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중 한 분야인 ‘생명수학’을 연구하시는 건국대 수학과 정은옥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가 봤다.
생명수학은 소통이다
‘생명수학’은 학생들에게는 물론, 수학계에서도 낯선 학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생명수학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영어로 ‘Biomathematics(바이오매스매틱스)’ 또는 ‘Mathematical Biology(매스매티컬 바이올로지)’로 불리는 생명수학은, 우리나라로 번역돼 들어오면서 주로 수리생물, 생물수학 등으로 불려왔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명수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을 ‘생명수학자’라고 소개한 정은옥 교수님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양윤주 : “교수님, 제 꿈이 뇌 과학자거든요. 그래서 늘 의학과 수학이 어떻게 연관되는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생명수학이라는 분야가 있다니,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저처럼 잘 모르는 친구들을 위해 생명수학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정은옥 교수 : “수학자 중에는 순수수학을 연구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저처럼 응용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응용수학은 순수수학을 바탕으로 다른 학문의 이론을 더해, 더 많은 분야에 도움을 주는 분야예요. 그중에 저는 생명수학을 연구하고 있고요.
생명수학은 생물학, 의학, 생리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상들을 수학적으로 접근하고 해석하는 분야예요. 예를 들어 심장의 운동을 관찰해 방정식으로 나타내면, 심장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치료를 도울 수 있어요.”
전준 : “그럼 교수님처럼 생명수학자가 되려면, 수학은 물론 생물학, 의학, 생리학까지 모든 분야를 공부해야 하나요?”
정은옥 교수 : “생명수학은 합창과 닮았어요. 합창은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로 이뤄지는 네 가지 소리가 하모니를 이룰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나잖아요?
생명수학도 마찬가지예요. 수학을 바탕으로 앞서 설명한 생물학, 의학, 생리학은 물론이고 유체 역학, 물리학, 컴퓨터 프로그래밍까지 기초 지식정도는 모두 잘 알아야 해요. 하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답니다.
그래서 전 생명수학이 ‘소통의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수학과 다른 학문을, 때론 학문과 문화를 이어 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니까요!”
수학으로 전염성 질병을 막아라!
‘조류독감’, ‘구제역’, ‘신종 인플루엔자(신종플루)’ 등은 닭, 오리, 소, 돼지에서 발견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예다. 최근 몇 년간 이런 ‘전염성 질병’이 큰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그런데 교수님이 연구하는 생명수학을 이용하면, ‘수학적 모델링’을 이용해 이러한 질병에 대한 최적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가능한 걸까?
"조류독감과 같은 전염성 질병을 수학으로 나타내려면 수학적 모델링에 대해 잘 알아야 해요. 수학적 모델링이란, 어떤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 구조를 수식이나 그래프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말해요. 수학적 모델링을 이용하면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각종 데이터를 이용해, 현상의 진행속도나 현상 자체를 표현할 수 있죠. 또한 이를 이용하면 현상의 미래를 예측하거나, 전염성 질병의 확산 속도를 줄일 수 있답니다.
오늘은 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운 조류독감을 예로, 수학적 모델링에 대해 간단히 알아볼게요. 우선 오리의 상태에 따라 변수를 결정합니다. 이 변수를 이용해서 방정식을 세우려면, 몇 가지 가정이 필요해요. 실제 상황에서는 더 많은 요인들이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수학적 모델링을 위해선 일반화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런 다음 방정식을 세우면 돼요."
★ ‘전염성 질병’ 수학으로 모델링하기!
1. 유행하는 질병의 감염 경로를 이해한다.
전염성이 강한 질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염자가 새로운 감염자를 만들어 낸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러므로 질병의 확산 속도를 줄이려면, 감염 경로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필수다.
2. 감염 경로를 다이어그램으로 그린다.
바이러스가 공기 중으로 이동해 감염되는지, 접촉에 의해 감염되는지를 분석해 질병의 이동 경로를 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낸다.
3. 각종 변수를 결정한 뒤 방정식을 세우고, 시각화 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변수는 시간이다. 전염성 질병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각 집단의 개체 수가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수학자들은 이를 예측하기 위한 방정식을 세운다. 이때 고려해야 하는 변수는, 시간 외에도 그 사이 자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개체 수 등 매우 다양하다. 이렇듯 복잡한 현상을 나타낸 방정식은 주로 컴퓨터를 이용해 해를 구하고, 그 결과를 표와 그래프로 해석한다.
심장 방정식으로 심장 질환 연구
교수님 연구실에는 다른 수학과 교수님들의 연구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별한 소품이 있었다. 바로 교수님이 보물처럼 아끼신다는 ‘심장 모형’이다. 병원 진료실에나 있을 법한 심장 모형이 왜 교수님 연구실에 있는 걸까?
"저는 수학을 하는 사람이지만, 이 심장 모형을 들고 다니면서 강의를 해요. 생명수학을 이용하면 우리 몸의 순환계를 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혈액이 심장의 좌심실에서 나와 온 몸을 돌고 다시 우심방으로 돌아오는 체순환 과정을 방정식으로 나타내면, 방정식으로 나타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과 같은 그래프를 그릴 수도 있어요.
생명수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심장의 움직임을 ‘심장 방정식’을 이용해 우리 눈에 보이도록 만들어줘요. 이 연구로 심장 질환 치료를 도울 수 있어요. 정상인 사람들의 심장이 움직임과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의 움직임을 가장 쉽게 비교할 수 있으니까요."
수학자로서 낯선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정은옥 교수님은 앞으로도 책상에 앉아 수학 책만 보는 수학자이기보다, ‘사회와 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소통하는 수학자’가 되겠다고 하셨다. 교수님의 끝없는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