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캐롤이 지은 동화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영화와는 내용이 많이 다르다. 원래 이 작품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이기는 하지만, 주인공이 앨리스라는 점만 같을 뿐 스토리가 이어지지는 않는다.
“거울나라에 살면 어떨까, 키티? 저 안에서도 사람들이 너한테 우유를 챙겨줄까? 아마 거울나라 우유는 마시기 불편할 거야!”
앨리스는 상상력이 풍부해 다른 사람과는 달리 공상에 잘 빠지고 혼잣말을 자주 한다. 동화가 시작하는 그날도 앨리스는 커다란 거울 앞에서 애완고양이 키티를 쓰다듬으면서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만 거울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만다. 거울 속 나라는 시간이나 사물의 모양이 현실 세계와는 정반대다. 그래서 평소 습관처럼 행동하기에는 이것저것 익숙하지 않은 것이 많다.

모습은 똑같고 방향은 다른 거울짝꿍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요.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요.”
이상 시인이 지은 ‘거울’에서 등장하는 말처럼 거울에 비친 상은 위아래는 똑같지만 좌우가 달라진다. 이처럼 현실 세계에는 거울에 비친 듯이 모습은 똑같지만 좌우가 정반대인 것들이 있다.
그렇다면 3차원에서 존재하는 거울짝꿍은 어떨까? 나선이나 프로펠러, 소라껍데기를 예로 들 수 있다. 돌아가는 방향이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손과 발이다. 왼손과 오른손은 똑같이 생겼지만 방향이 정반대라서 두 손을 포개면 겹쳐지지 않는다. 왼쪽 신발과 오른쪽 신발도 모양은 똑같지만 방향이 정반대이므로 서로 포개면 겹쳐지지 않는다.
3차원 거울짝꿍에는 매듭도 있다. 수학에서는 긴 줄이 꼬인 상태로 양 끝이 붙어 있는 것을 매듭이라 한다. 이 중 교차점이 세 개인 세잎매듭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서로 거울짝꿍 관계다. 두 가지 매듭을 구분하려면 서로 거울 짝꿍 관계인 3차원 좌표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왼손과 오른손에서 각각 세 번째 손가락을 x축, 엄지를 y축, 두 번째 손가락을 z축이라고 가정하고, 세손가락을 서로 직각이 되게 펴면 된다. 이때 왼손으로 만든 좌표에서 x축의 회전방향으로 꼬이는 경우와 오른손으로 만든 좌표에서 x축의 회전방향으로 꼬이는 경우를 각각 왼손잡이, 오른손잡이 세잎매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세상에는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로 나눌 수 있는 거울짝꿍이 많다. 이들은 생김새가 거의 똑같아도 특성이 서로 달라 수학은 물론 물리학이나 생화학 등 여러 과학 분야에서도 연구하고 있다.
단백질은 왼손잡이, 탄수화물은 오른손잡이!
분자세계에서는 이런 거울짝꿍이 흔하다.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과 탄수화물을 이루는 포도당 같은 단당류, 비타민C 등 거의 모든 생체분자에게는 ‘거울분자’가 있다. 분자가 생길 때 탄소에 다른 원자가 서로 들러붙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거울분자끼리는 서로 거울에 비췄을 때 모습이 같다.
원래 분자와 거울분자는 구성성분이 같아 끓는점이나 녹는점 같은 화학적 성질이 같다. 그러나 분자에 빛을 비췄을 때 그 빛을 회전시키는 방향, 즉 편광이 정반대다. 예를 들어 한 분자가 빛을 오른쪽으로 편광시킨다면, 그것의 거울분자는 왼쪽으로 편광시킨다. 어느 방향으로 편광시키느냐에 따라 이름 앞에 각각 D나 L, +나 -, R이나 S를 붙여서 구별한다. 우리 몸과 지구 생물을 이루는 아미노산은 모두 왼쪽으로 편광시키는 L형 거울분자다. 하지만 단당류는 대부분 D형 거울분자다.
그런데 실험실에서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합성하는 단백질은 L형과 D형이 모두 섞여 있다. L형만 선별적으로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거울분자의 특성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래서 몸속에서 여러 물질대사를 돕는 효소나, 냄새나 맛을 느끼게 하는 입자도 거울분자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
두 가지가 공존하는 거울짝꿍
냄새나 맛을 느끼게 하는 입자도 마찬가지다. 코나 혀에는 특정한 향기와 맛을 느끼게 하는 수용기가 있다. 각 수용기에는 특정한 입자만 결합할 수 있다. 효소와 마찬가지로 감각수용기도 거울분자와 만나면 결합하지 못한다. 이와 반대로 거울분자처럼 생긴 입자를 인지하는 수용기가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달콤한 맛을 내는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은 D형이다. 그런데 L형 아스파탐을 우리 혀는 씁쓸한 맛으로 느낀다. 향기입자인 리모넨은 D형인 경우 오렌지 향을 내지만 L형인 경우 레몬 향을 낸다. 그래서 일부러 특정 거울분자만을 걸러내 오렌지 향 또는 레몬 향이 나게 만들 수도 있다.

또한 통증을 느끼는 감각수용기에 들러붙어 진통제로 사용하는 화합물질인 케타민은 D형이다. 그런데 거울분자인 L형은 독성이 있어 해롭다. 그래서 약품이나 식품감미료처럼 인위적으로 합성하는 경우에는 꼭 인체에 유해하거나 필요 없는 거울분자를 걸러내야 한다.
팀 버튼 감독이 그리는 거울나라는 어떨까? 이곳에서도 현실 세계의 거울짝꿍처럼 어떤 것은 오렌지향 대신 레몬 향을 내는 독특한 캐릭터가 될 수도, 진통제가 독약이 되는 것처럼 악역이 되기도 한다. 현실과 닮았지만 모든 방향이 정반대인 거울나라에서 앨리스가 어떤 스릴 있는 모험을 하게 될지 기대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