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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실수가 승부를 가른 고누

먼저 신라의 김유신과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호박고누 대결에 나선다. 김유신은 당대에 확보한 강원도와 함경도 남부 지역을, 연개소문은 기분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함경도 중부부터 북부까지를 걸고 실력을 겨룬다. 누가 자신의 영토를 넓힐 것인가?

신라 김유신 vs 고구려 연개소문의 고누 한판

“내 이래 봬도 한때 ‘고누신’이라 불릴 정도로 장난이 아니었거든. 그냥 포기하시지!” 고누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김유신은 말로 상대를 제압하고자 한 마디 던진 뒤, ❽에 있는 말을 ❼로 옮긴다.

 “니는 그저 입만 열면 거짓부렁이구먼. 고누는 내가 고수여서 ‘연고’ 안 불렸나. 내 말이 워낙 자리를 잘 잡아 후대 사람들이 이를 본떠 ‘연고’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연개소문도 이에 질세라 말발로 반격하며 ❹에 있던 말을 ❻으로 움직인다.

둘은 말을 신중하게 옮기면서도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려고 상대방을 자극하는 말을 계속한다. 어느덧 대결은 막바지에 접어든다. 김유신의 말 4개는 ❹와 ❻, ❾와 ⓫에, 연개소문의 말 4개는 ❶과 ❸, ❼과 ❽에 놓인다(그림 1). 이제 김유신 차례다.

 “신라가 당나라의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 고 연개소문이 말하자, 김유신은 발끈한다.

 “누가 그런 소릴 해. 우린 멋에 살고 멋에 죽는 나라라고. 어디서 씨알도 안 먹히는 소문을 듣고….” 하지만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크게 화를 내며 흥분하는 김유신. 그 탓일까, 중앙에 배치된 말의 위치를 잘못 보고 ⓫에 있던 말을 ❿으로 옮기는 ‘실수’를 하고 만다. 연개소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❸의 말을 ❷로 이동한다. 김유신은 그제서야 자신의 실수를 알았지만 상대가 눈치채지 않도록 태연한 척한다. 그리곤 ❻의 말을 ❺로 이동한다.

하지만 이미 승부는 기울었다. 김유신은 자신이 실수한 것처럼 상대의 실수를 노리지만 연개소문은 침착하기만 하다. 결국 연개소문이 ❼의 말을 ❻으로 이동하고, 김유신은 ❹의 말을 ❼로 움직인다. “이야!” 연개소문은 크게 환호성을 지르며 바로 ❷의 말을 ❹로 옮긴다(그림 2).

말을 더 움직일 수 없는 김유신. 김유신의 한 번의 실수가 승부를 갈랐다. 이로써 연개소문은 강원 지역을 되찾았다.

두 장수가 겨룬, 3가지 규칙이 적용된 호박고누는 모든 수를 알고 있는 고수들 사이에서는 항상 무승부가 되는 놀이다. 호박고누에서 말을 움직일 때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바둑이나 장기에 비해서 매우 작아 수학적으로 충분히 계산이 가능하다. 이를 계산한 강병련 충남대 수학과 교수에 따르면 무조건 이기는 수는 없다.

따라서 고수라면 승부를 결정짓는 모든경우의 수를 미리 알고 경기를 하기 때문에,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승부가 나지 않는다. 이야기처럼 이 조건에서 고수가 겨룰 때는 실수가 승부를 결정한다.

호박고누에서 말이 움직이는 경우의 수를 살펴보자. 첫 말이 움직일 수 있는 길은 3가지, 그 다음 상대방 말의 길은 2가지다. 이후는 각자 말을 중앙으로 얼마나 보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선 서로가 중앙으로 말을 더 보내지 않고 2개의 말만계속 중앙에서 움직이는 경우만 살피면 3가지와 2가지 가짓수가 계속 반복된다. 3×2×2×3×3×2…로 경우의 수가 계속 커지지만 실제는 5칸에 2개의 말을 놓는 상황과 같은 조합이 반복된다. 즉 첫 말은 5칸에 놓을 수 있으니 그 방법은 5가지, 두번째 말의 방법은 4가지라, 총 20(=5×4)가지 모양이 계속 바뀔 뿐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승부가 나지 않는다.

승부를 내려면 모두 최소한 2개의 말을 중앙으로 보내야 한다. 따라서 서로 이기려 한다면 4개의 말이 중앙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경우를 따지는 것이 의미 있다. 이때는 말이 이동할 수 있는 곳이 한 곳이라 경우의 수가 하나밖에 없을것 같지만, 이동할 수 있는 말이 2개인 경우가 있어 2×1×1×2×1×… 같은 식으로 계속 반복된다. 결국 2개일 때와 마찬가지로 4개 말을 5칸에 놓는 상황과 비슷해진다.

이때 2로 두번 나눠주는 것은 같은 말이 2개씩 있어 자리가 바뀌어도 같기 때문이다. 보통 이 30가지 중 자신에게 유리한 모양이 만들어졌을 때 자기 방의 바깥쪽 말을 가운데로 옮겨 승부를 결정짓는다.
 

연개소문과 김유신의 고누 대결
 

호박고누
 

호박고누


규칙 ①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색이나 모양의 말을 4개씩 시작 위치에 놓는다.
지역에 따라 3개를 놓기도 하는데, 이때는 규칙이 달라진다(브로마이드 참조).

