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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천재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혼자 힘으로 멋지게 해결하면서 발전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영국의 저명한 수학자 앤드루 와일스가 약 350년 동안 난제였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남몰래 7년간 연구한 끝에 해결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수학자들은 오히려 와일스의 경우가 매우 특별한 사례라고 말한다. 수학은 전통적으로 여럿이 함께 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수학자의 독특한 연구 방식


이름을 아는 수학자를 떠올려 보자. 대개 블레즈 파스칼과 피에르 드 페르마, 레온하르트 오일러 등 7~19세기 유럽을 주름잡았던 이들이 떠오른다. 이들에게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함께 연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파스칼과 페르마는 르네 데카르트, 마랭 메르센과 수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수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유명한 수학 난제인 골드바흐의 추측은 크리스티안 골드바흐가 당대 최고 수학자인 오일러에게 보낸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됐다. 골드바흐는 2보다 큰 정수는 세 소수의 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 수학적으로 타당한지 오일러에게 물었고, 오일러가 골드바흐의 추측에서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면서 문제는 유명세를 탔다.

이 밖에도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와 스리니바사 라마누잔, 알렉산더 그로텐디크, 앙드레 베유, 로버트 랭글랜즈 등 당대 최고의 수학자들은 동료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수학 연구를 펼쳐 나갔다.



장소불문 수학 삼매경

헝가리 출신의 에르되시 팔은 공동연구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에르되시는 평생 25개국을 여행하면서 485명의 수학자와 함께 연구했고, 1475편의 논문을 남겼다. 평생 50편만 남겨도 대단한 수학자인데, 70세가 넘어서도 1년에 5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게다가 모든 논문이 알찬 내용으로 가득했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많아 조합론과 정수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런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공동연구 덕분이다. 에르되시는 좋은 문제와 인재를 찾아 평생을 돌아다녔다. 정수론이나 조합론에 관심이 있다면 아주 어린 학생도 만나 함께 문제를 풀었다.

과학과 달리 수학은 연구하는 데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어디서든 서로 뜻만 맞으면 연구를 할 수 있다. 서로 관심 있는 문제에 대해, 함께 풀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며칠이고 함께 푸는 것이다.

특이한 장소에서 연구해 유명해진 수학자도 있다. 바로 독일 출신의 수학자 알렉산더 그로텐디크다.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 전쟁에 반대하는 의미로, 미국 폭격기가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 하노이 근교 숲에서 수학 세미나를 열었다. 폭탄이 터지고 숲이 불타도 꿋꿋이 수학 이야기를 나눴다.

수학의 또 다른 매력은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르되시는 체스를 두면서 문제를 풀었고, 미국 수학자 로널드 그레이엄은 트램펄린을 이용해 공중제비를 돌다가, 어떨 때는 저글링을 하다가 영감을 얻어 문제를 해결했다.


 


수학자의 수학 여행기

공동연구는 몇몇 유명한 수학자의 튀는 일화일 뿐, 대부분은 연구실에 콕 박혀 혼자 연구하는 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물론 모든 수학자가 공동으로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성격에 따라서혹은 문제 유형에 따라서 혼자 연구할 때도 있다. 하지만 수학자들은 말한다. 혼자 연구하는 사람보다 함께 연구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보통 수학자들은 어떻게 연구하는지 살짝 엿보자.

해변에서 노는 것 아니에요! 지금은 연구 중

KAIST 수리과학과 엄상일 교수

어떤 학회는 초청 강연자도 없고, 발표 주제도 정해져 있지 않아요. 엄선된 전문가 20~30명이 모여 일주일 내내 문제만 풀어요. 2014년 5월, 카리브해에 있는 섬나라 바베이도스에서 열린 학회도 그랬어요. 학회 첫날에는 참가자 전원이 돌아가면서 최근 관심 있는 미해결 문제를 발표했어요. 그 뒤 멋진 해변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두세씩 짝을 지어 문제를 풀기 시작했어요. 문제가 안 풀리면 카드 게임도 하고, 술도 한 잔씩 했어요. 이때도 이야기의 주제는 수학이라 연습장을 항상 지니고 있었죠.

다음날부터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지금까지 연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발표했어요. 이런 아이디어가 있어서 문제를 여기까지 풀었다고 소개하는 거지요. 이를 듣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의견을 보태요. 그랬더니 학회가 끝날 즈음 문제 3개가 풀렸어요.



수학과 여행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어요

미국 코네티컷대 수학과 이규환 교수

지난 7월, 캐나다 밴프국립공원에서 열린 국제학회에 참여했어요. 일주일 동안 여러 강연도 듣고, 저와 관심 분야가 비슷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함께 문제를 풀었어요.

제가 연구하는 표현론은 문제 하나를 푸는 데 적어도 1년은 걸려요. 그래서 학회기간 동안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어요. 학회가 끝나고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영상통화로 아이디어를 공유해요. 전화통화가 끝나고 나면 나왔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요. 6개월 정도 뒤에는 각자 내용을 정리해서 동료를 만나 풀이가 논리적으로 옳은지 검토하고, 돌아와서 통화하면서 논문을 완성해요. 보통 정수론이나 조합론 전문가와 함께 연구해요.

