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똑똑똑.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이 주위에 가득했다. 조금 겁이 났지만 찬이는 조심스레 샤워실 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꿈틀거리는 검은 물체가 찬이의 발등을 뒤덮었다.

“으악!”

검은 물체의 습격

“아이고, 이제야 정신이 드나 보네.”

다시 눈을 뜬 찬이 앞에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누구지? 여긴 어디지?’ 주위를 둘러봤다. 동그란 문고리와 타원 모양의 높은 천장이 보였다. 찬이는 자신이 삼촌 방에 누워 있다는 걸 알아챘다. ‘이런!’ 찬이는 그제서야 자신이 샤워 중이었단 걸 깨달았다.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가슴까지 덮여 있던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 올렸다.

“저런. 추운가 보네…. 거기 담요 좀 갖고 와요.”

“네…, 어…, 담요가 어디 있더라.”

“아이구~, 내가 못 살아~! 거기 말고 저기요, 저기!”

삼촌은 몇 차례 더 핀잔을 들은 끝에야 빨간색 담요를 찾아왔다. 아주머니는 담요로 찬이의 몸을 덮어 주며, 한 손을 찬이의 이마에 가져갔다. 거친 손등에서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열은 없네요. 피곤한데다 갑자기 놀라는 바람에 잠시 기절한 거 같아요. 좀만 누워 있으면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그러게 왜 쓸데없이 혼자 하겠다고 나서요. 내가 도와 준다니까!”

아주머니는 마치 의사처럼 찬이의 상태를 설명한 뒤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삼촌은 죄지은 사람처럼 찬이 곁에 가만히 쭈그려 앉아 괜히 담요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아주머니가 없는 걸 확인한 찬이가 슬며시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삼촌을 불렀다.

“삼촌….”

“찬이야! 괜찮아? 어디 이상한 데 없어? 자, 이 손가락 몇 개인지 알겠어?”

삼촌은 손가락 두 개를 힘차게 흔들어 보였다. 찬이는 피식 웃음이 났다.

“두 개잖아. 나 배고파….”

삼촌의 얼굴에 그제서야 사람 좋은 웃음이 돌아왔다.

찬이는 저녁 식탁에서 검은 물체의 정체를 알게 됐다. 바로 미꾸라지였다. 미꾸라지는 어느새 형체도 없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추어탕이 돼 있었다. 삼촌이 몸과 마음이 지친 찬이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보양식이었다. 문제는 삼촌의 ‘생선공포증’이었다.

손질하던 미꾸라지 한 마리가 튀어 오르자, 삼촌은 놀라 그만 미꾸라지를 통째로 쏟아 버렸다. 찬이가 비명 소리를 들은 바로 그때였다. 샤워실 앞까지 흩어진 미꾸라지는 문을 연 순간 찬이의 발등 위를 뒤덮었다.

“남자 둘이 그 미꾸라지 하나 못 잡아서 애를 고생시켜요!”

추어탕을 그릇에 옮겨 담던 아주머니가 오 선생과 삼촌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마주 앉은 두 남자는 말없이 국물만 홀짝였다.

“아유, 어떻게 어린 애가 추어탕을 좋아한대? 많이 있으니까 먹고 싶은 만큼 먹으렴.”

아주머니는 기특하다는 듯 찬이를 바라봤다. 식탁 위에는 추어탕 말고도 잡채, 파전, 불고기 같은 음식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찬이는 말없이 허겁지겁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지하 이분의 일층 사람들

“화민 씨는 아직인가봐요?”

잡채를 한 가득 입에 문 삼촌이 말했다.

“응~, 화민이 오늘 좀 늦는다고 했어. 근데 찬이한테 우리 소개는 언제 해 줄 거야~?”

부엌에서 동그랑땡을 한아름 가져오던 아주머니가 답했다.

“글쎄요. 다 모이면 하려고 했는데…. 화민씨가 늦는다고 하니….”

그때였다. 붉은 벽이 열리고 배낭을 짊어 맨 젊은 남자가 성큼 성큼 계단을 올라왔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얼른 와서 같이 먹어요.”

남자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자기 방으로 향했다. 식탁에 앉은 남자는 묵묵히 밥만 먹었다. 주위의 왁자지껄함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겉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여기저기 부산스레 뛰어 노는 강아지 속에 홀로 고독을 즐기는 고양이 같은 모습이었다. 오 선생이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삼촌에게 말을 걸었다.

“박 군, 이제 슬슬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그럴까요? 자, 그럼 여러분 이제부터 반상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의 첫 순서는 자기소개입니다! 그럼 찬이부터 시작할게요. 박수!”

삼촌의 말이 끝나자 오 선생과 아주머니가 신나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말 없이 밥만 먹던 남자도 조용히 손바닥을 마주쳤다. 찬이가 엉겁결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박찬입니다…, 중학생이고…, 잘 부탁드립니다.”

아까처럼 얼굴이 붉어진 찬이가 후다닥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런 찬이의 모습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오 선생과 아주머니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반갑구나. 내 이름은 이미 알고 있지? 평소엔 그냥 편하게 아저씨라고 부르렴. 앞으로 궁금하거나 불편한 일 있으면 나한테 꼭 말해 주렴.”

