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 만드는 스타, 옥에 티는 있다
슈퍼스타K2와 위탄은 방송 초반, 국내외에서 치러진 예선전을 편집해 보여줄 때부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덕분에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의 백미는 매주 최종 결선 진출자가 펼치는 생방송이다.
최종 결선의 점수는 슈퍼스타K2의 경우 ‘사전 인터넷투표 10%+심사위원 4명의 점수 30%+생방송 중 시청자 문자투표 60%’ 로 이뤄졌고, 위탄도 ‘담당 멘토를 제외한 4명의 점수 30%+시청자 문자투표 70%’ 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시청자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스타를 뽑는 오디션이기에 대중성을 상징하는 시청자 문자투표 점수가 음악전문가로 이뤄진 심사위원의 점수보다 큰 힘을 발휘하는 제도는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문자투표의 방식이 대중의 의견을 잘 반영했는가를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두 프로그램의 문자투표 방식은 흔히 회장 선거에서 쓰는 1인 1투표제가 아니었다. 한 후보에게 한통의 문자투표를 할 수 있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지지하는 여러 후보에게 모두 투표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처음 겪어보는 투표 방식에 어색하기도 하지만 시청자의 의견을 반영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 뭐라 할 수는 없는 법. 하지만 투표 방식의 문제가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방송 중단 사태를 일으킨 발단이 됐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어떤가? 투표 방식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중요한 문제가 될수 있다.
올 상반기, 예능계의 최대 이슈는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나가수)’ 열풍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경연을 벌인다니 의아하기도 하고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훌륭한 가수가 다시 조명을 받고 가슴을 울리는 노래가 연령대를 뛰어넘어 사랑받게 된다는 점에서 시청자의 눈과 귀는 금세 이 프로그램에 모아졌다. 경연에서 소개된 노래는 방송 후 각종 음원차트를 휩쓸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최초 나가수의 규칙은 간단했다. 7명의 가수는 주어진 미션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연령대별로 100명씩 총 500명의 청중평가단은 경연을 마친 뒤 그 자리에서 투표를 한다. 그날 가장 감동을 준 가수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가장 표를 적게 얻은 가수는 다음 주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한다.
슈퍼스타K2나 위탄과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야 참가자가 가수 지망생이기에 탈락한다 해도 크게 잃을 건 없다. 하지만 나가수에서 탈락한 가수는 자존심과 명예를 생각할 때 그냥 웃고 넘기긴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초창기 나가수의 투표 방식은 청중평가단 500명의 뜻을 가장 잘 전달하는 방식이었을까? 이 프로그램이 처음 택한 투표 방식은 1인 1투표제였다. 각 가수가 얻은 표의 수에 따라 1위부터 7위를 정했다. 그런데 첫 탈락자의 이름은 출연한 가수, 방송 제작진, 시청자의 예상에서 빗나간 것이었다. 당황한 제작진은 탈락자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지만 도리어 논란만 키우고 말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탈락자를 뽑는데 1위에게 투표를?
나가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1위를 뽑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탈락자 1명을 가려내는 프로그램인것이다. 그런데도 청중평가단에게는 가장 감동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1명에게 투표하게 했다. 투표의 목적이 기획 의도와 완전히 달랐으니 엉뚱한 결과가 나올수밖에.
‘나 항상 그대를’ 을 록 버전으로 맛깔나게 부른 윤도현 밴드에게 표를 준 청중이 반드시 김건모를 7위라고 생각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1인 1투표제를 통해 다득표로 순위를 정하는 것은 청중의 속마음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무난한 공연을 한 탓에 표를 주진 못했지만 마음속에 담아둔 2위가 자칫 탈락자가 되기 십상인 것이다.
모든 가수에게 직접 순위를 매기는 방식은 어떨까? 이 프로그램에서도 가수의 매니저로 나오는 연예인 사이에서는 이 방식을 쓰고 있다. 예를 들어 청중평가단 37명이 A, B, C, D 4명의 가수에 대해 순위를 매긴 결과가 다음과 같다고 해 보자.
다득표로 따진다면 A가 14명에게 1위 표를 얻어 1등이다. 하지만 평가단의 마음을 모두 반영하기 위해 1위는 4점, 2위는 3점, 3위는 2점, 4위는 1점으로 점수화해 계산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A는 79점,B는 106점, C는 104점, D는 81점이 나와 B가 1위다. 오히려 A는 꼴찌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온다. 어쩌면 첫 탈락자였던 김건모는 B처럼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단지 1위 표가 적었다는 이유로 탈락했을 수도 있다.
모든 후보에게 순위를 매긴 뒤 점수화해 1위를 가리는 방식을‘보르다 방식’이라고 한다. 나가수가보르다 방식을 썼더라면 방송 중단이라는 극단적인 사태에는 이르지 않았을 테다. 가수들의 경연을 그리워하던 시청자 역시 방송국이 왜 이런 방법을 몰랐냐고 투덜거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만약 나가수의 PD가 투표 방식을 보르다 방식으로 바꾸고 “이제 완벽한 투표 방식을 도입했으니 안심하세요” 라고 한 뒤,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 보자. 계산을 쉽게 하기 위해 청중평가단의 수는 11명으로 했다.
