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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이다.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과학기술 분야 대표 공약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내세웠다. 골자는 국내 과학계의 염원이었던 기초과학의 육성이었다. 제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전담 연구기관을 설립하고, 대형 실험 시설도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2008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계획도 진행됐다. 독창적인 결과를 낼 핵심 연구 시설로 중이온가속기(당시 명칭 ‘KoRIA’)가 낙점됐다. 당시 예산으로 4600억 원이 투입되는 ‘Big Science(거대과학)’였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는 ‘단군 이래 최대 기초과학 진흥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었다.


막상 추진은 지지부진했다. 정치권에서 굵직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볼모로 잡혔다. 관련 법안이 통과되는 데만 2년여가 걸렸다. 이후에도 여러 번 암초를 만났다. 그러는 사이 대통령이 두 번 바뀌었다. 중이온가속기 사업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는 동안 완공 일정은 2016년에서 2021년으로 5년 미뤄졌다.


기초과학 연구개발(R&D) 투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부침이 있다. 특히 가속기와 같은 거대과학 프로젝트는 늘 명분에 시달린다. 가속기 강국 미국도 1983년 세계 최대 원형 입자가속기인 ‘초전도 슈퍼콜라이더(SSC)’ 건설을 추진하다가 막대한 건설비용에 발목이 잡혀 10년 뒤 계획이 폐기됐다.

 

현존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이자 2012년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를 발견하며 유명세를 탄 유럽의 ‘강입자가속기(LHC)’는 1984년 처음 구상을 시작한 이후 1998년에야 첫 삽을 떴다. 완공까지는 10년이 걸렸다. 그 사이 여러 번 중단 위험이 있었다.

 

6월 지방선거 동시 개헌은 무산됐지만, 개헌을 통해 과학계가 담고 싶은 내용은 하나다. 과학기술의 목적이 단지 ‘먹거리 창출’ 또는 경제 발전의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 특히 기초과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비밀의 끄트머리를 더듬어 찾아가는 길이다. 표를 얻기 위한 수단은 더욱 아니다.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이 사업 구상 10년 만에 얼마 전 본격적으로 구축에 들어갔다. 땅을 파고, 가속관이 들어갈 콘크리트 터널을 놓으며 국내 기초과학의 터전을 하나씩 올리고 있다. 빛처럼 빠르게 움직이지만, 비밀의 껍질을 한 꺼풀 벗기는 일은 한 없이 오래 걸린다. 빨리빨리 서두르다 망친 일들이 수두룩하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이제 기다림의 가치를 품을 때가 됐다.

 

201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편집장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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