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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의 사탑 기울기를 재다


해상강대국, 피사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늦게 통일된 나라에 속한다. 그 전에는 왕국, 공작이나 후작이 다스리는 공국, 몇 개의 가문이 다스리는 공화국들로 나뉘어 있었다. 피사는 현재 인구 8만 명 남짓한 작은 도시지만한때는 강력한 해상공화국으로 이름을 떨쳤다. 피사는 북쪽으로는 세르키오 강, 남쪽으로는 아르노 강이 있어 토지가 비옥하고 물자가 풍족했으며, 외적을 방어하기에도 좋았다. 덕분에 피사공화국은 10세기 무렵에 지중해에서 막강한 해군함대와 상선을 가진 국가가 됐다.

피사대성당은 시칠리아 북쪽 팔레르모에서의 승리를 기념해 지었다. 이때는 이미 8세기 초부터 북아프리카, 스페인, 프랑스까지 침입하면서 사라센제국이 용맹을 떨치던 시기었으니 피사공화국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토록 화려했던 피사는 북서쪽에 자리한 제노바공화국과의 전투에 패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피사는 1406년 피렌체공화국에 정복당하고 말았다. 공화국은 사라졌지만 피사의 화려한 역사는 미라콜리 광장에 남아 있었다. 이 광장 안에 자리한 피사의 사탑은 대성당, 세례당과 함께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여러 건물 중에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세례당이었다. 원기둥 위에 주황색 반구를 얹은모양인 세례당은 12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세워졌다.

30분마다 안내원은 관람객들을 조용히 시킨 다음, 청아한 목소리로 “아~”하고 길게 소리를 내는데,그 소리가 세례당 안을 돌아 울려 퍼졌다. 반원형으로 생긴 그리스 극장이나 원형 로마 극장의 객석에서 마이크를 쓰지 않아도 배우의 소리가 잘 들리는 것처럼 원형 모양의 건물에서는 소리가 잘 반사된다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해상강대국, 피사
 

수학자 피보나치를 만나다
 

수학자 피보나치를 만나다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캄포산토다. 옛 사람들의 무덤이 있는 캄포산토로 가는 기분이 묘했다.캄포산토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선조들의 무덤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보여주듯 흐릿한 벽화와 죽은 이를 기리는 조각 사이를 걷다가 드디어 발견했다. 바로 레오나르도 피보나치의 무덤이다.

피보나치는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수 체계인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유럽에 퍼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수학자다. 피사공화국이 강력한 해상국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기인 12세기 초, 피보나치는 피사에서 태어났다. 당시 유럽에서는 기록은 로마 숫자로, 계산은 셈판에 돌을 놓으며 했다. 셈판은 기원전부터 사용한 도구로 동양의 주판과 비슷하다.

피보나치의 아버지는 북아프리카에서 무역을 담당했는데, 피보나치는 그곳에서 아라비아 사람들이 쓰는 숫자를 알게 됐다. 아라비아인의 숫자는 바로 계산할 수 있어 로마 숫자보다 훨씬 편리했다. 피보나치는 아랍의 수학을 배우기 위해 지중해 지역의 국가를 여행했고, 그 뒤 피사로 돌아와 1202년에 ‘산술교본’이란 책을 썼다. 이 책은 아라비아 숫자가 유럽에 널리 퍼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로마 교황청은 아라비아 숫자가 위조하기 쉽다는 이유로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결국 14세기에 아라비아 숫자를 승인했다.

헬리코이드 계단을 따라 탑 안으로
 

피사의 탑 내부에 있는 헬리코이드 모양의 계단(➊)과 나선형 철사를 비눗물에 담가서만든 헬리코이드 곡면(➋).
 

