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이었어요. 모태솔로인 오빠를 영화관에 혼자 보낼 수 없어 제가 따라나서 줬죠. 영화표를 끊고 화장실에 갔는데, 여성화장실만 사람이 바글바글한 거예요. 방광은 터질 것 같고 영화 시간은 다가오는데 오빠는 그새 볼일을 보고 나오더라고요. 그리고는 앞 장면 놓치겠다고 어찌나 닦달을 하는지! 도대체 왜 여성화장실만 붐비나요?
그 극장, 모르긴 몰라도 여성화장실과 남성화장실을 똑같은 면적으로 만들었거나 변기 수를 똑같이 나눠준 모양이네. 두 화장실을 같은 넓이로 만들면 남성화장실 변기가 더 많아. 소변기는 공간을 덜 차지하거든. 서울시의 남녀공학 초·중등학교의 변기 수도 남성화장실이 여성화장실보다 1.3배 더 많지.
변기 수가 똑같아도 공평하다고 하긴 어려워. 대변기에 앉았다 나오려면 문을 열고 닫고, 옷을 벗고 입느라 할일이 많으니까. 행정안전부가 2009년에 했던 실태조사에서도 여성이 변기를 사용하는 시간은 평균 2분 31초로, 1분 21초인 남성보다 길었어.
붐빌 땐 한 칸만 줄여도 비상사태
2017년 7월, 벨기에 겐트대학교에서 ‘대기행렬이론’을 연구하는 바우터르 로히스트 교수팀이 화장실 분배법을 계산했어. 대기행렬이론은 20세기 초, 전화선이 부족해 전화교환원이 선을 연결할 때까지 기다려야 통화를 할 수 있던 때 전화선을 몇 개 설치해야 효율적인지 알기 위해 수학자 아그너 에어랑이 만든 이론이야.
교수팀은 에어랑이 구한 평균 대기 시간 공식을 이용하기로 했어. 그러려면 모든 변기가 가득차서 줄이 생겼을 때 새로운 대기자 수보다 나가는 사람이 많다고 가정해야 해. 전체 시간에서 오른쪽 식을 만족하는 거지. 반대라면 대기자는 계속 쌓이기만 할 테니 줄도 무한히 길어져서 평균 대기 시간은 무한대가 돼. 물론 전체 시간에서 아래 식을 만족해도 일시적으로 혼잡도가 1보다 커질 때가 있어.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지. 이때 길어진 줄은 사람이 뜸해지면 다시 짧아질 거야.
교수팀은 변기 수가 대기 시간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봤어. 그러려면 시간당 화장실을 찾는 사람 수와 그들이 화장실에 머무는 시간을 예측해야 해. 교수팀은 시간당 들어오는 사람 수는 푸아송 분포★를 따르며 평균은 7초당 1명이라고 가정했고, 이용 시간은 지수 분포★를 따르며 평균 1분이라고 가정했어. 이를 바탕으로 평균 대기 시간 공식에 값을 넣어 오른쪽 그래프를 그렸지.
푸아송 분포★
단위 시간 안에 어떤 사건이 몇 번 일어날지를 확률로 나타낸 것. 사람들이 완전히 무작위로 화장실을 찾을 때 방문자 수를 예측할 수 있다.
지수 분포★
화장실을 특정 시간만큼 이용할 확률이 얼마인지를 지수함수로 나타낸 것. 화장실을 찾는 사람 수가 푸아송 분포를 따르면 이용 시간은 지수 분포를 따른다.
그래프를 보면 변기 수를 14개에서 13개로 줄일 때 늘어나는 대기 시간의 양보다 11에서 10개로 줄일 때 늘어나는 대기 시간의 양이 커. 변기가 적을수록 한 개 줄어들 때 대기 시간이 더욱 많이 늘어나는 거지. 달리 말하면 대기 시간이 길수록 변기 개수가 대기 시간에 큰 영향을 끼치는 반면, 대기 시간이 짧으면 그렇지 않아. 그러니 남성화장실이 한산하다면 일부를 여성화장실에 떼어줘도 큰 문제는 안 되겠네.
어떻게 나눠야 공평할까?
그러면 남녀 변기 수를 몇 대 몇으로 해야 할까? 2006년에 우리나라는 공중화장실에서 여성화장실의 대변기가 남성화장실의 대·소변기보다 같거나 많아야 하며, 1000명 이상이 들어가는 공연장과 전시장은 여성화장실이 1.5배 이상 많아야 한다는 법률을 만들었어. 1.5가 합리적인지 로히스트 교수의 연구를 토대로 생각해보자.
로히스트 교수는 현실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 앞서 설명한 가정에 하나를 더했어. 사람들이 완전히 무작위로 화장실을 찾는 게 아니라 영화가 이제 막 끝났을 때처럼 특정 시간에 몰린다는 걸 고려한 거지. 그래서 평소에는 평균 10초에 1명씩 화장실을 찾지만, 전체 시간 동안 한 번 발생하는 혼잡한 시간에는 15분 간 평균 5초에 1명씩 화장실을 찾는다고 가정했어.
이를 바탕으로 교수팀은 총 넓이가 동일한 공중화장실을 같은 넓이로 나눌 때, 대기 시간이 공평하도록 나눌 때, 대기 시간 총합이 가장 짧도록 나눌 때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구했어. 결과는 아래와 같아. 법률이 정한 변기 수의 비율과 비교해봐. 넌 어떤 설계도가 맘에 드니?
사실 더 효율적이고 평등한 방법도 있어. 대변기를 남성과 여성이 함께 쓰는 거지. 그러면 남성화장실은 널널한 반면 여성화장실은 줄이 길게 늘어지는 상황은 생기지 않아.
오른쪽 그림➊은 대변기만 설치한 화장실로, 남녀 구별 없이 평균 대기 시간이 2분 10초야. 가장 공평한 모형이지. 그림➋은 소변기도 허용해서 평균 대기 시간의 총합이 최소가 되도록한 화장실이야. 소변기를 쓸 수 없는 여성의 평균 대기 시간은 1분 27초고, 남성은 58초지.
성중립화장실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런 화장실이 이상하게 느껴지니? 우리나라에서 공용화장실은 공간이 좁을 때 어쩔 수 없이 만드는 것이라 그럴 법도 해.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공용화장실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한 공포가 커지기도 했고.
그러나 유럽과 미국에서는 남녀 분리 화장실이 성소수자를 차별한다는 이유로 ‘성중립화장실’을 만들자는 여론이 있어. 대표적인 사례로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는 어디에 들어갈지 애매하니까. 그래서 스웨덴은 이미 전체 화장실의 70%가 성중립화장실이고, 미국도 백악관을 포함한 정부 기관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성중립화장실을 만들고 있어. 화장실을 잘 분배하려면 수학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고려도 필요하겠지.
트랜스젠더★ 육체적으로는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 여성이라고 생각하거나, 육체적으로는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이들 모두가 성전환수술을 받거나 원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