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 선수가 상대 선수의 공을 빼앗았습니다. 곧바로 김정우에게 패스~! 한국 공격 빠르게 전개합니다. 미드필드진이 상대 진영으로 빠르게 뛰어갑니다. 박지성! 김정우에게 공 이어받아 앞을 바라봅니다. 어디로 줄 것이냐?! 날카로운 스루 패스~! 박주영! 박주영! 골~!골인입니다~! 한국, 1대 0으로 앞서 나갑니다~!"
“이대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요즘 이대호 선수가 기록이 아주 좋습니다. 타율이 3할 4푼 5리예요. 하지만 투수 김광현 선수도 만만치 않습니다. 현재 방어율이 0.29밖에 되지 않아요. 과연 초반에 직구로 승부를 볼 것인지, 슬라이더로 유인할 것인지 주목됩니다. 자, 투수 와인드 업~!”
타율, 방어율, 출루율 등 선수들의 각종 기록을 바탕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야구와 달리 축구는 열심히 뛰기만 하면 되는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건 축구를 모르는 사람의 생각일 뿐! 현대 축구는 기록의 스포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수치로 기록하고 분석해 전술에 적용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월드컵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
분석은 팀 단위와 개인 단위로 구분할 수 있다. 팀 단위로는 공 점유율, 공침투 방향, 슈팅 방향, 공격이 시작되는 위치, 코너킥과 프리킥 등의 세트 플레이 전술 등을 기록한다. 개인 단위로는 공을 가지고 있던 횟수와 공을 가지고 있던 시간, 달리는 속도, 심장 박동수, 패스 방향, 드리블 방향 등을 기록한다. 이렇게 기록한 내용의 평균을 계산하거나 비율로 나타내 한눈에 어느 팀이나 선수의 특성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지금처럼 쉽게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월드컵에 나가도 상대팀의 전술에 미처 대응하지 못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2002년 한일월드컵을 거치면서 네덜란드를 비롯한 축구선진국의 분석시스템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경기 분석을 담당하는 전력분석관이 있어 상대팀의 전술과 선수의 성향을 치밀하게 조사한다.
상대를 분석해서 잘 막을 수 있었던 예가 지난 2006년 독일월드컵 프랑스전이다. 1대 1로 비기고 있던 경기 막판 골키퍼 이운재 선수는 프랑스의 공격수 티에리 앙리가 수비수를 모두 제친 상황에서 때린 슛을 침착하게 막았다. 당시 앙리는 반대쪽 골대를 향해 오른발로 감아차는 슛을 날렸는데, 이운재 선수가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 몸을 날려 막는 장면을 보고 수많은 사람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운재 선수는 “앙리의 움직임을 분석해 본 결과 앙리가 그런 상황에서 반대쪽 골대로 슛을 잘 날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상대 선수의 습관을 미리 파악했기 때문에 슛을 막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제 축구는 더 이상 열심히 뛰기만 하면 되는 ‘근성’의 스포츠가 아니다. 상대방과 우리의 전력을 수치로 만들어 평균을 내고 통계로 보기 좋게 정리한 분석 결과를 놓고 맞춤 전술을 짜는 ‘수학’의 스포츠다.
수학 교사 출신의 축구 명장
독일의 축구 감독인 오트마 힛츠펠트는 수학교사 출신이다. 젊은 시절 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한 뒤 수학을 가르쳤고, 축구 감독이 되어서는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세계 올해의 감독’에 두 번이나 뽑히기도 한 그의 성공 비결은 혹시 수학으로 단련된 철저한 분석 능력이 아니었을까?
포메이션에 숨은 ‘+1’의 비밀
축구는 약 105m×68m인 운동장 위에서 각각 11명씩의 선수가 공 하나를 가지고 겨루는 스포츠다. 105m×68m=7140㎡ 이므로 한 명이 무려 약 650㎡를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650㎡나 되는 공간을 한 사람이 막기는 힘들기 때문에 선수들은 동료 선수와 협력해서 상대팀 선수를 막아야 한다.
그런데 선수들이 아무 데나 서 있다면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경기에서 지지 않을까? 그래서 나온 것이 포메이션이다. 축구를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봤을 4-4-2, 3-5-2, 4-3-3 등이 바로 포메이션이다. 포메이션은 선수를 경기장에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지를 나타낸다.
보통 포메이션은 선수를 공격수와 미드필더, 수비수의 세 종류로 나누어 얼마나 많은 선수를 배치할 것인지 표시한다. 골키퍼를 빼고 수비수의 수를 먼저 쓰는 게 일반적이므로 4-4-2라고 하면 수비수 4명, 미드필더 4명, 공격수 2명을 배치하는 포메이션이다.
포메이션의 목적은 효율적으로 상대 공격을 막고 공을 빼앗아 골을 넣는 것이다. 혼자서 상대 수비를 모두 제치고 골을 넣는다면 좋겠지만 웬만큼 뛰어나지 않고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위의 동료와 패스를 주고받으며 움직여야 하는데, 여기에 ‘+1’의 비밀이 있다.
