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교육원이라고 하면 특별한 아이들의 한 재능을 더욱 발전시키는 교육기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화·서대문영재교육센터는 조금 달랐다. 수학논술반에 입학했던 학생이 1년 뒤에 인문사회반에 재입학하는가 하면, 과학탐구반 학생이 독서논술 과제를 낸다. 어떻게 된 걸까?
“저희는 사사과정이나 심화 과정을 따로 두지 않습니다.”
이화·서대문영재교육센터 연구원 황신영 박사의 영재교육센터 소개는 이렇게 시작했다. 사사과정은 담당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직접 연구를 해 볼 수 있는 심화교육 과정이다. 1년 프로그램을 마친 뒤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사사과정을 운영하는 영재교육원이 많은데, 이화·서대문영재교육센터는 이런 심화 단계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사사반이 있을 거라 짐작했던 기자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자 황 박사는 익숙하다는 듯 “학부모들도 사사반을 만들어달라고 많이 요청하지만 저희는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심화 과정을 만들어달라는 학부모의 요청에도 기존 방식을 지키는 것은 이화·서대문영재교육센터만의 교육철학 때문이다. ‘더 많은 아이가 기존 학교 교육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재능을 찾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이곳의 기본 목표다.이화·서대문영재교육센터는 아직 다양한 학문을 접해보지 않은 어린 학생이 특정 분야의 영재라는 틀에 갇히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같은 영역은 재입학이 불가능하지만 다른 영역에 지원하면 얼마든지 다음 해에 재입학이 가능하다. 한 반에서만 오래 배우기보단 여러 경험을 쌓으면서 학생이 진짜 자신에게 맞는 재능을 찾을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 다른 과목보다 과학을 더 잘한다고 과학에 가장 뛰어난 영재라고 단정할 순 없어요. 우수한 아이라고 너무 빨리 대학 수준의 과학이나 수학을 가르치는 것은 발달과정에 맞지 않는 교육법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선행학습보다는 수학, 과학, 인문 분야에 재미를 느끼고 일상생활에 연결시킬 수 있는 수업에 집중합니다.”
황 박사는 이화·서대문영재교육센터가 사범대학 부설로 발달과정에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이 다른 영재교육원과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인성과 리더십이 가장 중요해
발달과정을 고려하기 때문인지 이화·서대문영재교육센터는 선발 단계부터 교육 과정까지 ‘인성’을 매우 중시한다. 우수한 학생이더라도 인성이 바르지 않다고 판단하면 뽑지 않는다. 리더 한 명이 몇만 명을 이끌어가는 만큼 영재교육에 전문성 이상으로 인성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탐구반에서도 실험이나 이론 수업뿐 아니라 생명윤리나 과학사에 관한 토론 수업을 병행한다.
“전문 강사도 물론 있지만 주로 사범대 교수님과 현직 교사가 강의하기 때문에 이화·서대문영재교육센터의 수업은 교육학이 기본 바탕이 됩니다. 고급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바른 성장에 신경을 쓰며 커리큘럼을 만들고 있습니다.”
황 박사는 이화·서대문영재교육센터만의 또 다른 특징으로 자체 도서관을 꼽았다. 자체 도서관은 이화·서대문영재교육센터 내에서 운영하는 전용 도서관으로 학생과 교사가 모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학생들은 초·중학생용 과학전집과 영재원 지정도서를 볼 수 있고 교사는 영재교육학 관련 책과 각종 전공도서, DVD를 빌릴 수 있다. 황 박사는 빼곡히 채워진 독서 일기장을 펼쳐 보이며 “아이들이 자체 도서관을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증명하듯 서재는 듬성듬성 비어있었다.
인문사회반 아이들의 독서목록에 수학, 과학 책이 있는가 하면 수학논술반 아이들 독서목록에는 위인전이 있었다. 영역의 구분 없이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골라 읽게끔 하는 것도 여러 분야를 고루 접하길 바라는 이화·서대문영재교육센터의 교육방식과 닿아있다.
스펙 쌓기 대신 진짜 열의 늘어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영재교육원은 특목고에 진학하기 위한 ‘스펙’처럼 취급받았다. 영재교육원에 입학하기 위한 사교육이 성황이었고, 학생이 원해서 지원하기보다는 부모님 손에 이끌려 학원에서 답을 달달 외워온 지원자가 많았다. 그런데 교육정책이 바뀌면서 지원자에게도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예전엔 특목고에 입학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재교육원을 찾는 학생이 많았어요. 그런데 영재교육원이 입시에 실적으로 잘 반영이 되지 않자 오히려 학생 스스로 원해서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졌죠.”
또한 이화·서대문영재교육센터는 교사 추천, 학교장 추천으로 지원을 받던 방식에서 학생이 원하면 누구나 지원 가능한 방식으로 선발 절차를 바꿨다. 학교 단위로 추천하는 제도를 없애자 성적이 좋거나 특별한 수상 이력은 없어도 높은 잠재력을 보이는 창의적인 학생이 늘어났다. 황 박사는 “선생님의 기준에서 ‘똑똑한’ 학생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면접 때 톡톡 튀는 창의성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며 “진짜 자기가 좋아서 오는 친구가 늘자 수업 분위기도 더 좋아졌다”고 귀띔했다.
소수의 천재를 키우기보다 더 많은 학생이 자기 안에 숨어있는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이화·서대문영재교육센터는 서대문구에 살고 관내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수학논술반, 과학탐구반, 인문사회반 모두 알차게 챙겨 듣고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분야를 시험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