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올림픽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로 꼽히는 F1은 평균 2주에 한 번 꼴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경기를 치른다. 전 세계 5억 3000만 명이 경기를 시청하고, 1년에 약 400만 명이 경기를 직접 관람한다. 우리는 그들 앞에서 경기를 무사히 치를 수 있을까.
10월 14일, 연습 주행
올해로 2회째를 맞이하는 영암 F1 한국그랑프리는 한 해에 치러지는 총 19개 대회 가운데 16번째 대회다. 12개 팀에서 2명씩 총 24명이 출전한다. 성적에 따라 1위부터 10위까지 25점, 18점, 15점, 12점, 10점, 8점, 6점, 4점, 2점, 1점을 부여한다. 19경기가 끝나고 최고득점자와 최고득점 팀이 각각 시즌 챔피언과 우승팀이 된다.
올해 15개의 대회를 치른 결과 현재 1위는 제바스타인 페텔(레드불)로 324점을 획득했다. 그 뒤를 젠슨 버튼(맥라렌, 210점)과 페르난도 알론소(페라리, 202점)가 뒤쫓고 있다. 하지만 페텔과 버튼의 득점차가 114점이라 버튼이 남은 4경기를 모두 이기고, 페텔이 10위권 안에 들지 못해도 페텔의 점수가더 높기 때문에 시즌 우승은 이미 결정됐다. 팀 순위는 페텔이 속한 레드불이 518점을 기록해 버튼이 속한 맥라렌(388점)을 130점 차로 앞서고 있다. 우승팀은 아직 알 수 없다.
3일간의 대회기간 중 첫째 날인 10월 14일에는 연습 주행을 하면서 경주차에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야한다. 또 타이어의 선택과 차체의 무게 관리, 주행 기술에 관한 작전을 세우며, 승부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마지막으로 점검해야 한다.
연습 주행은 오전에 90분, 오후에 90분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아침부터 많은 비가 내렸다. 트랙은 미끄럽고 앞은 보이지 않았다. 비올 때 주행한 적 없는 우리는 결국 1차 연습 주행을 포기했다. 페르난도 알론소(페라리) 등 프로선수 6명도 주행을 포기했다. 예선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주행을 포기해 조바심이 났다.
오후 2시. 2차 연습 주행이 시작됐다. 비는 거의 그쳤지만 트랙은 여전히 미끄러웠고, 정상적인 주행을 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열심히 트랙을 돌고 또 돌았다. 하지만 한 바퀴를 주행한 기록이 연습 때보다도 낮았다. 이대로라면 예선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
예선은 3차례로 나눠 진행된다. 1차 예선에선 20분 동안 자유롭게 트랙을 돌면 최고 랩타임(한 바퀴 기록)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 뒤에서부터 7명의 선수는 결승에서 18~24번 자리에 배정되고 2차 예선에 참여하지 못한다. 2차 예선에선 17명의 선수가 1차 예선과 같은 방법으로 15분 동안 트랙을 돌면 순위를 매겨 뒤에서 7명의 선수를 다시 제외시킨다. 결승에서 11~17번 자리에 배정된다. 3차 예선에선 10명의 선수가 10분간 트랙을 돌면 최고 랩타임 순위를 매겨 순서대로 결승에서 1~10번 자리를 배정받는다.
그런데 올해부터는‘107% 룰’이 적용돼, 1차 예선에서 가장 빨리 들어온 선수의 기록을 100%라 할 때, 107%를 초과하는 선수는 결승에 나갈 수 없다. 지난해까지는 결승의 자리를 배정하기 위해 예선을 치렀지만 느린 F1 경주차가 상위권 경주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있어 이 같은 제도가 도입됐다.
예를 들어, 연습 주행 1위인 루이스 해밀턴(맥라렌)의 기록으로‘107% 룰’을 적용해 보자. 해밀턴의기록이 1분 50초 828이므로 쉽게 초 단위 아래는 버리고 100% : 110초 = 107% : x로 계산할 수 있다.비례식을 풀면 x=117.7초. 즉 약 1분 57초 안에 한 바퀴를 돌아야 결승에 진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1차 예선에서 다른 선수들의 기록이 연습 주행 기록보다 더 좋을 것이다. 우리는 한 번도 1분 대의 기록을 낸 적이 없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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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예선 경기
다행히 어제 새벽부터 내린 비가 그쳤다. 하지만 서킷이 여전히 축축해 오늘 예선 경기에 어떤 타이어를 사용해야 할지 고민이다.
