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에 떨어진 스톰트루퍼
자히르 바틴이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한 건 불과 6년 전의 일이다. 바틴의 본래 직업은 말레이시아 슬랑오르 주립대의 교직원이다. 6년 전, 우연히 프로 사진작가인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사진 찍기가 평범했던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사진은 이제 그의 인생에서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됐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고 미국, 중국, 스페인 언론에 그의 작품세계를 다룬 기사가 실릴 정도다.
바틴은 정규 사진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사용하는 장비도 평범한 아마추어 작가다.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주말에 하는 취미”라고 말할 정도다. 그럼에도 바틴의 사진은 결코 프로작가의 작품에 뒤지지 않는다. 고향 슬랑오르의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스톰트루퍼의 모습을 포착한 바틴의 작품 속에선 유머와 비극을 오가는 특별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스톰트루퍼에게도 감정은 있다
스타워즈 속 스톰트루퍼는 딱딱하다. 기계 같은 걸음걸이에서 모두 판박이인 외모까지,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명령에 죽고 사는 모습을 보면 감정이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바틴의 작품 속에선 다르다. 우리는 영화처럼 무표정한 스톰트루퍼의 모습에서 인생의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다. 동료의 무덤 앞에서 휘청거리는 스톰트루퍼와 그를 부축하는 스톰트루퍼의 모습에선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한가로이 뗏목 위에서 오후를 보내는 스톰트루퍼의 모습에선 여유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무서운 사람 앞에서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면, 스톰트루퍼도 사람이란걸 알 수 있다.



일상은 서로 닮아 있다
바틴은 스톰트루퍼의 일상에 주목한다. 평범한 풍경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스톰트루퍼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마치 우리의 일상처럼 느껴진다. 바틴의 작품만이 갖는 장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스톰트루퍼라는 SF캐릭터를 말레이시아의 작은 마을 속에 풀어놓고 있음에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누구라도 사진을 보면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