 후하신 분이세요. 교수님의 제자들이 곳곳에서 업적을 쌓고 현재는 학자로 자리잡았어요. 제가 위튼 교수님을 처음 만난 건 2014년 대학원생으로서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세미나를 했을 때였어요.

 

그 이후로 간간이 뵙다가 2022, 2023년도에 고등연구소와 프린스턴대 방문 연구원으로 초대해주셔서 더 깊게 인연을 맺었어요. 2021년 가을에 제가 낸 논문에 관해서 고등연구소에서 주최하는 온라인 세미나를 했었고, 위튼 교수님이 참여하셨어요. 이후 교수님은 후안 말다세나 고등연구소 교수님과 상의한 뒤 논문의 내용이 더 중요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프린스턴으로 불러주셨지요.

 

2022년 가을, 제가 고등연구소에 도착하자마자 교수님이 연구실로 저를 불러서 진행 중인 연구에 관해 물어보고, 되도록 빨리 이전 논문의 후속 연구를 진행해 논문을 내면 제게 좋을 거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교수님의 재촉에 한편으론 부담을 느끼기도 했지만, 격려해주신 것이 매우 감사했습니다. 사실 현재도 그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인데, 교수님의 응원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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