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누에서 진 신라의 김유신은 이제 백제 계백과의 한판에 더 신경을 쓴다. 신라는 경기도 남부 지역을, 백제는 충청도 북부 지역을 놓고 쌍륙으로 서로의 실력을 겨룬다. 영토를 넓히는 장수는 백제의 계백일까, 신라의 김유신일까?
백제 계백 vs 신라 김유신의 쌍륙 한판
쌍륙은 윷놀이처럼 말을 종착지까지 먼저 보내면 이기는 놀이다. 고누에서 진 김유신을 불쌍하게 여긴 계백은 먼저 할 수 있는 기회를 김유신에 넘긴다. 보통은 각자 주사위를 하나씩 던져 높은 수가 나온 사람이 먼저 한다.
“누군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 김유신은 주사위 놀이를 매우 즐긴다는 사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주사위를 힘차게 던진 흰 편의 김유신. 고누를 시작할 때보다는 힘이 빠진 듯하다. 하지만 그의 말싸움 실력은 여전하다. 3·3이 나와 기분 좋게 ❶에 놓인 말 2개를 3칸 이동해 ❹에 위치시킨다.
“쌍륙과 계백, 뭔가 똑같은 느낌 안 들어? 그렇지, 이름이 2글자로 같거든. 또 난 어릴 때부터 쌍륙판 위에서 잠을 자고 있다고….” 계백도 쌍륙에 관해서는 누구와도 자신 있다는 말투로 반격하며 주사위를 던진다. 그런데 2·4가 나와 고민에 빠진다. 에 있는 말을 움직이자니 잡힐 가능성이 크고, ❻이나 ❽에 있는 말로 가로 막자니 상대 말이 가까이 와 있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잡힐 가능성이 낮은 건너편 의 5개 말 중에서 2개를 선택해 자기 쪽으로 2칸과 3칸씩 이동시킨다.
두 장수가 번갈아 주사위를 던지자 어떤말은 잡혀 처음부터 출발하기도 한다. 공이른다. 두 장수의 치열한 싸움 탓인지 말 대부분이 나고, 김유신의 말은⓴에 1개, ⓳에 1개가, 계백은 ❺에 2개, ❻에 2개가 남았다(그림1).
김유신은 자신의 진영 곳곳에 2개와 3개씩의 말을 놓아 상대의 말을 가로막는 전략을 펼쳤다. 이 전략이 의외로 잘 먹혀 계백이 곤란을 겪었다. 계백도 가로막기 전략을 활용했다. 하지만 여기에 의외의 변수를 노리는 전략을 함께 활용했는데, 이 전략이 잘 먹히지 않아 밀리고 있다.
김유신의 말 2개가 나는 데 필요한 칸 수는 11칸. 보통 주사위를 2번 던지면 날 수 있는 상황이다. 반면 계백의 말 4개가 나는 데 필요한 칸 수는 22칸이라 주사위를 4번 정도 던져야 날 수 있다. 게다가 김유신 차례다.
“많이 논다고 잘 하는 건 아니지. 얼마나 전략을 잘 쓰느냐가 중요하지. 그렇게 막무가내로 말을 움직인 탓에 승리는 내 몫같네. 하하.” 다 이겼다는 듯 느긋하게 주사위를 던지는 김유신, 그런데 1·1이 나온다. ⓳에 있는 말을 2칸 이동한다. 반면 말없이 주사위를 던지는 계백, 그런데 5·5가 나온다. ❺에 있는 말 2개를 종착지로 보내 나는 계백, 일반적으로는 ❻의 말을 이동시키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남은 기회가 너무 없어 계백은 모험을 거는 쪽을 선택한다.
약간 긴장한 김유신, 주사위를 던지려고 하는데, 갑자기 계백이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중얼거린다. “신라 귀족과 장수는 간과 쓸개가 없다던데, 사실인가? 당나라에 다 줬다며.” 여기에 발끈한 김유신, 화를 내며 대꾸한다.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우린 자존심 빼면 시체인 나라라고. 참 어처구니가 없네.” 하지만 손은 떨리고, 주사위는 2·3의 눈금이 나온다. 떨리는 손으로 20의 말 1개를 나는 김유신. 여전히 김유신이 유리하다. 계백의 주사위가 6·6(줄육)이 나오지 않는 이상 김유신에게 기회가 한 번 더 오기 때문이다.
“쌍륙은 뭐니 뭐니 해도 운이 중요하지. 줄육 나와라~! 줄육!” 큰소리로 줄육을 외치며 던진 계백의 주사위는 신기하게도 6·6의 눈금이 나온다. “이겼다!” 계백이 외친 승리의 환호와 함께 경기도 남부는 백제의 영토로 귀속된다.
쌍륙
규칙 ① 둘 또는 넷이 편을 갈라서 2개의 주사위로 한다. 처음 시작할 때 그림과 같이 각자 말 15개를 놓는다. 지역에 따라 12개나 16개를 놓기도 한다.
규칙 ② 말은 주사위를 던져서 나오는 숫자에 따라 옮긴다. 두 주사위의 눈이 2와 3이 나오면 말은 1개를 5칸 이동하거나 1개를 2칸, 다른 1개를 3칸 이동한다. 이때 이동하려는 2번째와 3번째 칸 모두 상대편 말이 2개 이상 있으면 움직일 수 없다.