공이 있는 지역에 상대팀 선수보다 우리팀 선수가 많으면 유리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선수들은 일정한 지역 안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수비수 3~4명이 상대 공격수 1명을 막는다면 오히려 다른 곳에서 ‘수적 열세’에 놓일 수가 있다. 따라서 1명 정도만 더 많은 상태에서 막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1을 지켜라
수비수에 3명을 배치하면 상대가 2명의 공격수를 사용할 때 +1의 상태가 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1명의 공격수를 쓸 때는 +2의 비효율적인 상태가 된다. 따라서 1명의 수비수가 미드필드로 올라가 공격에 가담해야 한다.
상대가 3명의 공격수를 쓸 때는 수가 같기 때문에 미드필드에서 1명이 내려와 수비에 가담해야 한다.
수비수에 4명을 배치한 상황. 상대 공격수가 1명이면 +3의 비효율적인 상태이므로 양쪽 수비수가 미드필드로 올라가 공격에 가담한다.
상대공격수가 2명이면 +2의 상태이므로 양쪽 수비수 중 공격 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올라간다.
상대공격수가 3명이면 +1의 상태이므로 무리 없이 대처할 수 있다.
수비수가 4명인 포메이션에 비해 수비수가 3명인 포메이션은 +1을 유지하기 위해 수비수가 올라가기도 하고 미드필더가 내려오기도 하는 등 움직임이 복잡하다. 좌우수비와 중앙수비, 미드필드 등 여러 위치에서 뛸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는 점도 제약이다. 따라서 수비수가 4명인 포메이션이 조금 더 유연한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축구에서도 이 포메이션을 주로 쓴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선수들이 어떻게 +1의 상태를 만드는지 유심히 살펴보자. 경기가 훨씬 더 재미있어질 것이다.
삼각형은 승리의 비결
앞서 +1의 상태를 유지해 수적 우위를 점하는 포메이션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제 현대 축구의 중요한 전술인 압박에 대해 알아보자. 포메이션에 따라 선수들을 배치했을 때 공격수와 수비수의 간격은 이미 과거 50~60m에서 30m 정도로 줄어들었으며, 이런 압박은 앞으로도 계속될 추세다. 이렇게 압박을 강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삼각형이다. +1의 상태를 유지하면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상대팀 선수가 공을 잡았을 때 압박의 기본은 세 방향에서 둘러싸는 것이다. 공을 잡은 선수 주위를 3명이 둘러싸면 각각이 꼭짓점이 되는 삼각형을 이룬다.
위와 같이 경기장에 선수들이 서있는 배치를 보면 상대팀 선수가 공을 잡았을 때 주위의 선수 3명이 삼각형으로 압박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런데 앞서 설명했듯이 1명을 3명이 상대한다면 +2의 상태이므로 비효율적이다. 공을 잡은 선수가 패스한다면 그 곳에서는 오히려 선수가 모자라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래서 선수들은 압박하는 삼각형의 면적을 줄이는 방법을 쓴다.
공격과 수비의 거리가 멀면 그 사이의 공간이 넓고, 압박을 위해 만든 삼각형도 면적이 넓다. 그러면 공을 잡은 선수는 상대 선수가 다가오는 데 걸리는 시간 동안 여유 있게 주위를 둘러 보고 드리블이나 패스 등 다음 행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공격과 수비 사이가 좁으면 삼각형도 면적이 좁다. 상대 선수가 순식간에 다가오므로 공을 잡은 선수는 다음 행동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어 공을 빼앗기거나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압박을 강하게 하면 상대 선수가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는 삼각형 공간을 촘촘하게 만들 수 있다.
삼각형은 공격에서도 유용하게 쓰인다. 공격수가 상대 수비수에 비해 +1의 상태일 때 공격수는 2대 1 패스를 이용해 손쉽게 수비수를 지나갈 수 있다.
삼각형의 모양에 따라 양옆으로 넓게 벌리는 패스인지, 적진 깊숙이 침투하는 패스인지 성격이 달라진다.
공격수가 패스할 수 있는 상대가 2명이라면 더욱 좋다. 공을 잡은 공격수가 패스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2명이라면 상대 수비수는 삼각형의 가운데에 놓인다. 압박하기 위한 삼각형에서 공을 차지하고 있는 팀만 바뀐 것이다.
수비수는 공격수가 어디로 패스할지 모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수비를 하지 못 한다. 덕분에 공격이 훨씬 쉬워진다.
축구에서는 3명의 선수가 짝을 지어 연속적으로 삼각형을 만드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삼각형을 계속 유지한다면 짧은 패스를 통해 쉽게 상대팀의 수비를 돌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명의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 그리는 삼각형은 축구의 중요한 전술이자 아름다운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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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Ⅰ 수학을 알아야 축구를 잘 한다 : 축구는 수학이다
PART Ⅱ 수학으로 월드컵을 예측한다 : 누가누가 이길까?
전쟁에서 꽃 피운 수학
작전명령 ① 대포를 정확하게 쏴라!
작전명령 ② 정확한 지도를 만들어라!
작전명령 ③ 최선의 방법을 찾아라!
작전명령 ④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