모든 F1 자동차는 각 그랑프리마다 여러 종류의 타이어를 공급받는다. 날씨와 용도에 따라 다른 타이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F1 전용 타이어는 일반 승용차에 사용되는 것과 매우 다르다. 폭이 일반 타이어보다 2~3배쯤 넓어 광폭타이어라 부르며, 서킷의 노면에 잘 달라붙는 정도(접지력)와 노면에 닿는 면적을 가장 크게 하기 위해 표면이 찐득찐득한 민무늬 타이어를 사용한다. 이는 달리기 선수가 트랙을 박차고 앞으로 가는 힘을 더 얻기 위해 일반 운동화가 아니라 스파이크가 달린 운동화를 착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접지력을 높일수록 차의 속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달 공부했더니 준전문가가 다 된 것 같다. 만약 연습 주행 때 처럼 오늘도 비가 온다면 배수용 홈이 파져 있는 타이어를 사용해야 한다.
F1 경기에 사용할 수 있는 타이어의 종류는 모두 6가지. 예선 경기를 잘 치르기위해 각각 어떤 특성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2011 한국 그랑프리에서는 각 팀에게 드라이 타이어 중 노란 테두리의 소프트 타이어(주 사용) 6세트와 빨간 테두리의 슈퍼 소프트 타이어(선택 사용) 5세트, 웨트 타이어 중 파란 테두리의 인터미디어트 4세트와 주황 테두리의 웨트 타이어 3세트가 제공됐다.
본 대회 출전 경험이 없는 수학동아 팀 스탭들은 큰 고민에 빠졌다. 연습 주행을 위한 타이어와, 예선 ㆍ 결승 경기에 사용되는 타이어가 각각 따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중 총 6세트(소프트 타이어 3세트, 슈퍼 소프트 타이어 3세트)의 타이어는 예선 경기에서부터 결승 경기까지 사용해야 하므로 함부로 선택할 수 없다.
슈퍼 소프트 타이어는 접지력이 매우 강해 빠른 속도를 낸다. 하지만 내구성이 약해 오랜 시간 사용할 수 없다. 1초가 아쉬운 우리 팀에게는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슈퍼 소프트 타이어를 결승 경기에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소프트 타이어는 슈퍼 소프트 타이어에 비해 접지력이 조금 부족하지만 강한 내구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강한 내구성을 고려해 이번 예선 경기에는 그동안 주로 사용했던 소프트 타이어를 장착하기로 했다. 또한 타이어를 가장 경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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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그랑프리 공식 타이어
F1 타이어는 2008년부터 1개 업체에서만 공급하고 있다. 2010년까지는 브리지스톤이 공급했고, 2011년 부터는 피렐리가 공급한다.
타이어 사용 전략
보통 다른 F1 자동차의 타이어는 1초에 평균 50바퀴를 회전한다. 하지만 이는 맑은 날 서킷을 한 바퀴 도는 데 1분 40초 내외의 기록을 가진 팀의 이야기다.
맑은 날 우리 팀이 서킷을 한 바퀴 도는 최고 기록은 약 2분, 평균 기록은 2분 30초 정도다. 만약 이대로라면 우리 팀은 주행 속도가 다른 팀보다 월등히 느려 자연스럽게 타이어의 마찰 횟수도 증가한다. 또한 다른 팀은 주 사용 타이어를 사용했을 때, 보통 5만 번의 마찰이 일어난 뒤 타이어를 1회 교체한다. 타이어 관리를 잘한 경우 그 이상의 주행도 가능하다.
그런데 만약 우리 팀이 결승에 진출한다면, 다른 팀보다 타이어를 더 자주 교체해야 한다. 타이어를 자주 교체하는 것은 아직 기술이 서툰 우리 팀에게는 매우 불리한 일이다.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타이어를 경제적으로 사용해야만 한다. 게다가 영암 서킷은 타이어의 마모 정도가 다른 서킷에 비해 심하고급한 코너가 많아‘타이어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사용하는가’가 순위를 좌우할 확률이 높다.