어느덧 예약한 시간이 다 되어 사탑 앞으로 갔다. 1173년 피사공화국은 전성기에 부와 힘을 자랑하기위해 다른 어느 도시의 종탑보다 더 큰 종탑을 짓기로 결정했다. 탑은 2층을 짓던 1178년부터 기울기시작했다. 탑을 세운 땅이 단단하지 못했고, 탑의 토대가 불과 3m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사의땅은 오랜 세월 동안 진흙과 모래, 조개껍질이 쌓여 다져진 곳이라 지반이 약하다. 한쪽이 내려앉으면서 탑도 기울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탑이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기울어진 쪽 기둥을 다른 쪽 기둥보다높게 하기도 하고, 탑 7층에는 음계를 따라 7개의 종을 설치할 때 무거운 종을 높은 쪽에 달기도 했다. 제노바공화국, 피렌체공화국 등과의 전쟁으로 중간에 번번이 공사를 중단했지만 피사의 사탑은 건설시작 177년 만인 1350년에 완공됐다. 낮은 쪽의 높이는 55.86m이고, 높은 쪽의 높이는 56.70m로 탑은 5.5˚가 기울었다. 1990년에는 보강공사를 하기 위해 출입을 막고는 높은 쪽의 땅 아래에 38m³흙을 파내고 무게를 덜기 위해 종을 옮겼다. 결국 2001년부터는 사람들에게 다시 공개할 수 있게 됐다.

한편 피사의 사탑 내부에는 나선형 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을 따라 탑 내부를 빙빙 돌며 올라갈 수 있다. 이 계단은 나선 형태로 길게 뺀 철사를 비눗물에 담글 때 생기는 막과 닮았다. 이 곡면을 ‘헬리코이드’ 라고 부르는데, 이는 철사로 만드는 곡면 중에서 넓이가 가장 작다고 알려져 있다. 비누막은 안정적인 구조를 갖기 위해서 최소의 넓이를 갖는다. 이 때문에 헬리코이드 곡면은 건축에 종종 이용된다. 이탈리아 대부분의 종탑 계단은 헬리코이드 모양이다.

탑의 기울기 재는 방법

피사의 사탑이 몇 도 기울어졌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탑 주변을 한 바퀴 돌았더니 어느 곳에서는 별로 기울어 보이지 않고, 어떤 곳에서는 기울어 보인다. 왜 그럴까? 쉽게 이해하기 위해 부드러운 판에 이쑤시개를 삐딱하게 꽂아보자. 평면에서는 두 직선 사이의 각도를 각도기로 쉽게 잴 수 있다. 그런데 공간에서 이쑤시개와 바닥의 판이 이루는 각을 재려면 어느 쪽에서 각도기를 대야 할까?

이쑤시개가 동쪽으로 10°기울었다고 하자. 그러면 남쪽이나 북쪽으로 기울어진 각도는 0°다. 이와 같이 공간에서는 방향에 따라 기울어진 정도가 다르다. 그러니 이쑤시개가 얼마나 기울었는지 알려면 먼저 기울어진 방향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수학의 ‘정사영’ 을 이용하면 쉽다.

이쑤시개 위에서 판과 수직으로 빛을 비췄을 때 생기는 그림자를 정사영이라고 하는데, 그림자가 생긴 방향이 곧 이쑤시개가 가장 많이 기울어진 방향이다. 따라서 90°에서 이쑤시개와 그림자 사이의 각을 빼면 이쑤시개가 얼마나 기울어졌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탑의 꼭대기에서는 땅에 수직으로 빛을 비추는 일이 없다. 위도가 53˚나 되는 피사에는 일 년 중 어느 날도 햇빛이 수직으로 비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삼각비 중 하나인 탄젠트를 이용해 사탑의 기울기를 구할 수 있다.

tip
피사의 또 다른 위인, 갈릴레오 갈릴레이


피보나치 외에도 피사에서 태어난 유명한 사람이 또 있는데, 그가 바로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갈릴레이는 피사의 사탑에서 자유낙하 실험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보다 빨리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며 높은 곳에서 물체를 떨어뜨리면 무게에 상관없이 동시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가 피사의 사탑에서 직접 쇠공을 떨어뜨려 실험했다기보다는 사고실험으로 밝혀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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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수학동아 정보

  • 조숙영 교사
  • 남호영 교사
  • 정미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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