보르다 방식에 의해 32점을 얻은 B가 1위에 올랐다. 그런데 왠지 꺼림칙하다. 총 11명 중에서 A를 1위로 선택한 사람이 6명으로 절반을 넘는데도 A는 3위에 머무른 것이다. 오히려 B를 1위로 선택한 사람은 2명밖에 되지 않는다. 만약 A가 실력은 뛰어나지만 평소 이미지가 좋지 않아서 안티팬이 많다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이처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총점 때문에 빚어진 사태 역시 청중의 속마음을 잘 반영했다고 보기 힘들다. 상황이 어떻게 벌어지느냐에 따라 보르다 방식도 완벽한 투표 방식이 아닐 수도 있다.
tip 보르다 투표 방식
프랑스의 수학자 쟝 샤를 드 보르다가 1770년에 개발한 투표 방식으로 프랑스과학원의 회원을 선출할 때 처음 쓰였다. 현재는 슬로베니아 국회를 비롯해 몇몇 학술기관의 선거에 쓰이고 있다.
1인 3투표제에 누적투표제를 덧붙인다면?
슈퍼스타K2와 위탄은 처음부터 ‘1후보 1투표제’ 를 채택했다. 꼭 지지하고픈 후보가 여럿 있다면 모든 후보에게 문자투표를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런 방식을‘승인투표제’라고 부른다. 여기서 1위를 하려면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아야만 가능하다.
슈퍼스타K2의 기억을 되짚어보자. 마니아가 생길 정도로 열혈 팬이 따로 있었던 장재인과 잘 생긴 외모 덕에 여성 팬이 너무 많아 남성 팬이 적었던 존 박은, 특별히 내세울 것 없었던 허각에게 폭넓은 지지를 빼앗겼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전의 경연에서 아슬아슬하게 올라왔던 허각은 결국 최종 경연에서 우승자로 결정됐다.
5월 1일, 나가수는 새로운 포맷으로 방송을 다시 시작했다. 크게 두 가지 규칙을 바꿨는데, 첫째는 경연을 두 차례 거친 뒤 탈락자를 정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기존의 1인 1투표제를 1인 3투표제로 바꾼다는 것이다. 하필 첫날 고른 곡이 그 가수의 장점을 잘 드러내지 못 할 수도 있고 얼마나 알려진 곡을 골랐느냐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가수에게는 두 번의 기회를 주고 평가단에게는 3명씩 선택하게 한 것이다.
1인 3투표제는 일종의 승인투표제다. 물론 이것 역시 다른 투표 방식처럼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는 1951년에‘완벽하게 합리적이면서도 민주적인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수학적으로 증명해 노벨상까지 수상한 바 있다.
하지만 분명 처음의 투표 방식보다는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조차 투표 방식이나 결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한다면 방송이 산으로 가 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린 탓에 마지막 조언을 하나 하고 싶다. 나가수에 나오는 7명의 출연자 중에서 지지층이 적은 가수에게 1인 3투표제는 불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윤도현 밴드가 원래 추구하는 록 정신을 살린 공연을 계속한다면, 다양한 연령대의 지지를 꾸준히 받아 살아남으리라는 보장을 받기 힘들다. 물론 앞선 경연에서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하지만 청중들이 평소 경험하지 못한 퍼포먼스 덕이었던 경향이 짙다. 꼭 1위가 아니어도 좋으니 6위안에 들어 록 밴드가 끝까지 버텨주길 바라는 소수 팬의 마음을 보호할 투표 방식은 없는 걸까?
그래서 나가수의 1인 3투표제에 누적투표제를 덧붙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반드시 3명의 가수에게 투표하기보다, 좋아하는 A 가수가 오늘 최고의 공연을 펼쳤다면 다른 가수에게는 투표하지 않고 3표를 모두 A에게 줄 수 있게 하는 방식 말이다. 이 방식이라면 록 음악을 지지하는 소수의 바람이 끝까지 지켜질 수도 있을 것이다. 누적투표제는 아카데미 영화제의 수상작을 결정할 때나 스위스와 독일의 의회 선거에서도 이미 사용하고 있다. 결과를 계산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은 제작진의 몫에 맡긴다.
아무튼 완벽하게 공정한 투표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작진이 공정성을 확보한 최선의 투표 방식을 택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때부터는 프로그램을 즐기는 게 맘 편하다. 나가수의 기획 의도처럼 훌륭한 가수들의 노래로 행복한 일요일 저녁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tip 애로의 불가능 정리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필요한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한 뒤, 이들이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모든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는 ‘애로의 불가능 정리’ 로 197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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