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8일 교육부는 수능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개정안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부터 적용되는 것으로, 현재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대상입니다. 이번 개정안이 발표되자 이공계는 반발했습니다. 교육부가 수리 ‘가’형의 출제 범위에서 기하 영역을 통째로 제외했기 때문입니다. 교육부는 “기하를 모든 이공계의 필수과목으로 보기는 곤란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교육부에서 수능 개정안을 공식 발표하고 나자, 올해도 어김없이 시끄러웠습니다. 수능을 치러야 할 학생들에게는 교육부의 발표가 입시와 직결되는 민감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수학 영역 수능 출제 범위를 줄이고 있어 이 문제에 대해 늘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요, 이번 개정안을 발표한 뒤에는 이공계에서 성명서를 내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이미 2017학년도 수능에서 기하와 벡터 과목의 일차변환과 행렬이 출제 범위에서 제외됐었는데, 2021 수능에서 기하 과목을 통째로 빼버렸기 때문입니다. 한 단원이 아니라 과목 전체를 뺐으니 이번 일은 어느 때보다 충격적입니다. 더욱이 기하는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 중 하나이자, 기본적인 과목입니다.
인류와 함께한 기하의 인생
기하란 쉽게 말해 도형과 공간에 대해 배우는 학문입니다. 기하의 영어 단어인 ‘geometry’는 그리스어로 땅을 뜻하는 ‘geo’와 측정을 뜻하는 ‘metron’이 합쳐져 생겼습니다. 시각적인 모든 것과 공간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하라고 할 수 있지요.
기하는 늘 인류와 함께 했습니다. 문명이 태동할 때부터 기하의 도움이 필요했으니까요. 특정 지역에 정착해 집을 짓고 살 때부터 농경생활에 필요한 날씨와 시간 예측까지 기하가 쓰이지 않는 곳은 없었습니다. 이후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 기하는 공간의 성질, 모양과 크기, 물체의 상대적 위치를 연구하는 정교한 학문으로 발전했습니다.
기원전 387년경 철학자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 근처에 ‘아카데미아’ 학당을 만들었습니다. 아카데미아 학당은 오늘날의 대학교와 비슷한 기관으로, 플라톤은 여기서 그리스 청년에게 산술, 기하학, 천문학 그리고 철학을 가르쳤지요. 이때 플라톤이 학당 입구에 써 놓았다던 글귀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으로 들어오지 말라’.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잘 알려진 플라톤이 기하를 중요하게 생각한 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기하학이 어떤 학문에서든 필수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 기하학은 수학이나 공학 외에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합니다. 경제문제나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기하학적 사고가 필요하며, 법률을 다룰 때도 기하학적인 논증 방법이 필요하기 마련이지요.
숨길 수 없는 기하의 능력
이렇게 중요한 기초 학문인 기하가 시험장 밖으로 쫓겨나다니요. 당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학교에서 완전히 배우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수능 수학 영역 출제범위에서 제외했으니 학생들의 관심도 뚝 떨어질 게 염려되는 것이지요.
최근에는 드론, 자율주행차 무인이동 기술이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로 뽑혔습니다. 이 기술 발전에 기하학 원리는 빠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3차원 공간을 다루는 공간좌표와 공간도형이 수능 출제 범위에서 빠졌습니다.
이런 수학이 산업기술에 어떻게 쓰이냐고요? 예를 들어 하늘에서 나는 드론을 어떻게 움직이게 만들지 생각해 봅시다. 이때 공중에 띄울 드론의 수와 위치를 결정하기 위해 드론들이 언제, 어디에 있어야 할지 계산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 드론이 움직일 경로를 공식으로 만들어 프로그래밍하면, 저절로 움직입니다. 날아다니는 물체는 x축, y축, z축을 기준으로 회전하는 삼차원 운동을 하기 때문에 기하학적인 분석을 토대로 설계해야 안정적으로 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공간에서 물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물체의 움직임을 3차원 좌표축 위에 나타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3차원 공간에서 기하학이 이용되지 않는 곳은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미래에는 기하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고요.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