10월 16일, 결전의 날
아…, 수학으로 완전 무장했지만 욕심이 과했던 걸까. 우리 팀은 예선 경기에서 107%의 벽을 넘지 못했다. 물론 꼴찌인 것을 예상했지만 예선 탈락이라니….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무모한 도전이었던 만큼 큰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한 마음이 든다. 결승만큼은 제대로 관람할 수 있게 돼 가슴이 벅차오른다.
10월 16일 오후 1~2시까지는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였는데, 막상 경기 직전이 되자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어제보다 강해진 바람 때문에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경기장. 한국 그랑프리의 피날레를 누가 장식하게 될까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긴장되는 순간 24명의 선수들이 모두 서킷으로 입장했다. 어제 예선 1위를 차지한 맥라린 팀의 루이스 해밀턴 선수가 풀 포지션(경기에서 가장 유리한 주행을 할 수 있는 출발 지점)에 자리했다. 경기에 앞서 스탭들은 저마다 자신의 선수들에게“소나기가 올지도 모르니 긴장하라”는 당부의 말을 남긴다. 결승 경기의 큰 볼거리 중 하나는 순위를 다투는 주행과 3~4초 안에 이뤄지는 타이어 교체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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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교체
타이어를 교체하려면 경기 도중‘피트구역’에 들어서야 한다. 타이어를 교체하는 시간까지 경기 주행 시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피트 스탑(피트 구역에 들어가 차가 정지하는 것)의 횟수를 줄일수록 경기에 유리하다. 또한 피트 레인에 들어가면 제한속도인 시속 100km로 서행해야 하므로 1~2초를 다투는 선수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규정상 타이어를 적어도 1번은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단 한 번의 피트 스탑도 중요한 경기 변수로 작용한다. 또한 타이어 교체 시 걸리는 시간은 평균 3.5초 정도 소요되고,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스탭들이 정해진 순서를 따르기 때문이다. 최소 16명의 스탭이 각자 맡은 역할을 1~2초 안에 수행해 모두 3~4초 이내에 타이어를 교체할 수 있는 것이다.
특별상 수상, 수학동아 팀‘불굴의 의지상’ 받다!
9바퀴째, 잠깐 빗방울이 흩날렸지만 타이어를 갈 만큼의 강수량은 아니었다. 다행히 그 뒤로 비 소식은 없었다. 16바퀴째, F1 황제 메르세데스 팀의 미하엘 슈마허는 경쟁하던 경주차와 충돌해 차량이 파손되면서 리타이어(차량 이상으로 경기를 포기하는 것)했다. 그의 경기를 보러 온 많은 팬들이 꽤나 실망한 눈치였다.
그렇게 55바퀴를 도는 숨 막히는 1시간 40분 남짓의 경기가 끝나고 우승자가 결정됐다. 전 구간을 1시간 38분 01초 994에 결승선을 통과한 레드불 팀의 제바스티안 페텔이 그 주인공이었다. 페텔 덕분에 레드불 팀은 남은 경기에 상관없이 이미 누적점수가 다른 팀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앞서 2011 시즌 우승팀으로 선정됐다.
주섬주섬 집에 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편집장님이 엄청 큰 웃음소리를 내시며 달려오셨다.
“우리 팀에게 특별상이 수여된다네! 원래 몇 개의 주요 F1 대표 팀에서‘F1 in Schools’라는 청소년 국제 F1 모형 대회에 자신들의 특별한 의미가 담긴 차의 일부 부품을 상으로 만들어 주는데, 우리팀은 청소년을 위한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며 그중 하나를 받게 됐어. 허허. 특별히 이번 해에 우승팀으로 선정된 레드불 팀이 우리 팀에게‘불굴의 의지상’을 준다는 거야. 허허. 자네들이 내 꿈을이뤄주었구먼! 고맙네. 허허.”
그렇게 우리의 무모한 도전은 아름답게 끝이 났다. 내년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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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F1 신화를 수학으로 쓰다
PART 1. F1에 도전장을 내다
PART 2. 숨 막히는 3일간의 대혈전
PART 3. 우리가 미래의 F1 국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