규칙 ③ 말은 한 칸에 최대 5개까지 모을 수 있다.
규칙 ④ 흰 편은 자기편 안육(오른쪽 위 6칸)에, 검정편은 자기편 안육(왼쪽 위 6칸)에 말 15개를 모두 모은 다음, 안육의 一(일) 밖(종착지)으로 내보내면 이긴다. 건너편 말은 상대의 바깥육(아래쪽)으로 옮겼다가 자신의 바깥육을 거쳐, 다시 자신의 안육으로 옮긴다.
규칙 ⑤ 가려는 자리에 상대방 말이 1개 있으면 잡고 들어가지만 2개 이상 있으면 이동할 수 없다. 단,주사위 2개가 같은 수가 나올 때는 말 2개를 잡고 들어갈 수 있다. 잡힌 말은 건너편 一(일) 밖(상대편 종착지)에서 시작한다. 말이 잡히면 잡힌 말부터 이동해야 한다.
규칙 ⑥ 말을 이동할 수 없을 때는 그대로 둔 채 차례를 상대방에게 넘긴다.
주사위 확률과 가로막기 전략이 중요
주사위 2개를 이용하는 쌍륙은 주사위의 눈금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말의 움직임이 달라진다. 즉 어떤 주사위 값이 나오느냐가 승부의 중요한 변수다. 하지만 이 값은 스스로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반해 말은 전략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자신의 말로 상대의 말을 가로막거나 따내면서 가장 먼 곳의 말을 서둘러 이동시키는 전략이 가능하다.
가로막기 전략은 안육(六)에 있는 말 5개와 바깥육(五)의 말 3개, 그리고 건너편 바깥육(一)에 있는 말 5개로 상대의 이동하는 말을 가로막는 것이다. 한 자리에 말2개가 있으면 주사위 2개가 같은 숫자가 나오지 않는 이상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없다. 연달아 놓인 6개의 자리에 모두 말이 2개씩 놓여 있다면 그 지역을 상대방 말이 통과하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특히 말 3개가 한 자리에 들어가면 상대말은 그 자리에 들어갈 방법이 없다. 이런 특성 때문에 말을 이동할 때도 따로 떨어진 말을 주사위 눈금에 따라 한 자리로 모아가며 이동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처럼 말 이동에 관한 규칙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쌍륙의 묘미다. 하지만 길을 가로막으려다 잡힐 수 있고, 한 자리에 말 2개를 넣기도 쉽지 않아 가로막기 전략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도 어렵다. 특히 자기 편에서 잡히면 가장 먼 데서 출발해야 해 그 손실은 건너편 말이 잡히는 것보다 더 크다.
비록 주사위 값은 운일지라도 우리는 주사위가 만드는 확률을 이용할 수 있다. 주사위 하나로 나올 수 있는 숫자는 모두 6가지다. 2개가 되면 36가지다. 그런데 1·2나 2·1을 같다고 보면 2개의 주사위로 나오는 가짓수는 총 21가지. 이를 숫자의 합으로 나타내면 2, 3, 4, 5, 6, 7, 8, 9, 10, 11, 12로 총 11가지로 준다.
이처럼 놀이에서 우연성은 승부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다. 여기서 우리는 놀이에서 똑똑하거나 잘난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나 이길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놀이의 세계가 공평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물론 말을 전략적으로 이동하는 것도 중요하므로 똑같은 운이라면 전략적으로 말을 움직인 사람이 유리할 수 있다.
✚쌍륙과 같은 서양의 백개몬
인도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진 쌍륙은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10줄 3열이던 판이 로마시대에 12줄 2열로 바뀌었다. 이 쌍륙은 실크로드를 거쳐 인도와 중국으로 들어왔고, 삼국시대에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에까지 건너갔다. 오늘날 유럽의 백개몬(backgammon, 사진)은 인도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쌍륙의 하나로 우리 쌍륙과 비슷하다.
이처럼 쌍륙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전역에서 즐기는 주사위놀이다. 쌍륙이라는 이름은 판의 칸이 한 줄에 12개, 즉 6×2인 데서 붙여졌다. 주사위는 짐승 뼈나 나무 등을 깎아 6면체로 만든 뒤 각 면에 1개부터 6개까지의 눈을 새겼다.
쌍륙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전기까지는 상류층에서 즐기다가 조선시대 후기에는 민간에까지 널리퍼졌다. 그 기록을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 목민심서 등 다양한 문헌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사랑받았다.
쌍륙을 현대에 맞게 고친 용호쌍륙
용호쌍륙은 주사위 2개로 즐길 수 있는 쌍륙을 오늘날에 맞게 단순한 형태로 바꾼 것이다. 한 사람은 위쪽 6자리에서, 한 사람은 왼쪽 6자리에서 출발하며, 각자리에는 2개의 말을 놓는다. 주사위 숫자에 따라 말을 건너편(아래 또는 오른쪽)으로 모두 옮긴 다음,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수에 따라 원래 자리로 모두 돌려보내면 이긴다. 자세한 놀이 방법은 별도로 제공되는 브로마이드를 참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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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전통놀이 삼국지
Part 1. 실수가 승부를 가른 고누
Part 2. 기막힌 운이 승리를 가져다준 쌍륙
Part 3. 확률과 전략이 절묘할 때 승리하는 윷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