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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전략 2] 널리 퍼지는 꽃가루


해마다 4월이 되면 꽃가루가 날린다. 하얀 솜털이나 노란 가루 같은 꽃가루가 공중에 떠다니는 게 눈에 보이기도 한다. 꽃가루가 날아다니는 걸 보면 ‘봄이 왔구나!’ 하고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꽃가루를 이용해 사람들은 요리를 하거나, 화석처럼 오래 전 기후를 연구하기도 한다. 물론 알레르기 반응으로 눈물 콧물을 훌쩍이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존재다.

하지만 식물에게 꽃가루는 자손을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생존전략이다. 식물이 지구에서 오랫동안 넓은 지역에서 살아가려면 수분을 최대한 많이 성공시켜야 한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손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식물은 저마다 살고 있는 환경과 생김새를 고려해, 가장 효율적으로 퍼뜨릴 수 있는 꽃가루를 만들고 있다.


 

환경에 따라 알맞은 꽃가루의 기하학

속씨식물은 아름다운 꽃을 피워 향긋한 향기를 풍겨 나비와 벌, 모기 같은 곤충을 유인한다. 꿀과 즙을 빨러 온 곤충의 다리털에 꽃가루를 듬뿍 묻히기 위해서다. 곤충은 꿀과 즙을 빠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암술머리에 꽃가루를 묻힌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이 꽃가루를 널리 퍼뜨릴 수 있는 비결이다.

하지만 모든 식물이 예쁜 꽃을 피워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나무와 전나무, 향나무 같은 겉씨식물은 열매와 비슷하게 생긴 초록색 꽃을 피운다. 크기가 작고 색깔과 돋아난 모양이 잎과 비슷해서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꽃이 피어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생김새도 평범할 뿐만 아니라 향기도 속씨식물에 비해 매력적이지 않다.
 


겉씨식물은 대개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다. 그래서 수분을 성공시키려면 꽃가루를 많이 만들어야 할 뿐 아니라, 넓은 지역으로 멀리까지 퍼뜨려야 한다. 그래서 겉씨식물은 바람에 꽃가루를 날려 보낸다. 사람들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가루는 대부분 겉씨식물의 작품이다.

이외에도 꽃이 특이하게 생겨서 곤충이 수분하기 어렵거나, 물속에서 살고 있어 바람으로도 날리기 어려운 식물도 있다. 이런 식물은 곤충이 아닌 새와 박쥐의 도움을 받거나, 바람 대신 물을 이용해 꽃가루를 퍼뜨리는 비법을 이용한다. 이렇게 꽃마다 각자 효율적인 방법으로 수분할 수 있도록 기하학적으로 독특한 모양의 꽃가루를 만들거나 수분 확률을 높이는 전략을 쓴다.

 

 
그렇다면 수술 또는 수꽃에서 나오는 꽃가루는 아무렇게나 퍼져나가는 걸까? 꽃가루가 퍼지는 모양 속에 수학적인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닐까?

17세기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꽃가루가 살아 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스스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827년 영국의 식물물리학자 로버트 브라운은 물에 뜬 꽃가루를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꽃가루가 흘러갈 방향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일정한 반경 내에서 비슷한 방향으로 갈지(之)자를 그리며 움직일 확률이 높았다.

 
 
꽃가루가 퍼지는 불규칙한 모양을 정리한 수학식

브라운은 꽃가루 외에도 유리와 금속, 돌을 곱게 빻은 가루로도 실험해 보았다. 그 결과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닌 가루도 꽃가루와 비슷한 패턴으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 이뿐만 아니라 먼지와 담배연기가 공기 중에 퍼지는 모습도 비슷했다. 미세입자의 이와 같은 운동을 ‘브라운 운동’이라고 한다. 하지만 브라운은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 뒤 과학자들은 꽃가루가 어떤 원리로 브라운 운동을 하는지 연구했다. 그리고 1905년 독일의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브라운 운동의 비밀을 밝혀냈다. 입자들이 높은 농도에서 낮은 농도로 이동한다는 점과, 입자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운동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물이나 공기 중에 떠 있는 입자는 물 분자 또는 질소 분자와 끊임없이 부딪히는데, 특히 μm(100만 분의 1m) 단위로 크기가 작은 꽃가루는 역학적으로 평형 상태를 이루지 못하고 불규칙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꽃가루가 브라운 운동을 할 때 움직이는 거리를 구하는 수학식을 단순화시켰다.

 
 

이 식으로 얻은 값은 실제로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와 거의 비슷하게 일치한다. 아인슈타인은 또 이것을 이용해 부피를 알고 있는 기체와 액체 속에 들어 있는 분자 수를 셀 수 있게 됐다.

최근 광주과학기술원 연구팀은 라이다를 이용해 대기에 떠다니는 꽃가루를 시간대와 대기 높이, 계절별로 관찰한 결과, 꽃가루가 대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는 수학모형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연구팀은 학계에서 예측했던 것과 달리 꽃가루가 지상 2km 높이까지도 퍼진다는 사실을 관측했다.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고 멀리까지 꽃가루가 퍼진다는 얘기다.

라이다★ 레이저를 쏘아 산란되거나 반사되는 레이저가 돌아오는 시간과 강도, 주파수의 변화, 편광 상태의 변화 등을 재어 특정 물체와의 거리와 속도, 모양 등을 측정하는 장치.

식물은 자손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이렇게 놀라운 전략을 선택했다. 온 세상을 알록달록 물들이는 꽃잎과, 향긋한 내음, 꿀을 빨기 위해 찾아오는 벌과 나비, 그리고 우리 코끝을 간질이는 꽃가루까지…. 어쩌면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가만히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이 생존에는 가장 뛰어난 책략가일지도 모른다.


 
 
 

2016년 04월 수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zzunga@donga.com
  • 도움

    ‘Water-Pollinated Plants’, ‘A mathematical model of the interactions between pollinators and their effects on pollination of almonds‘, ’Aerodynamic characteristics of saccate pollen grains‘, 한양대 꽃가루알레르기센터
  • 기타

    [일러스트] 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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