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세 전까지 고난의 연속
“이탕 장이 누구야?”
장 교수가 2013년 4월 수학계 최고 학술지인 <;수학연보>;에 논문을 발표하자 수학계가 술렁였다. 세상에 나온 지 170년이 훌쩍 넘은 난제 ‘쌍둥이 소수 추측(연속한 두 소수의 간격이 2인 소수쌍이 무한히 많다는 추측)’에서 괄목할 만한 결과를 냈을 뿐 아니라 당시 장 교수는 무명의 수학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나이가 58세로 적지 않은 나이였고, 오랫동안 생활고에 시달렸음에도 수학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연이 알려지며 단숨에 스타 수학자로 떠올랐다.
1955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장 교수는 그저 수학을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10살 무렵 그의 부모가 일 때문에 북경으로 떠나면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고, 급기야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며 학교가 문을 닫았다. 결국 그 영향으로 15살 때 어머니와 시골 농장으로 끌려가 일을 했다. 이때 틈틈이 장 교수는 수학, 역사 등의 책을 읽었다.
1976년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그는 마음속에 품어왔던 수학자란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북경의 한 자물쇠 공장에서 일하며 입시를 준비했고 23살에 드디어 북경대학교 수학과에 진학했다. 29세에 같은 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퍼듀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꿈을 이뤄가는 듯했으나 퍼듀대를 졸업한 뒤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무려 7년 동안 연구가 가능한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곳곳을 전전하며 샌드위치 가게, 숙박 업소, 레스토랑 등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집세를 내지 못해 한동안 친구의 차에서 지낸 적도 있다. 2015년 <;콴타매거진>;에 장 교수는 “내 성격이 조용하고 나를 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운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런 와중에 일하지 않는 시간엔 항상 도서관에 가서 대수기하학과 정수론 학술지를 읽었다.
58세에 이룬 수학 결실
그러다 그가 44살이던 1999년 미국 뉴햄프셔대학교에서 수학 강사로 겨우 취직한다. 이곳에서 미적분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수업과 관련된 시간이 아닐 때엔 계속 정수론 연구에 매진했다. 2010년부터 여러 정수론 문제 중 쌍둥이 소수 추측에 집중하다가 2012년 친구 집에서 머물던 중 문득 문제를 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고, 2013년 그 유명한 쌍둥이 소수 추측 관련 논문을 <;수학연보>;에 발표했다.
쌍둥이 소수 추측에 대한 논문은 2005년 이후로 한 건도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문제가 어렵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수학연보>;는 오랜만에 관련 연구가 나오자 이례적으로 장 교수의 논문을 3개월 만에 검증해 실었다. 보통 검증은 세계적인 수학자 여러 명이 달려들어 논문에 쓰인 논증 하나하나의 의미를 해석하고 다시 증명하며 이뤄지기 때문에 검증 기간은 최소 1년에서 몇 년이 걸린다.
하지만 장 교수의 논문은 워낙 잘 쓰여졌고 당시 큰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검증 기간이 짧았다. 당시 논문을 검증한 그랜빌 교수는 <;수학동아>;에 “장 교수 논문은 유난히 명료하게 쓰여 있어서 논증을 쉽게 따라갈 수 있었고, 오류조차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내가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수많은 연습 없이는 쓸 수 없는 어려운 도구를 이용해 훌륭한 논문을 냈다는 점에 크게 놀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장 교수는 내로라하는 각종 수학 상을 휩쓸었다. 뉴햄프셔대에서 정교수로 바로 승진했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초청 강연했다. 수많은 학교에서 ‘우리 학교로 와달라’라는 요청을 받아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바바라로 자리를 옮겼다.
이윤복 인천대학교 수학과 교수는 “나이, 이력, 국적 등 모든 면에서 장 교수는 수학자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에 대한 기존 편견을 깨는 수학자”라면서, “누구나 언제든 어떤 조건에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수학자”라고 설명했다.
용어 설명
*문화대혁명 : 중국에서 1966부터 1976년까지 자본주의적인 사상과 문화를 몰아내자며 벌어진 사회주의 운동이다. 이로 인해 많은 중국의 유적지가 파괴됐고 도시에 사는 청년들을 농촌으로 보내 육체 노동을 시킴으로써 사상을 개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