저는 공동연구를 매우 좋아해요. 혼자 하면 외로운데, 누군가와 같이 하면 대화할 상대가 있어 즐겁잖아요. 또 공동연구자를 만나러 가는 김에 여행도 할 수 있고요.



좋은 문제를 고를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해요!

오스트리아 그라츠공과대 수학과 강미현 교수

제가 일하는 대학의 조합론 연구그룹 연구원들과 정기적으로 주제별로 팀을 이뤄 공동연구하고 있어요.

방문연구도 즐겨 해요. 다른 수학자를 찾아가서 한동안 머물며 함께 연구하지요. 처음 함께 연구할 때는 서로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서 다양하게 이야기하면서 어떤 연구를 할지 정해요. 문제가 정해지면 토론으로 아이디어를 이끌어내요. 이후 돌아와서 이메일과 전화로 의견을 나누며 논문을 쓰죠.

수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문제를 고를 수 있는 안목이에요. 좋은 문제를 고르기 위해서는 전공분야와 연관분야의 흐름을 꾸준히 파악하고, 동료 수학자와 끊임없이 토론해야 해요. 이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에서 문제를 풀고, 논리가 맞는지 확인하는 데 토론만큼 좋은 게 없답니다.

수학자뿐 아니라 과학자와도 함께 연구해요!

미국 텍사스주립대 수리과학과 이선영 교수

저는 컴퓨터 계산을 통해 편미분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편미분방정식은 자연과학과 공학, 의료공학 등 많은 분야의 수리모델링을 위해 쓰입니다. 이 때문에 저와 함께 연구하는 사람들은 수학자뿐 아니라 기계공학자와 석유공학자, 재료공학자, 화학자 등 다양합니다.

얼마 전 영국 케임브리지대 뉴턴연구소에서 주최한 프로그램에 약 한 달간 참여했어요. 지구 맨틀의 융해과정과 융해물질의 흐름이 화산활동이나 지진활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기 위해 응용수학자와 컴퓨터공학자, 지구과학자 등이 모였어요.

연구소 어디를 가나 삼삼오오 모여 자신의 연구를 이야기하고 함께 문제를 푸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칠판이 곳곳에 있는데, 심지어 화장실에도 칠판이 있어서, 이곳에서도 열띤 수학, 과학 이야기가 오고 가요.



수학자는 수다쟁이



공동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는 것을 아낌없이 나눠줘야 한다. 현재 어떤 수학 문제에 관심이 있고, 어떤 아이디어가 있는지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야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학자는 모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 하고, 수학과 관련된 어떤 사소한 아이디어도 함께 나눈다. 간혹 드라마나 소설에 중요한 정보를 친구에게 알려주지 않는 얌체 같은 전교 1등이 나오는데, 이런 사람은 절대 좋은 수학자가 될 수 없다.

장승욱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연구원은 “혼자만 아는 것은 가장 안 좋은 공부 방법”이라며, “수학자가 꿈이라면 수다쟁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를 풀려면 서로의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데, 지식을 나누는 데 익숙지 않으면 힘들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고의 수학자로 손꼽히는 테렌스 타오는 자신의 생각과 지식을 더 많은 수학자와 나누기 위해 활발하게 개인 블로그를 운영한다. 여기에 최근 무슨 문제를 푸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 실시간으로 올린다. 수학 전공자를 위한 질의응답 사이트인 매스오버플로(mathoverflow.net)에도 자주 답글을 단다.

수학 통합 프로젝트, 랭글랜즈 프로그램

서로 아는 것을 공유하지 않으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수학의 발전 속도가 빨라 혼자서는 그 많은 양을 연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족한 지식과 능력을 보완해 줄 공동연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랭글랜즈 프로그램이 좋은 사례다. 수학은 수론과 조화해석학, 기하학, 표현론, 수리물리학 등 많은 세부 분야로 이뤄져 있다. 원래는 각각의 이론을 별개로 생각했는데, 1960년대 후반 캐나다의 수학자 로버트 랭글랜즈가 이들이 사실은 비슷한 현상에 대한 이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관련 있는 이론을 통합하자고 제안했고, 이것이 ‘랭글랜즈 프로그램’이다. 즉 수학의 서로 다른 분야를 가로지르면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과 그 연관성을 연구해 수학을 통합하자는 것이다.
 





도움 : 엄상일(KAIST 수리과학과 교수), 신석우(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 수학과 교수), 강미현(오스트리아 그라츠공과대 수학과 교수), 이규환(미국 코네티컷대 수학과 교수), 이선영(미국 텍사스주립대 수리과학과 교수), 김장수(성균관대 수학과 교수), 이승재(국가수리과학연구소 연구원), 이석형(국가수리과학연구소 연구원), 장승웅(국가수리과학연구소 연구원), 김연응(국가수리과학연구소 연구원)

참고 자료 및 논문 :  <;내가 사랑한 수학>;,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 ‘TED 강연 마이클 닐슨의 개방형 과학’, ‘Density Hales-Jewett and Moser numbers’, ‘Prime Numbers: A Much Needed Gap Is Finally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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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수학자가 사는 법
PART 1. 수학자는 공동연구를 좋아해~
PART 2. 힘을 합쳐 난제를 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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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수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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