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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학자의 하루 - 커피, 맥주, 거품, 소음

 

오늘도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에 왔다. 간단한 빵과 커피, 그리고 맥주까지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있고, 주변 사람과 사물을 보며 자연스레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 좋다. 실제로 나는 이곳에서 수많은 연구를 한다. 각종 음료와 커피, 다양한 모양의 컵, 그리고 맥주 잔 위에 넘치기 직전의 거품까지 모든 게 나의 소중한 연구 대상이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쏟겠어요, 조심하세요!”


하마터면 오늘도 누군가 뜨거운 음료에 다칠 뻔했다. 역시 계산대 옆에서 받은 음료를 안전하게 자리로 가지고 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조심한다고 해도 움직이다 보면 손에 들고 있는 음료가 컵 속에서 흔들려 고운 손에 흘리기 십상이다. 특히 뜨거운 음료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주의를 주는게 전부겠지만, 우리 수학자는 음료를 흘리지 않고 옮길 방법을 연구한다.

 

 

음료를 쏟지 않으려면?


문득 지난해 이그노벨상 시상식에서 유체역학 상을 받은 한국인 학생이 떠오른다. 이그노벨상은 황당해 보이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로 과학적 업적을 낸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학교 물리학과에 재학 중인 한지원 씨는 커피 잔을 들고 걸을 때 커피를 쏟는 현상에 대해 연구해 상을 받았다. 한 씨는 같은 진동을 줬을 때 컵의 모양에 따라 음료가 얼마나 흘러 넘치는지를 실험했다. 그 결과 4Hz★의 진동을 줬을 때, 원통형 머그잔에서는 액체가 밖으로 튀고 쏟아지며 난리가 났다. 그러나 똑같은 진동을 줘도 와인잔에서는 표면에 잔잔한 물결만 생기고 액체가 넘치지 않았다. 또 컵의 윗부분을 잡았을 때와 뒤로 걸을 때 진동이 줄어 음료가 덜 튄다는 사실까지 발견했다. 평소 당신이 음료를 들고 움직일 때 잘 흘린다면 머그잔 대신 와인잔에 음료을 담아 컵의 윗부분을 잡고 뒤로 걸어가기를 권한다.

 

Hz★
진동수의 단위. 초당 반복 운동이 일어난 횟수.

 

존 리처드 오켄돈 영국 옥스퍼드대학교교수팀은 이 아마추어 과학자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어 액체가 출렁거리는 현상을 수학 모형으로 설명했다. 유체역학에서 출렁임은 액체와 같은 유체를 운반할 때 유체와 유체를 담은 용기 사이에 발생하는 상대적 운동을 뜻한다. 오켄돈 교수팀은 오일러 방정식처럼 간단한 수학식과 뉴턴의 물리 법칙을 이용해 수학 모형을 만들었다.

 

 

손잡이가 움직이지 않는 머그컵보다는 손잡이가 움직이는 양동이에 물을 담아들고 움직일 때가 물이 덜 출렁인다. 만약 커피가 담긴 머그컵에 양동이와 같은 손잡이를 달아 들고간다면 덜 출렁인다는 소리다.

 

연구팀은 이 운동을 단순화하기 위해 진동하는 손과 컵 사이에 용수철이 있는 모형을 만들었다. 더욱 단순화하기 위해 컵을 2차원의 사각형으로 만들었고, 좌우로만 흔들리게 했다. 분석 결과 머그컵이 좌우로 얼마나 흔들리든 상관없이 용수철이 있으면 커피가 출렁이는 정도가 줄어들었다.

 

 

완벽한 커피를 위한 수학


“오늘따라 에스프레소가 맛있네요.”


예전에 한 카페에 갔을 때다. 커피를 주문했는데, 보리차인지 커피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의 맛없는 커피가 나왔다. 그러나 이곳은 적당한 산미를 풍기는 원두로 커피를 적절한 농도로 뽑아내 정말 맛있다.

 

나 같은 커피애호가는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커피 맛은 원두의 종류, 물의 양, 커피를 내리는 사람의 기술 같은 다양한 요인에 따라 정해진다. 수학자는 커피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는 순간에 맛이 결정된다고 했다. 윌리엄 리 영국 허더즈필드대학교 수학과 교수는아일랜드 리머릭대학교 수학과에 있을 당시 이에 관한 연구를 했다.

 

사진에서 거름종이처럼 생긴 것을 커피 베드라고 하는데, 여기에 커피 가루를 담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커피가 내려진다.

 

 

커피는 그라인더로 커피 원두를 가루로 분쇄한 뒤, 커피 가루를 액체만 거르는 커피 베드에 넣고, 이 베드에 물을 부어서 내린다. 리 교수는 커피 베드에 물을 채운 뒤, 커피 가루가 물에 녹는 과정이 커피의 맛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그라인더로 커피 원두를 아무리 곱게 갈아 내더라도 확대해 보면 가루 사이사이에는 구멍이 있다. 이 가루가 담긴 커피 베드에 물을 부으면 빈 공간은 물로 채워지고 물이라는 유체에 의해 커피가루가 움직인다. 사용한 그라인더에 따라 가루 입자는 투박하게 클 수도 있고 미세하게 작을 수 있다. 그 결과 입자 사이의 공간 크기도 달라진다.

 

여기서 커피 맛이 달라진다. 커피 가루 입자가 크면 당연히 입자 사이에 공간도 많아져 물을 부어도 잘 투과한다. 반대로 커피 원두가 미세하게 갈리면 상대적으로 빈 공간이 적다. 비어있는 공간은 물을 부으면 메꿔진다. 리 교수팀은 이러한 특징까지 모두 수치로 표현해 수식으로 나타냈다.