규칙 ② 차례를 정해 번갈아가며 말을 한 번에 한 칸씩 움직여 상대방의 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이긴다.

규칙 ③ 자기 방의 가장자리에서 자기방의 가운데로 온 말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
 

경우의 수 작아도 무조건 이기는 수 없어

호박고누처럼 말을 이동하는 놀이는 매번 나타나는 경우의 수가 말을 놓는 바둑 같은 놀이보다 작다. 하지만 놀이를 계속하면 같은 경로를 여러 번 이동하거나 모든 모양을 한 번씩 만들 수 있어 실질적인 경우의 수는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 호박고누는 경우의 수보다는 말이 만드는 다양한 모양과 이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모양을 빨리 찾는 게 중요하다.
 

우물고누
 

더 간단한 우물고누도 비슷하다. (그림 1) 같이 2가지 경우로 처음 시작하는데, 백이 이기려면 (그림 2)의 상황을 만들면 된다. 우물고누는 호박고누에서 살펴본 것처럼 5칸에 4개 말이 들어가 만들 수 있는 모양은 30가지가 전부다.

가장 단순한 고누에 속하는 우물고누는 그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호박고누처럼 무조건 이기는 비법이 없다. 즉 경우의 수가 아주 단순하면서도 어느 한쪽이 무조건 이기는 방법이 없는 흥미로운 놀이다.

다시 호박고누로 돌아가보자. 호박고누는 보통 규칙①과 ②만 적용해 실력을 겨룬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승부가 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때는 여기에 규칙③을 도입한다. 그러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이기는 경우의 수를 다 알지 못하면 한쪽이 이긴다. 물론 수를 다 아는 고수들은 승부를 가르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에 ‘같은 말을 계속해서 다섯 번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규칙을 추가하면 무조건 먼저 하는 사람이 이기는 수가 생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재미가 사라지고 만다. 승부를 겨루는 놀이의 핵심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스포츠를 좋아하고, ‘각본 없는 드라마’ 는 표현을 쓰며 예상치 못한 결과에 열광하는 것은 누가 이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는 컴퓨터가 등장해 사람들이 컴퓨터가 알려준 방법대로 바둑을 둔다면 어떨까? 지금과 같은 바둑의 인기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실수를 한 것이건 모든 방법을 몰라서 둔것이건 간에 뛰어난 실력과 결합된, 승부를 가르는 예측하지 못한 변수는 항상 놀이에 재미를 준다. 황선욱 숭실대 수학과 교수는 “많은 놀이를 수학으로 해석하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놀이의 재미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전통놀이가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사람들이가장 재밌게 하도록 최적화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이를 재미로 즐기는 것이 수학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다는 설명이다.

✚고누는 바둑의 할아버지뻘

고누는 오목이나 바둑이 여기서 시작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래된 놀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고누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온 뒤, 이것이 우리나라에 들어 와 삼국시대에 일본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고누는 유럽으로도 퍼졌다. 오늘날 영국과 인도의 어린이들이 즐겨 한다.

고누는 땅이나 판에 놀이 그림을 그린 뒤 여기에 말을 놓고, 상대방의 말을 가두거나 잡는 놀이다. 말은 돌이나 나뭇가지, 바둑알처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사용했다. 각 나라의 고누도 기본적인 놀이 방법은 비슷하지만 말판 그림과 말의 수 등에서 차이가 있다.

고누는  ‘고노다’ 명사형인 고노에서 비롯된 말인데, 고노다는 잘되고 못됨을 살펴 점수를 매기다를 뜻하는 ‘꼲다’ 옛말이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우리 고누는 다른 놀이와 달리 가짓수가 많다. 가장 간단한 우물고누에서 줄고누, 자동차고누, 호박고누, 꽃고누 등 다양하다.

줄고누
 

줄고누
 

① 한 번씩 서로 번갈아 앞·뒤·좌·우로 한 칸씩 갈 수 있다.
② 자신의 말 사이에 끼여 있는 상대방 말을 잡을 수 있고, 상대의 말을 모두 잡으면 이긴다.

* 줄과 말의 수를 줄이거나 늘려서 하기도 한다.


자동차고누
 

자동차고누
 

① 각자 4개의 말을 쓰며, 앞·뒤·좌·우로 한 칸씩 갈 수 있다.
② 네 개의 원이 자동차 바퀴인데, 바퀴가 시작되는 곳에 닿으면 바퀴를 타고 돈 뒤, 바퀴가 끝나는 지점에서
직선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이때는 여러 칸을 갈 수 있다. 자기 말이 막고 있으면 바로 그 앞까지만 갈 수 있다.
③ 상대방 말은 바퀴를 돌고 난 뒤에야 잡을 수 있다. 상대의 말을 모두 잡으면 이긴다.

* 네바퀴고누, 자전거고누, 물레고누라고도 한다. 또 말판은 4~6줄로도 만들며 말을 줄 수의 배로 늘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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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확률과 전략이 절묘할 때 승리하는 윷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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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2월 수학동아 정보

  • 박응서 기자
  • 글 및 사진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
  • 글 및 사진

    고갑준 전래놀이연구가
  • 사진

    동아일보 외
  • 일러스트

    허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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