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파앗~!’ 머리가 삐쭉삐쭉 솟아있는 어느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손바닥에 기를 모아 에너지 형태의 공을 만들어 적을 공격한다. 적은 손바닥에 전기를 흘려 귀를 찌를 정도로 높은 소리가 나는 전기 덩어리를 만들어 대응한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처럼 불가능한 상상 속의 이야기에서 재미를 느낀다.

 

과학자도 절대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상상한다. 앞서 살펴본 이야기를 잘 생각해 보자. 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우주가 ‘하나’라고 가정하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떤 과학자들은 우주가 여러 개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우주의 모양은 어떨까?

 

우주가 여러 개라고 생각하는 이론을 ‘다중우주론’이라 한다. 놀랍게도, 물리학을 발전시킨 우주론이나 양자역학 같은 이론은 다중우주를 예견하고 있다. 김주한 고등과학원 거대수치계산연구센터 연구 교수는 “우주가 여러 개일 수 있다는 생각은 마치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우주가 여러 개라는 증거도 없지만, 아니라는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다중우주론이 있는데, 여기서는 우주론과 양자역학, 수학에서 나온 다중우주론을 소개한다.

 

우주는 하나뿐일까? 신기하게도 물리학을 발전시킨 여러 이론은 우주가 여러 개라고 예견하고 있다.

 

포도송이 우주


우주 탄생을 설명하는 ‘빅뱅 이론’은 우리 우주가 아주 작은 한 점에서 대폭발을 일으키며 생겨났다는 이론이다. 지금은 우주 탄생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특히 이론으로만 예측됐던 우주배경복사를 실제로 관측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날아온 우주배경복사가 모두 거의 같은 온도였던 것이다.

 

사람이 많이 모인 광장에 갔다고 하자. 사람들이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우연일까? 미리 이야기가 돼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드넓은 우주에서 각자 전혀 다른 방향에서 온 우주배경복사의 온도가 모두 똑같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주배경복사는 어떻게 정보를 서로 주고받았을까?

 

빅뱅 이론에 따르면 우주배경복사는 반드시 있어야 했지만, 우주배경복사의 온도가 어디서나 같다는 사실은 빅뱅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이는 앨런 구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 교수의 ‘급팽창 이론’으로 해결됐다. 우주가 태어난 직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팽창 했다는 이론이다. 빅뱅 이론에 이를 더하면 온도가 균일했던 초기우주가 순식간에 너무 커져버려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날아온 우주배경복사가 거의 같은 온도라는 게 설명된다.

 

그런데 급팽창 이론에 따르면 우주 공간의 다양한 지역에서 급팽창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다. 즉 우리 우주가 생겨난 것 같은 과정이 여기저기서 발생해 다른 우주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우주 공간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면 서로 떨어진 우주가 수없이 많은 포도송이 같은 모양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다.

 

 

무한히 갈라지는 우주


양자역학은 기존 이론으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았던 원자나 전자 같은 미시세계를 다루기 위해 20세기에 등장한 물리학의 한 분야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현상을 확률적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지우개와 입자가 방 안 어디에 있는지 묻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고전역학에서는 ‘지우개가 책상 위에 있다’처럼 명확하게 위치가 정해진다. 그런데 입자 정도의 아주 작은 크기가 되면 명확한 위치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책상 위에서도 발견되고 책상 아래에서도, 천장에서도 발견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를 여러 번 반복해서 관측하다 보면 뚜렷한 규칙이 나타난다. 입자가 22%의 확률로 책상 위, 67%의 확률로 책상 아래, 11%의 확률로 천장에서 발견되는 식이다. 그래서 입자가 ‘어느 위치에 있다’가 아니라 ‘어느 위치에 확률적으로 있다’고 해석한다.

 

이는 ‘코펜하겐 해석’으로 불리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양자역학의 해석이다. 양자역학이 탄생한 뒤 80년 동안 이 해석대로 예측한 값은 실험과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러나 관측하기 전까지는 입자가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어 수학적으로 엄밀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던 사람은 1954년 프린스턴대학교의 대학원생이었던 휴 에버렛 3세였다. 이런 허점을 없애려면 다중우주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다중세계해석’으로 불리는 에버렛의 아이디어는 앞서 말한 입자가 확률적으로 세 곳에 있는게 아니라 책상 위, 책상 아래, 천장 모두에 있다는 것이다. 방 문을 연 순간 세 가지 우주로 세계가 갈라지고, 우리는 그중 하나를 보게 된다. 즉 어떤 판단을 할 때마다 우주는 수없이 갈라지며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 이 해석에 따르면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생겨나고 있다.

 

 

수학으로 나타낼 수 있다면 실제로도 있다!


맥스 테그마크 MIT 물리학과 교수가 주장한 ‘수학적 우주’도 있다. 수학적으로 만들 수 있는 우주라면 어딘가에 그 실체가 있다는 가설이다. 관측을 통해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우주인 것이다. 실험이나 관측을 통해 얻어낸 과학 법칙들은 하나 같이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테그마크 교수는 이것을 거꾸로 생각했다.

 

테그마크 교수는 유별난 사람이다. 저서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에서는 1998년 원로교수에게서 받은 편지를 소개하고 있다. 편지는 테그마크의 논문이 엉터리이며, 이런 장난 같은 논문은 통과시킬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다름 아닌 수학적 우주에 관한 논문이었으나, 테그마크는 이대로 행동하면 다음 직장은 대학교의 물리학 연구실이 아니라 햄버거 가게의 점원이 될 것 같은 위협을 느꼈다.

 

그래서 ‘지킬 앤 하이드’ 전략을 쓰기로 한다. 누군가 무슨 연구를 하느냐 묻는다면 존경받는 지킬 박사로서 주류 우주론의 문제를 연구한다고 대답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동안은 하이드로서 수학적 우주를 연구한다. 그렇게 주류 논문 10편을 발표할 때마다 ‘괴짜 논문’ 1편을 쓰는 식으로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테그마크 교수가 과연 괴짜이기만 한 걸까? 이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겠지만, 중요한 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상상력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상력이 우리에게 새로운 통찰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김 교수는 “다중우주론은 논란이 많지만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증명될 수도 있고, 여기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과학적 발견이 있을 수 있다”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 다중우주론을 접하며 상상력을 기르고 꿈을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수학으로 펼친 상상, 우주는 어떻게 생겼을까?

Part 1. 아무도 모르는 우주의 모양

Part 2. 위상수학에서 찾은 우주의 모양

Part 3. 우주는 한 개가 아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7년 09호 수학동아 정보

  • 김경환 기자(dalgudot@donga.com)
  • 도움

    서검교(숙명여자대학교 수학과 교수), 김상현(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 김주한(고등과학원 거대수치계산연구센터 연구교수), 조희승(DGIST 융복합대학기초학부 교수), 송용선(한국천문연구원 이론천체연구센터 책임연구원), 홍성욱(한국천문연구원 대형망원경사업단 과학연구그룹 연구원) 참고 자료 이강환 ‘우주의 끝을 찾아서’, 이석영 ‘빅뱅 우주론 강의’, 조지 G. 슈피로 ‘푸앵카레가 묻고 페렐만이 답하다’, 맥스 테그마크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멀티 유니버스’
  • 일러스트

    김남희, 박장규

🎓️ 진로 추천

  • 물리학
  • 천문학
  • 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