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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정보로 과거의 사건을 재구성 하라

드디어 마지막 미션! 수집된 정보로 당시 아라가야의 정치, 경제, 사회의 모습을 추정해보는 겁니다. 유적들의 위치 정보와 속성 정보를 합쳐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공간통계’를 이용해 아라가야의 비밀을 파헤치세요!

 


1. 아라가야에는 막강한 영향력을 떨치는 정치가가 있었다?

강동석 문화재청 고고연구실 학예연구관은 비용- 배분 분석을 이용해 아라가야의 정치 체계를 추정했어요. 분석 결과 아라가야인은 말이산고분군을 중심 으로 몇몇 지역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어요.
과거 작은 공동체가 여럿 모여있는 경우, 공동체 사이에 경쟁이 심했거나 반대로 아주 친밀하게 교류했 는데요, 다른 고분보다 월등히 크기가 큰 말이산고분군을 봤을 때 강한 정치가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공 동체들은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사이였 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 아라가야 시대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아라가야 고분군의 면적을 히스토그램으로 표현하자, 소, 중, 대형 규모의 고분군 사이의 격차가 매 우 심했습니다. 아라가야 전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면서 사람 수가 늘어나고, 고분군의 수와 고분군이 차지하는 공간도 함께 늘어났죠. 공간은 한정적이고, 수는 늘 어나다 보니 돈이 있고 신분이 높은 사람은 더 크게, 없는 사람은 더 작게 고분을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라가야 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난 거죠.

 

 

 

3. 소수의 큰 마을들이 생겨났다

 

아라가야 후기의 고분군 분포를 커널 밀도추정해 보면 전기에 비해 고분의 수는 늘었지만, 분포 패턴은 거의 비슷합니다. 특히 고분이 몰려있는 지점이 동일합니다. 마을의 수가 늘어난 게 아니라 특정 마을의 크기가 커지고 사람이 집중됐다는 의미입니다.

 

 

4. 권력을 가진 자가 중심을 꿰찼다

 

아라가야의 전기와 후기 고분을 네트워크 분석하니 두 시기의 네트워크 중심성이 매우 유사했습니다. 특히 말이산고분군과 왕의 성이 있었던 걸로 추정되는 ‘추정왕성지’에서 네트워크 중심성이 매우 높게 나타났습니다. 즉 시대가 바뀌어도 네트워크 중심성은 변하지 않았고, 그만큼 강력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최상위 중심지의 지리적인 이점이 크게 작용한 겁니다.

 

모든 스테이지가 끝났습니다. 2000여 년 전의 모습을 엿보고 온 기분이 어떤가요? 간단한 수학만으로 이 모든 게 가능하다니 정말 신기하죠? 곧 더 재미있는 미션을 가지고 돌아올게요. 그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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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2월 수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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