 

 

수학으로 예측하는 커피의 맛


구멍이 뚫려있는 물체는 물 같은 유체에 의해 움직인다. 커피 가루를 구멍이 있는 물체로 보면, 커피 가루가 물에 녹는 현상은 구멍 난 물체인 커피 가루가 물이라는 유체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마치 바짝 마른 스펀지에 물을 부으면 스펀지에 빈 공간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가 움직이며 모양이 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물질에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에너지나 질량은 보존된다. 예를 들어 커피 100이 다른 형태로 변해도 커피는 어떤 형태로든 100만큼 존재한다는 것이다.

 

리 교수팀은 부피 비율에 대한 에너지보존 법칙을 수학 모형으로 만들었다. 커피가 다른 상태로 변하더라도 줄어들거나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수식으로는 dc/dt =0이라 표현했다. 변화율이 0이라는 뜻이며, 입자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리학의 ‘질량보존의 법칙’이 수학 모형으로 표현된 것이다.

 

리 교수팀은 여기서 커피의 전체 영역과 전체 부피를 계산했다. 그리고 구멍 뚫린 영역의 부피를 전체 부피로 나눠 ‘부피 비율’이라는 변화량을 수학식으로 나타냈다. 이를 통해 커피가 얼마나 잘 갈렸는지, 커피의 농도는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고 밝혔다.

 

 

거품이 가라앉는 흑맥주의 비밀


“기네스 흑맥주 한 잔이요”.


내게 완벽한 하루의 마무리는 맥주 한 잔이다. 나는 탄산이 강한 맥주보다는 풍미가 짙고 부드러운 흑맥주를 선호한다. 맛도 맛이지만 내가 이 맥주를 선호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가벼운 거품이 무거운 맥주 아래로 가라앉는 놀라운 마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리 교수는 커피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흑맥주까지 연구했다. 기네스 흑맥주를 전용잔에 따랐을 때 가벼운 거품이 금세 가라앉는 현상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공기인 거품은 액체인 맥주보다 밀도가 낮아 위로 뜨는데, 기네스 흑맥주는 전용 잔에 따르면 거품이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 원인을 찾은 것이다.

 

흑맥주 거품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수식을 얻는 아이디어는 커피와 비슷하다. 유체는 속도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된다. 거품이 빨리 가라앉는다는 것은 거품이 빨리 줄어든다는 뜻이다. 따라서 거품이 가라앉는 정도도 유체의 속도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액체에 따른 특성은 고려해야 한다. 맥주는 끈끈한 점성이 있기 때문에 그에 맞는 변수를 이용해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 리 교수팀은 여기에 거품이 움직이는 속도와 방향 등을 고려해 방정식을 만들어 분석했다. 그 결과 비밀은 컵의 모양에 있었다.

 

컵의 모양은 다양하다. 옆면이 일직선인 물컵도 있고, 올록볼록 굴곡진 재밌는 모양도 있으며, 역원뿔 모양의 칵테일 잔도 있다. 기네스란 흑맥주는 전용 컵이 있다. 옆면이 굴곡진 모양인데, 입구의 지름이 컵 바닥의 지름보다 좁다. 이 컵의 디자인이 재밌는 광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가운데 부분에서는 우리 생각대로 거품이 위로 올라가는데, 경계면에서는 밀도가 높아진 윗쪽 맥주가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때 맥주는 거품을 함께 끌어내린다. 만약 이 흑맥주를 역원뿔 모양의 칵테일 잔에 따른다면 경사가 훨씬 더 가파르니 거품도 더 빨리 가라앉을 것이다.

 

 

소음도 공부에 도움이 된다


이쯤 되면 카페에서 다른 데 정신을 쏟느라 진짜 연구는 못하는 건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건 집중력을 높여주는 좋은 소음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

 

창밖의 빗소리, 커피 내리는 소리, 책장 넘어가는 소리 등이 섞여있는 잡음을 일컫는 말이 있다. ‘백색소음’이다. 백색소음은 진동수가 제각각인 여러 소리 파동이 규칙성 없이 섞여있는 것을 뜻한다. 음폭이 넓지만, 규칙이 없는 이 소리는 작업을 방해하기는커녕 인간 뇌파 중 알파파를 자극해 집중력을 높인다. 알파파는 정신을 집중했을 때나 안정을 취하고 있을 때 나오는 주파수다. 그래서 백색소음은 수면을 도와주기도 한다.

 

가시광선에서는 여러 색상이 모두 겹치면 하얀색의 백색광이 된다. 모든 색을 포함하는 백색광처럼 백색소음은 모든 주파수를 포함한다. ‘분홍소음’도 있다. 분홍소음은 백색소음과 달리 높은 주파수(고음)일수록 크기가 작다. 그래서 낮은 주파수(저음)의 소리는 크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무작위한 소리인 백색소음은 난수생성에 이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 소리를 담은 영상도 있고, 애플리케이션으로도 있다더라. 어쩐지 바닷가의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창밖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이보다 아름다운 음악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것을 음악이라 여기지 않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외에도 카페에서 수학적으로 연구할 만한 대상은 무수히 많다. 그래서 나는 늘 이곳 카페에서 연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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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호 수학동아 정보

  • 조혜인 기자(heynism@donga.com)
  • 기타

    [일러스트] 고고핑크
  • 참고자료

    ‘Modelling of coffee extraction during brewing using multiscale methods: An experimentally validated model’, ‘How to Mitigate Sloshing’, ‘Sinking Bubbles in Stout B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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