“안녕, 찬이야~. 내 이름은 이순실이야. 그냥 순실이 누나라고 불러줬으면 좋겠구나! 호호호. 벌써 붉은 벽의 비밀도 알아냈다면서! 삼촌을 닮아서 너도 수학을 잘 하나 보구나.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 아줌…, 아니 누나가 맛있게 만들어 줄게!”

자신의 차례가 됐지만 남자는 꾸벅 고개만 끄덕일 뿐 말이 없었다. 순실이 아줌…, 아니 누나가 대신 소개를 이어갔다.

“이쪽은 중국에서 온 화민이야. 정화민. 말이 좀 없는 편이지? 그래도 친해지면 재밌는 구석도 많은 친구니까, 앞으로 친하게 지내보렴.”
 


미꾸라지를 알면 모기를 잡는다

“그럼 인사는 이 정도로 하고. 다음으로 넘어갈게요. 오늘 미꾸라지 한 마리를 더 넣어 놨어요. 그러니까 이제 두 마리가 된 거죠. 한 달 후에 몇 마리가 될지 지켜보자고요.”

“예측대로라면 세 마리가 돼야겠지? 아주 기대가 되는구먼.”

갑자기 진지하게 미꾸라지 마릿수를 얘기하는 오선생과 삼촌의 모습에 찬이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순실이 누나가 답답했는지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들었다.

“아이고, 이 분들 또 자기끼리만 신났네! 나만 몰랐을 땐 가만 있었지만, 이젠 찬이도 있고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못하겠어요! 우리도 알아듣게 하나하나 설명해 봐요.”

삼촌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지하 이분의 일층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1년 내내 극성인 모기다. 지하실은 항상 따듯하다 보니 모기의 유충인 장구벌레에겐 이곳이 천국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모기가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을 귀찮게 했다.

삼촌과 오 선생은 그 대책으로 장구벌레의 천적인 미꾸라지를 정화조와 하수구에 풀어 놓았다. 처음엔 미꾸라지가 장구벌레를 있는대로 잡아먹으면서 모기가 크게 줄었다.

“그런데 곧 문제가 생겼어요. 마릿수는 점점 늘어가는데 먹이는 부족해지자 미꾸라지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죠. 오히려 그 시체를 먹는 장구벌레는 점점 늘어났고요.”

“맞아요. 언제부턴가 다시 모기가 엄청 많아졌어요.”

순실이 누나가 모기에 물려 가려운 듯 팔뚝을 긁어댔다. 오 선생이 말을 이어받았다.

“우리는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냈다네. 미꾸라지의 마릿수를 예측해, 안정적으로 조절하자는 아이디어였지. 문제는 미꾸라지 수를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을까였다네.”

“결론은 수열이었어요. 미꾸라지가 피보나치 수열을 따라 늘어난다고 생각해 본 거죠.”

‘피보나치 수열?’ 찬이는 수수께끼 책에 있던 문제를 떠올렸다.

“그럼 다음 달엔 세 마리, 그 다음 달엔 다섯 마리로 늘어나는지 알아보면 되겠네요?”

찬이의 대답에 오 선생은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단다. 6개월만 지켜보면 어느 정도 맞다 틀리다를 알 수 있을 거 같구나.”

“그래서 지금 6개월 동안 미꾸라지가 제대로 늘어나는지 지켜보겠다는 거예요?”

한참을 듣던 순실이 누나의 질문에 오 선생과 삼촌은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고! 이 사람들아, 그럼 6개월 동안 모기는 어떡해요? 그냥 계속 헌혈하고 살아? 내가 못 살아 아주! 영양가 없는 얘기 그만하고 어서 식탁이나 치워요!”

순실이 누나는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 선생과 삼촌은 머쓱한 표정으로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 화민이 형은 익숙하다는 듯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흔한 상황인 듯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찬이도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지하 이분의 일층에서의 첫 날이 저물어 갔다.



김밥집 그녀

찬이는 빠르게 지하 이분의 일층에 적응해 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삼촌과 함께 붉은 벽을 열고 나가 학교로 갔고, 어두워지면 다시 붉은 벽 안으로 들어왔다. 땅 아래서 잔다는 것 말곤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지하 생활이 일상이 되자 찬이는 슬슬 심심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오 선생이나 삼촌과 함께 수수께끼를 풀면서 놀았지만 금세 지겨워졌다. 무엇보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찬이의 갈증을 눈치챈 건 순실이 누나였다.

“찬이야, 내일부터 누나네 김밥집에 나오지 않을래?”

순실이 누나는 지하상가 끄트머리에서 작은 김밥집을 하고 있었다. 마침 일손도 부족했고 찬이도 그곳에서 일하면 조금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하는 게 누나의 생각이었다. 처음엔 반대하던 삼촌도 찬이의 끈질긴 부탁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다음 날부터 찬이는 누나네 김밥집에서 저녁마다 일을 돕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김밥집에 나타났다.

2015년 03월 수학동아 정보

  • 이한기(dryhead@donga.com) 기자
  • 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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